I'm living as a healer in the fantasy Nord world RAW novel - Chapter 27
27화
길드 마스터의 포스에 소란스러웠던 분위기가 단번에 정리됐다. 딱히 지시하지도 않았는데 길드원들은 각자 자신의 파티를 찾아 무리를 이뤘다. 리디안도 자연스레 크라이그가 있는 방향으로 향했다.
대열이 만들어지고 정숙해지자 모두가 기대, 긴장에 찬 눈으로 길드 마스터를 바라봤다.
“미리 몇 가지 말씀드릴게요. 마녀의 무덤은 필드 보스라 패턴이 딱히 복잡하진 않아요. 오히려 여기가 가장 단순한 편이죠. 일전에도 가볍게 다녀오자고 했고 레이드 자체가 딱히 어렵진 않다, 라고 격려하고 싶지만…….”
마제스티가 쓰게 웃어 보였다.
“사실 지금 있는 이곳이 게임이 아닌 만큼, 우리가 모르는 변수 상황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러니 모두가 진지하게 임해 주셨으면 해요. 목숨은 소중하니까요. 만일의 사태가 발생할 시, 제가 최대한 실시간으로 파악하여 중계할 테니 모두 협조 부탁드립니다.”
마제스티는 길드원들을 향해 꾸벅 고개 숙였다. 덩달아 고개 숙이려던 리디안은 주위에서 터져 나오는 네, 하는 경쾌한 대답에 멈칫했다.
같은 파티인 아이쿠가 어깨를 흔들며 웃었다. “누나, 굳이 안 그래도 돼요.” 웃음 섞인 목소리에 민망해진 리디안은 슬쩍 시선을 피했다.
“입장 전에 간단하게만 설명해 드릴게요. 1, 3, 5 홀수 파티는 적색 마녀 담당. 2, 4, 6 짝수 파티는 청색 마녀 담당입니다. 홀수 파티 지휘는 저 마제스티. 짝수 파티 지휘는 크라이그 님입니다. 각 파티 맵 진입 후, 먼저 일반 몹 제거하면서 리스폰 위치로 이동합니다.”
이미 이노센트를 통해 한번 들었던 내용이지만 리디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경청했다.
“적색, 청색 둘 다 패턴은 똑같습니다. 먼저, 눈이 빨개질 때 전체 공격, 눈이 파래질 때 디버프 공격이에요. 그리고 갑자기 하늘을 바라보면 잡몹 소환입니다. 전체 공격은 대규모고 고정 퍼센트로 무조건 HP 깎입니다. 디버프는 딜러들한테 무조건 랜덤으로 들어가고요. 또 일반 평타에 가끔 범위 공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범위 공격은 구분 없이 랜덤으로 들어오니까 힐러분들이 많이 바쁘실 거예요.”
세인트들을 향한 찡긋거림에 무니와 앵두군이 우우, 하며 작게 야유했다.
“그리고 순간 딜량이 높은 딜러에 대해 랜덤으로 자리 이동시키기도 합니다. 갑자기 메인 딜러들의 위치가 바뀌어도 너무 놀라지 마세요. 뭐, 거의 티가 안 나서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될 거예요. 그리고 마녀 공략에 가장 중요한 건 잡몹인데, 마녀가 한 번 소환하면 수가 좀 많아요.”
보스 몬스터의 잡몹 소환 패턴은 어딜 가나 흔했고, 누가 생각해도 정석이었기에. 리디안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잡몹을 담당하게 될 보조 탱커들만이 잔뜩 긴장해 있을 뿐이었다.
“보통 최소 열 마리에서 스무 마리 정도 소환한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그러니까 보조 탱커분들은 잡몹 어그로만 끌고, 그사이에 매지션분들이 재깍 잡몹 처리 담당하시면 됩니다. 보조 딜러분들이 잡몹 담당하는 것도 베스트인데… 지금 파티 여력상, 보조 딜러분들 화력이 높지 않으니 매지션분들에게 처리 맡길게요.”
마제스티는 싱긋 웃으며 매지션이 있는 곳을 바라봤다. 걱정하지 말라며 끄덕이는 불꽃심장과는 달리 테세우스는 호들갑을 떨며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될 수 있는 대로 잡몹들은, 메인 딜러들 근처에 안 오게만 해주세요. 그 외 다템 제외한 비전투 직업분들은 가능한 모여 계시고요. 홀수 파티는 세자 님이, 짝수 파티는 독재 님이 비격수 보호해 주시면 됩니다! 알림은 여기까지. 나머지는 입장 후, 파티장 지시 따라 주세요!”
길드 마스터의 긴 브리핑이 끝나자, 각 파티는 좌우로 갈라졌다. 짝수 파티인 리디안은 같은 파티원을 휙 둘러봤다.
리디안의 2파티에 나이트 크라이그, 엘레멘탈서모너 독재, 가디언 적혈구, 파이터 아이쿠, 바바리안 나옹. 4파티에 파이터 이터널리스트, 가디언 자살토끼, 세인트 럭키가이, 로그 피그말리온, 아쳐 또치, 바드 양말. 6파티에 매지션 테세우스, 팔라딘 헤르메스, 아쳐 건장한, 매지션 행복, 다크템플러 하츠, 세인트 무니가 있었다.
이토록 많은 인원과 파티를 하는 것도 처음이라, 리디안은 살짝 설렜다.
사실 리디안은 단체 파티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지금처럼 보스를 잡기 위한 파티 말이다. 완전 저레벨 시절의 초창기를 제외하면, 사실상 리디안이 필드 보스를 잡을 일이 거의 없었다. 무엇보다 중저레벨 구간의 필드 보스는 항시 친목 길드들의 차지였다. 물론 직업을 무기 삼아 뻔뻔하게 합류해도 됐을 일이었지만, 숫기 없던 리디안은 다가가지 못하고 그저 바라보기만 했었다. 아이템에 대한 기대보다는 재미있겠다는 욕구가 컸기에 내심 아쉬운 부분이기도 했다.
늘 마음속에 고이 간직하고만 있던 그 소원을 이제 이룰 수 있게 되었으니, 가슴이 떨릴 수밖에 없었다. 두근거리는 가슴과 묘하게 고조된 기분에 절로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러다 크라이그와 눈이 마주쳤다. 혼자만 기대감에 찬 눈동자에 크라이그가 갸웃하는 듯했다. 리디안은 창피해져 푹 고개 숙였다. 그리곤 도망치듯 무니, 럭키가이의 뒤로 숨었다.
때마침 짝수 파티의 세인트 리더를 맡은 무니가 입을 열었다.
“제가 몇 번 와 봤으니 특이 사항 있을 때 미리 중계해 드릴게요. 일단 여기선 제가 가장 힐량이 높으니 주력으로 힐 하고, 두 분은 버프랑 보호막 안 끊기게 해 주세요. 제가 위험하다고 판단될 때는 보조 힐 요청 드릴게요.”
그에 리디안, 럭키가이가 동시에 끄덕였다.
“그리고 디버프는 먼저 본 사람이 푸는 거로 하죠. 여기 보스 기본 지능 수치가 높아서 한 번에 잘 풀리진 않을 거예요. 바드님들 엠틱 덕분에 큰일은 없겠지만……. 그래도 각자 MP는 각자 신경 쓰되 40% 아래로 떨어지면 즉시 말하는 거로 해요. 여기 클리어하고 융합 존 들어가면 그때부터는 아마, 모탈 형님이 메인 힐러 맡으실 거예요. 융합도 여기랑 크게 다를 거 없을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요~ 뭐, 별일 있겠어요? 마음 편히 해요, 우리~!”
게임 시절에서겠지만, 그래도 경험자는 다르다. 리디안과 럭키가이는 긴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세인트들이 각자의 역할을 분담하듯, 다른 직업들도 서로 간 겹치는 일이 없게 어느 정도 대화를 주고받기 시작했다.
간단한 소통이 끝날 즈음. 모든 준비를 끝낸 홀수 파티는 먼저 적색 마녀 존으로 입장했다. 리디안의 짝수 파티도 뒤처질세라, 청색 마녀 존으로 입장했다.
[청색 마녀의 무덤 B구역 에 입장하셨습니다.] [사냥터 내부에서의 이동 마법 및 아이템 사용이 제한됩니다.] [청색 마녀의 무덤 / 적정 레벨 : 75이상] [출현 몬스터 : 벨로나의 찢어진 인형 / 마녀의 심장을 가진 꽃 / 이름 없는 해골] [출현 보스 몬스터 : 청색 마녀]다른 곳과는 달리 들어서자마자 몹이 많았다. 마치 누가 몹 몰이라도 한 듯. 입구부터 몰려 있는 몹들에 랭커들이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누가 잠깐 왔다 갔나? 아니면 어제 흔적?”
“어제 사용 길드면 신세계였을 텐데?”
“에휴, 매너 없이 진짜. 베누스가 또 꼬장 부리고 간 거 아니에요? 걔 초반에도 전적이 있잖아요.”
“거기 부길마 여자애는 되게 정상인이던데 길마는 왜 그러나 몰라.”
“걘 관종이잖아요. 그리고 부길도 딱히 정상은 아닐 텐데?
“아, 빨리 후딱 정리하고 가요.”
특정 인물에 대해 랭커들이 혀를 차는 사이, 넝마가 된 인형 몹과 사람처럼 팔다리가 자라난 꽃은 물론, 각종 무기를 쥔 해골들이 괴이한 울음소리를 내며 달려들기 시작했다.
맵 특성상 어둡고 음산한 분위기와 공포스러운 몬스터의 모습에 여기저기서 낮은 비명이 터졌다. 작은 혼란의 틈에서 가장 먼저 맞서 나간 이는 ‘적혈구’라는 랭커 가디언이었다.
그는 광역 어그로 스킬인 ‘용기의 외침’을 사용해 벌 떼처럼 꼬인 몹들을 방어했다. 보조 탱커인 가디언 자토와 팔라딘 헤르메스는 근처에 흩어졌거나 멀리서 새로 모여드는 몹의 어그로를 끌어 막았다.
비격수들은 자기 직업들의 버프 스펠을 외우기 시작했고, 리디안 역시 무니와 럭키가이의 속도에 맞춰 버프를 시전했다.
적혈구야 랭커인 탓에 큰 무리는 없었고, 저레벨인 자토나 헤르메스는 방어력을 최대치로 올린 탓에 HP가 크게 달지는 않았다. 다만 모여든 몹들의 수가 많고 난이도상 기초 체력이 높아 정리하는 데는 생각보다 시간이 꽤 걸릴 듯싶었다.
힐러와 바드의 버프가 완료되고, 디버퍼인 다크 템플러 하츠의 장판이 깔리기 시작하자 처리 속도가 조금 빨라졌다. 주인공인 양 해골 사이를 가로지르던 크라이그는 힐끗, 고개 돌렸다. 보스까지는 쿨타임, MP 아껴야 한다며 테세우스가 비격수들 근처에서 알짱거리고 있었다.
사실 크라이그만으로도 잡몹 처리는 어렵지 않아서, 틀린 말은 아니었으나 리디안과 행복 옆에 붙어 얄밉게 노닥거리는 테세우스를 보니, 이마에 힘줄이 돋았다.
크라이그는 실룩거리는 입술로 테세우스를 불렀다.
“이도훈. 놀지 말고 MP 좀 써봐.”
“그래, 도훈아. 그냥 빨리 잡고 올라가자. 나 진짜 해골 극혐임.”
자리 잡고 화살을 쏘던 아쳐 또치도 맞장구쳤다. 싱글벙글 떠들기 바빴던 테세우스는 갑작스러운 형들의 투정에 헐, 하고 어이없어했다. 그러나 토를 달 입장은 아니라. 아주 작게 구시렁거리며 다가왔다.
어디 보자― 고민하던 테세우스는 일반 스펠 중 가장 효율 좋은 ‘체인 라이트닝’과 ‘어스 퀘이크’를 사용했다. 한 속성으로 연계하면 더 효율이 높겠지만, 대충하는 시늉만 보여 줄 생각이라. 테세우스는 생각나는 대로 마법을 시전했다.
매지션인 테세우스의 광역 마법이 쏘아질 때마다 몹들의 피가 쭉쭉 닳았다. 테세우스는 길드전에서도 꽤 유명한 매지션이었지만, 평소엔 나사 풀린 팔푼이 같은 이미지였기에 리디안은 인상이 달라 보이는 그의 모습을 신기한 듯 쳐다봤다.
한 번 피가 전체적으로 팍 깎이자, 메인 딜러들의 활약이 높아졌다. 크라이그가 나이트 2위 명성에 맞게 높은 공격력을 보였고, 파이터인 이터널리스트는 일대일로 차근차근 인형 몹을 처리해 갔다. 가끔 멀리서 나타나 원거리 공격을 하는 해골은 아쳐인 또치가 마크해 미리미리 없앴다.
“자토 님 기준 한 시 방향으로 원거리 세 마리!”
상황 중계는 비격수 주위를 맴도는 독재의 역할이었다.
얌전해 보이는 모범생 이미지와는 달리, 그는 우렁찬 목소리로 빠르고 정확하게 상황을 파악했다. 짝수 파티의 비격수 보호 담당인 그는 엘레멘탈 서모너였다.
엘레멘탈 서모너는 소환수를 부리는 마법사 계열로, 고레벨에 가까울수록 귀족 직업으로 분류됐다. 서모너가 소환하는 소환수는 정령 개념인데, 특이하게도 ‘무속성’이다. 그러나 개발자의 특혜를 받은 건지, 4대 원소 속성을 깡그리 무시하는 설정으로 아이템 세팅만 잘하면 매지션이나 나이트 못지않게 순수 공격력이 어마어마했다.
전체 랭킹 2위인 버베나 역시 엘레멘탈 서모너로 희귀 무기 아이템의 공격력 추가 보정까지 겹쳐 플레이어들 사이에서는 ‘딜찍누’의 표본이라 불렸다. 오죽하면 잘하면 혼자 행성도 파괴하겠다고도 하여 ‘행성 파괴자’라는 별명까지 있었다.
엘레멘탈 서모너는 MP 소모가 굉장히 심한 직업이라 물 먹는 하마라고 간혹 조롱당하지만, 잘 키운 서모너, 열 매지션 부럽지 않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서모너는 대단히 매력적인 직업이었다.
리디안 역시 초기 캐릭터 생성 시, 세인트와 엘레멘탈 서모너 두 가지 직업을 놓고 고민했었다. 서모너는 세인트보다 더 섬세한 조작 실력이 필요하다 하여 금방 포기했지만 말이다.
그런 엘리멘탈 서모너의 소환수들이 비격수들의 주위를 어슬렁거리며 다가오는 몹을 차단, 처리하고 있었다.
소환수들은 대체로 식별이 될 정도의 투명도를 가진 형태였다. 그 덕분에 시야가 가려질 위험은 없었다.
몹이 좀 더 몰리면 소환수가 대신 몸빵을 했기에, 짝수 파티는 몹시도 수월하게 마녀의 리스폰 자리로 향했다.
“우와, 경험치 오른 거 봐요. 전 벌써 5퍼 올랐어요.”
리디안의 짝수 파티에 포함된 64레벨 피그말리온이 신이 나 중얼거렸다. 그와 1레벨 차이 나는 자토도 그만큼 올랐는지 해맑은 표정으로 또치와 재잘거리고 있었다. 어둑한 환경임에도 두 사람 사이에서 핑크빛 기류가 선명히 보였다.
최근 두 사람은 공식적인 커플이나 다름없었다. 짝수 파티의 메인 딜러 중 하나인 이터널리스트는 그 모습을 보며 큼지막한 주먹을 입에 물었다. 그리고 소리 내어 흑흑 울었다.
“우리 또치 형이… 날 버렸어.”
독재는 서운한 그의 등을 위로하듯 두드렸다. 그 두 사람의 티 나는 리액션에 모두의 관심이 집중되고 얼레리꼴레리 놀리는 분위기가 되었다.
부끄러워하는 자토와 또치를 놀리는 와중에도 잡몹은 꾸역꾸역 몰려들었고, 탱커와 딜러들은 분주히 움직였다. 따라온 저레벨들도 마냥 보고 있지만은 않았다. 보스 존에서 할 수 있는 거라곤 잡몹 처리뿐이기에, 어정쩡하더라도 딜러인 만큼 잡몹 처리를 거들었다.
그렇게 몹들을 처리하며 이동하다 보니, 어느새 파티는 청색 마녀의 리스폰 포인트와 가까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