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living as a healer in the fantasy Nord world RAW novel - Chapter 290
290화
가장 많은 몬스터를 막고 있던 일반인이 먼저 무너지고 말았다. 그가 시체로 변하자 달라붙어 있던 바르그들이 널리 퍼져 나갔다.
종횡무진 뛰어다니는 몬스터의 움직임은 충분히 공포스러웠고, 플레이어들은 높은 비명을 질러 댔다.
수습은커녕 질서조차 없는 상황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스펠, 스킬을 사용하는 용감한 목소리 대신 높은 비명과 거친 욕설이 더 늘어갔다.
더 심각한 건. 이 인원으로도 아직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는 것이다.
끝까지 버티던 하이 랭커들도 저마다 혀를 내두르기 시작했다. 그에 신사도 더는 힘들다는 것을 깨달았다.
“후퇴! 모두 후퇴하세요!”
힘이 실린 목소리에 비명은 더욱더 켜졌다.
이미 필드 밖으로 도망친 사람이 태반이었다. 소수로 남은 사람들은 후퇴 지시가 뜨자 황급히 귀환을 시도했다. 대부분 길드 아지트로 귀환했고, 길드나 아지트가 없는 사람은 인벤토리 내 귀환 스크롤을 꺼내 들었다.
“어? 스크롤 사용 안 되는데요?”
“뭐야? 마을 귀환 스크롤 왜 안 써지는데?”
일부가 속속들이 귀환하는 가운데. 스크롤을 든 사람들에게서 당황한 신음이 새어 나왔다. 미드가르드로 귀환할 수 있는 이동 스크롤 아이템이 사용 불가한 상황이었다.
중고레벨들이 귀환하면 곧장 아지트로 귀환해 도망가려던 하이 랭커들도 멈칫했다. 이동이 불가한 중고레벨들을 남겨 두고 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찡그리면서도 신사는 일단 최대한 그들을 보호할 것을 지시했다. 그러곤 성벽 위에 남은 매지션들을 쳐다봤다.
“매지션들! 전이 마법 사용 확인하세요!”
때마침 어느 매지션의 파티가 정상적으로 이동되는 것이 목격됐다. 그에 하이 랭커들의 표정이 밝아졌다.
“매지션! 매지션 스펠은 사용 가능해요! 매지션분들이 남은 사람들 태워 가세요!”
빨리 도망가고 싶어 안달이 난 테세우스가 바삐 외쳐댔다. 널리 퍼지는 정보에 남은 매지션들이 서둘러 파티를 재편성했다.
그사이 하이 랭커들이 최대한 근처의 몬스터를 막아 버텨 냈다.
“이동 불가하신 분들 매지션 파티 받아서 이동하세요!”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남은 자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매지션을 찾아갔다. 이동을 책임진 매지션들은 꾸역꾸역 파티를 추가, 동맹까지 맺어 귀환을 꾀했다. 다행히 상호 간의 빠른 협조 덕분에 남겨진 자는 없었다.
제멋대로 필드 밖으로 나가 고립되거나, 이미 사망해 버린 플레이어들은 제외하고 말이다.
“그럼 저희도 이동할게요!”
남은 중고레벨들이 모조리 귀환한 후. 드디어 하이 랭커의 귀환 차례가 찾아왔다.
들개와 늑대 무리에 둘러싸이기 직전. 테세우스가 극적으로 이동 마법을 사용했다. 리디안은 달려드는 짐승 떼를 바라보며 질끈 눈을 감았다.
[미드가르드로 이동합니다.]* * *
“시X! 이게 뭐냐고!”
미드가르드 게이트 앞은 순식간에 난리가 났다. 다른 도시의 상황도 헬하임과 같았기에 게이트 앞은 도망친 사람들로 인산인해였다.
아지트 귀환으로 도망쳐 길드 성에서 쏟아져 나온 플레이어들도 게이트로 몰렸고, 시간이 지나니 사망했던 사람들도 차례차례 모습을 드러냈다.
“뭐야? 다른 데도 똑같았어? 몹들 도시에서 뜨던데. 우리만 그런 거 아니죠?”
“미친 거 아니야? 광역기 시X!”
“와 바나헤임 돌았나, 진짜. 그 보라색 뱀 새X 뭔데?”
“알프하임이야말로 진짜 헬이었어요. 요정 여왕, 그게 갑자기 네임드로 바로 옆에 떠서…….”
“몹 난이도 봤어요? 어이없을 정도로 높던데? 하이 랭커들이 있어야 잡을 수 있는 수준이던데요?”
“우리 같은 저레벨은 털끝 하나 건드리지도 못했어요. 한 대 맞으면 그냥 죽어서.”
정신없는 분위기에서 성난 불평이 콸콸 쏟아져 나왔다. 가만히 듣고 있자니, 리디안이 있는 헬하임은 그나마 양반이었다.
일부 지역엔 광역기를 사용하는 마법형 몬스터들이 대거 뜨는 바람에 대학살이 일어난 상태였다.
특히 알프하임의 경우, 요정의 미로 보스인 요정 여왕 아렐이 ‘네임드’ 등급으로 나타나 플레이어들을 순식간에 몰살시켰다. 덕분에 알프하임에 있던 저레벨 플레이어들은 활약 한 번 못해 보고 즉사했다.
“전에 봤던 시체 밭은 아무것도 아니었네. 이건 뭐…….”
파파는 바닥을 가득 메운 사람들의 모습에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깨어난 사람들은 처음에 어리둥절하다가 상황을 이해하곤 목소리를 높였다.
그중 가장 당황스러운 건, 몇몇이 하이 랭커들을 향해 비난하는 광경이었다.
“아 뭐예요! 수성전이라면서! 근데 왜 공성인데?!”
솔직히 우스운 일이었다. 사실 추측이었고 누구 하나 그를 확정된 것처럼 말한 적은 없었는데. 당장 제 죽음에 화가 난 플레이어들은 하이 랭커들을 죄인으로 몰아갔다.
일방적인 매도에도 레온을 비롯한 길드 마스터들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화를 내는 플레이어들에게 기분이 상하는 건 둘째 치고, 이 상황이 너무 황당했기 때문이다.
“분명히 말했습니다! 정보 하나 없는 상태라 최대한 추측해서 계획했다고! 그걸 저희 책임으로 돌리면 곤란하죠! 저희도 억울해요! 이렇게 나올 줄 몰랐다고요!”
그나마 가장 만만하다고 여긴 것인지. 유독 대기업에 따지고 드는 플레이어가 많아 결국, 뚱이가 폭발했다.
충격받은 박회장이 아무 말도 못하고 널브러져 있는 사이, 참다못한 뚱이가 사람들을 향해 날카롭게 소리친 것이다. 마찬가지로 대기업 간부들 역시 참지 않고 맞섰다.
불쾌한 언성이 높아지니 몰려들었던 플레이어들도 주춤하며 물러섰다. 이후 작은 웅성거림만 남긴 채, 미드가르드 중심부엔 무거운 적막이 내려앉았다.
“겨우 조용해졌네.”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귀를 막고 있던 괴자가 지친 한숨을 내쉬었다. 그 옆에 있던 리디안은 가라앉은 도시를 멍하니 둘러봤다.
마치 처음 이곳에 이동된 날을 보는 듯했다.
대부분 패배자처럼 절망적인 표정을 하고 있거나 말도 안 되는 상황에 황당한 웃음을 터트리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멘탈 약한 소수는 공포감을 호소하며 울고 있었다. 그나마 하이 랭커들은 억울함에 할 말이 많아 서로에게 하소연했다.
“아니… 침공전이잖아. 당연히 밖에서 침투해 오는 형태 아니야?”
“그쵸. 침공전이라고 했으니 당연히 그렇게 이해하죠. 그러니까 성벽 방패 삼아서 수성하는 걸로 준비했지.”
“솔직히. 인간적으로 공성이었으면 사전에 안내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시간이 흐를수록, 비난의 화살은 불친절한 ‘시스템’으로 돌아갔다.
열이면 아홉, 모두가 이 상황이 황당하다는 눈치였다. 리디안도 아무 말 못 하고, 그저 가만히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기만 했다.
“솔직히 이 상황에서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돌아가길 바란 건 아니야. 근데 기본은 해야 할 거 아니야? 8월에 침공 전야제 수락 어쩌고도 X나 어물쩍 넘어가거니. 시작하자마자 또 이래?”
“시X. 어떤 새끼가 관리하는지는 몰라도 진짜 개X끼라니까요.”
“뭐, 우리도 처음에 공선전 확률도 생각은 했지. 근데 보통은 수성 아니냐고. 얘네 다른 게임에서도 침공은 무조건 플레이어가 수성했잖아.”
“맞아요. 우린 당연히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죠. 이름부터가 침공전인데. 당연히 몬스터가 쳐들어온다고 알아듣지. 반대로 몬스터가 도시를 점령하고 시작할 거라 상상이나 했겠어요?”
물론 세계가 달라진 지금에서야 생각하면 너무 틀에 박힌 사고였다. 하지만 대다수 플레이어는 그 상황을 모르고 있으니. 모르는 상황에서 생각하자면 심히 억울할 수밖에 없었다.
욕설과 비난이 난무하는 가운데, 사태를 진지하게 바라보는 건 전투 길드 마스터들뿐이었다.
처음엔 다소 당황해하던 그들도 곧장 정신 차리곤 상황을 정리해 갔다.
“그럼 지금 여섯 개 도시 전부. 몹이 내부에서부터 소환돼서 점령된 상태네요. 미드가르드만 멀쩡하고.”
“이렇게 되면 우리가 도시를 탈환해야 하는 처지인데. 곤란하네요. 아무리 봐도 수성보다 공성이 더 힘들 텐데.”
“헬하임. 몹 한 마리도 못 잡은 거 맞죠?”
마지막 백검의 물음에 딜러들은 신음을 삼켰다. 역으로 뒤바뀐 처지에 길드 마스터들은 딜레마에 빠졌다.
두루뭉술하고 성의 없는 안내 메시지는 그렇다 쳐도. 당장 상황을 수습할 생각부터 해야 했다.
“계속 이러고 있을 순 없어요. 가만히 앉아 있어선 뭐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니까요.”
마제스티의 말이 옳았다. 이대로 무기력하게 패배를 기다릴 게 아니라면 말이다.
그에 한참 동안 곰곰이 생각하던 풍월주가 손을 들어 제안했다.
“일단, 섀헌님들 모아서 정보부터 수집하죠. 난이도는 어쩔 수 없는 것 같으니 일단 패스. 우리 길드원한테 듣자 하니 지역마다 몹 특성이 있는 듯한데. 그럼 보스나 네임드도 그 비슷한 것들 아니겠어요? 그러니 먼저 그것들 정보부터 정리하고, 공략 여부 정해요.”
풍월주의 제안에 마제스티의 눈이 빛났다. 그는 바로 맞장구치며 힘 빠진 길드 마스터들을 번갈아 쳐다봤다.
“맞는 말이에요. 그리고 오늘 첫날이잖아요. 원래 이벤트 첫날은 정보 없어서 다들 우왕좌왕하기도 하고요. 좀 예상이랑 너무 달라서 당황스럽긴 한데, 그래도 찾다 보면 방법이 있을 겁니다.”
참 파이팅 넘치는 목소리와 표정이었다. 난감해하던 사람들도 그제야 실소를 흘리며 끄덕였다.
레온도 마제스티의 말에 힘을 얻곤 신사를 쳐다봤다. 여태 혼자 심각하던 신사도 결심했는지, 비장한 눈빛으로 말했다.
“그럼 당장 탐색 조부터 꾸리죠. 길마님들 당장 길드에 은신 섀헌들부터 모아 보세요.”
일제히 대답한 길드 마스터들이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리디안은 한곳으로 집결하는 섀도우 헌터들을 멍하니 바라봤다. 길드 마스터들의 요청에 이해하곤 끄덕이는 걸 보니, 뭔가 임무를 맡은 모양이다.
추측하기로는 아마 도시 탐색이겠지만, 리디안은 실감 나지 않았다.
언뜻 들은 다른 도시의 상태는 물론이거니와 헬하임에서 마주친 몬스터들의 수준을 생각하니 앞이 까마득했다.
당초 헬하임과 니플헤임만 신경 쓰면 충분할 것으로 예상했기에 더 충격적이었다.
“헬하임만으로도 빠듯한데, 나머지 다섯 개 도시는 대체 어떻게 클리어해야 하는 건지…….”
홀로 중얼거린 리디안은 긴 한숨만 푹푹 내쉬었다. 그래도 다행인 건, 아까보다 주변이 조금 진정되었다는 것이다.
“혹시 네임드나 보스 확인된 곳 있어요?”
“알프하임에 네임드로 요정 여왕 있었대요.”
“요툰하임은 보스 ‘흐레스벨그’라는데요? 외곽에 바로 떠서 학살당했다던데.”
“헐. 그 허접 비둘기 새X가 도시 보스?”
어느 정도 화가 풀리니, 다음으로 각 지역에 대한 정보가 퍼져 나갔다. 이미 길드 마스터들이 섀도우 헌터를 보내 탐색을 시도 중인 터라. 신사는 은연중에 들려오는 정보에 쫑긋쫑긋 귀를 기울였다.
한편, 분수대 옆 벤치에 몰려 있던 태양 연합은 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뛰어다니는 섀도우 헌터들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핑크푸크는 그중에서도 대장군을 무표정하게 쳐다봤다. 어쩐지 애증이 담긴 시선이었다.
“대충 몹만 다 잡으면 될 줄 알았는데. 이거 생각보다 엄청 심각한데요? 저희도 각 잡고 제대로 해야 할 것 같네요. 자칫하면 우리도 개죽음당하겠어요.”
비교적 조용히 협조하던 태양 연합도 진지한 모습이었다. 망해버린 길드 세력에 침공전을 회의적으로 바라보던 이트는 상상도 못한 난도에 혀를 내둘렀다.
“아. 사이 님 데려와야 할 것 같은데. 다템이든 뭐든 일단 인원이 많아야….”
슬쩍 자신을 바라보는 이트의 시선에 핑크푸크가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프리피케 출신인 다크 템플러 사이는 잠적한 상태다. 그에겐 침공전의 단합보다 레온을 향한 악감정이 더 우선이었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사이가 없는 것 때문에 일반 플레이어들로부터 모난 취급을 받았던 터라. 핑크푸크는 지친 한숨을 내쉬었다.
그나마 갤럭시가 자리를 지켜 주고 있어 다행이었다.
레온과의 소원한 관계에도 갤럭시는 흔쾌히 침공전에 지원했고, 생각보다 협력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갤럭시는 팔짱을 낀 채 레온이 있는 진영을 바라보며 말했다.
“우리만 따로 행동하기보다, 저쪽이랑 같이 움직여야 할 듯싶네요.”
“갤럭시 님 말이 맞습니다.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허들이 높아요. 이대로면 절대 못 막습니다. 핑크푸크 님, 무너스키 님. 결단을 내리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