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living as a healer in the fantasy Nord world RAW novel - Chapter 392
392화
【나스트론드 레이드】
60인의 전멸은 지나가던 이들의 눈길을 끌었다.
몽롱하게 정신 차린 리디안은 사방에서 들려오는 수군거림에 귀를 기울였다.
“파프니르 재도전했다면서. 역시 다 쓸려서 왔네.”
“상식적으로 용을 어떻게 이기냐고요.”
“에휴, 고생들 했수다.”
이런저런 말이 많았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호들갑스럽진 않았다. 오히려 진작 그럴 줄 알았다며 대체로 평온한 모습을 보였다.
리디안은 점잖게 위로하고 가는 플레이어들의 모습에 얼이 빠지고 말았다.
“뭔가 기분이 이상하네요. 다들 실망하고 원망할 줄 알았는데.”
“그냥 기대하지 않는 것일 수도 있죠.”
크라이그가 현실감 있게 추측했다. 그 말을 듣고 나니 그런 것도 같았다. 쓰게 웃은 리디안은 주변을 훑었다.
다른 사람들은 개의치 않는다지만, 하이 랭커들에겐 아니었다. 어쨌거나 이번 도전 역시 처참한 실패였다.
가능성을 기대했던 전투 길드원들의 표정은 다소 어두웠다.
“당황스럽네. 드래곤이니까 당연히 보스라고 여기긴 했는데… 그래도 다른 패턴은 생각도 못 했다. 용이니까 당연히 브레스가 최고인 줄 알았지…….”
마제스티가 멋쩍게 중얼거렸다. 다른 이들의 생각도 같은 편이었다. 브레스에 정신이 팔려 다른 패턴에 대해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와… 우리 이거 방법 없는 거 아니에요?”
크게 충격 받았는지, 샤봉이 실소하며 물었다. 한동안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같은 충격에 잠시 멍해 있던 리디안의 눈이 반짝였다.
“페페 님. 저 아까 죽으면서 생각해봤는데요. 혹시 벼락 떨어지기 직전에 여신의 영역을 써보면 어떨까요? 방어력이 순간적으로 증가하잖아요. 벼락이 일회성이라면… 지속 시간이 없는 단타 공격이라면 어느 정도 상쇄할 수 있지 않을까요? 아, 전부 용사 세트를 착용했다는 가정하에서요.”
가만히 경청하던 페페도 일리 있다며 끄덕였다. 눈빛을 나눈 리디안과 페페는 곧장 간부들에게 향했다.
잠시 후, 두 사람의 의견이 전해지자 의견은 반반 갈렸다.
“오. 시도해볼 만한데요? 근데 영역 두 개로는 150명 이상 수용이 안 될 텐데.”
“지금 바로 파프니르한테 또 갈 건 아니잖아요. 평야든, 나스트론드든. 어디든 파밍할 테니 영역이 더 나올 수도 있죠. 설마 영역이 하나도 안 나오겠어?”
“여러분. 용이에요, 용. 아예 그냥 즉사 패턴일 수도 있어요. 그리고 운 좋게 들어맞는다고 해도, 그 이후로 나올 패턴들도 문제고요.”
“결국, 무한 재도전의 굴레에 빠질 수밖에 없는 건가.”
마지막으로 탐식자가 우중충하게 읊조렸다. 그의 말처럼 패턴이야 반복 재도전으로 얼마든지 알아낼 수 있다. 하지만 또다시 죽음을 반복해야 하는 사람들의 처지에선 달가운 일이 아니었다.
“…어쨌든. 파프니르고 나발이고. 우리가 장비를 더 업글해야 하는 건 맞아요.”
박회장의 한마디에 수군거리던 모두가 인정했다.
가야 할 길은 하나였으나, 간부들은 개인의 의견을 존중하기 위해 2차 레이드 진행에 대한 참여 여부를 확인했다. 그 결과 예정된 죽음을 감당하지 못한 몇몇 소수가 물러났다.
다음으로 진행한 건 레이드 목적지에 관한 투표였다.
첫 번째 나스 평야 C 구역. 두 번째 나스 평야 B 구역. 세 번째 나스트론드 C 구역. 세 가지 선택지 속에서 플레이어들은 한참을 고민해야 했다.
그러던 중, 레빈의 숲을 탐색하던 가을 길드로부터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다.
[돈게스 : 우리가 지금 이상한 걸 찾았는디. 서너 시간 돌아도 아무것도 없길래 계속 뺑이만 치는 줄 알고 철수하려고 했는데. 우리 길드 막내가 바위에 한 번 앉으니까 갑자기 북쪽에 게이트가 생기지 뭡니까? 들어가 봤는데 ‘황금 강가’이라는 신 맵이고, 몹도 있는데… 아니다. 암튼 와서 직접 확인해 보슈.]귀찮음이 역력한 메시지였다. 하지만 하이 랭커들에겐 몹시 반가운 소식이었다. 내용이 공개되자 곧장 정찰조가 투입됐다.
대략 한 시간 후, 대장군과 페이지, 삼촌. ‘황금 강가’ 맵을 탐색한 삼인방이 모두의 앞에서 상세히 보고했다.
“들어갈 때 난이도 선택이 가능했어요. 일단은 멀쩡하게 맵 정보 뜨는 평범한 사냥 맵이에요. 다만 바위 장치로 문이 열리는 특수 형태? 도시 게이트 통해서는 갈 수 없는 히든 스테이지 개념 같아요. 문제는 한 시간마다 문이 닫혀서, 바위를 찾아서 다시 열어야 해요. 바위는 랜덤으로 또 바뀌고요.”
“몹은 40레벨 대. 보스는 금색 물뱀… 굴에 상주하는 애라, 특정 위치만 피해 다니면 마주칠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출구는 열한 시 방향인데, 다음 맵이 나와요. 이름은 ‘난쟁이의 마을’. 여기도 사냥터예요.”
“황금 강가랑 레벨 대는 비슷. 보스도 있음. 이후로 맵 계속 넘어갈 수 있음. 전부 전투 맵이고 순서가…….”
간단하게 말하던 삼촌이 슬쩍 대장군과 페이지를 쳐다봤다.
그에 삼촌보다 기억력 좋은 그들이 대신 대답했다.
“황금 강가. 난쟁이의 마을. 황금 평야. 황금 고원. 황금 산맥 초입. 황금 산맥. 그 다음은 어딘지 아시죠?”
파프니르의 둥지. 리디안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했다. 박회장은 자신의 예상대로였다며 자랑스럽게 웃었다.
“역시 일반 루트가 있을 줄 알았어. 보니까 지름길이 이름대로 경로가 더 짧고, 비전투 구역도 포함. 반면 일반 루트는 올 전투 지역에 보스가 존재하는 사냥터. 그리고 경로가 길음. 시간상의 불편함만 감수한다면 전력은 최대치로 데려갈 수 있겠네요.”
자잘한 부연 설명에 곳곳에서 좋아하는 반응이 번졌다.
점점 소란스러워지는 분위기에 신사가 목소리를 높였다. 아직 레이드 목적지 투표가 남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투표는 오 분 만에 끝났고 목적지로 낙첨된 건 나스트론드 C 구역이었다.
“사실 우린 이미 경험해 봤으니 나스 평야가 한결 쉽겠지. 근데 다음 맵들이 있는 상태에서 나스 평야 C를 또 가기엔 좀 그렇지 않나. 그렇다고 나스 평야 B를 가느니 차라리, 나스트론드 B로 가는 게 낫지 않겠어?”
어떤 패턴이 등장할지 모르는데도 플레이어들은 새로운 것을 원했다. 리디안은 다시 마주할 새로운 환경이 불안했지만, 함께 하는 파티원들의 기세에 힘입어 두려움을 떨쳐냈다.
“그럼 정비 후, 삼십 분 후에 니플헤임에서 뵙겠습니다.”
시간에 쫓기듯 즉흥적인 레이드 팀이 만들어졌다. 목적지는 나스트론드. 인원은 나스 평야 때보다 조금 적어졌지만, 박회장의 발이 빠른 대처 덕분에 대기업 길드원으로 충원됐다.
“나스 평야 때보다 장비도 좋아졌고, 신스펠이랑 스킬 사용자도 늘었으니 기대해도 되겠지?”
“이번에도 대박 터졌으면 좋겠어요. 나스트론드니까 더, 더, 더!”
니플헤임에 모인 플레이어들은 상기된 표정으로 저마다 기대했다. 첫 레이드였던 나스 평야가 생각보다 쉽게, 한 번에 끝난 편이라 대다수가 클리어를 당연하게 여기고 있었다.
물론 리디안은 나스 평야 레이드가 C 구역이었다는 걸 잊지 않았다. 이틀 전의 레이드는 C 구역임에도 리디안의 기준에선 크나큰 정신적 소모를 요구했다. 그랬기에 리디안은 걱정 투성이었다.
“그냥 전멸만 안 했으면 좋겠는데…….”
리디안은 초점 없이 웃었다. 약간의 두려움을 가진 채, 나스트론드를 향해 출발했다.
* * *
“보스 열두 시 방향 주의하세요. 보이는 일반 몹은 모두 제거해주시고 선두 따라서 천천히 진입하세요. 길 좁습니다. 후방 인원은 몹 리젠 신경 써 주시고요.”
나스 평야에서 한 시 방향. 빙벽 사이로 난 협곡을 쭉 따라가니 거대한 설산이 나타났다.
리디안은 설산 아래 부자연스럽게 빛나는 게이트를 바라봤다. 니플헤임의 두 번째 맵, ‘나스트론드’ 던전으로 향하는 출입구였다.
차례대로 들어선 곳은 거대한 얼음 동굴이었다. 그저 노란 불빛뿐인 단조로운 얼음 동굴.
특이한 점이라면 나스 평야보다 서늘한 한기가 맴돈다는 것. 그리고 정면 끝으로 성에가 가득 낀 철제 건물이 있었다.
“뭐야. 여긴 그냥 대기존 같은 건가? 몹도 없고. 저기가 진짜 나스트론드인가 본데?”
“근데 원래 구역마다 맵 여러 개 있지 않나? 아까 들어오기 전에 난이도 선택할 때도 추가 맵 안 보여서 뭐지, 했는데. 맵이 난이도마다 그냥 하나뿐인가 보네요?”
“맵 이름에 소감옥이라고 뜨는데? 대감옥도 있나 그럼?”
“저 앞에 교도소 같은 게 대감옥 아니에요?”
“나스트론드가 원래 죄를 짓고 죽은 자들을 가두는 감옥이에요.”
세인트들의 웅성거림에 하이로가 설명했다.
박회장도 앞쪽에서 나스트론드에 관한 이야기를 늘어놓는 중이었다.
그 사이 미리 나스트론드를 탐사했던 대장군이 궁금증 투성이인 플레이어들을 진정시켰다.
“저 감옥까지가 소감옥이에요. 안에 나가는 출구 말고 수상한 입구가 하나 더 있는데, 아마 그게 대감옥으로 가는 길 같아요.”
“흠. 보스 존인가? 지하도시랑 비슷한 구조일 수도 있겠네.”
“그럼 이후로도 구역 당 맵 하나씩이에요?”
“아, 네. 나스트론드부터 나스 산맥까지 1, 2, 3 선택지는 안 떴어요.”
확실하다는 대장군의 증언에 주변이 소란스러워졌다. 지금이야 의미는 없지만, 플레이어들은 이런 정보에 말 얹는 걸 퍽 좋아했다.
“알겠다. 맵 하나인 거 보니까 여기서부터 경쟁 부추기려고 했나 보네.”
“그럼 난리 나죠. 전투 길드끼리 통제하고 진흙탕 싸움하고. 어우, 생각만 해도 스트레스.”
“원래 이런 게임은 플레이어들끼리 경쟁하고 그래야 더 살아나니까요.”
“오… 막판에 느슨해진 하이 랭커들에게 긴장감을 주기 위한 새로운 방향?”
“욕만 디지게 처먹었을 듯.”
시시덕대는 비격수들의 수다에 리디안은 공감하며 웃었다. 그사이 대강 주변 지형을 살핀 신사가 소감옥으로의 진입을 지시했다.
그에 선두에 선 탱커들이 얼어붙은 철문으로 다가갔다. 꽉 닫힌 철문은 플레이어의 인기척에 반응해 개방됐다. 공간이 분리된 형태는 아닌지, 하얀 냉기와 함께 어두컴컴한 내부가 보였다.
“와. 완전 얼음 감옥이네. 바닥이고 벽이고 물건들이고. 전부 냉기에 얼어서 그냥 얼음 그 자체다.”
냉동 창고인가 싶을 정도로 깡깡 얼었다는 걸 제외하면 내부의 환경은 영락없는 감옥. 매체에서 몇 번 봐온 교도소 그 자체였다.
시작점인 좌우 복도는 ‘ㄹ’자로 이어졌고 벽면엔 숫자가 1부터 순차적으로 새겨졌다. 빼곡히 찬 감옥은 철창으로 꽉 막혀 있었고 눈짐작으론 3, 4평 정도였다.
간혹 텅텅 비어 있는 것도 있었지만 감옥 대부분엔 몬스터가 갇혀 있는 듯했다.
[고통받는 죄수]나스트론드의 일반 몬스터인 죄수는 피골이 상접한 인간형이었다. 하지만 차라리 해골이 더 나아 보일 지경이었다. 앙상한 몰골에 피부까지 푸르딩딩하게 썩어 문드러져 있었다. 그에 좀비라고 착각한 사람들이 낭패했다.
“윽. 뭐야. 설마 언데드?”
“그런데 원래 저렇게 갇혀 있는 건가요? 그럼 활보하는 몹이 아예 없는 건가?”
“감시자, 라고. 하나 더 있잖아요. 걔는 돌아다니지 않을까요?”
“아. 혹시 우리가 문 따고 꺼내서 잡는 거 아닌가?”
여러 질문이 대장군을 향했다. 그러나 대장군은 은신한 채 뛰어다니느라 자세한 정보는 알지 못했다.
“글쎄요.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복도로 쭉 가면 끝에 출구가 있고… 그 아래쪽에 이상한 문이 있는 것만 확인했어요. 몹들은 갇혀 있는 죄수랑 돌아다니는 감시자만 봤고요.”
그렇다는 말에 탱커들이 먼저 감옥으로 다가갔다. 그러자 쥐 죽은 듯 침묵하던 죄수들이 창살을 붙잡으며 소리 지르기 시작했다.
껄끄러운 괴성에 핏발선 눈. 거기다 침까지 뚝뚝 흘리는 모습에 리디안은 공포를 느끼며 물러났다.
“아… 이거 좀비 맞는 것 같은데? 그치? 맞는 것 같지?”
니다벨리르 사원을 조금 혐오하는 이모탈이 질색했다. 자토 역시 죄수 몬스터의 특이점을 알아보곤 갸웃했다.
“생긴 건 다 똑같은데. 옷 색이 다르네요? 누더기래도 파란 옷이 있고 붉은 옷이 있어요.”
“종류가 나뉘는 거겠지. 제일 그럴듯한 게 물리, 마법. 그거 말곤 색으로 구분할 이유가 없잖아.”
이노센트가 뻔하다며 투덜거렸다. 다른 사람들도 그 말에 동의하는 눈치였다.
“우선 출구까지 한 바퀴 쭉 돌아보죠. 몹이 안 나올 것 같으니 이대로…….”
“악!”
뒤편에서 작은 비명이 솟았다. 화들짝 놀란 딜러들이 반사적으로 무기를 쳐들었지만, 위협이 될 만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어리둥절하던 때, 입구와 가까운 곳에 대기하던 비격수 무리에서 불쑥 손이 올라왔다.
“저, 저요! 갑자기 다리에 사슬이 감겼어요.”
“네? 사슬……?”
“꺅!”
“헉. 뭐야? 발이 안 움직이는데? 이동 불가? 신축 좀요!”
“엇… 신축 안 먹힌다. 어쩌죠?”
“저도 걸렸어요!”
이어 곳곳에서 비명이 연달아 퍼졌다. 모두가 발목에 얼음 사슬이 걸린 채였다.
리디안도 예고 없이 자신의 발목을 묶어버린 얼음 사슬에 당황해야 했다.
[얼음 족쇄 : 이동 불가 : 지속 시간 20초]풀리지도 않는 상태 이상이 전원을 봉쇄했다. 그에 플레이어들이 풀리기만을 초조히 기다리던 때, 가까운 감옥의 문이 철컹 열려버리고 말았다.
활짝 개방된 문을 뚫고 나온 건 고통 받는 죄수, 아니 굶주린 죄수였다. 그것들은 소름 끼치게 울어대며 ‘먹이’를 향해 쏜살같이 달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