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living as a healer in the fantasy Nord world RAW novel - Chapter 393
393화
“힐! 힐 범위 맞춰주세요!”
“후퇴! 탱커, 딜러 비격 쪽으로 붙어요!”
“여신의 손길!”
어수선한 시야에도 리디안은 HP에 집중해 스펠을 외웠다. 그래야 다가오는 파티원들이 힐 범위를 인식하고 자리를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가장 빨리 달려온 크라이그는 리디안의 손길이 들어오는 것과 원거리 딜러들의 위치를 확인하곤 몇 걸음 더 붙었다.
이어 탱커들이 마지노선에 말뚝 박은 채 용기의 외침, 신의 사슬을 시전했다.
감옥에서 풀려난 개체는 총 여섯 마리. 파란 옷이 넷, 빨간 옷이 둘이었다. 이노센트가 예상한 것처럼 빨간 죄수는 적정 지역에서 멈춰 초록색 구체를 쏘아댔다.
가장 먼저 맞은 관우가 중독되자 괴자가 당황했다. 괴자가 한참 뒤에 있다는 걸 알아챈 보리알이 대신해 신축을 시전했다.
그러나 파란 죄수의 물리 공격에도 중독이 함께였다.
“중독 대미지 높으니까 신축 계속 걸어주세요! 원거리는 빨간 죄수 일 점사!”
“아니, 저희 괜찮으니까 근거리도 빨간 놈부터 잡아줘요. 마공이 더 아퍼.”
파란 죄수의 턱을 방패로 막은 백검이 인상 썼다. 그러다 자신의 발목에 걸린 얼음 족쇄를 보곤 휘둥그레 눈떴다. 그 소식에 신사의 눈이 가늘어졌다.
“얼음 족쇄. 제자리 특정 시간 이상 머물 시 발동되는 것 같습니다. 풀려나는 대로 탐식자 님, 파피루스 님이 확인해주십시오.”
족쇄는 30초가 지나서야 풀렸다. 풀려난 사람들은 찜찜한 마음에 조금씩 걸어 자리를 옮겨 다녔다.
지시를 받은 탐식자와 파피루스가 각각 역할을 정해 테스트하는 동안, 죄수들의 처리도 끝나갔다.
[경험치가 228,470 올랐습니다.] [1,980 골드를 입수했습니다.]나스 평야가 그랬던 것처럼. 나스트론드 역시 많은 경험치와 적은 골드를 자랑했다. 사람들은 경험치에 휘파람을 불고 골드에 욕설을 던졌다.
잠시 후, 구석에서 가만히 서 있던 파피루스가 끄덕이며 실험 결과를 알렸다.
“맞네요. 한 자리에서 20초 이상 머물면 바로 생겨요.”
“반대로 저는 계속 움직였더니 안 걸렸고요. 아무래도 이거 말고도 환경적 패턴이 더 있을 것 같은데… 웬만해선 움직여서 안 걸리는 게 좋겠어요.”
왔다 갔다 움직이는 파피루스의 의견에 곳곳에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보스가 있는 곳에서 족쇄가 발생한다면 큰 지장이 있을 터.
딜러라면 모를까, 비교적 제자리에서 활동하는 원거리 딜러나 비격수 그리고 탱커들에겐 굉장히 짜증나는 함정이었다.
구시렁거리는 플레이어들을 향해 신사가 감옥을 언급했다.
“우선… 죄수는 플레이어 접근에 반응해 풀려나는 것 같습니다.”
“어? 그럼 우리한테 유리한 거 아니에요? 골라잡을 수 있는 거잖아요.”
아직은 멀리 볼 줄 모르는 슈퍼문의 열혈전사가 방글거리며 말했다.
무너스키는 그런 동생의 목덜미를 문지르며 답변했다.
“특정 시간이 지나면 문이 다 열리는 것도 생각해야지.”
무너스키의 말대로, 감옥이라는 환경적 요인을 생각한다면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그에 묵묵히 맞장구치던 대장군은 문득 떠오른 것에 한마디 얹었다.
“감시자도 잊지 말아야 해요. 그 몹은 감옥에 갇혀 있지 않고 계속 복도를 돌아다녀요. 제가 보기엔 맵에 총 세 마리 정도 있는 것 같아요. 은신도 약간 감지하는지, 제가 지나갈 때 살짝살짝 반응해서 따라오기도 했어요.”
그에 섀도우 헌터 일동이 부르르 몸을 떨었다. 그들에게 있어 은신 감지는 공포 그 자체였다.
“대강 보니까 감옥 당 머릿수는 다섯 전후 같네요. 만약, 정말로 특정 시간이 지나서 모든 문이 열리는 구조면 골치 아프겠어요.”
멀찌감치서 감옥 안을 들여다본 핑크푸크가 말했다.
그에 여러 상황을 가정한 플레이어들이 제각각 뱉었다.
“거기다 던전… 여기가 통로 형태의 길이라는 것도 주의해야겠네요. 재수 없게 중간에서 모든 감옥 문이 열리면 꼼짝없이 갇힐 겁니다.”
“그럼 다 무시하고 직으로 대감옥으로 넘어가야죠. 혹시 맵 탐색 필요한 분, 계세요?”
리디안은 아쉬움을 삼켰다. 새로운 맵의 정보가 조금 궁금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아무도 손을 들지 않자, 신사는 즉시 이동할 것을 지시했다.
그어어―
타박타박 걸을 때마다 감옥 내부의 죄수들이 거칠게 반응했다. 그것들은 매미처럼 달라붙어 창살 사이로 흉측한 손을 뻗어 휘저었다.
일부 개체는 창살에 머리를 박거나 물어뜯으며 난폭함을 보이기도 했다.
리디안은 금방이라도 창살을 뚫고 나올 것 같은 모습에 은근한 공포를 체험했다.
저런 걸 보니 니다벨리르 사원의 드라우그는 천사로 느껴질 정도였다.
좌우에서 죄수들이 아우성치는 걸 제외하면 가는 길은 단조로웠다. 그저 앞만 보고 걸으면 그만이라, 플레이어들은 빠른 걸음으로 감옥을 지나쳤다.
그리고 ‘감시자’를 만났다.
“저놈이에요.”
대장군의 경고에 전원이 우뚝 멈춰 섰다.
검은 로브를 뒤집어쓰고 낫을 든 해골이 통로를 배회하고 있었다. 우연히 마주친 해골의 눈에선 보랏빛 불꽃이 이글이글 타올랐다.
나스트론드의 네임드 몬스터, 감시자는 플레이어를 인식하곤 낫을 세웠다. 그대로 다가오나 싶어 탱커들이 경계했지만, 감시자는 우뚝 멈춰 낫을 빙빙 돌리기만 했다.
설마 원거리 공격형인가 하고 생각할 무렵. 좌우에서 철그럭, 쇳소리가 울렸다.
“가, 감옥! 감옥 열렸어요!”
여러 명이 동시에 소리 질렀다. 좌우 빈 감옥을 제외한 3개의 감옥 문이 저절로 열린 것이다. 곧장 들려오는 울음에 탱커들이 서둘러 양옆으로 달려갔다.
그사이 멀찌감치 서 있던 감시자는 유유히 사라져버렸다.
“아! 이제 알겠다. 시간제한으로 다 열리는 게 아니라, 감시자들이 여닫는 것 같아요.”
죄수와 감옥. 감시자의 역할을 떠올린 벨벳루즈가 확신했다. 개인의 추측이었으나 상당히 신빙성 있었다.
“흠. 그럼, 여기서 편하게 사냥하려면 감시자부터 조져야 하는 거네? 우리야 바로 대감옥으로 넘어갈 거니까 무시해도 될 듯?”
몰려든 죄수들을 처리하는 동안 자기 위치에서 할 일을 마친 노네임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하지만 벨벳루즈는 주변 환경이 영 불안한 눈치였다.
“저러다 돌아다니면서 감옥 다 열어버리면요? 아직 다 온 거 아니잖아요. 그쵸?”
자신을 쳐다보는 물음에 대장군이 긍정했다. 대감옥으로 추정되는 입구까지 도달하려면 최소 10개의 감옥을 더 지나쳐야 했다.
“일단 가서 잡죠. 가는 길이니 하나 잡고 가도 문제가 되지 않을 겁니다. 바로 추격조 편성하겠습니다. 포푸리, 크라이그, 대장군, 풍월주, 이노센트, 스타일리쉬, 네오, 고독한. 비격수는 리디안, 보리알, 외이리, 다람, 파파, 실버린. 호명된 분들 바로 쫓아가서 처리해주세요.”
갑작스러운 지명이었지만 리디안은 머뭇거리지 않았다. 이트와 눈짓을 나눈 리디안은 바로 빠져 먼저 출발하는 추격조의 뒤를 따랐다.
“성령의 축복.”
리디안과 보리알이 약속이라도 한듯 이동 속도 증가 버프를 걸었다. 헐레벌떡 달려가던 외이리도 서둘러 따라 했다.
속도가 붙자 포푸리가 소리를 지르며 질주했다. 활기찬 기운에 크라이그를 비롯한 딜러들도 질세라 맹렬히 뒤쫓았다.
가는 길에 감옥을 몇 개 지나쳤지만, 다행히 열려 있진 않았다. 그를 본 외이리가 갸웃하며 물었다.
“안 열렸는데. 굳이 따라갈 필요가 있을까요?”
“그래도 본 김에 처리하면 좋죠. 나중에 마주칠 것도 예방하고.”
그래도 같은 길드였던지라, 친분이 있는 실버린이 방긋 웃으며 답변했다. 외이리는 순순히 수긍했고 때마침 추격조가 급히 코너를 돌았다.
“어, 저기 있다!”
감시자의 이동 속도는 느린 편이었다. 포푸리는 번쩍 뛰어올라 감시자를 덮치듯 뛰어들었다.
“신의 사슬!”
유유히 걷던 감시자는 사슬에 붙잡히자 덜컥 멈춰 낫을 휘둘렀다. 그러다 왼손으로 마법 구체를 던졌는데, 강력한 대미지와 함께 중독이 걸렸다.
초록색으로 물든 포푸리의 HP는 초 단위로 빠르게 줄어들었다.
“제, 제가 신축할게요!”
외이리가 눈치껏 나섰다. 그사이 리디안이 메인 힐을 맡고 보리알이 버프를 덧씌우며 보조했다. 사로잡힌 감시자를 향해 딜러들이 달려들었지만, 네임드는 역시 네임드였다.
처음부터 일격필살을 날렸던 크라이그는 기대만큼 닳지 않는 HP에 미간을 좁혔다. 그러자 이번엔 다람이 나섰다.
“디스펠 필드!”
디버프 마크가 생기자 감시자의 HP가 눈에 띄게 줄어갔다. 떨어진 방어력에 중독 효과까지 합쳐지니 이후는 손쉬웠다.
“어떠냐! 내 필드의 위력이!”
감시자가 쓰러지자 다람이 허리에 손을 얹고선 거만하게 웃었다. 남 듣기 창피한 말투와 행동에 고독한과 크라이그가 고개를 숙였다.
리디안도 그런 다람이 부끄러워 눈을 피했다. 노골적인 무관심 속에서 보리알이 소곤거렸다.
“전 무조건 하나만 간절히 바랄 거예요. 제발 디스펠 필드가 더 나오기를요.”
이틀 전 리디안에게 디스펠 필드를 받은 다람은 몹시 기고만장해졌다. 뭐, 평소에도 안 그런 건 아니지만, 요즘은 특히 과했다.
나스 평야 클리어 날. 디스펠 필드는 하나뿐이었고, 마침 모든 다크 템플러들의 의견이 맞았다.
스펠의 성능상 지능 스탯 플레이어인 다람에게 최적화된 것이라 나머지 사람들이 이성적으로 양보할 수밖에 없었다.
“사이 님은 억지로라도 스탯 재조정할 걸, 하고 후회했대요.”
이어진 보리알의 말에 리디안이 땀을 흘렸다. 같은 길드인 노네임이 하츠를 향해 어떻게든 스탯을 바꿔보라며 닦달했기 때문이다.
아마 모든 다크 템플러들의 공통된 속마음이 아니었을지. 리디안은 여전히 촐싹대는 다람을 보며 영혼 없이 웃었다.
어쨌든 저 꼴을 안 보려면 이번 레이드에서 디스펠 필드가 하나라도 더 나와야 했다.
* * *
추격조는 신사의 요청에 소감옥 전체를 아예 한 바퀴 돌았다. 덕분에 나머지 감시자 두 마리 모두 처리할 수 있었다.
정말로 맵에 들어온 플레이어에게 반응하는 건지, 마침 감시자들은 파티원들이 있는 방향으로 향하고 있었다. 이름 그대로 감시자가 왜 감시자인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다행히 감옥의 문은 추가로 더 열리지 않았다. 합류한 플레이어들은 신속히 출구로 이동했다.
“저 문인가요?”
통로의 한 구석, 얼어붙은 철문 앞에서 대장군이 고개를 끄덕였다. 앞서 마주했던 나스트론드의 출구가 출구다웠다면, 이 문은 벽면에 애매하게 불쑥 튀어나와 있었다.
구조상 지하층을 의미했기에 리디안은 자연스럽게 지하도시를 떠올렸다. 나스트론드도 그곳처럼 보스존이 별도로 존재하는 듯했다.
“문 엽니다.”
셋을 센 마제스티가 철문의 손잡이를 힘껏 잡아당겼다. 잔뜩 성에가 끼어 얼어붙은 이미지와는 달리. 문은 쉽게 열렸다.
이어 드러난 컴컴한 내부, 아래로 이어진 계단에 관우가 먼저 들어섰다. 뒤이어 플레이어들이 순서대로 계단을 내려갔다.
[대감옥]검은 지면으로 들어서자 맵 정보가 바뀌었다. 세부 정보는 일반 몬스터의 표기만 없을 뿐, 소감옥과 같았다.
리디안은 우선 맵이 분리된 구조에 안도했다. 적어도 위층 소감옥에서 몬스터가 내려올 걱정은 없었으니까.
물론, 아래층인 지하에서 따로 몬스터가 나타날 수도 있긴 하다. 운이 나쁘면 지하도시처럼 위층의 몬스터가 전부 소환되는 형태일 수도 있고.
리디안은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전율했다. 로크바의 지상층 몬스터 소환. 정말 그와 같다면 이 레이드는 답이 없다.
리디안과 똑같이 생각한 플레이어들은 저마다 인상을 찡그렸다. 제발 지하도시와 같지 않기를 바랄 수밖에 없었다.
계단을 한참 내려가 도달한 곳은 대부분의 보스존이 그렇듯 넓은 공간을 자랑했다. 조금 특이한 점이라면 지하인데도 천장과 바닥이 하얗게 얼어 있다는 것, 그리고 촛불 같은 빛 오브젝트가 없는데도 밝다는 것이었다.
신사는 즉시 앞에서 내부를 스캔하며 지시했다.
“일단 정지하시고 입구에서 얼음 족쇄 여부부터 확인해주세요.”
대다수가 발동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다. 보스존에서 생겨나는 족쇄는 상당한 방해가 될 테니까.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20초가 지나자 가만히 서 있던 파피루스의 발목에 사슬이 감겼다. 짜증스러운 트랩에 플레이어들이 야유하는 동안, 신사는 중앙을 응시하며 말했다.
“흠. 저 중앙에 눈 없는 맨땅. 딱 봐도 저기서 뭐가 나올 것 같은데. 문제는 보스가 저기서 등장하면 공터가 전투 구역이 되어버리거든요. 그런데 저 석상이 이동에 상당히 방해될 것 같아요.”
모두의 시선이 한곳으로 몰렸다.
리디안도 중앙 공터에 제멋대로 배치된 거대한 석상을 응시했다.
얼핏 돌로 만들어진 것 같은 석상은 용맹한 기사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 뜬금없는 방해물에 사람들의 발길이 저절로 움직였다.
[타락한 기사의 형상]“어?”
놀랍게도 석상은 명칭을 가진 오브젝트였다. 리디안은 잿빛의 HP 게이지를 바라봤다. 저건 형상을 부술 수 있다는 뜻이다.
“처리 가능한가 본데?”
이노센트가 주먹으로 툰 석상을 건드렸다. 그에 돌가루가 떨어지며 HP 게이지가 흔들렸다. 신사는 찌푸린 눈으로 석상을 바라봤다.
공터에 배치된 석상은 총 여덟 개. 위치는 가운데를 중심으로 제각각이다.
이게 어떤 의미일까, 서로가 곰곰이 생각하던 중. 호기심에 외곽으로 다가갔던 페이지가 소리쳤다.
“여기! 이쪽에 NPC가 있어요! 그리고 여기, 벽이 아니라… 감옥인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