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Michelangelo in my previous life RAW novel - Chapter 143
143
* * * *
피렌체에서 가장 오래된 종교시설.
산 조반니 세례당.
로마네스크 건축양식으로 지어진 산 조반니 세례당은 피렌체의 수호 성인, 산 조반니를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종교 건축물이다.
15세기 초 피렌체에서 태어난 아기들은 모두 산 조반니 세례당에서 세례를 받고 기록을 남길 정도로, 산 조반니 세례당은 피렌체에 깊숙히 스며든 세례당이라고 할 수 있었다.
지금은 로마네스크 양식의 대표 건물이라고 불리우는 세례당보다 부조가 새겨진 3개의 청동 대문이 더 유명해졌지만 말이다.
말이 나왔으니 3개의 청동 대문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자.
3개의 청동 대문.
그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것은 산 조반니 세례당 동쪽에 위치한 제 3 청동 대문이다.
약 6m의 높이에 너비 4.6m 정도 되는 쌍여닫이문으로 로렌초 기베르티라는 이탈리아 초기 르네상스 시대의 조각가가 평생에 걸쳐 만든 청동문 중 두번째 작품이다.
이 청동문은 원래 산 조반니 세례당의 북문에 설치될 것이었다.
그도 그럴게.
산 조반니 세례당의 동문은 이미 기베르티가 북문을 만들기에 앞서 1403년부터 1424년까지 21년이라는 세월에 걸쳐 만들어 놓은 상태였으니 굳이 동문에 설치할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 기베르티가 1425년부터 1452까지 무려 27년에 걸쳐 만든 북쪽 청동문이 아름다운 동쪽 청동문보다 더 아름다웠던 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원래 북문으로 사용될 예정이었던 두 번째 청동 대문을 보고 이 북쪽 청동대문을 두오모 성당과 마주 보는 동쪽에 설치하는 것으로 계획을 틀 정도로, 작품의 완성도는 뛰어났다.
그리하여 동문에 설치 될 예정이었던 기베르티의 첫번째 작품은 북문이, 북문에 설치 될 예정이었던 기베르티의 두번째 작품은 동문이 되었다.
현재 세례당에 있는 청동 대문은 복제품이고 진품은 두오모 오페라 박문관에 전시되어 있지만···세례당 동문에 서서 두 개가 한 쌍이 되는 대문을 바라보고 있으면 중간에 계획이 트는 것이 납득이 될 정도로 황몽해진다.
청동 대문 한짝당 5구획으로 나누어 10구획을 만들어, 금을 도금하는 방식으로 구약성서 이야기를 부조로 나타낸 쌍여닫이문을 바라보고 있으면 어째서 미켈란젤로가 이 작품을 보고 ‘포르타 델 파라디조(천국의 문)’이라는 별칭을 붙였는지 알 것 같달까.
❝천국의 문으로서도 충분하다.❞
과연, 미켈란젤로가 그렇게 언급할만한 문이었다.
* * * *
“···porte del paradiso(포르타 델 파라디조, 천국의 문).”
강석이 그렇게 입술을 달싹였다가 입을 다물었다. 자리에 있던 류정형과 양선구는 강석이 하는 말을 곧장 알아들었다.
“천국의 문?”
“산 조반니 세례당 앞에 그거?”
청동으로 만들어진 쌍여닫이문이 둘의 머릿속에서 그려졌다. 강석 역시 그것을 떠올렸다가 무언가 마음에 안 든다는 듯 입을 꾹 다물었다.
로렌초 기베르티의 청동문을 향해 전생에 극찬을 한 바는 있었지만, 지금 만들려는 것은 그것이 아니었다.
강석은 단호하게 부정했다.
“아뇨.”
자신이 만들려는 것은 성서의 이야기가 담긴 성당문이 아니었다. 강석은 제 머릿속에 완벽한 이상을 향해 변화되고 부서졌다 다시 세워지는 스케치를 떠올리며 자리에 앉았다.
“그러면 로댕이 제작한 에 반대되는 그런 건가?”
강석이 을 떠올렸다.
La Porte de l’Enfer(지옥의 문).
오귀스트 로댕이 1880년에 프랑스 정부로부터 의뢰를 받아 만든 작품으로 단테 알리기에리의 신곡, 지옥편을 주제로 만든 불후의 걸작.
1880년에 의뢰를 받은 날로부터 1917년, 죽을 때까지 작업한 최후이자 불후의 작품.
로댕이 만들었던 모든 작품이 총망라되어있다해도 과언이 아닌 은 분명 아름다운 작품이었지만, 그것 역시 자신이 만들려는 작품과는 거리가 있었다.
강석이 한쪽 눈썹을 들썩였다가 조용히 부정했다.
“아니요.”
강석은 그냥 강행하려다가 역시 조금 더 쉬운 풀이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세상에는 용서의 문도 이미 있고, 구원의 문도 있고, 천국의 문도 있고, 지옥의 문도 있었다.
양선구, 류정형, 박선우가 자신을 향해 답을 가르쳐달라는 듯 시선을 보내오는 것도 잊고 강석은 생각에 잠겨갔다.
그렇게 길지 않은 시간이었다.
강석은 잘 다듬어진 나뭇더미를 바라보다가 짧게 정정했다.
“la porta di una confessione(고해의 문). 일단은 고해(告解)의 문이라고 부르는 게 좋겠네요.”
고해의 문?
천국의 문이었다가 이번에는 고해의 문이라니···아리송한 말이었다.
물어보면 물어볼수록 정답에서 멀어지는 기분에 셋이 섣불리 질문을 하지 못하고 강석을 바라보기만 했다.
그때.
강석이 의자 옆에 놓여있던 드로잉북과 연필 한자루를 손에 쥐며 중얼거렸다.
“구원을 만나기 위해 지나칠 때는 고해의 문이고, 구원을 만나고 나서야 천국의 문이 될 테니까요. 저 나뭇더미의 이름은 이 될 수밖에 없는 거죠.”
작품과 관련한 이야기를 할 때면 말이 길어지는 강석이었지만, 말이 길어진다고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을 한다는 뜻은 아니었다.
“··················???”
“으음?”
“흐음.”
수수께끼 같은 말에 셋이 침음을 삼켰다. 그러나 그들의 이해를 바라지 않았다는 듯 강석이 옅은 미소를 그리며 뒷말을 이었다.
“답을 알면 그만큼의 감동이 줄어드니까요.”
어쩔 수가 없네.
그렇게 중얼거린 강석이 스케치를 끼적거렸다. 연필의 속도는 느긋하게 중얼거리는 강석의 말과 달리 굉장히 빨랐다.
더이상 물어보고 싶었지만 적갈색 눈동자는 이미 종이밖에 안 보인다는 듯 집중에 들어가버린 뒤였다.
텄다.
강석의 앞에 서있던 셋은 당장 정답을 듣기는 어려워졌다는 걸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밥도 먹지 않고 다시 집중모드에 들어가버린 강석을 못말린다는 듯 쳐다보던 양선구가 한숨을 내쉬었다. 나가서 맛있는 것이라도 먹일려고 했더만 저 상태라면 집중모드가 끝나기도 전에 베네치아 식당문들이 죄다 닫게 생겼다.
“난 석이 저녁거리나 사러 나가봐야 할 것 같으니 알아서들 있다 가게.”
뒷짐을 진 양선구가 박선우와 류정형을 스쳐 지나갔다. 흔들거리는 흰 수염을 빗으며 양선구는 작업실을 빠져나갔다.
남겨진 박선우와 류정형은 서로를 마주보다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강석의 뒤로 걸어갔다. 혹시라도 발소리가 거슬릴까 발 뒷꿈치를 들어올린 것은 말할 필요도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강석의 뒤에서 어깨너머로 보이는 스케치를 바라보며 류정형이 입을 벌렸다.
‘방금까지 나무를 거세게 때려놓은 손이 어떻게 이렇게 섬세하고 가는 선을 뽑아낼 수 있는 거지?’
극과 극의 강약을 오고가는 악력이 말도 안 되게 정밀했다. 말도 안되는 일을 손쉽게 해내는 저 손은 마치 자신이 개연성이고 핍진성이라 주장하는 것 같았다.
연필을 잡은 왼손이 종이 위를 날아다녔다.
류정형이 그림을 그리는 테크닉에 꽂혀 멍하니 종이 위를 바라보는 동안.
‘내가 봐도 잘 그린 그림이라는 게 느껴지네.‘
박선우는 미술 전공이 아닌 자신조차 납득시키는 그림 실력에 혀를 내둘렀다.
어디서 듣기로 어려운 일이 쉽게 보인다면 그게 진정한 고수랬는데 강석이 딱 그랬다.
강석의 소묘는 가만 보고 있으면 숨을 쉬는 것처럼 편해 보여서 그림이라는 게 어렵지 않고 가깝게 느껴졌다. 나도 이참에 미술을 해볼까 싶어질 정도로, 쉬워보였다. 이런 게 고수라는 거겠지.
‘천국의 문이라더니 과연···“
회색의 선으로 그려지는 사각 형태의 공간은 유럽에 내로라하는 성당을 집대성하여 압축 시킨 것처럼 화려했다.
저걸 조각하는데만 해도 한세월이 걸릴 것 같았지만 저대로만 제작할 수 있다면 보는 것만으로, 손 한 번 얹어보는 것 만으로 구원을 받을 것 같았다.
강석의 스케치를 바라보던 박선우가 유쾌한 미소를 지으며 제 턱을 쓰다듬었다. 까슬까슬한 턱수염이 손바닥을 쓸었다.
박선우의 눈에 맺힌 건 욕심이었다.
‘베네치아 비엔날레 한국관에 걸리는 거면 반년 정도 전시되는 한시적 전시일 터. 우리 강석 작가님 성격에 특별한 대리석으로 만든 조각상을 쉽게 팔 리가 없고···소더비나 크리스티는 이미 영국으로 돌아갔다고 들었으니 이거···’
내가 탐낼 수 있는 상황인가?
박선우의 눈이 휘어졌다.
‘욕심 안 내고 전시권 정도면 사볼 수 있지 않으려나?‘
소유할 수 없는 건 소유하려고 들지 않는다.
한량 꿈나무 박선우의 머릿속엔 이미 작품을 살 생각 따위는 없었다.
하지만 전시권이라면 박선우가 제 주머니를 푸는 것만으로 충분히 가져올 수 있다는 판단이 섰다. 그러나 판단만으로는 부족했다.
이거 진짜 날짜 봐서 노려봐야하나? 가능한가? 가능하다면 어떻게 가능하지? 박선우는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생각을 정리하며 계산기를 두들겼다.
그 사이.
박선우가 뒤에서 머릿속 계산기를 빠르게 두들기고 있다는 사실을 알 리 없는 강석의 손길은 점차 빨라져만 갔다.
날카로운 선의 움직임은 어느새 사각 형태의 무언가를 거의다 완성까지 끌고 가고 있었다.
강석의 손은 전투를 하듯 날카롭고 빨랐으며 춤을 추듯 부드럽고 유연했다. 손에 끼워진 회색의 선은 그림만큼이나 아름답게 움직였다. 굳은 살이 이리저리 박혀 그리 예쁘지도 않은 손인데 섬섬옥수처럼 고와보이는 착각이 일 정도에 움직임이었다.
계산기를 두들기던 박선우가 의문을 품은 것도 그때였다.
‘···뭐지?’
점점 완성되어가는 스케치는 성당을 집약해놓은 듯 보였느나 문밖에 없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바로 네모난 공간이 나왔고, 공간 조차 문에 비례했을 때 그렇게 커보이지 않았다. 문이 아무리 커봤자 저 통나무를 붙여 만들 수 있는 사이즈는 정해져있으니···백산 호텔을 지을때 어깨너머로 본 것에 따르면 저 스케치는 여섯명 겨우 들어갈까 말까한 공간 정도가 된다는 소리였다.
생각해보면 성당이라도 그리는 줄 알았으나 성당을 건축할 시간이 없는 건 물론이고, 한국관 안에 성당 하나를 통째로 넣을 수도 없을 거였다.
‘그럼 미니 성당인가?‘
그럴 것 같지는 않은데······도대체 무슨 공간이지?
박선우가 도저히 예상이 가지 않는 형태의 스케치에 고개를 이리저리 기울이는데 옆에 있던 류정형이 모호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는 제 어깨에 걸린 로사리오 형태를 닮은 안경줄을 만지작거리며 중얼거렸다.
“···고해소?”
고해소(confessional, 告解所).
가톨릭의 일곱성사 중 하나로 참회실이라고도 불리우며, 고해성사를 집행하는 장소를 말함이었다.
불교와 가까운 박선우와 달리 천주교에 가까운 류정형은 강석이 그리는 스케치에서 익숙함을 느꼈다.
‘보통 성당 뒤편에 설치되는 간이 방인데 양쪽 끝 방에는 신도가 들어가고 가운데에는 신부가 들어가는게 대표적인 형태이지만······저런 형태도 있긴 하지.’
진짜 고해소인가?
고해소라기엔 지나치게 화려해보이는데···천주교 신자로서 보기에 저건 분명 고해소였다.
류정형이 기억을 더듬었다.
‘강작가님이 뭐라고 말씀하셨었지?’
구원을 만나기 위해 지나칠 때는 고해의 문이라 하였다. 그래. 고해, 라고 하였다.
“고해의 문···”
고해를 하러 가는 문이라기엔 너무 화려하지 않나. 조심스럽게 생각하는 순간, 강석의 손이 스케치를 찢어버렸다.
”···!“
”······!!”
박선우와 류정형이 눈을 흡뜰 정도로 매섭고 냉정했다. 아름다운 스케치가 찢어진채 구겨져 바닥에 툭, 하고 떨어졌다.
매정한 눈은 스케치를 잠시 보는가 싶더니 다시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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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지지직, 강석은 또 한번 스케치를 찢었다. 대충 계산해보건데 스무번은 족히 넘은 것 같았다. 무난한 시적이었다.
그 어떤 설계도 단 한 번에 완성되지는 않는다.
고해의 문.
강석은 천천히 연필을 깎았다. 몇 번이나 연필심을 카터칼로 밀어서인지 칼심에 흑연이 새까맣게 묻어있었다.
갈려가는 흑연과 날카로워지는 흑심을 바라보며 강석은 엄지로 쭉 카터칼을 밀어올렸다.
강석은 바늘처럼 뾰족해진 흑심을 잠시 바라보다가 자세를 잡았다.
하얀 종이를 내려다보던 강석이 손을 움직인 것은 그로부터 한참이 지난 후였다.
구원을 만나기 위해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러 가는 문이 아름답기만 해서는 안 된다. 그게 첫번째 스케치를 찢은 이유였다.
그렇다고 고해의 문이 지나치게 사치스럽고 화려해보여서도 안 된다. 그게 아마 네번째 스케치를 찢은 이유였다.
그렇다 하더라도 슬픔과 비애만 넘쳐서도 안 된다. 그것이 열한번째 스케치를 찢은 이유였다.
그러나 고해의 문은 마냥 자애로워서도 안 된다. 고해를 한다하여 용서받는 것이 아니기에. 그것이 열여섯번째 스케치를 찢은 이유였다.
하지만 단죄하는 것처럼 보여서도 안 된다. 그것이 열아홉번째 스케치를 찢은 이유였다.
고해소는 아름다움에 치우쳐서도 안 되고, 화려함에 치우쳐서도 안 되며 동시에 지나친 사치도 느껴지지 않아야 하고 슬픔과 비애가 가득해서도 아니 되며 자애롭기만 해서도 안 되고 반대로 분노하고 압박을 줘서도 안 된다.
중용.
지나치거나 모자란 법이 없어야 하며 한쪽으로 치우쳐서도 안 되고 그 어떤 것도 편들어서도 안 되고 판단해서도 안 된다.
오로지 침묵.
품고 신에게 맡겨라.
그것이 고해소의 진정한 모습이었다.
달빛이 작업실에 내려왔다.
밖에서 볼때는 고해를 하러 가는 길이고, 안에서 볼때는 천국으로 가는 길이니 그곳이 이 앉아있어야 할 장소였다.
드로잉북을 부드럽게 감싸안은 달빛을 바라보며 강석은 천천히 연필을 내려놓았다.
강석은 천천히 스케치를 바라보며 흡족하게 중얼거렸다.
“이거지.”
서른일곱번.
서른일곱번만의 완성이었다.
144. 수성과 금성이 목성을 찾았을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