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Michelangelo in my previous life RAW novel - Chapter 142
142
* * * *
1508년.
그러니까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르네상스 시대.
예술과 문화가 크게 발달하고 번성하던 시기.
미술은 어떤 존재의의를 가지고 있었을까.
당연히 세상은 입체적이고 시각은 한 방향이 아니었기에 미술의 존재의의도 하나가 아니었지만, 기독교 미술은 그보다 좁은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기에 존재의의라고 하면 하나를 꼽아볼 수 있었다.
읽지 못하는 자들에게 글 대신 그림으로 풀어 전달하는 것.
비블리아 파우페룸.
가난한 자들의 성서.
그들의 존재이유는 그것이었다.
특히 그 당시 프레스코는 비블리아 파우페룸 즉, 빈자의 성서···문맹자용 그림책과 똑같은 기능을 했다고 보면 된다.
성당에 있는 화려한 조각상, 프레스코, 스테인글라스 역시 그와 같은 기능이었다. 짧아도 몇 시간은 진행되는 미사 시간 동안 문맹자들은 예배당 안에 안치된 작품들을 바라보며 그림의 뜻을 유추했고 배움을 얻었다.
몇 시간 동안 그들은 예배가 아니라 작품을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작품을 보기 위해 예배자들은 다시 예배당을 찾았다.
기독교 미술의 존재의의는 그것이었다.
발걸음을 이끄는 것.
그리하여 프레스코는 보는 이들을 매혹하기 위해 점차 더 화려해지고 아름다워졌다.
* * * *
“(성서의 내용을 담지 않은 프레스코라니······)”
복숭아빛의 입술을 가진 여인이 입을 달싹였다.
“(특별하네요.)”
그녀의 커다란 다갈색 눈망울이 푸른 잔상을 쫓았다.
눈앞에 있는 것은 라는 이름 그대로 하늘과 바다의 색을 담아내고 있었다.
푸른 벽이었다.
그것을 대신할 설명이 없었다.
한눈에 다 담기 힘들 정도로 커다란 장엄한 광경은 심장을 뻥 뚫리게 하는 시원함과 광활함을 가져다 주었다. 파도치듯 몰려오는 감상에 그녀, 이사벨라 리날디가 손을 기도하듯 움켜잡았다.
의미에 특별함보다는 이 벽에서 느껴지는 쏟아지는 청결함이 좋았다.
모든 것이 씻겨내려가는 것처럼 시원함이 몰려왔다. 이것은 돌벽으로 세워진 하얀 신전에서 오는 특유의 서늘함 때문만은 아니리라.
“(정말······)”
라이브 스트리밍으로 보던 것과는 격이 달랐다.
‘사진으로 담아내는 것과 실물로 보는 것은 이 공간의 색채까지 가져다 담을 수 없기에 당연히 실물이 좋을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이건 정말···’
이사벨라 리날디는 말을 잇지 못하고 바다인지 파도인지 하늘인지 모를 벽을 올려다보았다. 깊은 심해도, 솟아오른 파도도, 높다란 하늘이 함께 담겨있어 작품은 그 크기보다 더욱 커다란 감상을 일으켰다.
초여름 날씨에 마이애미와 잘 어울리는 프레스코였다.
이 하얀 건물 안에 이런 보물이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지나치는 사람들에게 연민이 생길 정도로.
이사벨라 리날디는 다리가 아픈 줄도 모르고 그 자리에 서서 계속해서 그림을 감상하다 아주 천천히, 천천히 시선을 돌렸다.
푸른빛 잔상이 사라진 다갈색 눈이 온화하게 접혔다.
“(감사해요.)”
간단한 영어에 잭 카터가 잠시간 이사벨라 리날디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의 주인인 강석이 문을 열어줘도 된다고 해서 열었을 뿐입니다. 그리고 감사는 제가 아니라 저기 있는 시모레 카사니씨에게 하시죠.)”
잭 카터는 보존 작업을 위해 잠시간 머물고 있을 뿐이지, 이 곳의 관리인은 시모레 카사니였다.
시모레 카사니가 강석의 허락을 받아 잭 카터에게 전달해주지 않았다면 자신은 문을 열지 않았을 거다.
그 말에 이사벨라 리날디가 시모레 카사니씨에게도 감사를 전하겠다는 뒷말을 붙였다. 아무래도 잭 카터보다는 시모레 카사니가 같은 동향 사람이라 그런지 조금 더 편하기도 했다.
그런 이사벨라 리날디를 바라보며 잭 카터가 묘한 낯을 했다. 이사벨라 리날디는 잭 카터가 소더비의 스페셜리스트인 것을 알아보지 못한 모양이지만, 잭 카터는 이사벨라 리날디를 알았다.
‘황금덩이 리날디의 귀한 독녀랑 아는 사이였다니.’
그나저나 미스터 강이 이탈리아로 간 마당에 여기에 온 이유가 뭐지. 잭 카터가 이사벨라 리날디가 눈치못챌 사각지대에서 날카로운 눈으로 그녀를 살폈다.
그때. 이사벨라 리날디가 슬쩍 한곳을 응시하는 게 보였다. 눈망울이 커다란 탓에 그녀의 시선이 움직이는 방향이 너무나도 잘 보였다.
그녀가 바라보는 곳은 잭 카터의 지시에 따라 준비되고 있는 보존 작업 현장이었다. 달뜬 시선. 아. 그녀가 보존 작업을 진행하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그럼 이건 제대로 하는지 감시하러 왔다고 봐야 하나?’
어제는 보스에게 전화가 오더니, 오늘은 리날디 가문의 아가씨가 감시역이라니. 잭 카터가 비소를 지었다.
‘이거 역시 높으신 분들의 사랑을 받는 분하고 일을 하면 여간 피곤한 게 아니야.’
그렇게 생각하는 잭 카터의 눈은 차갑고도 차분했다. 언제나 이성과 이지를 잃지 않는 것. 그것이 소더비의 스페셜리스트, 잭 카터였다.
그의 눈이 천천히 높으신 분들의 사랑을 받을만한 작품 를 바라봤다. 항상 작품을 바라볼 때 차가운 이성을 유지하려고 하는 편인 잭 카터도 순간 이성을 잃게 했던, 푸른 프레스코의 푸르름이 이 모든 피로를 잊게 만들었다.
오만하고 광포한 신을 바라보고 있는데 오히려 마음이 차분해진다니. 이 얼마나 모순적이란 말인가. 잭 카터가 삐뚜름한 미소를 입에 담았다.
그렇게 멀지 않을 시일에 가 저 문을 열어젖히고 세상에 선포되는 날이 기다려졌다.
신을 그렸으나 신을 그리지 않은 이 는 어떤 반향(反響)을 불러 일으킬까.
기대가 안 될 수가 없었다.
* * * *
이사벨라 리날디가 마이애미에서 를 바라보며 강석을 향한 무한한 신뢰를 형성하는 동안.
강석은 양선구가 마련해준 작업실에서 나무를 패고 있었다.
장작을 패는 것이 아니라 진짜 나무를 패고 있었다. 통짜 나무를 도끼를 두들겨 쩍쩍 길을 열고 있었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리라.
양선구를 따라 놀러왔던 박선우와 류정형은 비싼 돈 주고 사들인 대리석은 작업하지 않고 나무 통짜를 장작마냥 패는 강석을 보며 할말을 잃었다.
“······우리 강석 작가는 전생에 목수였나?”
강석 본인이 제작한 도 저렇게 나무를 잘 패지는 못하리라.
쩍쩍 소리를 내며 양쪽으로 갈라지는 나무에 류정형이 속엣말로 중얼거렸다. 전생에 목수였어도 저렇게는 못할 거라고.
양선구는 박선우의 중얼거림에 웃으며 부채를 펄럭였다. 이미 패어진 나무들이 쌓여 숲 한가운데에서 나무 밑동에 머리를 처박고 있을 때의 냄새가 났다. 텁텁한 흙냄새와 속을 뚫고 들어오나 짙은 나무 특유의 향이었다.
양선구는 온 몸의 근육을 사용해 나무를 패는 강석을 바라보며 말했다.
“돌 다루는 조각가가 나무 다루는 걸 어려워하겠남. 자네들 잊었어? 석이 저 녀석은 웬만큼 나무를 다룰 줄 알어.”
양선구의 말에 박선우와 류정형이 기억에 묻어두었던 을 떠올렸다. 그 성북동 저택 한 채 값이었다는 . 건물 한 채에 온전히 을 갖지 못한 박선우는 비통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도약이 내 것이었어야 하는데······’
나는 왜 그때 강석을 알지 못했나.
성북동이 뭐야, 난 한남동도 안겨줬을 거다.
박선우가 비통한 표정으로 과거를 떠올리다가 자연스럽게 남아있는 영상으로 보았던 을 떠올렸다. 은 강석이 만들었던 개인 소유이기에 유일하게 실물을 보지 못한 강석의 작품이기도 했다.
‘하긴···영상으로 봐도 그 날개는 정말······’
전설에 나올 것 같은 거대 칡부엉이를 가져다 박제라도 한 것처럼 털이 한올한올 오소소 돋아날 것 같던 그 나무 조각상을 떠올리고 있자니, 나무가 사람 말을 알아듣듯이 강석의 손길에 무처럼 툭툭 썰리는 것이 어렵지 않게 받아들여졌다.
돌도 두부처럼 다루는 인간이 나무를 무처럼 다룬다고 해서 뭐 신기할 거 있나.
“근데 도대체 뭘 만들길래 저렇게 많은 나무가 필요한 겁니까?”
“나도 모르지.”
“······조각상을 만든다고 들었는데요.”
“나도 그렇게 들었네.”
조각상을 만드는데 나무가 필요한 이유가 뭘까.
박선우가 쌓여있는 나무를 바라보았다. 집이라도 지을 생각인건지 쌓인 나무가 보통 내기가 아니었다. 저걸로 젠가를 쌓으면 족히 사람 키의 두 배 정도는 될 정도로 쌓여있었는데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통나무는 사람 키의 네 배 정도는 쌓을 양이었다.
“집? 작업실이라도 만들 생각인가?”
“·········그러게요.”
궁금했다.
속시원하게 물어보고 싶었다.
그러나 한 번 휘두를 때마다 전심전력으로 통나무를 패버리는 강석을 바라보고 있자니 저것도 작품을 만드는 작업의 일부일까봐 쉽게 말을 걸 수가 없었다.
“······.”
“·········.”
나무를 패는 것인지 사람의 가죽을 찢는 것인지 모르겠는 흉포한 소리가 작업실에 울려퍼지는 가운데.
“밥이라도 먹고 오지 그러남?”
양선구가 박선우와 류정형에게 제의했다.
강석은 집중을 빨리하는데다 집중하면 다른 것이 안 보이고, 집중을 하는 시간도 굉장히 긴 편이었다. 이미 집중에 들어갔으니 누군가 방해하지 않는다면 중간중간 쉬는 한이 있더라도 족히 5시간은 멈추지 않고 장작을 더 패리라.
“밥 먹고 온다고 석이의 장작 패기가 끝나있지는 않을 것 같은데?”
그냥 먹고 와서 죽치고 앉아서 기다리는 게 현명할 거다. 그렇게 말하며 양선구가 커피를 홀짝였다. 이탈리아 사람이 보면 기겁을 할만한 아이스 아메리카노였다.
잠시 서로를 바라보던 박선우와 류정형이 그럼 다녀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작업실 문을 향해 걸어갔다.
양선구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강석을 향해 다시 고개를 돌렸다.
강석은 사람이 오가는 것은 들리지도 않는다는 표정으로 나무를 때렸다. 이마를 타고 땀이 주르륵 흘러내리는 걸 강석이 대충 닦았다.
땀을 닦아내리는 손등 아래로 드러난 강석의 적갈색 눈동자가 갈증으로 끓어오르고 있었다.
등만 보고 있는 양선구에게는 보일 리 없었지만, 양선구는 끌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젊음이 넘치는 구나.”
양선구가 흐뭇한 미소를 품고 강석을 바라보았다.
강석의 장작질은 양선구의 따뜻한 미소와 함께 계속해서 한참을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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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우와 류정형이 돌아왔을 때.
강석은 기어코 모든 통나무를 다 패버린 다음 분류까지 끝마친 뒤였다. 통나무를 그냥 팬 것이 아닌 모양이었다.
류정형이 고개를 돌렸다.
인제보니 자로 제도를 한 것처럼 통나무가 DIY 키트처럼 일정한 형태로 다듬어져 있었다.
‘···같은 형태끼리 분류를 해놓은 모양이군.’
건축 관련 지식이 있었나?
생각을 떠올림과 거의 동시에 류정형은 과거의 일을 떠올렸다. 멀리갈 것도 없었다. 믿어지지 않지만, 멀지 않은 과거의 강석은 이와 비슷한 놀라움을 선사한 적이 있었다.
‘가 설치된 곳의 대수선 설계도도 강작가가 그렸다고 했었나?’
그런 공간의 대수선 설계도도 다룰줄 안다면, 통나무로 만드는 DIY 키트 조립방식이나 토목 공사 설계도는 어렵지 않게 짤 수 있을 거였다.
진짜 집을 만들 예정이라면 이런저런 절차가 필요할 거고, 이렇게 만들어서도 안되었지만···강석이 대리석을 두고 작품과 연관없는 짓을 할 것 같지도 않았다.
그렇다면 저건 뭔가.
그렇게 생각하는데 강석이 자기의 마음대로 분류한 통나무를 바라보다가 몸을 돌렸다.
드디어, 휴식의 시간이 찾아온 모양이었다.
어깨에 걸친 수건으로 땀을 무뚝뚝하게 찍듯이 닦으며 강석이 양선구에게로 다가왔다.
류정형의 궁금증이 목끝까지 차오르는 순간.
류정형보다 빠르게 박선우가 강석에게로 다가갔다.
“우리 강석 작가님! 도대체 뭘 만드시려고?”
박선우는 특유의 그 시원한 웃음을 얼굴에 내걸고 강석과 보폭을 맞춰 걸었다. 트레이드 마크 같은 웃음도 박선우의 만면에 떠오른 호기심을 감추지는 못했다.
그는 온 얼굴로 궁금하다고 소리치고 있었다.
강석은 박선우를 바라보다가, 뒤를 슬쩍 돌아봤다.
통나무가 한 가득 쌓여있었다.
강석은 통나무를 바라보다가 자신의 머릿속에 있던 기억을 꺼내올렸다. 그리고 무언가를 그리듯 입술을 달싹였다.
“···포르타 델 파라디조(천국의 문).”
143. 피렌체에서 가장 오래된 종교시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