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Michelangelo in my previous life RAW novel - Chapter 171
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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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밤, 그대 앞에 천사의 창조물이 고요히 잠자네.❞
❝돌로 만들었지만 숨결이 있어 일으켜 세우면 그녀는 말하기 시작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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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은 자전거에 체인을 걸고, 몸을 돌렸다.
어깨에는 어느새 그라인더 등이 들어간 묵직한 스포츠 가방이 걸려있었다.
하얀 볼캡 모자에 대충쓴 마스크, 편한 트레이닝복. 유리에 비친 강석의 모습은 영락없는 스포츠맨이었다.
– ‘오빠. 저번에 봤을 때부터 키가 컸다?’
– ‘채영이도 그렇게 생각해? 나도 저번보다 아들 키가 큰 것 같던데······여보, 당신은 어떻게 생각해요?’
– ‘으음? 그렇게 말하니까 큰 것 같기도 하고···’
유리창을 응시하고 있자니, 저녁식사 때 가족들이 했던 말을 떠올랐다. 이미지에 대한 강한 기억력을 가지고 있는 강석이 수없이 지나갔던 이 길에서 보았던 저 자신을 떠올렸다. 인영이 겹쳐지듯 지난날의 저가 유리창에 흐릿하게 잡혔다.
강석이 살짝 입을 벌렸다.
“······어?”
진짜 키가 컸다.
스무살이 되어서도 키가 크는 사람이 있던가?
강석이 묘한 얼굴로 유리창을 응시하다가 걸음을 옮겼다.
이윽고, 엘리베이터에 올라탄 강석이 비죽 입꼬리를 씰룩였다. 다 컸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크고 있다니. 어쩐지 아직 나는 성장할 구석이 있다고 제 몸이 먼저 말해주는 느낌이었다.
나쁘지 않네.
강석이 손을 주먹을 쥐듯 움켜쥐었다.
근육의 움직임이 온몸의 감각을 타고 느껴져 왔다. 좋은 조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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띵.
갑작스럽게 울리는 엘리베이터 소리에 구미령이 흠칫, 몸을 굳혔다. 그와 동시에 구미령은 메뉴얼대로 전층에 조명을 껐다.
씨엘로 갤러리가 정식으로 오픈하기 전에 작품이 외부 유출되는 경우는 없어야 하니까. 구미령은 빠르게 꺼져가는 조명을 확인한 뒤. 곧장 손전등을 켜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어갔다.
아무래도 이전에는 영화관으로 운영되던 층이었고, 복합쇼핑몰이다보니 엘리베이터로 이렇게 유입되는 경우가 몇 번 있었다.
에스컬레이터는 출입을 막아놨지만 엘리베이터까지는 강제할 수 없는 상황이라, 이렇게 엘리베이터를 타고 들어오는 경우에는 구미령이 직접 사람들에게 운영하지 않는 층이라고 말을 해주고 돌려보내는 걸 반복중이었다.
구미령이 집을 갈때는 비상문을 잠구는 것은 물론, 엘리베이터 앞에도 거대한 문을 세워 입장할 수 없게 한 뒤에야 퇴근을 하는 편이기도 했다.
‘어쩐지 보안요원이 된 것 같아서 설레기도 하고···’
구미령이 웃음을 참으며 걸음을 재빨리했다. 또각또각 소리가 빠르게 울려퍼졌다.
운동화를 신은 남자의 발이 손전등에 비추어졌다.
“고객님. 해당층은 운영을 하지 않는···”
“어. 아직 퇴근 안하셨네요?”
“·········어머.”
손전등에 비추어진 것은 씨엘로 갤러리의 주인이자 건물주.
“대표님···!”
강석이었다.
강석은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하는 구미령을 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오랜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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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령은 작금의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눈을 깜빡였다.
“한국에 아예 들어오신 거예요?”
“아예? 당분간은 한국에 있을 것 같은데요.”
강석은 그렇게 말하며 불이 환하게 들어온 갤러리 어느 한 부분을 눈으로 바라봤다. 연작이 있는 부분이었다.
구미령은 강석이 말하지 않았음에도 알 것 같았다.
작품을 향한 열망으로 빛나는 눈이 말하고 있었다.
‘ 연작을 완성하기 위해 들어온 거구나.’
구미령은 작업대에 스포츠가방을 내려놓는 강석을 바라보며 입을 살짝 벌렸다. 대단했다. 지금 비엔날레는 물론이고, 옥션 하우스에서도 강석에 대한 이야기로 시끄러웠다.
대한민국 기자들은 헤성처럼 나타나 대한민국을 빛내고 있는 강석에 대해 취재하기 위해 해외출장을 나가는 중이었고, 교황과 사우디 왕자 두 명에게 사랑을 받은 사나이라며 커뮤니티가 강석과 관련한 것으로 매일매일 시끄러웠다.
그런 와중에 강석은 르네상스 쇼핑몰로 왔다.
제 유명세를 위해 인터뷰를 하거나, 그곳에서 인기를 충분히 누리는 게 아니라 작업을 하기 위해서. 작업을 하기 위해 강석은 이곳으로 왔다.
갑작스럽게 유명해진 사람들이 제 유명세에 잠깐이라도 취하는 걸 많이 보아왔던 구미령은 강석의 차분함이 신기했다.
오히려 덤덤해보였다.
이 모든 인기에 부담을 가지는 것 같지도 않았고, 흥분한 것 같지도 않았다.
‘이 사람. 더 크겠구나.’
구미령은 직감 같은 걸 느꼈다.
이 정도에 만족할 사람이 아니라는 직감.
구미령은 강석이 젊은 대표로 보이지 않았다. 스무살이라는 나이가 벗겨진 강석은, 오랫동안 예열되어 온 불처럼 보였다. 거장. 강석에게서 세계를 움직이는 예술가의 일면이 보인 것 같았다.
어느새 카메라를 설치하기 시작한 강석을 바라보며 구미령은 조용히 핸드폰을 들었다. 고두한에게 문자를 하기 위해서였다.
강석이 온전히 작업에 집중하기 위해서라도 건물 1층의 문이 닫히기 전까지는 있어줘야 할 것 같다는 문자를 보내며, 구미령이 미소를 지었다.
좋은 작품이 완성될 것 같아서였다.
핸드폰 문자를 완성한 구미령이 고개를 들어 올렸다. 얼굴에는 약간의 홍조가 서렸다. 기대였다.
– ‘석이 놈이 작업하는 모습을 실제로 보고 있으면···이 안에서 뭔가 끓어올라. 예술 같다 해야하나. 나도 저런 예술을 하고 싶어진달까. 하여튼 그 놈은 뭔가 사람을 끓어오르게 하는 놈이야.’
언젠가 통영에 다녀온 고두한이 맥주를 마시며 그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구미령은 작가가 아니니 고두한처럼 끓어오르는 것은 못 느낄 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무언가 기대가 되었다.
구미령은 작업대 쪽으로 다가갔다.
강석이 준비해온 작업 도구들을 보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응?’
훤히 다 보일 부근까지 간 구미령이 천천히 고개를 기울였다. 그녀의 눈동자가 가늘어졌다. 그 안에 동공은 잘게 흔들렸다.
그녀의 눈은 작업대 위에 올려진 것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안전모. 보안경. 귀마개와 귀덮개. 용접용 보안면과 벨트식 안전보호대와 방진마스크. 안전화와 보호복, 안전장갑까지.
이게 작품을 위한 작업용구인지 다른 사람과 가방이 바뀐 게 아닌지 의심스러울 지경이었다. 그때였다. 강석은 차분한 얼굴로 스포츠가방에서 마지막 물품을 꺼내었다. 길게 연결된 줄이었다.
누가 봐도 천장에 매달릴 용도였다.
구미령의 동공이 지진이 온 것처럼 떨렸다.
‘···이게 맞나?’
구미령의 등이 긴장으로 굳기 시작했다.
다른 의미로 심장이 떨려왔다.
이거, 위험하다.
* * * *
강석은 용접용 헬멧과 같은 것으로 완전히 자신을 무장한 뒤. 사다리를 타고 올라갔다. 구미령은 그런 강석을 쫓아오고 있었다.
이미 완성된 과 를 지나쳐 강석은 계속해서 걸어갔다. 를 지나치면 나오는 것은 빛 하나 통과시키지 않을 것처럼 새까만 벽과 문이 있었다.
처음에 윤수철 사무소장님에게 부탁했던 리모델링 작업이었다. 그리고 이 벽 너머에 연작의 세번째와 네번째 작품이 전시될 예정이었다.
강석은 환한 불빛 아래.
전기를 차단해놓은 검은 공간을 미닫이문 열듯이 열고 들어갔다. 용접용 헬멧에 연결되어있던 헤드 라이트를 켜서, 어둠속을 나아가는 강석을 구미령이 쫓아왔다.
“대표님. 천장에서 작업하는 건 안전설비가 조금 더 갖춰진 뒤에 해도 늦지 않습니다. 이대로 하면 너무 위험합니다.”
안전벨트에 안전그네까지 장비를 보았지만, 구미령은 안심이 되지 않았다. 안전그네까지 동원해야 하는 작업이라니···무슨 그런 전위적인 예술작업이 있단 말인가. 구미령이 불안한 눈초리로 강석 뒤를 바짝 쫓아 걸었다.
그런 구미령을 바라보며 강석이 옅은 미소를 지었다.
“오늘은 세번째 작품을 만들거라 천장에 올라갈 일은 없습니다.”
그럼 네번째 작품을 만들 때는 올라간단 소리잖아.
구미령이 강석을 황망하게 바라보았다.
그런 구미령을 바라보며 강석이 구석에서 사다리를 잡아 끌며 천장을 응시했다.
무광의 검은 유리돔 형태로 제작된 곳은 마치 빛 한 점 없는 무저갱 같이 새까맸다. 고개를 들자 헤드라이트가 천장을 비추었다. 빛이 굴곡되며 저곳의 공간이 반구 형태임을 알렸다.
구미령이 그 반구 형태를 바라보다가 그제야 이상함을 눈치챘다. 저 유리돔 형태의 천장은 강석이 손에 든 사다리만으로도 충분히 닿을 수 있었다.
왜 굳이 안전그네나 안전밸트가 필요한지 모를 정도로···뭐지? 구미령이 주변을 둘러봤다.
“그리고 안전그물망도 똑바로 설치되어 있어서 걱정할 필요 없어요.”
안전그물망은 안 보이는데요. 구미령이 그렇게 반박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눈이 가늘어졌다. 여우같이 좁아진 눈이 과거의 기억을 훑었다.
이곳에 입사하기 전, 구미령은 강석의 작품을 죄다 찾아보았다. 그 중에는 용신랜드에 설치되어있는 도 있었다.
프시케.
생각해보니 프시케가 천장이 열리는 형태였다.
연작의 네번째 작품도 그런 형태인 걸까.
그렇게 생각하며 구미령이 천장을 다시 응시했다.
다른 공간에 비해서 한없이 낮은 천장이 보였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저 반구형태가 열렸을 때 얼마나 천장이 높아지는지도 떠올랐다.
예전에 영화관으로 활용되기 위해 설계된 공간은 지나치게 천장이 높았다. 일반적인 미술관보다도 훨씬.
그리고 그건 용신랜드에 설치된 의 천장보다도 높았다.
도대체 공중에서 조각을 할 것도 아니고 이런 높은 천장에 매달릴 이유가 뭐란 말인가. 구미령이 상상도 가지 않는 네번째 작품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강석이 걷다 말고 구미령을 돌아봤다.
“저 부탁 하나만 드려도 되겠습니까?”
“네. 네. 얼마든지요.”
“혹시 조동범 사장님한테 작업실 대여가 가능한지 확인해주시겠어요?”
“······조동범씨요?”
조동범이라면 잘 알고 있었다. 유리공방을 운영하는 유리조형 작가였다. 강석과는 친해서인지 자주 작품을 구경하러 왔었지. 강석의 작품 중에서 유리와 관련된 것은 조동범의 작업실에서 탄생했다는 걸 구미령 역시 알고 있었다.
구미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 날 밝자마자 연락드려보겠습니다. 다른 거 부탁하실 건 없으십니까?”
솔직히 몇 달 동안 구미령은 강제로 월급루팡이 되어야만 했었다. 한때는 누구한테도 지지않는 워커홀릭이었기에, 여간 눈치가 보인 게 아니었는데 이제라도 뭘 시켜준다니 오히려 고마울 지경이었다.
강석은 잠깐 망설인다 싶더니 입을 열었다.
“봉규산 유리를 구해주실 수 있으십니까?”
“···봉규산 유리요?”
“조사장님에게 여쭤보면 아마 도와주실 겁니다. 제가 부탁드려야 하는데···”
거기까지 말한 강석이 힐긋 옆을 돌아봤다.
새까맣게 칠해진 드넓은 공간이 헤드라이트에 의해 슬쩍 모습을 드러냈다.
“···제가 작업에 들어가면 다른 게 안 보이는 편이라서요.”
들어봤다. 한 번 집중하면 주변을 보지 않고 작업만 하는 편이라고 했었지.
“네. 익일 오전에 전달하면서 같이 전달하겠습니다. 다른 건요?”
“···감사합니다. 그러면 조사장님에게 금가루랑 은가루, 그리고 유리에다가 색을 입힐 때 사용하는 가스도···아! 그리고···”
구미령은 계속되는 강석의 말에 조용히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그리고 빠르게 강석이 하는 말을 받아적었다.
역시 좋은 작품을 위해선 많은 노력과 많은 재료가 들어가는 법이지. 구미령은 강석의 말을 어렵지 않게 받아적었다.
작가는 작업에만 집중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
그건 전 국제 갤러리 관장이었던 구미령이 가장 잘하는 일 중 하나였다.
구미령은 끝없이 쏟아지는 강석의 말을 빠르게 타이핑했다.
“···이 정도만 준비해주시면 될 것 같아요.”
“네. 사흘 내로 준비하겠습니다.”
강석이 구미령의 말에 잠깐 멈칫하다가 미소를 지었다.
“감사합니다.”
사람을 잘 구한 것 같았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고두한 선생님에게 감사하며 강석이 몸을 돌렸다.
이제 작업에 온전히 집중할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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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은 사다리를 끌고 문하고 가장 가까운 유리돔 좌측에 달라붙었다. 강석의 눈이 깜빡였다. 완벽에 가까운 암기력은 밤하늘을 수놓던 일주운동을 떠올렸다. 고두한이 보여준 것이었다.
수천 수만개의 하얀 선이 물고기의 꼬리처럼 길게 이어지던 물결이 기억 속에서 그려졌다.
강석은 헤드라이트로 비추어진 어두운 공간을 바라보며 천천히 손을 뻗었다. 강렬하게 진동하는 모터가 힘줄이 돋아난 손에서 날뛰었다.
강석은 힘을 힘껏 주고 꼬치처럼 얇은 조각도를 연결한 전동 조각도를 천장에 갖다대었다.
가루가 쏟아지며 유리돔에 작은 구멍이 뚫리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가려졌던 유리돔 너머로 강렬한 하얀 빛이 들어왔다.
강석의 고글에 하얀 점이 맺혔다.
강석은 아주 작은 점이 맺히는 순간 옆으로 드릴을 움직였다.
그와 동시에 고글 위로 빛의 선이 그려졌다.
푸른빛과 흰빛이 섞인 혜성의 꼬리처럼 선은 어둠 속에서 길게 이어졌다.
멀리서 지켜보고 있던 구미령은 무저갱을 뚫고 들어오는 하얀 점을 바라보며 입을 살짝 벌렸다. 거대한 진동음 속에서 유성우처럼 길게 이어지는 하얀 빛은 아름다웠다.
마치 강석이 어둠 속에서 빛을 탄생시키고 있는 것 같았다.
예술이었다.
172. il buon gusto è si raro, il mondo è ciec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