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Michelangelo in my previous life RAW novel - Chapter 177
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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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7년.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는 교황 바오르 3세로부터 의뢰를 받아 로마의 일곱 언덕 중 가장 작지만 가장 높은 언덕, 카피톨리노 언덕에다 광장 하나를 설계했다.
설계로부터 1세기만에 완성된 캄피돌리오 광장은, 신비의 계단이라고 불리우는 꼬르도나타Cordonata를 오르면 나온다.
착시효과를 일으키는 계단.
화려하고 웅장한 바로크 양식.
사다리꼴 모양 광장 중앙 바닥에 타원형으로 새겨넣은 천문학적인 12개의 별 무늬로 교황의 권력을 찬양하고, 눈부신 하얀 대리석과 미켈란젤로 특유의 투시감과 균형감을 잔뜩 드러낸 건축 설계.
고대 로마 시대에 건설된 카피톨리노 언덕의 모든 건축물이 포로 로마노 쪽을 향하고 있던 것과 반대로, 방향을 180도 틀어버린 것마냥 모든 건물이 로마 시내와 성 베드로 대성당을 향하도록 되어있는 설계방향.
그 모든 것이 하나하나 의미를 담고 있다.
하여 로마의 중심부에 자리잡은 작은 광장은, 오늘날 미켈란젤로의 건축물 중 가장 훌륭한 작품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가서 본다면 느낄 것이다.
과연 캄피돌리오 광장이 다른 포폴로 광장, 스페인 광장, 나보나 광장을 포함하여 이탈리아 로마에 위치한 4대 광장 중 하나로 꼽힐만 하다는 것을.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그는 천문학적인 지식도, 동시에 건축학적인 지식도, 결코 얕지 않았다.
– [조각가와의 수업]의 저자이자 1세대 조각가인 양선구가 강연 중 했던 말을 기록한 블로그 게시글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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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6월이네.”
탁상달력을 넘기는 걸 깜빡한 지유영이 달력을 넘겼다. 6월 8일. 벌써 토요일이었다. 토요일과 일요일이 가장 바쁜 날인 미술관 업무 특성상 아직 지유영의 주말이 오려면 한참이나 남아있었다.
‘아아. 놀고 싶어라아. 퇴근하고 싶어라아. 쉬고 싶어라아. 일하기 싫다아.’
지유영이 방금 바른 립스틱의 상태를 점검하며 거울을 보고 한탄했다.
“유영씨.”
“네!”
지유영이 미어캣처럼 바로 고개를 들었다. 하도 세차게 들어서 앞머리가 살짝 공중부양을 하면서 가라앉았다.
“왜 이렇게 놀라? 졸았어?”
“아, 아니요?!”
“농담이야. 농담. 유영씨. 부탁 하나만 하자. 전시 4실 있잖아.”
전시 4실. 강석 작가님의 가 전시되어 있는 곳이었다. 현재 블룸 미술관에서 가장 인기있는 기획전시이기도 했다.
‘나한테 전시 4실 관련한 일을 맡기시려는 건가?’
지유영이 긴장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만 유일하게 전시되어 있는 전시 4실은, 원래도 인기가 많은 전시관이었지만 베네치아 비엔날레 이후로는 방송사부터 기자, 대학교나 예고, 학교 현장체험학습 등 사람들 발길이 거의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는 북새통이나 다름 없었다.
비싼 값을 치루고 전시권을 사서 장기 기획전시를 여는 중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블룸 미술관에게 가장 높은 수익을 안겨주는 전시이기도 했다.
‘그런 전시 4실의 일을 나에게?!’
해외 아트바젤 마이애미비치에서 강석 작가님과 안면을 텄던 것이 이렇게 돌아오는 건가.
‘보통 전시 4실 관련해서는 진유미 큐레이터님에게 일을 다 몰아주다시피 하지 않았나?’
지유영의 머리가 흥분과 긴장으로 팽팽 돌아갔다.
“네, 네, 전시 4실이 있지요.”
“왜 또 그렇게 긴장을 해. 유영씨. 다름이 아니라 자기가 홈페이지 공지 제일 예쁘게 잘 만지잖아. 공지 하나만 만들어줘. 전시 4실 전시 종료일정 관련해서···”
“네?”
“전시 4실 종료일정.”
뭐가 종료를 해?
지유영이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 기획전시가 앞으로 1-2년 내로 마무리 될거라고 하시더라고, 그거 미리 공지 좀 만들자.”
“네에에?”
빅뉴스. 그것도 완전 빅뉴스였다.
* * * *
블룸 미술관에 전시가 종료될 거라는 소식이 퍼지는 그 시각. 강석은 초록의 생기를 품기 시작한 거리를 바라보며 한숨을 삼켰다.
– ‘···거 그런 매물 좀 거래해보고 싶네요.’
– ‘없습니다.’
– ‘보통 부동산에서 그런 건 못 구하실 걸요?’
– ‘사업부지매매 전문 부동산을 가야지. 이런 동네 부동산에선 못 구하지.’
– ‘어디 가서 사기 잘 당하시게 생겼네. 그런건 일반 부동산에서 못 구합니다.’
– ‘내가 아는 데가 하나 있는데 거기 소개 시켜드릴까?’
벌써 9번째 퇴짜였다.
블룸 미술관의 반절 정도 되는 서울땅, 그것도 제 집이 위치한 성북동에서 가까웠으면 좋겠다는 요구가 꽤 까다로운 사항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힘들 줄이야.
돈은 있는데 살 수가 없다니. 강석이 언짢은 표정을 지었다.
이제 이걸 어쩌지. 양선구 선생님이나 박선우 대표님한테 연락을 해보는 게 빠를려나···? 강석이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고민하는 찰나.
전화가 울렸다.
[윤수철 사무소장]윤수철 사무소장님이었다. 아침에 시간 되실 때 전화한번 주실수 있냐는 문자를 넣어놓았었는데 이제 보신 모양이었다.
“여보세요?”
ㅡ 아. 강작가님! 한참 현장일 하다가 이제 봤네요!
아직 현장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는지 커다란 굉음이 스피커 너머로 들려왔다. 강석은 전화기 소리를 최대로 올리며 움직였다.
ㅡ 무슨 일로 전화를! 주셨습니까! 죄송해요! 주변이 좀 시끄럽죠?!
“괜찮습니다. 제 목소리는 잘 들리시죠?”
ㅡ 네! 들립니다!
“다행이네요. 만나뵙고 설명드리고 싶은데···일단 짧게 요약하면 의뢰를 하나 하고 싶습니다.”
ㅡ ······의뢰요?!
기쁜 음성이 들려왔다. 강석은 사무실을 문자로 찍어줄테니 언제든 편할 때 방문해주시라는 윤수철 사무소장의 말에 이렇게 대답했다.
“지금 가도 됩니까?”
ㅡ ···네, 네?!
강석은 오늘의 할 일을 내일로 미루는 사람이 아니었다.
* * * *
윤수철.
개인 건축사 사무소, 윤수철 사무소의 사장이자 소장인 윤수철은 종이컵과 믹스커피를 바라보며 팔짱을 꼈다.
“···우리 사무실에는 머그컵이 없던가?”
“설거지 귀찮으니까 놔두지 말자고 하셨잖아요. 아. 저번에 보니까 경리사님은 하나 가지고 있던 것 같은데···왜요? 뭐 필요함까?”
“아니. 아니다. 할 일 해.”
윤수철은 그렇게 대답하면서도 종이컵이 쌓인 곳을 노려봤다. 지금이라도 다이소에 가서 이쁜 머그잔이라도 하나 사와야 하나, 그렇게 고민하면서도 그 사이에 강석이 올까봐 윤수철은 가만히 주변을 돌아다닐 뿐이었다.
“소장님. 뭔 일 있슴까? 뭐 그렇게 안절부절 돌아다녀요.”
“···곧 중요한 손님이 오실거다.”
“누구요? 오늘 류수헌 서기관님 오시는 날임까?”
류수헌 서기관.
윤수철 사무소와 관련한 대소사가 보통 류수헌 서기관을 통해서 나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류수헌 서기관은 많은 일을 가져다주었다.
류수헌 서기관이 일을 가져오면 대부분 거절을 안 하고 일처리도 꼼꼼하고 그러면서도 페이가 비싸지 않은 게 윤수철 사무소라, 류수헌 서기관도 윤수철 사무소를 찾아오는 거겠지만.
그래도 발로 뛰어서 일을 가져와야 하는 이런 영업 아닌 영업직에게 류수헌 서기관은 감사한 존재였다.
“류수헌 서기관님이 오신다고요?”
“서기관님이?”
그래서인지 사무소에 대기하고 있던 직원들이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제 마지막 일도 끝나가고 있는 마당에 새로운 일감이 온다는 건 기쁜 소식이 틀림 없었다.
윤수철은 어째 사장인 저보다 류수헌 서기관을 더 좋아하는 것 같은 직원들의 태도에 불퉁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다. 안 와. 안 온다고.”
할 일이나 해. 윤수철이 얄미운 직원들을 바라보며 손을 휘저었다. 날파리 쫓듯 휘저어지는 손길에 직원들이 입을 삐죽 내밀며 자리로 돌아갔다.
다들 현장 한 번 다녀온 다음인데 뭐가 저렇게 힘이 넘치는지. 윤수철은 못 말리겠다는 듯 고개를 내젓고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는 낡은 지갑에서 빳빳한 노란 지폐 두 장을 꺼내들어 직원들에게 내주었다.
“가서 과일이나 좀 사와라.”
“과일요?”
“진짜 누구 옵니까?”
“귀하신 분 올거다. 저기 앞에 백화점 있잖아. 거기서 품질 좋은 걸로 좀 사와봐.”
직원 한 명이 윤수철의 때 아닌 심부름에 긴가민가한 표정을 지으며 지폐를 받아들었다.
“금방 다녀올게요?”
“그래라.”
윤수철이 귀찮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진짜 누구 와요?”
“아, 몰라.”
저번에 씨엘로 갤러리 현장일에 투입된 직원들도 있는 만큼 강석이 온다고 하면 기뻐라 하겠지만 그래도 뭔가 괘씸해서 말해주기가 싫었다.
윤수철이 모르쇠로 일관하는 사이. 직원은 지폐 두 장을 안주머니에 넣으며 사무실 문고리를 잡아돌려는 그 순간. 문이 밖에서 먼저 열렸다.
직원의 두 눈동자가 커졌다.
“······어?”
* * * *
강석은 음료수 병이 든 종이박스를 들고 문을 열어젖혔다. 안쪽에서 도란도란 대화소리가 들려왔다. 먼저 온 손님이 있는 모양이었다.
“윤수철 사장님?”
강석이 앞으로 걸어갔다. 대화소리가 어느새 조용해졌다는 건 뒤늦게 알았다. 직원들이 창문 앞에 낮은 책상과 넓은 소파에서 일제히 몸을 돌렸다.
“어? 강작가님!”
“오랜만입니다. 작가님!”
“······여기는 무슨 일로?”
직원들이 올 줄 몰랐다는 얼굴로 강석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였다. 직원 사이에 앉아있던 사람이 고개를 돌렸다.
눈두덩이 밑에 거뭇게 내려온 피곤함과 충혈된 눈. 인공호흡기처럼 달고 있는 커피. 창백한 안색.
“어.”
강석이 입을 벌렸다.
류수헌 서기관이었다.
“서기관님? 여기는 어쩐 일로?”
“강작가님? 여기는 어쩐 일이십니까?”
류수헌도 갑작스러운 강석의 등장에 놀랐다는 듯 반쯤 몸을 일으켰다. 여기에서 만날 줄 몰랐다는 얼굴이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프로답게 빠르게 소파에서 빠져나와 강석 앞으로 걸어왔다.
“요즘 뉴스에 자주 나오셔서 묘하게 익숙하긴 합니다만···어찌되었든 오랜만에 뵈니 더욱 반갑네요.”
자연스러운 악수 신청에 강석이 손을 마주잡았다.
강석이 악수를 하면서도 놓지 못하는 커피를 향해 눈을 돌렸다. 커피라고 하기엔 검은 물과 같았다.
“샷추가를 얼마나 한 겁니까?”
“한 세번인가 네번인가 했던 것 같은데요. 사실 눌리는 대로 눌러서 기억은 잘 안 납니다만.”
위를 뚫어버리고 싶은 건가. 강석이 진짜 건강이 걱정된다는 얼굴로 류수헌을 바라보았다. 류수헌은 창백한 얼굴로 시원하게 웃었다.
“괜찮습니다.”
강석이 뭐라 말을 못하고 먹물인지 탄물인지 모르겠는 아메리카노를 바라보는 동안, 류수헌이 악수를 청했던 손을 거두었다.
“그런데 강작가님은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아. 윤수철 소장님에게 의뢰하고 싶은 게 있어서요.”
“의뢰요?”
어떤 걸? 류수헌이 궁금하다는 듯 물어봤다. 자연스럽게 류수헌이 안내하는 대로 소파쪽으로 걸어가자 직원들도 궁금하다는 듯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때였다.
“어, 작가님! 오셨습니까!”
사무실 안쪽 문을 열고, 윤수철 사무소장이 과일을 들고 나타났다.
“아. 사장님. 오랜만입니다.”
“네네! 잘 지내셨죠? 소식은 들었습니다. 요즘 엄청 잘 나가시던데요!”
“하하. 사장님은 잘 지내셨죠?”
“네에. 저야 여기있는 직원들하고 류수헌 서기관님하고 부대끼면 살고 있습죠.”
윤수철이 자리에 풀썩 앉았다. 직원들이 징그럽다는 듯 하더라도 직원들 전부가 다 먹고도 남을 과일과 쟁반에 수북하게 쌓인 포크수가 애정을 말해주고 있었다.
“잘먹겠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수박이다!”
“야, 이거 시원하고 다네. 백화점 과일이 다르긴 달라.”
“손님부터 먹어야 할 거 아니냐!”
열어젖혀진 창문.
선풍기가 달달달 돌아가는 사무실.
아웅다웅 부딪히며 포크 소리가 식탁을 울리기 시작했다. 드세요. 드세요. 들려오는 왁자지껄한 소리에 류수헌과 강석이 살짝 웃으며 포크를 들어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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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건축의뢰를 맡기고 싶다는 말씀이십니까? 저희한테요?”
“예.”
강석이 고개를 끄덕임과 동시에 두꺼운 종이를 내밀었다. 스케치가 분명했다. 윤수철이 다급하게 포크를 내려놓고, 손바닥과 손등을 바지에 비빈 뒤 종이를 받아들었다.
“저도 봐도 됩니까?”
비켜있던 류수헌 서기관이 슬쩍 윤수철의 뒤로 다가왔다. 강석은 보고 싶으면 얼마든지 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와 동시에 류수헌 서기관을 비롯해 사무소 직원들이 윤수철의 뒤로 달라붙었다.
“···이, 이게 뭡니까?”
자세한 스케치는 언제부터 생각하고 있었는지 모를 정도로 디테일하고 정교했다. 기하학적인 무늬가 이곳저곳 들어간데에다 메모도 이런저런 것이 많이 붙여져 있는 게 여간 꼼꼼하게 준비된 것이 아니었다.
윤수철이 눈이 휘둥그레져 종이를 넘겼다.
대수선 설계도 때와는 급이 달랐다.
“이게 뭡니까···?”
윤수철이 스케치를 하나하나 넘겼다. 류수헌 서기관도 흥미롭다는 듯 스케치를 바라보고 있었다. 둘의 입술이 동시에 움직였다.
“…성당?”
“성입니까?”
성당처럼 성스럽고, 성처럼 웅장했다.
이대로만 지어진다면 대단히 화려할 것 같았다.
이런 걸 어디다 짓게? 아니, 이게 한국에다 지을 수는 있는 놈인가?
스케치를 돌아보는 둘을 바라보며 강석은 천천히 대답했다.
“굳이 이름집자면, 카사. 카사라고 짓고 싶네요.”
카사Casa.
이탈리아어로는 집, 이라는 뜻이었다.
178. 미켈란젤로는 단신(短身)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