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Michelangelo in my previous life RAW novel - Chapter 194
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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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3년 3월 9일.
율리우스 2세의 뒤를 이어 레오 10세가 교황에 즉위하였다. 그리고 율리우스 2세의 무덤을 만들기 위해 미켈란젤로를 불러들였다.
1506년.
로마를 떠났던 미켈란젤로는 그렇게 로마로 되돌아오게 된다.
조각가의 숙명대로 끌과 망치를 들기 위해서.
* * * *
강석은 망설임없이 연꽃의 중앙부, 꽃봉오리의 윗부분을 두 손으로 돌렸다. 옛 수로를 돌리듯 굳은살이 밴 두 손으로 유리를 돌리자, 밀폐되어있던 뚜껑 부분이 나사가 돌아가듯 빠졌다.
공기가 통하는 소리와 함께 아직 속에서 식지 못한 유리의 열기가 훅, 하고 올라왔다.
‘소독은 따로 필요없겠네.’
과정 하나가 단축되었다.
강석은 시원해진 공방의 온도와 유리병 속 온도가 섞이길 기다리며 상자를 마저 뜯었다.
어머니가 두고 간 상자 속에서 강석이 제일 먼저 집어든 것은 배수자갈이었다. 강석은 조동범이 지켜보건 말건, 배수자갈을 한 번 더 꼼꼼히 씻으며 커다란 급식용 국자도 씻었다.
성인 남성이 두팔을 동원해 안아야 하는 둘레를 가진 꽃봉오리 유리병인 만큼 평평하게 만들거나 부족한 부분을 채울 때 사용할만한 것도 커다란 국자여야만 했기에 특별히 준비한 것이었다.
강석은 그 이후로도 혼합토라고 여러성분이 적혀있는 흙더미 포장지를 꺼내고, 화분에서 파낸 클로버를 대충 옆으로 분리해놓고 그 안에 흙들을 점검하고 배합토도 다시 정리했다.
완전건조 되어있는 비단이끼에 분무기, 그리고 열대 식물 종류들과 기다란 실험용 핀셋 등등이 모습을 드러냈다.
‘저게 다 어디다 쓰는 거래?’
조동범은 도저히 종잡을 수 없는 종류들이 열거되는 걸 멀거니 지켜봤다.
평소 작품을 위해 인터넷에서 자료를 찾을 때 말고는 식물에 식자에도 관심을 두지 않는 조동범이다보니 감조차 잡히지 않았다.
‘화분으로 쓰시려고 그랬나?’
화분이라기엔 밑에 물이 빠져나갈 배수구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작업을 할 때 시간 낭비를 최대한 줄이는 것에 집중하는 강석이라면, 꽃봉오리를 밀폐형 유리병 형태로 만들지도 않았을 거다.
뭐지?
배보다 배꼽이 더 커보이는 상황에 조동범이 고개를 기울였다.
조동범이 조심스럽게 입을 연 건, 강석이 아주 작은 자갈들을 유리병 밑바닥에 깔기 시작할 때부터였다.
“이번에 만든 유리연꽃은 화분용인 겁니까?”
물을 흡수하지 않고 흘려서 밑바닥까지 물이 차 저장되는 목적에 배수자갈을 깔던 강석이 고개를 돌렸다. 화분용? 강석의 시선이 잠깐 유리병 쪽으로 다시 돌아갔다. 그 중간 즈음에 그의 시선은 상자 더미에도 잠깐 꽂혔다.
아. 보기에 따라서는 화분이라고 생각될 수도 있겠네. 거기까지 생각한 강석이 다시 배수용 자갈을 깔았다.
“화분은 아니고···혹시 테라리움이라고 아세요?”
“테라리움이요?”
조동범은 안타깝게도 그 쪽으로 영 내용을 몰랐다.
“뭐 식물의 종류 같은 겁니까?”
“음······”
배수자갈을 평평하게 국자로 다지면서도, 어차피 흙무게로 눌러질거 처음부터 틈이 너무 촘촘해지지 않게 강석은 힘을 최대한 뺐다. 새롭게 국자에다가 자갈을 꽉 채워 유리병 안쪽으로 밀어넣은 강석이 입을 열었다.
“수족관이나 어항 같은 걸 보면 환경을 조성해주잖아요.”
“네. 그러죠. 그건 압니다.”
“테라리움은 그러니까 식물관이나 사육장 같은 걸 떠올리면 되는 거죠. 온실이라고 해야 하나. 유리병이나 투명 수조 같은 곳에다가 환경을 조성하는 거예요.”
본적이 있는 것도 같았다.
‘친구 놈 하나가 만들었던 것 같은데···’
개구리를 키울 적에 투명한 곳에다가 이런저런 나무와 식물을 잔뜩 넣어서 키웠던 것 같다. 그놈이 요즘은 뱀을 키운다 해서 집에 놀러가지를 않았지만. 나름 미술 전공이라고 잘 만들어놓은 것에 감탄했던 기억이 뇌리를 스쳤다.
“뭔지 알 것 같습니다.”
“예. 그거예요.”
“그럼 그 테라리움에는 어떤 동물을 넣어놓을 생각이십니까?”
“아아.”
베이지색과 회색 사이에 있는 작은 모래알갱이 같은 배수자갈을 바닥에 두껍게 깐 강석이 뒤로 물러섰다. 연꽃은 투명했으나 여러번 겹쳐져 있다보니 그 밑봉오리 부분은 멀리서 보면 불투명한 하얀색에 가깝게 되어 있었다.
샤워실에 있는 불투명한 유리처럼 그 속을 내밀하게 보이지 않아 배수자갈의 모습 또한 흰 그림자가 진 것처럼 가려졌다. 마치 베일을 덮어놓은 느낌이었다.
강석은 연꽃이 딱 겹치는 부분, 그러니까 꽃봉오리 5분의 1 정도 되는 지점까지만 배수자갈을 채워놓은 다음에 구석으로 돌아갔다. 그의 손에는 배수자갈과 그 위를 분리하는 분리층망이 들려있었다.
가정용에서 만드는 테라리움에 주로 쓰이는 미트페이퍼가 아니라 제대로 된 망이었다. 해외에서 직접 제작 주문한 것은 가까이에서 보아도 툭 튀어나오는 부분이 없게끔 거미줄을 얽혀 만든 듯 섬세하고 레이스처럼 얇았다.
그러나 창문에 쓰이는 방충망보다 촘촘한 종류였다.
강석은 방충망을 겉으로 보기에 티가 나지 않게 깔면서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조동범에게 답을 전했다.
“동물은 안 넣어요. 파충류나 달팽이나 나비, 그리고 지렁이나 벌레도 안 넣을 거예요.”
혹시라도 정원에 있는 흙을 썼다가 벌레알이 섞여 들어갈까 강석이 라텍스 장갑을 끼고 한알한알 집에 있는 흙알갱이를 검진한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다.
“테라리움은 사육장용만 있는 게 아니거든요. 식물만 키우는 테라리움이 보통 주류이기도 하고요.”
“그렇습니까?”
“정답은 없는데 제가 만들려는 건 완전 밀폐 테라리움이라서요.”
완전 밀폐 테라리움.
유리가 공기가 통하지 않게 밀폐형 유리병으로 만든 이유가 그거였다. 개봉하지 않고 그 안에서 생성되는 물과 그 안에 쌓인 공기, 그리고 식물만이 알아서 살아남는 밀폐형 소형지구.
창조의 권능을 엿보는 인간들이 가진 취미였다.
열대식물 위주로 주문한 이유도 밀폐를 해놓고 방치하다보면 습기가 생기고 벽에 수증기가 맺히기 때문에 그런 환경에서도 잘 자라는 식물들을 넣어놓아야 하기 때문이었다.
물론 처음에야 벽에 세균이 생기거나 곰팡이가 생길 것을 대비해야 하기 때문에 유리병에도 뚜껑을 만들어놓은 참이지만. 강석은 사람의 손이 아예 닿지 않는 완벽한 완전 밀폐 테라리움을 만들고 싶었다.
실제로 12년동안은 그렇게 해도 알아서 살아갈 수 있다는 논문이 나왔고, 어떤 이는 50년동안도 물 한 줌 새로 주지 않고 밀폐된 상태에서 테라리움을 유지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강석 역시 신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에서 탄생과 죽음을 반복하는 공간을 만들어놓고 싶었다.
“완전 밀폐 테라리움······뭔가 멋있습니다.”
“성공하면 멋있겠죠.”
조동범의 말에 강석이 고개를 끄덕이며 정원에서 손수 가꾸어 클로버의 작은 뿌리들이 사료처럼 들어간 흙더미와 배합토를 유리병 안에 조심스럽게 넣었다. 벽에 닿더라도 닦으면 그만이지만 최대한 묻지 않게 조심했다.
최소한의 손길로 완성하고 싶어서였다.
배합토와 흙더미를 뿌리는 강석의 적갈색 눈동자에는 그 어떤 불안도 없었다.
실패할 생각이 없는 거였다.
애초에 실패할 생각이었으면 시도도 안했을 거다.
조동범이 유리병을 바라봤다. 어느새 꽃봉오리 유리병은 반절이 가득 차있었다. 투명한 유리꽃 안에 가득찬 흙더미가 겉으로도 태가 나기 시작했다.
흙더미를 바라보던 조동범의 시선이 아래로 꽂혔다. 바닥에는 곡선이 느껴지는 색유리 판조각들이 널려 있었다. 꽃잎 위에 현대적 기법으로 접착될 조각들이었다.
종이비누처럼 얇은 색유리들은 새의 깃털이 바닥에 떨어진 것처럼 유려했다. 저걸 위에 붙여서 흙더미를 가릴 생각이신가보구나.
저 색유리 조각들을 붙이면 물로 만들어놓은 투명한 연꽃이 아니라, 우리가 아는 연못이나 호수 위에 둥둥 떠다니는 그 연꽃이 될 터였다.
‘그런데 그러면 처음부터 장미석영이나 금가루로 그라데이션을 넣어서 유리를 만들면 되는 거 아니었나?’
왜 굳이 투명한 유리를 만들고 그 위에 색유리를 덧붙이는 거지. 그렇게 생각하던 조동범의 뇌리에 강석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진유미 큐레이터의 전화를 받기 직전.
– ‘전통 모자이크 기법 아세요?’
– ‘그 전통 모자이크 기법에다가···아. 잠시만요.’
전통 모자이크 기법을 언급했었다. 전통 모자이크 기법이 한둘이 아니었지만 그 중에 하나를 이 연꽃에 선보일 요령이 분명해보였다.
투명 색유리를 이용하는 모자이크 기법 중에 색유리를 다 수작업으로 자르는 기법이 있긴 했다. 거기에 뭘 더 하시려는 거지.
조동범이 등을 보인 채 비단이끼에 물을 뿌리는 강석을 응시했다. 비단이끼와 열대식물을 이것저것 섞어 교차하며 족집게로, 크다면 크고 작다면 작은 물방울 모양의 공간을 꾸미는 강석이 보였다.
투명한 유리병 안에 작은 숲속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열대식물의 종류를 조동범은 잘은 모르지만 그것들은 아주 작은 넝쿨이나 클로버를 닮아 있었다.
그래서 더더욱 숲속 같았다.
녹음이 우거진 공간에 분홍빛 색유리가 덮이면 어떻게 될까. 애초에 저런 녹색 우거짐이 이리 옅은 색유리로 덮이긴 할까. 조동범은 작은 의문이 피어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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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의 테라리움은 빠르게 완성되었다.
대충 툭툭 던져놓는 것 같았는데 완성되고 보니까 진짜 자연스러운 정도가 아니었다. 언제 해외여행이라도 갔다오신건지 있을 법한 숲이 극소에 펼쳐져 있었다.
비단이끼로 꽉 채우니 더욱 그랬다.
“와······이거 진짜 멋있는데요.”
어떤 사람들은 테라리움을 만드는 걸 취미로 삼았다고 하던가. 왜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친구가 개구리를 위해서 만들었던 사육장과는 비교도 할 수 없었다. 세트장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예쁘다.
멋있다.
그 둘이 공존할 수 있었다. 자연이란 위대하다. 초록으로 덮인 공간이 뭔가 마음의 구석을 찔렀다. 가만히 보고 있는데도 불안과 초조, 근심이 옅어지고 숨이 트이는 것 같았다.
나만을 위한 작은 숲.
그런 느낌이었다.
‘나도 하나 만들까.’
조동범이 꾸며진 공간을 보며 생각했다. 여기에 색유리 판조각들을 덧붙인다면···모르긴 몰라도 금빛이 너울거리는 분홍 노을 속에 피어난 이 작은 숲은, 더럽게 아름다울 게 분명했다.
“이거 대상 안 주면 아홉시 뉴스도 뜰 겁니다.”
조동범이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강석이 조동범 특유의 과한 리액션에 입꼬리를 씰룩였다.
강석은 유리병을 다시 닫고 있었다. 접착 작업은 하지 않았다.
어차피 미술대전에서 조각은 모두 사진을 우선 접수하고, 정해진 날짜에 따로 방문하여 한번에 일괄 접수를 해야 한다. 그전에 문제가 생기면 밀폐형 테라리움이라도 몇번이고 유리병을 열어볼 수 있게 접착 작업은 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밀폐 테라리움은 처음에는 사람의 손길이 필요했다.
사람이 키우다가 나중에 어느 정도 안정기에 들어가면 그때부터 방치하듯 밀폐형으로 바꾸는 게 밀폐형 테라리움의 순서였다.
* * * *
노을이 지고 있었다.
강석은 분홍색과 보라색으로 물든 하늘을 닮은 색유리를 연꽃에 붙이고 있었다. 색유리들은 해봤자 0.1mm라고 할 정도로 무척 얇아서 붙이는데도 두께감이 올라오지 않았다.
조동범은 그 뒤에서 색유리가 붙었는데도 너무 얇은데다 색이 옅어 투명한 상태 그대로인 연꽃을 가까이에서 바라보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왜 붙이는지 진짜 모르겠어서였다.
뭐, 이대로도 완벽하니까 되었지.
조동범이 중얼거렸다.
“그나저나 벌써 완성이네요.”
진짜 며칠만에 완성한 거지. 명불허전. 또래 중에 강석의 작업 속도를 따라갈 수 있는 사람을 없을 거다. 조동범이 속으로 생각했을 때였다.
“완성이요?”
“·········이 색유리들만 다 붙이면 완성인 거 아닙니까?”
“···아닌데요?”
강석이 읽어내릴 수 없는 특유의 표정을 한 채, 조동범을 쳐다보았다. 그런 강석의 얼굴에 오히려 조동범이 얼이 나간 표정으로 강석을 쳐다보았다.
거대한 연꽃이 반질반질하게 빛을 반사해 강석의 얼굴 한쪽이 빛나는 모래에서 뒹굴기라도 한 것처럼 반짝거리고 있었다.
‘이게 완성이 아니라고?’
그럼 뭐가 완성이란 말인가. 조동범이 투명한 연꽃을 바라보며 뻐끔거렸다.
그리고 당황스러운 건 강석도 마찬가지였다.
완성이라니. 이 연꽃은 이번 작품에 화룡점정, 작품을 장식하는 영혼이자 정신일 뿐이었다.
이건 활이었다.
그리고 활을 쏘려면 화살도 필요한 법이었다.
195. 샘이 많고 뛰어난, 하늘의 적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