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Michelangelo in my previous life RAW novel - Chapter 193
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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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은 석궁을, 나는 활을 들고 있다.❞
–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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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겠대요?”
ㅡ 아직은 모르겠어요. 저쪽에서 제시하는 조건도 두루뭉실하고···일단은 조금 더 목적을 드러내지 않고 연락만 이어가는 게 맞을 것 같아보이긴 해요.
“그럼 그렇게 해주세요.”
땅은 필요하지만 당장 최우선 순위는 아니었다.
지금 당장 땅을 사게 되더라도 몇달은 꼼짝없이 노는 땅이 될 게 자명했다. 강석은 급하지 않으니 천천히 해도 된다는 뜻을 구미령 관장에게 전달했다.
ㅡ 네. 아, 그리고 저번에 얘기하시는 거 들어보니까 블룸 미술관 정도 평수만 되어도 좋다고 하셨던 거 같은데···관련 매물은 생각보다 조금 더 많거든요. 블룸미술관이랑 작약갤러리의 설관장에게서 토지매물 정보도 오늘자로 넘겨받았고요.
블룸 미술관과 작약 갤러리.
역시 돈을 많이 가진 갤러리들은 이런 쪽에 소식이 밝았다.
‘그래도 생각보다 빨리 보내주네.’
강석이 의외라는 듯 한쪽 눈썹에 들썩였다.
물론 모든 정보를 넘겨주지는 않았을 거다. 그러나 일단 넘겨주었다면, 도움이 될만한 매물 정보 몇 가지는 넘겨주었을 거다.
어차피 혼자 먹고 소화할 수는 없는 게 토지매물 정보니까. 독식하지 못할바엔 자신이 알아보기는 했으나 구미가 당기지 않거나 먹어버릴 여건이 안 되는 매물들은 이렇게 필요한 사람에게 넘겨주는 게 낫긴 했다. 그래야 생색이라도 내지. 강석이라도 그렇게 했을 터였다.
그래도 고맙네. 정보를 긁어모은 것 자체가 시간과 신경을 들여야 하는 일이다.
깊게 들어가면 수완 좋은 작가와의 친분 유지 등 여러가지 사유가 있겠지만, 뭐고 친하니까 넘겨준 게 맞았다. 진도욱 관장과 설여진 관장의 얼굴을 떠올린 강석이 머리를 한 번 쓸었다.
“감사하다고 적절한 선물이라도 씨엘로 갤러리 이름으로 보내놔주세요. 그리고 매물 자료는 제가 나중에 확인하러 갈게요.”
ㅡ ······살짝 정보를 봤는데 대부분이 블룸 미술관이랑 비슷하거나 그것보다 살짝 더 넓은 정도의 매물들이던데 괜찮을까요?
“예. 괜찮죠.”
강석이 뭐가 문제냐는 듯 대답했다.
넓으면 넓을수록 좋다고 했지만 애초에 처음 기획할 때만 해도 블룸 미술관 정도되는 크기를 바랐었다. 그리고 블룸 미술관 정보면 적은 평수도 아니었다.
블룸미술관은 본관과 별관 등, 건물만 몇 채나 합쳐져 있는 대형미술관이었으니까.
“물론 그래도 급하게 구매할 필요는 없죠. 넓으면 넓을 수록 좋은 건 맞으니까요. 서둘러서 구매할 생각은 없으니까 조금 더 여유를 두고 살펴보죠.”
ㅡ 네. 그렇게 할게요.
“아직 산강그룹이나 박선우 대표님께서 연락해온 건 없죠?”
ㅡ 네. 따로 없습니다.
“그럼 더 여유를 두고 살펴봐도 될 것 같네요.”
나라를 대표하는 기업과 그 기업의 오너 일가 중심부에 있는 사내. 한 단체와 한 개인이 가지고 있는 정보는 누가 봐도 꿀단지일 게 분명했다.
박선우 대표는 요근래 강석과 잦은 접점이 있었던 것 치고는 수완이 좋지 않은 편이었다.
‘내가 박선우 대표님이라면 이 기회에 치고 나올 거야.’
대한민국은 산강그룹의 앞마당이었다. 홈그라운드에서 싸우는데 지고 싶지는 않겠지. 잠깐동안 박선우 대표의 입장을 떠올린 강석이 생각을 차단했다.
더 이상 다른 생각으로 작업에 지장을 주고 싶진 않았다.
“씨엘로 갤러리는 어때요?”
강석이 자연스럽게 화제를 돌렸다.
구미령 관장 역시 대표님에게서 받아야 할 지시사항은 다 받았다는 듯 자연스럽게 넘어가는 화제에 화답했다.
ㅡ 사람이 무척 많아요. 대표님께서 임시 직원분들 고용하는 것에 찬성해주시지 않았다면 일이 힘들었을 겁니다. 감사해요.
“전부 구미령관장님 인맥인데요, 뭐. 제가 감사하죠.”
갑작스럽게 투입된 인맥들은 원래부터 교육을 받았던 사람들처럼 일하고 있었다. 어쨌든 사람이 무척 많다니 다행이었다.
“그럼 조금만 더 고생해주세요. 전 마저 작업할 거랑 전화할 게 남아있어서 이만 끊을게요.”
ㅡ 아, 네네. 너무 전화를 오래 잡고 있었네요. 파이팅입니다.
“감사합니다. 관장님도 너무 오래 일하지 마시고 시간 되면 퇴근하세요.”
ㅡ 노력해볼게요.
짧막한 덕담을 끝으로 전화를 끊었다.
평소의 강석이었다면 그대로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었겠지만 이번에는 그러지 않았다. 다음으로 통화해야할 것이 있어서였다. 그때였다. 쿵쿵. 입구쪽에서 소리가 났다.
강석과 조동범의 고개가 입구쪽으로 돌아갔다.
“···오늘 올 사람이 더이상 없는데···일단, 제가 나가보겠습니다!”
강석에게 임대하는 날은 공방 수업을 아예 비워놓는다. 강석도 되도록이면 공방수업이 없는 날을 확인해서 작업을 하는 편이었고, 조동범도 이중삼중으로 확인해서 그날 유리공방에 따로 찾아올 손님조차 없게 했다.
강석이 작업하는 작품에 대한 보호 문제도 있었고, 강석이 만들어놓은 작업 외 모든 매스컴과는 단절되어 있는 상태를 유지하려는 의도도 있었고, 강석이 작업하는 것 자체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그런 와중에 손님이 찾아오니 조동범이 당황스러울 만도 했다. 정작 강석은 괜찮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발에 불이 나게 달려나가는 조동범은 강석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누, 누구십니까?”
잠깐 사이에 입구까지 날아가다시피한 조동범이 셔터 옆에 있는 쪽문으로 상체를 들이밀었다. 왼손으로는 문고리를 잡고, 오른손으로는 셔터 옆 기둥에 손을 바짝 기댄 조동범이 고갤 옆으로 돌렸다.
“······! 어, 어머님!”
어머님?
강석의 적갈색 눈동자에 호기심이 깃들었다. 조동범이 허둥지둥거리며 쪽문에서 몸을 물린 것은 그 순간이었다. 조동범이 쪽문에서 떨어지자, 여리한 여성의 인영이 그곳으로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초록 새싹이 살짝 보였던 것 같다.
뜨거운 기온이 가득한 공방인데다 사방이 어두워 역광으로 모습을 드러낸 인영이 구별이 가질 않았다.
강석이 눈을 가늘게 뜨고 입구를 바라보았다.
그때 그림자 진 얼굴에 햇빛이 스며드는가 싶더니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들!”
어머니였다. 백명희가 화분을 들고 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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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그래도 전화드리려고 했는데 바로 오셨네요.”
백명희에게서 화분을 받아든 강석이 공방 옆 사무공간으로 백명희를 안내했다. 보통 조동범이 공방 수업 상담을 하거나 평소 컴퓨터 관련 작업 등을 할 때 머무르는 공간으로, 에어컨이 돌아가고 있는데다 꼼꼼한 리모델링을 거쳐 열차단이 되고 있어서 굉장히 시원했다.
옆에 2,500도 가마가 돌아가고 있는 것 치고는 시원하단 뜻이었다. 백명희가 손수건으로 슬쩍 땀을 닦아냈다.
조동범이 백명희가 화분과 함께 들고온 묵직한 포대들을 내려놓은 다음 탕비실 쪽으로 걸어갔다. 음료수라도 타오기 위해서였다.
그런 조동범에게 고맙다는 눈짓을 한 강석이 다시 백명희를 바라보았다.
“덥죠?”
“아냐. 아냐. 하나도 안 더워. 그나저나 밥은 먹었니? 그새 뺨이 홀쭉해졌네. 응?”
“붓기가 빠진 거예요.”
“볼살 좀 더 찌워야겠어. 홀쭉해.”
요근래 체지방률이 살짝 높아졌건만, 어머니 눈에는 항상 말라보이는 모양이었다.
그 사이 탕비실에서 조동범이 돌아왔다.
“여기 레모네이드요.”
“어머, 고마워요! 조사장님도 살이 조금 빠지신 것 같네요!”
“네, 넵? 그, 그런 것 같습니까?”
한동안 조동범과 백명희가 덕담을 주고받는가 싶더니 조동범이 칭찬 폭격기인 백명희가 버겁다는 듯 작업실로 도망쳤다. 어머니의 햇살 같은 미소에 칭찬 폭격이 더해지면 조금 버거운 면이 없잖아 있었다.
“작업은 잘 되니?”
백명희의 눈이 강석의 어깨너머로 살짝 돌아갔다. 작업물을 보지 못하고 사무공간으로 안내받아 궁금한 모양이었다.
강석은 묘한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일 따름이었다.
“예. 잘 되고 있어요.”
“그래? 그나저나···네가 필요한 거라 해서 가져왔는데 여기다 두기엔 너무 뜨거워보이는데 괜찮겠니?”
백명희의 눈이 이번에는 포대자루와 상자 쪽으로 돌아갔다. 강석이 하루내내 흙을 고르고 골라 만든 화분과 함께 가져온 저것들은 대다수가 식물이었다.
열대식물이라 더운 데서는 잘 버티겠지만 습기도 필요한 법인데···백명희가 키우기에 적절한 공간은 아닌 것 같다는 듯 고개를 기울였다.
“괜찮아요. 이제 곧 가마도 끌 거예요.”
필요한 유리 판조각들은 다 만든 참이었다. 급격한 온도 변화가 유리가 식을 때 팽창이나 형태변화를 일으킬까봐 가마를 잠시 그대로 유지한 것 뿐이었다.
“그래도 공방이니까 가마를 상시로 사용할 거 아니니?”
“아. 저 화분이랑 식물들은 여기서 키울 게 아니예요. 잠깐 작품 때문에 가져다달라 한 거니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요.”
애초에 작품과 관련한 일이 아니면 강석이 백명희에게 가져다달라 부탁할 필요도 없었다. 본인이 가져오면 될 일이니까.
원래는 화분이랑 식물들도 아침에 나오는 김에 다 챙겨 나오려고 했는데 이른 아침부터 작업하다보니 시간이 맞지가 않았다.
화분만 겨우 만든 상태였고, 그마저도 가져가면 충분한 자정작용이 안되어있을 것 같았다. 또 주문한 식물들도 집에 도착하지 않은 상태라 도착하는 대로 화분이랑 같이 가져다달라고 부탁하고 나오게 된 것이었다.
“뭐 그러면 상관없지. 그나저나 작품에 식물이 쓰인다니···엄마 너무 기대된다.”
평소 식물과 꽃을 좋아하는 백명희가 손바닥을 기도하듯 마주잡았다. 강석을 바라보는 눈빛에 소녀의 그것과 같은 기대감이 잔뜩 묻어나오고 있었다.
“완성되면 보여드릴게요.”
“그래그래. 완성되면 보여줘.”
그러면서 백명희가 재빠르게 일어섰다.
“더 있다 가시지.”
“나 있으면 계속 작업 안할 거잖니. 우리 대작가님께서 작업하는데 내가 그럴수야 없지.”
소녀처럼 박수를 짝짝치며 백명희가 가방을 챙겼다. 소녀 같이 티없는 맑은 미소가 얼굴에 그려져 있었다.
“오늘 아들이 좋아하는 갈비찜 해놓을 거니까 일찍 들어오고.”
“노력해볼게요.”
“그으래. 아. 맞다. 아들.”
강석의 배웅에 맞춰서 밖으로 걸어가던 백명희가 슬쩍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얼굴에 만개한 호기심에 강석이 고개를 기울였다.
“아들. 요즘 보니까 백산호텔에 있는 에다가 자식 낳게 해달라고 하거나 그러면 소원이 이루어진단 소문이 있던데 진짜니?”
“············예?”
“·········어머! 몰랐구나?”
그건 또 무슨 소문이야. 강석의 미간이 세모꼴로 좁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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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이 관자놀이를 주무르며 공방에 돌아온 것은 그로부터 7분 정도 뒤였다. 그런 효과가 없다는 것을 설명하는데 걸린 시간이었다.
그나저나 박선우 대표님이 요근래 워낙 바빠보이더니 에 난 소문 때문이었나?
발빠른 박선우 대표님이 미술대전이라거나 토지매매 정보를 가장 빨리 가져올 줄 알았는데 늦는 이유가 있었군. 이상한데서 해답을 들은 기분을 느끼며 강석이 걸음을 옮겼다.
2,500도로 들끓던 가마가 꺼져서인지 공방에 후끈함이 아까보다 덜했다. 열기가 빠져나가는 중이었다. 강석은 아침과 같은 싱싱함이 열기에 다 죽은 클로버를 잠깐 내려다봤다.
“이거 다 죽게 생겼는데요.”
조동범이 파리하게 고개 숙인 세잎클로버를 안타깝게 바라보았다. 우락부락한 덩치와 험악한 얼굴에 그렇지 못한 감성이었다.
강석은 어머니가 챙겨주신 모종삽을 들고 고개를 내저었다.
“괜찮아요.”
필요한 건 클로버가 아니니까. 뒷말을 삼킨 강석이 모종삽으로 푹, 화분 위 토양을 찔렀다. 세잎클로버 무리를 뽑아낸 강석이 흙을 바라보았다.
그 옆에는 포대자루와 상자속에 든 것이 모습을 빼꼼 드러내고 있었다. 배수층에 쓰이는 마사토와 비단이끼가 완전건조된 상태로 포장된 것을 바라보며 강석이 입꼬리를 씰룩였다.
이게 이번 작품의 활이었다.
194. 1513년 3월 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