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Michelangelo in my previous life RAW novel - Chapter 78
78
6만 4천명.
몇년 전, 그 숫자를 가늠해보려면 상암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렸던 브라질과 대한민국의 국가대표 친선경기를 떠올려보면 된다. 그 경기에 몰린 관중수가 6만 4천명이었다.
어마어마한 숫자라고 봐야 했다.
타다닥, 따각, 따닥, 스프링에 부딪히며 튀어올라오는 축들을 강채영의 손가락이 꾹꾹 눌러댔다. 쉼없이 눌려대는 키보드는 뽀글뽀글거리는 소리를 한참이나 뱉어내야만 했다.
“흠.”
한동안 침묵 속에서 키보드만 두들겨대던 강채영이 뒤로 물러났다. 영어로 가득찬 화면이 보였다. 내용을 쭉 읽어내리는 강채영은 막힘이 없었다.
이 정도면 얼추 된 것 같은데. 과한 칭찬도 그렇다고 내려치기도 비꼬기도 없는 팩트만을 전달한 내용을 읽어내리던 강채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만족이었다. 강채영은 마우스 휠을 움직여 한 번, 두 번, 세 번에 내리 걸쳐 읽어내리며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ㅡ 여보세요?
자신의 베스트 프렌드, 윤유란에게 전화를 걸기 위함이었다. 핸드폰 스피커 너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강채영이 볼맨 소리를 냈다.
“다 했어.”
ㅡ 뭘 다···했어? 우리 석이오빠 용신랜드 예약 홍보?
강채영이 보일 리 없는 걸 알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ㅡ 꺄아아아아!
익룡의 소리가 스피커 너머에서 째지게 들려왔다. 윤유란. 자신의 오랜 친구이자 가장 친한 친구이자, 강석의 극성 팬.
자칭 1호팬이라 주장하는 윤유란은 강채영이 친오빠 팬카페를 운영하게 만든 주범이었다.
ㅡ 역시 우리 매니저님! 멋있다, 강채영! 브라보!
“됐거든. 이번 족보 공유하기로 한 거나 잊지마셔.”
ㅡ 당연하지, 내가 족보가 뭐야? 내가 우리 외고 졸업 선배님들한테 우리 수업 들어오는 선생님 과목별로 성향 파악해서 프로필까지 짜서 공유해준다.
“···믿는다?”
ㅡ 당연당연당연! 나 믿지?
“말은, 진짜···하여튼 웃겨.”
강채영이 입술 사이로 비집고 새어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키득거렸다.
지난 2월 말이었던가?
작약갤러리에 들려 제 오빠의 작품을 본 다음.
윤유란과 함께 작약갤러리에서 운영하는 카페에서 음료수를 먹고 있으려니, 허공을 보며 윤유란이 중얼거렸다.
– ‘채영아. 역시 지금이라도 팬카페를 만드는 게 좋을까.’
처음엔 장난인 줄 알았다.
그런데 그날부터 반장난 반진담으로 팬카페를 만드는 게 어떠냐고 노래를 부르다 못해 메들리를 터트리더니···기어코 7월 초에는 깜짝 서프라이즈라며 팬카페 주소를 투척하는 게 아닌가.
6월 28일날 강석의 졸업전시회가 오픈식을 치룬 지 꼬박 일주일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때를 회상하며 강채영은 한숨을 삼켰다.
만든 건 윤유란인데 매니저를 저한테 넘겨버리고 자신은 부매니저로 내려가버려서 울며 겨자먹기로 같이 팬카페를 운영하게 된 지도 벌써 4달이었다.
물론, 윤유란의 능력만큼은 인정하고 있었다.
팬카페 회원 6만 4천명 중에 외국인의 비율은 3할. 그들 전부가 윤유란이 해외 커뮤니티 사이트를 돌아다니며 영업을 해온 회원들이었다.
처음에는 영어사전과 번역기, 그리고 드라마에서 나오는 인용 문구를 활용해서 끼적끼적거리던 윤유란은 지금은 번역으로 아르바이트를 해도 될 정도로 날아다녔다.
원래도 영어수준이 높아 같이 외고를 진학했던 윤유란이니만큼 밤낮으로 해외 커뮤니티 사이트만 붙잡고 있으니 실력이 안 늘래야 안 늘수가 없었겠지.
그래.
실력.
그걸 떠올리면 그렇게 가성비가 나쁜 취미는 아니었다. 실제로 윤유란을 따라서 팬카페를 운영한 다음부터 모의고사 영어 성적은 상향그래프를 그리며 올라가고 있었다.
읽는 속도도 빨라지니 국어 성적도 자연스럽게 올라가고, 또 자연스럽게 이래저래 다른 과목에 투자할 시간들이 많아지면서 성적도 상향평준화가 되가고 있으니···어떻게 보면 수지맞은 장사라 할 수 있었다.
오빠를 덕질해야 한다는 사실만 빼면.
강채영이 그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이는데 저 멀리서 끼익, 끼익, 나무 계단을 오르는 인기척이 느껴졌다.
오빠다.
발소리만 들어도 자연스럽게 알 것 같았다.
강채영이 서둘러 컴퓨터 화면을 끄고 몸을 돌리자 기다렸다는 듯 방문을 두들기는 소리가 났다.
“왜!”
“들어가도 되냐?”
“아, 왜!”
“아니. 너가 내 팬카페를 운영한다며.”
쾅!
강채영이 손바닥을 내리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와 동시에 분명 스피커가 아닌데도 핸드폰 너머로 쩌렁쩌렁 윤유란의 목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ㅡ 뭐야? 석이 오빠야? 석이 오빠 지금 집에 있어?
“뭐야. 무슨 소리야?”
“아, 잠시만!”
강채영이 다급하게 핸드폰을 다시 붙잡았다. 귀에 가져다대자 흥분한 윤유란의 목소리가 확성기처럼 울려댔다.
ㅡ 방금 팬카페라고 했지? 왜? 우리 팬카페 운영하는 거 아셨대? 관심이 있으시대? 뭐래? 말 좀 해봐!
“나중에. 나중에 내가 다 말해줄게. 잠깐만 먼저 끊는다.”
ㅡ 야, 영영! 끊지마끊지마끊···!
뚝, 하고 가차없이 끊어버린 강채영이 핸드폰을 냅다 책상 쪽으로 던져버리며 머리카락을 헝클었다. 엄마아빠는 내가 말하지 말라니까. 강채영이 귓가가 붉어져 문을 노려봤다.
“야. 강채영. 뭐하는데? 팬카페 좀 구경하자니까.”
“아, 왜!”
“그럼 팬카페명이라도 말해봐. 그래도 내 팬카페라는데 나도 들어가서 봐야 할 거 아니야.”
“됐거든!”
아직 제대로 된 성과도 내지 않은 상태에서 보여줄 수 있을 리가. 보기보다 쑥스러움을 많이 타는 강채영이 붉어진 얼굴로 이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소리를 빽 지르려는데, 의자가 움직여지며 핸드폰을 쭉 밀었다.
그와 동시에 키보드 위에 올라간 핸드폰의 무게가 키들을 쭉 누르면서 컴퓨터에서 소리가 터져나왔다.
ㅡ 신탁을 기억해보렴. 예언의 신이 너에게 뭐라고 했니. 네가 무시무시한 괴물과 결혼할 팔자라고 그랬잖니.
ㅡ 불을 켜 봐.
ㅡ 촛대를 들어 올려.
ㅡ 감춰진 얼굴을 확인해.
은밀하게 터져나오는 소리와 함께 팡, 팡, 팡! 폭죽이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게시글에 연동해놓은 동영상이 틀어진 모양이었다.
그 소리를 들은 강채영와 문밖의 강석이 아무말 없이 침묵을 유지했다.
꺼진 화면.
강채영의 컴퓨터 스피커를 뚫고 나오는 소리는 강석이 용신랜드에 작업한 를 홍보하는 동영상이었다.
해당 동영상은 오로지 강석의 너튜브 쇼츠에만 업로드가 되어 있는 상태였다.
이런 망할. 강채영이 붉어진 낯을 손바닥으로 감쌌다. 그리고 그게 보일 리 없는 강석이 문 너머에서 뻘쭘하다는 듯 목소리를 내었다.
“···어···일 중이었구나?”
“···············.”
“그, 나 내려갈게. 편하게 해.”
“·········.”
“···고맙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 내려가! 내려가! 내려가!”
“알았어, 알았어.”
강석이 킥킥거리며 계단을 내려갔다. 그 소리를 들으며 강채영은 손바닥에 얼굴을 묻은 채, 한동안 발로 허공을 뻥뻥 차댔다.
정말 흑역사였다.
.
.
.
박선우는 저택에서 먹물처럼 완전히 검은 색으로 물든 밤하늘을 바라보며 위스키를 홀짝이고 있었다.
강석을 만난 10월 24일로부터 벌써 일주일이 지났건만 아직도 박선우는 그날의 기억을 떠올렸다. 재밌는 작가였지. 열아홉이라곤 믿기지 않는 뭔가 단단함이 엿보이는 친구였다.
스파이시함 끝을 따라오는 바닐라향을 느끼며 박선우가 위스키 스톤을 집게로 퐁당 빠트리는 그 순간.
박선우의 곁에 있던 류정형이 안경 끝을 밀어올리며 물었다.
“대표님.”
대표.
일단 박선우의 호칭은 그러했다.
젊은 나이에 쓰기에는 꽤 거창한 감투라는 생각을 하며 박선우가 고개를 돌렸다.
“업무 끝나고 집에 놀러온 친한 형님이 부르기엔 너무 무거운 호칭인데.”
“이게 편합니다.”
“···그래요 이사님. 왜요?”
류정형은 위스키를 하나도 마시지 않은 상태로 박선우를 바라보고 있었다.
“입에 안 맞아요?”
“아뇨. 궁금한 게 있어서요.”
“네. 말씀하세요.”
박선우가 싱그럽게 웃었다. 보조개가 푹 들어간 볼을 살짝 응시한 류정형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건물로 의뢰를 끝냈는데 왜 굳이 또 정산금을 매달 지급하겠다고 추가 조건을 제시한 건지 해서요.”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되지 않았냐. 그 말은 목울대 밑으로 삼킨 류정형이 조심스럽게 박선우를 바라봤다.
“아. 그거.”
박선우가 그럴 수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네모난 위스키 스톤을 글라스 안에서 굴린 박선우가 위를 톡톡 두들기며 말했다.
“그러니까 이건······음, 혹시 작약갤러리의 이요. 그게 지금 어떻게 전시되고 있는지 아세요?”
“아뇨.”
“그럼 이나 나 , 아니면 에 대해서는요?”
“저야 작품 말고는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를 잘 모릅니다만······설마?”
류정형의 뇌리를 스치는 내용이 있었다.
조각상 는 특이하게 판매형태가 아니고 전시대여 형태였다. 그 입장권의 일부를 수수료 형식으로 지급하는 방식으로 가고 있었다.
특이한 계약이라고 생각하긴 했는데···설마?
“그 설마가 맞아요. 강석은 나 이나 을 제외하곤 전부 그런 형태로 거래했더라고요. 는 말씀대로 가정형편 때문에 급하게 그랬다치고, 은 재능기부라고 강석이 확실히 밝혔고···”
그 모든 사례를 제외하면 말고는 전부 소유권을 안 넘기고 있는 상황이었다.
“제가 보는 강석은 소유권을 팔기 싫어하는 녀석이었어요. 그리고 아마 맞겠죠.”
위스키를 홀짝인 박선우가 관자놀이를 검지로 꾹꾹 밀어올리듯 눌렀다.
“강작가는 왜 그렇게 하는 걸까요?”
“우리 강석 작가님이 그렇게 하는 이유요?”
하하. 박선우가 재밌는 질문이라며 웃었다.
“당연히 제 작품이 지닌 가치를 가장 잘 알아서겠죠. 일례로 우리 블룸미술관과는 상대도 안 되던 작약갤러리가 이번 매출 수익이 얼마나 증가했는지 아세요?”
“어, 그거야···”
류정형이 조금 당황스럽다는 듯 안경을 쓱 밀어올렸다. 산강문화재단 소속인 자신은 진도욱만큼이나 블룸 미술관과 주변 매출 수익에 빠삭할 수가 없었다.
그건 박선우 대표도 마찬가지일텐데···그렇게 생각하자마자 박선우가 입을 열었다.
“3배. 최소 3배입니다. 작년 이맘때쯤에 비해서 매출이 3배가 뛰었어요. 겨우 과 을 전시하고 있을 뿐인데.”
“3배요?”
관훈동 갤러리 일대에서 규모는 작아도 꽤 알짜배기 큰손이라고 불리우던 작약갤러리의 설여진 관장이 주머니를 3배 불렸다면 그건 엄청난 일이었다.
류정형도 그건 알았다.
은테 안경알 너머로 눈동자가 커다래졌다.
“이건 엄청난 겁니다. 강석의 작품을 보기 위해 사람들이 움직인다는 뜻이거든요. 그건 곧 돈이에요. 근데 이게 성장의 끝인가?”
아뇨.
박선우의 눈동자에 이채가 발했다.
“제가 장담하는데 우리 강석 작가님은 앞으로 더 클 겁니다. 태국에 이 넘어가고 진도욱 관장이나 설여진 관장이 아트 페어에 작품을 내보내기만 해도, 이건 배는 가치가 뛸 상품이죠. 그래서 저는 그 시류에 한 번 몸을 맡기기로 한 건데···”
박선우가 위스키를 굴리며 숨을 고르더니 말했다.
“지금처럼 저같은 사람이 나타나서 르네상스 쇼핑몰을 통째로 사서 사듯이 호텔을 사다 우리 온천에 설치한 강석 작가님의 조각상을 사다가 넘겨버리면 어떻게 해요.”
닭 쫓던 개 신세가 되지 않겠어요?
박선우가 실실 웃었다.
“그래서 작품의뢰비는 주되 작품을 차후라도 뺏기지 않게 반쯤은 소유권을 강석 작가님에게 넘겨 공동자산으로 분류를 해버렸죠. 나중에 호텔이 팔리든 뭐가 팔리든 조각상은 저와 강석 작가님의 것으로 분리되게요.”
박선우가 호텔을 짓긴 하지만, 호텔의 지배인이 될 확률은 적다. 그러니 온전히 산강그룹과 호텔을 위해서만도 일할 수 없었다.
꽤 간이 크게 움직였지만, 당장 이 가치를 눈치챌 사람은 없을 터였다.
류정형이 그때서야 이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를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그렇게···”
“네에. 들키지 않게 이것저것 항목을 달아서 화려하게 만들어놨죠. 건물에 추가 비용 결제 정산에 뭐 정신 없어서 그 내용을 위에서 들여다보기나 하겠어요?”
실제로 계약서의 두툼함이 손가락 마디만 하며 제대로 들여다보기도 겁이 나는 계약이었다. 결론은 호텔에 조각상이 지어졌다 뿐이고 위법사항도 없으니, 당장 확인할 길이 없을 터였다. 이미 결재가 떨어진 일이니 확인할 필요도 없었고.
거기까지 생각한 류정형이 감탄했다.
그러다 문득, 그 두툼한 계약서를 꼼꼼하게 읽어내리며 하나하나 짚고 넘어가던 강석이 떠올랐다.
“그렇다면···강작가도 이 의도를 다 파악하고 계약을 추진할 걸까요?”
“······어어.”
그건 생각해본 적 없는데.
여태까지 전부 자신이 원하는 대로 되었다고만 생각하며 웃고 있었던 박선우가 조금 벙이 진 표정으로 류정형을 바라봤다.
– ‘이것만 확인해보고요.’
확실히 계약서를 꼼꼼히 확인했고, 이것저것 물어보기도 했었다. 그러더니 마지막에서야 만족한 표정으로 계약을 했었지.
어음. 사실 가능성이 없는 얘기는 아니었다. 강석에게는 불리한 조건이 하나도 없었으니까. 애초에 강석에게 불리하게 계약을 할 필요도 없었다. 그래서는 안 되기도 했다.
강석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으니까. 그 거위랑 척을 져서 뭐 좋은 일이 있겠나. 거기까지 생각하던 박선우가 위스키를 휘휘 저었다.
“으음···그렇게 꼬아 쓴 계약서를 모두 파악하고 계약한 게 맞다면······”
거기까지 말하던 박선우가 돌연 말을 멈추고 달력을 바라봤다.
“아트페어가 언제 열리죠?”
“아트페어요?”
“네. 규모가 좀 있는 걸로다가···”
“어, 그게······”
류정형이 일어나서 달력이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만약, 정말 모두 파악하고 계약한 게 맞다면 조만간 정말 계약을 하기도 어려운 거물이 되어있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박선우가 위스키를 한 모금 마신 뒤. 제 통장에 있는 여유자금을 떠올리며 물었다.
“형. 아트 페어에 강석 작가가 작품을 들고 나올까?”
“뭐? 아니 대표님.”
“어? 형? 말해봐.”
산강문화재단에서 장학금을 받으며 자라온 류정형이 당황스럽다는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그 옛날. 초등학생을 가르치던 과외 선생 때의 표정으로 돌아간 류정형이 입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내 생각엔···”
류정형의 입에서 나올 말을 기다리고 있던 박선우가 장난스럽게 웃다 말고 눈을 크게 떴다. 그가 바라보는 것은 컴퓨터 화면이었다.
포털사이트 최상단.
대문에 대문짝만하게 박혀있는 글씨를 박선우가 읽어내렸다.
“용신랜드 작품 관람 올해 전체 매진.”
와우.
예약이 시작되고 일주일.
겨우 일주일만에 11월과 12월이 전부 다 매진되다니. 아무리 낮에만 관람이 가능하고 성인 1명씩만 예약이 가능하게 해놓았다지만, 이건···진짜. 박선우가 눈을 반짝였다.
“생각보다 더 빨리 클지도 모르겠는데?”
박선우가 두근거린다는 듯 류정형을 바라봤다. 그러다 문득 눈썹을 세모꼴로 좁히며 걱정된다는 듯 그러면서도 재밌다는 듯 중얼거렸다.
“근데 군대는 어떻게 해결하려나?”
박선우.
산강그룹의 막내임에도 그는, 군필이었다.
* * * *
11월 1일.
가을의 마지막 달.
이제는 가을이라고 부르기에도 매서운 한파가 시작되는 즈음.
용신랜드가 재개장 준비를 끝내고 문을 열었다.
물론, 그렇다고 놀이기구가 운영되는 것은 아니고 시간당 가격을 받는 예약제로 진행되기에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지는 않았다.
강석은 블룸 미술관 졸업 전시회가 오픈될 때와는 조금 다른 한산한 인파를 바라보며 천천히 용신랜드 안으로 들어섰다. 모자를 꾹 눌러썼기에 강석을 알아보는 이는 없었다.
– ‘오늘은 진짜 꼭 나오셔야 합니다, 작가님!’
강석이 주변을 돌아봤다.
주변에서는 를 위하여 배치된 경호원들과 안전요원, 그리고 조동범 사장님의 연기를 대신할 진행요원들이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처음으로 손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는 중이었다.
내가 왜 필요하지.
강석이 조금은 뻘쭘한 눈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자신을 부른 류수헌이라도 찾기 위함이었다. 그때였다. 저 멀리서 고카페인 음료수에 빨대를 꽂은 인영이 깨끗한 정장차림으로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류수헌이 분명했다.
“작가님!”
역시. 강석이 다가오는 류수헌을 바라보며 고개를 마주 숙여 인사했다.
“오랜만입니다, 서기관님.”
“하하. 매일 자주 봐도 전 좋은데요.”
서류다발을 들고서 류수헌이 웃음을 늘어트렸다. 입꼬리 끝으로 다크서클이 닿으려고 하고 있었다. 그에게서 죽음의 기운을 느낀 강석이 움찔거리는 와중에 저 멀리서 차가 멈추는 소리가 났다.
“아, 오셨네요!”
류수헌이 환한 얼굴을 하며 돌아봤다.
“제가 작가님한테 연락을 드린 이유가 저분들이 오늘 오신다 그래서거든요.”
저분들? 누군데 나를 불러?
강석이 의아한 표정으로 류수헌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고개를 돌린 순간. 강석의 표정이 오묘하게 일그러졌다.
이게 뭐지.
특이한 광경이었다.
용신랜드의 트레이드 마크.
쌍룡이 서로를 향해 불을 뿜어내는 간판에 그 밑에는 하트 모양의 마법봉을 뾰로롱 소리를 내며 휘두르는 안내원.
그리고 그 문 너머로는 승복 차림의 봉은사 주지 법경 스님과 신부복 차림의 누군가가 함께 걸어오고 있었다.
그야말로, 혼란 그 자체였다.
79. 봉은사의 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