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Michelangelo in my previous life RAW novel - Chapter 77
77
“·········예?”
건물을 좋아하냐니. 설마. 감이 오는 바가 있었으나 그럴 리는 없겠지. 강석이 머릿속에 떠오르는 화두를 지웠다.
건물을 좋아한다는 것이 다분히 중의적인 표현이기 때문이었다.
용신랜드 건물에 대해서 퍼졌나. 생각해보니 단순히 건물을 좋아하냐고 물어본 걸 수도 있다.
서울은 빌딩숲이라고 불릴 정도로 건물들이 빼곡하게 들어선 곳이고 진도욱 관장님과 양선구 선생님에게 박선우는 옛날부터 큰 건축물을 좋아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들었던 기억이 있었다.
그래서 이번에 건설책임자로 자리를 받을 때 엄청 좋아했었다더니···그것 때문인가?
무언가 신이 난 표정에 박선우에게 강석이 대답했다.
“어떤 건물이냐에 다르지 않을까요.”
“오.”
강석의 말에 박선우가 놀랐다는 듯 눈동자를 크게 떴다. 그리고는 강석이 했던 말을 되새기듯 중얼거리며 입가를 엄지와 검지로 매만졌다.
“어떤 건물이냐라···이거 현답이네요.”
어느새 악수는 풀린 채였다.
가이드라도 된 것처럼 손짓하는 박선우에게 안내 받아 진도욱 관장 옆에 앉게 된 강석이 박선우를 바라봤다.
그는 자신이 앉아있던 자리 앞 탁자에 놓여있는 검은 클립보드를 들고 서 있었다. 정확하게는 종이가 끼워진 검은 클립보드를 강석에게 건네고 있었다.
클립보드를 허공을 향해 든 채, 어서 보라는 듯 턱과 눈으로 재촉하는 박선우를 응시하던 강석이 천천히 손을 움직였다.
“마음에 드는 건물이면 좋겠네요.”
이번에도 참으로 의미심장하고 중의적인 표현이었다. 강석은 원래 박선우가 저런 말투를 고수하는 편인가, 생각하며 고개를 내렸다.
[등기사항전부증명서(말소사항 포함) – 집합 건물 -]그 한 문장만 봐도 느낌이 왔다.
건물을 좋아하냐는 건 단순히 보는걸 좋아하냐거나 어떤 디자인의 건물을 좋아하냐는 질문 따위가 아니었다.
강석은 종이를 한 장 한 장 팍팍 거세게 넘겼다. 탁, 탁, 갈퀼 것 같은 큰 소리와 함께 강석의 눈동자가 빠르게 움직였다.
“이건······”
강석이 종이의 끝장을 넘긴 뒤.
뭐라고 말해야 좋을지 모르겠어서 일단 고개를 들어 올렸다. 선천적 포커페이스를 가지고 태어난 강석답게 얼굴 표정은 평소와 같이 무덤덤했다.
박선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같이 있는 진도욱 관장에게 강석이 표정 변화가 없는 표정이라는 것을 들었었기에 예상했던 바였다. 그래도 좀 더 놀라는 모습을 보고 싶었는···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신 박선우가 강석을 바라보고 있는 맨 마지막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의뢰비입니다.”
의뢰비로 내건 것은 강석이 직접 그린 프레스코, 가 있는 매매 계약서였다.
이걸 어떻게?
지하 1층, 지상 8층으로 이루어진 8층짜리 복합쇼핑몰 르네상스. 모르긴 몰라도 이제는 서울에 있는 만큼 임대료도 괜찮게 나올 거니까···가치도 수직 상승하고 있을 터였다.
‘이런 건물을 팔 리가 없을텐데···’
강석도 물론 를 개인소장용으로 돌리고 싶었지만, 이곳은 이제 막 리모델링을 끝내고 날아오르려 하는 그런 곳이었다.
그런데 여길 구해왔다고? 어떻게? 강석이 놀라서 박선우를 바라보았다.
이걸 구했다면···보통 돈으로는 안 되었을 텐데? 순수한 궁금증에 강석이 고개를 돌렸다.
박선우는 그저 웃고 있었다.
‘놀란 것 봐.’
그러면서도 박선우의 머릿속에선 계산기가 돌아가고 있었다.
솔직히 서울에 있는 빌딩건물들에 비하면 강석에게 건넨 르네상스 쇼핑몰은 그 가격대가 조금 약했다.
그렇지만, 8층 카페 시스티나가 건물 직영이라는 사실과 그곳 8층에 요즘 사람들을 피리 부는 사나이처럼 불러모으는 강석의 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르네상스 복합 쇼핑몰은 엄청난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사람이 모이는 곳에는 돈이 흐르기 마련이니까.
‘멍청한 녀석들이 건물주 자존심을 건드리느라 매매에 실패한 게 천운이었어.’
작품을 조금 볼 줄 아는 사람이라면 그 8층에 있는 이 얼마나 뛰어난 작품인지 알 수 있었을 터.
그런데 유명해지기 시작할 때즈음 리모델링에 들어가면서 사업가들 대부분이 그곳을 방문하지도 못하게 되면서 관심이 식었고, 일부 발 빠른 몇 명이 빠르게 건물주에게 접근을 했지만···건물주의 비위를 못 맞추고 결국 모두 탈락.
덕분에 박선우의 손에 늦지 않게 들어올 수 있었다.
‘운이 좋았지.’
르네상스 쇼핑몰의 건물주가 나이 지긋한 양반에 사업가 또한 아니고 예술 쪽으론 소식과 귀가 어두워 다행이었다.
‘8층만은 안 팔겠다고 나올 줄 알았는데···’
매매는 처음부터 끝까지 호쾌하게 진행되었다.
건물주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말만 피해서 행동했을 뿐이었는데 쉽게 쉽게 그렇게 되었다.
정말 운이 좋았다고 밖에 할 말이 없었다.
그게 아니었다면, 절대로 적절한 가격을 준다고 살 수 없었을 테니.
물론, 선물이 구하기 쉬웠다고 하면 제 노력이 없어보이니까 박선우는 구매한 과정에 대해서는 숨길 생각이었다.
박선우는 이런 제 속을 어려서부터 훈련한 대로 마음 깊숙한 곳에 숨긴 채, 웃는 낯으로 물었다.
“열심히 구했습니다. 마음에 드세요?”
강석이 박선우의 질문에 눈을 깜빡였다.
마음에 드냐고?
당연하지!
강석은 제 작품에 대한 소유욕이나 자부심이 엄청났다. 즉, 강석과 거래하기 위해 강석의 작품을 가져오는 일은 베스트 오브 베스트였다.
성북동 저택에 이어 르네상스 쇼핑몰까지···드라마도 더 드라마 같은 일이 벌어지는 현실이라지만, 이건 정말 엄청났다.
대체 뭘 의뢰하려고 이러지?
강석이 두근거리면서도 걱정된다는 듯 대답했다.
“무척 마음에 듭니다.”
“하하, 무척까지요?”
박선우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첫인상은 성공적으로 남기는데 성공한 모양이었다.
손가락 끝과 끝을 맞닿아 붙인 박선우가 강석이 들고 있는 클립보드를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거기 뒤에 있는 계약서에 적혀있겠지만, 저희가 의뢰하려는 것은 조각상이에요.”
조각상.
진도욱 관장도 전화할 때 언급했던 내용이었다.
강석에게 꼭 의뢰하고 싶은 조각상이 있다고 했었다.
강석은 계속해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박선우가 목을 다듬으며 말했다.
“큼큼. 제가 이번에 산강그룹 계열사 소속인 호텔 건축을 새로 맡았거든요. 거기에 야외 온천이 들어설 예정인데 거기에 설치할 조각상을, 우리 강석 작가님에게 의뢰하고 싶더라고요.”
박선우가 환하게 웃었다.
온천에?
호텔 입구나 그런 곳에 설치할 조각상을 만들어달라고 할 줄 알았는데···꽤나 특이한 말이었다.
굳이 온천에 만들 이유가 있나? 강석이 숨은 뜻을 파악하기 위해 골몰하는 순간. 눈치가 빠른 편인 박선우가 바로 뒷말을 이었다.
“그 혹시 문화예술진흥법 제 9조 제 1항에 대해서 아세요?”
질문이었다.
“···아뇨?”
법을 외우고 살 리가.
강석이 고개를 내저었다.
그러자 이해한다는 듯 박선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건물 앞에 의미 모를 커다란 조형물이 있기도 하고 그러잖아요?”
“그렇죠.”
무슨 의미를 담았는지도 모르겠는 걸 갖다박아 직관적이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설명서가 있는 것도 아니고, 관리도 제대로 안 되어있고···어떤 것들은 메시지가 아주 좋은 반면에 어떤 것들은 이런 걸 조각이라고 걸어놓았나 싶을 정도로 그 수준이 미흡한 것도 천지였다.
조각에 대해서만큼은 눈이 까탈스럽고 신랄한 편인 강석의 표정이 사정없이 구겨졌다.
말만 번드르르하게 붙여 일반인들이 알아보지도 못하면 역시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라며 말도 안되는 급 나누기를 설파하는 것들도 가끔 있었다.
정말 좋은 작품이란 볼 때에도 좋고 엄청난데 뜻을 알고 보면 또 다른 것이 보여 더 좋고 엄청난 법이거늘, 쯧. 강석이 혀를 찼다.
박선우는 강석의 기분이 급격하게 안 좋아지는 것을 느끼며 서둘러 뒷말을 붙였다.
“가끔은 조형물이 아니라 그림이나 다른 것이 세워져있기도 한데···어찌되었든 그렇게 건물 앞에 미술작품이 세워져 있는 이유가 문화예술진흥법 제 9조 제 1항 때문이거든요.”
“아. 들어본 것 같아요.”
진짜로 들어봤다.
어느 일정 규모 이상의 건축물을 건축하려는 사람은 건축 비율의 일정 비율에 해당하는 금액만큼을 써서 회화나 조각이나 공예 등의 미술작품을 설치하고 활용해야 한다는 법.
그 법을 믿고 조소 전공의 미래가 밝다는 아이들이 한때 있었지. 강석이 기억난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역시 미술 전공이라 아시는 게 있네요. 이게 솔직히 각 층 바닥 면적이 총 1만 제곱미터를 넘으면 건물 앞에 미술작품을 의무적으로 설치를 해야 하는 건데 보통 대부분의 건물이 이건 그냥 통으로 넘어버리거든요. 그러니까 건축비용을 100억 썼다 치면 1억은 미술 작품에 써야 하는 법이었는데요. 이게 법이 바뀌어서요.”
법이 바뀌었어?
그건 몰랐다.
강석이 한쪽 눈썹을 치켜세웠다.
그 순간, 그 법 때문에 조소 전공이 굶어 죽을 일은 없다고 하던 수많은 조소 전공 친구들의 얼굴이 스쳐지나갔다.
그나마 학원 친구들은 제쳐두고, 청화예고 녀석들은 대부분이 불상 제작 동아리를 거쳐서 먹고 살 일이 끊길 일은 없으려나.
요즘 특수분장이나 3D 모델링 쪽으로도 뻗어나간다고 했던 것 같긴 한데···돌연 아이들의 장래 희망 걱정까지 날아갔던 강석이 정신을 차렸다.
“어떻게 바뀌었는데요?”
“2011년 정도에 개정이 되었죠. 미술작품을 설치하는 대신에 이제 작품 설치 비용의 70% 정도만을 한국 문화예술 위원회에 납부하는 방식으로요.”
진도욱 관장이 말을 보탰다.
“납부된 돈은 문화예술과 관련된 공적 사업에 사용되는 중입니다. 어떻게 사용되었는지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아 뭐 법을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도 많이 생기고 있고, 그렇다고 이 법이 사라지면 예술 시장이 무너지게 생겼는데 어떻게 바꾸냐, 반대의 목소리도 터지고 있고···여러가지로 시끄러운 법입니다.”
“아아.”
“뭐, 어찌되었든. 우리 진관장님 말씀대로 그런 이유로 이리저리 시끄러운데 산강그룹의 오너가 어떤 방향성을 드러내면 그게 또 신호탄이 되거든요.”
곤란하죠. 하하. 박선우가 청량한 웃음을 터트리며 관자놀이를 긁었다.
돌연 웃던 박선우의 입가가 일자로 쭉, 늘어졌다.
“전 그런 구설수에 휘말리는 건 질색이에요.”
정말 질색이란 표정이었다.
“경영권 싸움에도 관심없고 정치권에도 관심없고, 주어진 것에 만족하며 가끔 할아버지나 아버지가 하라고 일감 던져 주면 하고. 욕 안 먹을 선에서 끝내되, 가끔은 칭찬도 좀 받아주면서 느슨한 경영권 싸움에 텐션 한 번 올려주고, 가족들과 직원들과는 친한 관계를 유지해서 앞으로도 제 자리는 적당히 지키고, 그러면서 굿이나 보고 떡이나 얻어먹으면 그만인 한량같은 놈이거든요. 제가.”
줄줄 이어지는 말에 강석이 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하고 싶다고 다 할 수 있으면 그건 오히려 정말 능력이 있는 거 아닌가?
묘한 생각이 들었지만 강석의 생각은 깊게 이어지지 않았다.
박선우가 분위기를 환기시킬 요령으로 두 손바닥을 마주잡듯 박수를 팡 터트린 탓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현관이나 우리 호텔 대문 앞에 조각상을 박아둘 수는 없어요. 그건 제가 정치적 목소리를 내는 것처럼 보일 수 있잖아요. 제가 또 그런 불안 요소는 하나하나 피하고 보자는 주의거든요. 그리고···”
“그리고?”
“온천 이용은 추가 비용을 받을 예정이라, 하하. 호텔 장사가 아시다시피 이것저것 뽑아먹지를 않으면 적자가 나기 쉬운 폼생폼사 사업이잖아요? 조각상이 보고 싶다면 온천은 별도 비용 결제를 해야만 입장이 가능하게 만들어서 적당하게 마진도 챙겨줘야 경영자가 욕을 안 먹겠더라고요. 특히 우리 강석 작가님의 조각상이 잘 보이는 명당 자리는 특별히 초초스페셜 온천으로 준비해서 추가 비용까지 챙기고요.”
박선우의 설명에 강석이 묘한 표정을 지었다.
설명을 듣고 있자니 강석이 항상 거래를 요청하는 방식과 묘하게 비슷했다. 설마하는 생각이 다시 꿈틀 올라오는 그 순간. 박선우가 맞다는 듯 하하, 웃음을 터트렸다.
“당연히 제가 우리 강석 작가님 조각상으로 덕을 보는데 챙겨드려야죠. 향후 온천 이용 추가 금액의 5%, 그리고 명당 자리 추가 비용에 대해선 35%까지 강석 작가님에게 전시권 형태로 지급해드릴 예정입니다. 물론 저희 온천에 대한 프로모션이나 이런 부분에 있어서 수수료는 조정될 수 있을 것 같아 계약서를 추가로 준비했는데···어떻게, 계약은 마음에 드시나요?”
박선우가 종이를 한장 더 바닥에서 들어올리며 물었다. 그의 손에 들어있는 만년필이 빛을 받아 반짝였다.
하.
이거 재밌네.
강석이 입꼬리를 씰룩였다.
이렇게 마음이 잘 맞는 느낌은 처음이었다.
산강그룹의 오너일가 막내 박선우.
그 이름 석자를 기억 속에 박아두며 손을 뻗었다.
“계약하시죠.”
지나치게 만족스러운 제안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강석은 만년필 대신 다른 쪽 손에 들린 계약서를 잡았다.
“이것만 확인해보고요.”
그렇지만 강석 역시도 꼼꼼하기로는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라, 강석은 매서운 눈동자로 방금의 설명과 하나도 틀리지 않은 계약서가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눈을 굴렸다.
그 모습에 만년필을 멍하게 든 채 굳어있던 박선우가 웃음을 터트렸다. 제 감언에 녹아나지 않는 사람은 오랜만이었다. 입 안에 혀처럼 살살 굴면 대부분이 눈 깜짝할 사이에 우호적으로 변하는 법이거늘. 아, 이거 너무 마음에 드는데. 박선우가 눈을 빛냈다.
“아, 저 작가님 진짜 마음에 들려고 하는데요?”
청량한 웃음이 관장실을 꽉 채웠다.
그러거나 말거나 강석은 열심히 계약서를 읽어내렸다.
그리고 그 모습을 바라보며 진도욱 관장과 류정형 이사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서로를 멀뚱히 바라봤다. 뭐가 어떻게 되가고 있는지를 서로에게 묻는 눈이었다.
* * * *
10월 24일, 그날 밤.
강석은 오랜만에 성북동 저택 1층 거실에 앉아 있었다. 저녁식사를 끝내고 거실 탁자에 어머니가 깍아주신 과일을 하나 콕 집어 올리는데 무언가 허전했다.
강석이 묘한 표정을 지었다.
용신랜드 폐건물을 개조해 라는 작품을 만들어내느라 매일 철야를 하는 바람에 어색해서 그런가?
그건 아닌데.
맞은편에는 일찍 퇴근하신 아버지와 어머니가 TV를 보며 웃음꽃을 피우고 있는 와중이었다.
“여보, 저거 너무 재밌다.”
“그러니까요. 아이고, 저 아이돌이 저렇게 웃긴 줄은 내가 몰랐···석아? 왜 그래? 과일이 맛이 없어?”
“아니에요.”
쇼파 쿠션에 반쯤 기대어 누워있던 어머니 백명희가 상체를 일으켰다. 그말에 백명희의 무릎 근처 쇼파에 기대어 바닥에 앉아있던 아버지 강현도 역시 시선을 돌렸다.
“아들. 왜? 무슨 일 있어?”
“어······”
“왜. 그 오늘 하고 왔다는 계약이 마음에 안 들어? 내가 가서 한 마디 하고 올까?”
강현도가 몸을 일으킬 기세로 물었다.
그 말에 강석이 고개를 저으며 2층으로 시선을 올렸다.
뭔지 알 것 같았다.
오랜만에 가족들과 함께 저녁을 먹는 자리에 강채영이 보이질 않아서였다. 이제 막 고등학교에 올라가 정신이 없나?
강석이 위를 올려다봤다.
인기척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강현도와 백명희가 조용히 위를 올려다보는 강석의 눈빛에 뭔지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채영이 때문에 그러는구나?”
“뭔 일 있어요?”
백명희가 포크로 과일을 콕 찍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일이 있긴 하지.”
“뭐요?”
강석이 눈을 번뜩였다. 혹시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나. 이번에 집안일이 잘 풀리면서 좋은 성적대로 외고까지 진학은 했지만, 그 안에서 무슨 차별이 있을지 어떻게 아나.
진학한 외고가 서울권으로 상당히 텃세가 심하고 지들끼리 부모 수익에 따라 차별이 있었다고 들었던 것도 같다. 이것들이! 강석이 몸을 벌떡 일으켰다. 당장 옷을 챙겨입고 학교 기숙사에라도 쳐들어갈 기세였다.
그 모습에 백명희와 눈을 토끼마냥 동그랗게 뜨고 손을 내저었다. 나쁜 일이 아니란 뜻이었다.
“우리 아들 진짜 모르는 구나?”
“예?”
“채영이 요즘 우리 아들 팬카페 운영하잖아.”
“······뭘 해요?”
강현도가 컵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팬카페. 윤유란이라고, 그때 가구점 놀러왔던 친구 녀석이랑 운영중이지.”
허?
강석의 고개가 어이없다는 듯 2층으로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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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 강채영의 방.
타다다다닥, 타가각, 키보드가 피아노보다 빠른 소리로 울려퍼졌다. 강채영이 써내리고 있는 것은 영어였다.
970타의 빠른 속도로 써내리는 것은 이번에 강석이 용신랜드에 작품을 하나 개봉하는데 그것이 예약으로만 관람이 가능하다는 내용이었다.
외국인들 팬이 70%를 차지하기에 한국어 밑에 영어로도 한번 더 써주는 것이었다. 강채영의 미끄러지듯 화려한 영타가 키보드 위를 날아다녔다.
강채영이 손가락을 움직이는 키보드 위.
밝게 빛나는 컴퓨터 화면 속.
왼쪽 상단에 차지한 카페회원명이 블루라이트 차단 안경 렌즈에 비추어졌다.
6만 4천.
강채영이 운영하는 팬카페의 회원 수는 무려 6만 4천명이었다.
78. 6만 4천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