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Michelangelo in my previous life RAW novel - Chapter 76
76
* * * *
고대 그리스 작은 왕국.
왕의 세번째 자식이 태어났다.
이번에도 여아였다.
3녀 중 막내로 태어난 공주는 그리하여 프시케라는 이름을 받았다.
프시케는 숨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내뱉는 호흡마다 생명이 차오르듯 나날이 아름답게 자라났다. 출중해도 너무 출중하여, 나이가 찬 뒤에는 살아있는 미의 여신으로 불리울 정도가 되었을 즈음.
사람들은 점점 눈에 보이지 않는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를 믿기보다 현세에서 자신들 곁에 있는 프시케를 신으로 숭배하기 시작했다.
그녀에게 제물을 받치며 그 아름다움을 찬미하고 숭상하고 칭송하였다. 한낱 인간을 신으로 떠받들게 한 것은 그녀의 외모였다.
그녀.
프시케의 아름다움은, 그 정도였다.
* * * *
유리돔 너머로 주홍색과 파란색이 양분된 하늘이 보였다. 새벽을 가장한 노을이었다.
하늘을 뚫고 붉은 빛이 들어오는 오후.
문화체육관광부 문화예술과 4급 서기관 류수헌은 어느 순간 촛불이 다 꺼진 촛대를 들어올린 채, 폐건물 무대용 계단 위에 멍하니 서있었다.
아니, 홀린듯 서있었다는 표현이 옳으리라.
저런 여인을 보고 어떻게 설레지 않을 수가 있으랴.
류수헌이 시선을 좀 더 바짝 들어 올렸다. 제 눈동자 안에 담긴 여인을 조금 더 잘보기 위함이었다.
하늘에서 천사가 내려오듯 날개 없는 인간 여인이 자신을 향해 양팔을 벌린 채, 아름답게 웃고 있었다.
류수헌은 촛대를 들어 올린 팔이 저리다는 자각도 하지 못한 채, 실실 웃었다.
인체의 곡선을 자연스럽게 드러내고, 허리선을 높여서 인체비례를 아름답게 강조하는 그리스풍 드레스. 엠파이어 드레스를 입은 저 여인은 그리스 로마 신화 속의 등장하는 여신을 표현한 게 분명했다.
풍성하여 꽃망울을 품고 있는 물결을 떠올리게 하는 헤어스타일.
달의 반절을 담아넣은 듯 동글하고 반듯한 이마.
모든걸 이해한다는 듯 상냥하게 세모꼴로 좁혀진 눈썹.
나비의 날개마냥 살랑살랑 접혀진 눈꼬리.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것을 바라보는 듯 모난 데 없고 둥그런 눈동자.
오똑하지만 뾰족하지는 않은 부드러운 콧방울.
흰 볼임에도 어쩐지 복숭아처럼 붉은기가 도는 것 같은 잘 표현된 볼살.
광대를 쿡 찌르는 말아올라간 것 같은 입꼬리.
유혹하듯 살짝만 벌어진 입술.
모든 게 아름답고 사랑스러웠다.
화려하지만 귀여웠고, 청순하지만 고혹하고, 우아하지만 요염했다.
‘근데 뭐지?’
‘어째서지?’
류수헌이 황홀한 감상을 이어가던 와중, 의문을 품었다.
입꼬리가 꽃잎처럼 말려올라간 것이 아름다웠으나 어쩐지 입술을 바라보고 있으니 점점 정신이 돌아오는 것 같았다. 마치 입술에 아프로디테의 쓴물을 적셔 이성으로부터 사랑을 받지 못하게 되었다던 어느 여인의 입술을 바라보았을 때와 같은 효과였다.
점점 흐려져있던 류수헌의 총기가 들어섰다.
그러자 수천마리의 나비 떼와 마치 날개있는 누군가의 비호를 받는 듯 깃털 사이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그녀를 연결하는 은빛의 무언가가 보였다.
‘와이어···?’
그러고보니···촛대를 들어올리려고 할 때 차가운 와이어의 감촉을 분명히 느꼈었다.
그것을 인식함과 동시에 인간이 지구에서 저렇게 중력을 무시한 채, 유리돔이 있는 하늘을 땅처럼 거꾸로 뒤집힐 수는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마치 거울을 바라보는 것처럼 얼굴은 땅쪽을 향해 있고, 다리는 천장 쪽에 있으니···그것은 마치 바다 깊은 곳으로 헤엄치는 세이렌과 같았다.
그와 동시에 류수헌의 머릿속을 스치는 것은 저 유리돔이 있는 위치가 2층이란 사실이었다.
‘인간이 아니구나.’
순백의 인간이었음에도 의심한점 없이 인간으로 믿었던 류수헌은 그제서야 저것이 인간이 아님을 확실히 인식했다.
조각이었다.
조각이었던 거다.
허.
류수헌이 놀라 촛대를 놓칠 뻔했다.
그러나 어떤 장치가 되어 있는 것인지 주르륵, 순간적으로 흘러내린 촛대에도 와이어는 늘어나버린 고무줄처럼 꿈쩍을 하지 않았다.
갑작스럽게 천장이 닫히거나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단 소리였다.
‘이제 보니까···확실히 크네.’
이곳이 1층이니 아무리 계단을 올라가 가까워졌다 하더라도 저 정도 멀리 있는 것을 일반적인 여인의 아담한 체구의 똑같은 크기로 착각하게 만들다니. 실제 크기가 상당할 것이 분명했다.
적어도 인간보다는 훨씬 커다랗게 제작되었을 터.
카페 같은 데나 일반적인 갤러리에서 보이던 천장 와이어 한두개 정도로 조각상을 매달던 것과는 비교도 안되게 많은 와이어가 필요했었을 거다.
그래서 그걸 인식하기 전에 착각을 극도화하기 위해 와이어를 인식할 수 있는 모든 시야각을 차단해놓은 것이 분명했다.
‘이걸 노리고 한 건지···본능적으로 그렇게 하는 건지.’
류수헌이 둘 중 뭐든 대단하다는 뜻으로 혀를 내둘렀다.
더욱 대단한 것은 이렇게 모든 것을 알게 되었는데도 저 조각상을 보면 어쩐지 사랑에 빠지게 만드는 금빛 화살을 맞은 에로스라도 된 것처럼 심장이 두근거린다는 점이었다.
‘이건···, 대박이다!’
류수헌이 여태까지 국내국외랄 것 없이 가리지 않고 다니며 여러 작품들을 보았으나 이런 감정을 느낀 것은 처음이었다.
이건 될 상품이었다.
될 수밖에 없었다.
미쳤다.
미쳤다.
미쳤다!
류수헌은 이 모든 광경을 만든 강석에게 제가 소장하고 있는 루왁커피 컬렉션 중에서도 1티어 제품을 기꺼이 바칠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계약 내용이 기억을 스쳤다.
해당 건물에 입장하는 것으로 발생하는 입장권의 40%를 강석에게 별도 지급한다는 계약 내용에 대해서였다.
’40%. 맞다. 40%를 강석 작가님에게 지급하기로 했었다. 그때 그 내용을 강석 작가님에게 설명하며 뭐라고 했었지?’
류수헌이 기억을 더듬었다.
그리고 한 문장이 기억의 저편에서 스르륵 떠올랐다.
– ‘운이 좋았습니다.’
맞다.
운이 좋았다고 했던 것 같다.
류수헌은 이제야 진정으로 운이 좋았던 것이 누구였는지 알 것 같았다.
운이 좋았던 것은 강석이 아니라, 류수헌과 문화체육관광부였다.
여기는 전시회도 아니고, 이 작품은 엄밀하게 따지면 소유권은 건물주인 문화체육관광부와 제작자인 강석에게 공동하게 있기에 어디로 반환하지 않아도 되었다.
일시적인 설치도 아니었다.
인건비랑 이것저것을 따져봐도 40%만 지급하고 나머지를 건물을 제공했다는 이유로 거저먹을 수 있다니···이건 정말, 양심이 찔릴 정도로 훌륭한 잭팟이었다.
그런 생각들을 머릿속에서 세차게 굴리면서도 류수헌의 팔만큼은 하늘에서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눈동자 역시 하늘에 있는 여인을 바라보고 있었다.
촛대를 내려서 제자리에 꽂으면 천장이 다시 닫혀 여인을 보지 못하게 될까봐 팔이 저린데도 이것만큼은 내릴 수가 없었다.
이런저런 계산을 생각하는 지금도 그건 마찬가지였따.
그때였다.
“이제 관람 끝입니다.”
“뭐?”
순간적으로 당황한 류수헌의 입에서 반말투의 반문이 터져나왔다. 고개는 어느새 소리를 쫓아 옆을 향해 돌아가고 있었다.
“아, 작가님.”
그곳에는 강석이 서있었다.
‘뭔가···키가 크지 않았나?’
고개를 들고 불쑥 찾아오는 질문을 던지기도 전에 강석이 안된다는 듯 손짓했다. 류수헌이 들고 있는 촛대를 향해서였다.
“지금 팔 저리시잖아요. 더 이상 들고 있다간 촛대를 미끄러트릴 수도 있거든요. 이제 내려주세요.”
다음에 또 보면 되잖아요?
강석의 가벼운 말투에도 류수헌은 한참을 망설였다. 이유는 단순했다. 촛대를 내리는 순간, 천장 속 여인의 얼굴이 보이지 않을까봐여서였다.
그렇기 때문에 대치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이럴 땐 대치를 계속하는 방법도 있지만, 요즘 가장 잘나가는 신예 강석과 척을 져서는 좋을 게 없었다.
결국 백기를 들어올린 건, 류수헌이었다.
류수헌은 천천히 촛대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작품은 촛대를 원래 있는 자리에 꽂음과 동시에 천천히 가벽이 움직였다. 깃털이 빼곡하게 붙은 가벽이 작품을 가리기 시작했다.
천장 가벽 속에서 쏟아져내렸던 수천마리의 나비떼가 깃털과 함께 시간을 역행하듯 하늘로 날아오르며 폐건물이 어둠 속에 잠기는 것 또한 아름다운 풍경이었지만, 류수헌은 그저 안타까웠다.
류수헌은 결심했다.
또 와야지.
투샷 점보 아메리카노 네번 중에 두번 사먹을 돈으로 이 광경을 한번 더 볼 수 있다면 후회는 없을 터였다.
‘나중에 다시 보자···!’
류수헌이 아련한 눈동자로 가벽을 바라봤다. 그로부터 얼마가지 않아 와이어는 완벽하게 다시 되감겨 가벽이 유리돔을 완전히 가릴 수 있게 해주었다.
찾아온 것은 어둠이었다.
유리돔에서 쏟아지는 햇빛은 가벽에 가려짐과 동시에 완전히 사라졌으며, 촛대에는 불이 꺼졌고, 폐건물은 원래의 폐허처럼 되돌아간 상태였다.
류수헌이 허전함에 주변을 돌아보는 그때.
텅, 텅, 텅하고 스위치를 올린 조동범에 의해 폐건물이 다시 밝아졌다.
조동범의 옆에는 강석이 서있었다.
류수헌은 가타부타 다른 말 없이 가장 처음으로 하고 싶은 말을 내뱉었다.
“최곱니다.”
최고의 작품이었다.
카페인에 절여져 이제 심장이 보통 일로는 뛰지 않는 좀비 류수헌마저 얼굴을 붉히게 만든 여인이라니. 이 얼마나 최고인가.
강석이 웃었다. 길게 말하지 않더라도 류수헌의 마음이 다 느껴져서였다.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솔직하게 말을 했을 뿐인데요. 근데요, 강석 작가님. 뭐하나만 물어봐도 될까요? 그···작품 관련으로요.”
“네. 말씀하시죠.”
강석의 말에 류수헌이 저 가벽에 막혀 보이지 않는 제 연인을 그리워하듯 음미하듯 눈을 감았다가 뜨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작가님.”
“예.”
“그, 작가님······이 작품의 이름이 무엇인가요···?”
“이름요?”
류수헌의 질문에 강석이 3초간 생각하는가 싶더니,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
“Ψυχή?”
“네. 예요.”
그의 입에서 굴러나온 것은 그리스어였다. Ψυχή, 영어로 읽으면 프시케Psyche였다.
프시케.
프시케.
프시케.
프시케.
이름조차 달콤했다.
그 이름을 떠올리니 설계도 그쪽에 쓰여있던 글귀들이 무슨 말인지···, 류수헌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그대가 나타나 휘두른 손짓 한번에] [어두웠던 세상은] [수천 마리의 나비 날개로 물드는 구나] [입술은 쓴물로 머금고, 이마에는 단물이 흐르는 여자.] [나의 숨(Ψυχή)이여.] [더 아름답게 웃어다오.] [나의 여신, 나의 여인, 나의 숨(Ψυχή)이여.]그리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사랑의 신 에로스의 아내이자 마음과 영혼의 여신, .
그것이 저 가려진 작품의 이름이었다.
참여미술이라고 했던가.
진정으로 이것은 참여미술이 맞았다.
관객이 움직이지 않으면 작품은 어둠 속에 모습을 감추고 드러나질 않으니. 이것은 관객이 참여를 해야만 완성이 되는, 참여미술이었다.
류수헌이 무언가를 깨달은 사람처럼 눈을 번뜩였다.
왔다.
이것을 어떻게 홍보해야 가장 대박을 터트릴 수 있는지, 그 길이 보였다.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저 그럼 작가님. 어, 잠시만요. 정말 죄송한데 제가 갑자기 뭐가 생각이 나서 그것만 정리하고 다시 추후에 찾아뵈어도 될까요?”
“예. 괜찮습니다. 저도 갑자기 부른건데요.”
강석이 할 일을 하러 가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조동범 또한. 어서가서 우리 스승님 하는 일에 뼈와 영혼을 갈아 일하라는 뜻에서 함박 웃음을 지어주었다.
류수헌은 두명의 상냥한 웃음에 감사하다는 인사와 함께 커피를 맥주 원샷을 때리듯 입에 털어넣은 뒤. 달려나갔다.
봉은사의 의 인기가 가라앉기도 전, 라는 새로운 물결이 파도를 탈 준비를 하고 있었다.
* * * *
그리고 이틀 뒤의 10월 24일.
강석은 오랜만에 블룸 미술관을 다시 찾았다.
블룸 미술관의 관장 진도욱 관장의 주선하에 산강그룹 오너 일가의 막내 박선우를 만나러 온 자리였다.
그날과 달리 한치의 기다림 없이 관장실로 다이렉트로 안내 받은 강석은 문을 열고 들어섰다.
문을 열자, 쇼파 가운데에 앉아있는 사람 왼편 쇼파에는 진도욱 관장이 오른편 쇼파에는 안경줄을 길게 늘어트린 사람이 앉아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오른편 쇼파에 앉아있는 것으로 보아서 저 사람이 박선우는 아닌 모양이었다.
자연스럽게 강석의 눈동자가 가장 정면에 위치한 사람을 향해 돌아갔다.
그곳에는 선하지만 어딘가 장난기 넘치는 웃음을 짓고 있는 다소 젊은 인사가 앉아있었다.
저 사람이구나.
저 사람이 산강그룹 오너일가의 막내, 박선우였다.
그걸 인식함과 동시에 박선우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안녕하세요. 박선우라고 합니다.”
시원시원하고 호쾌해보이는 웃음을 한 박선우가 강석에게 걸어와 악수를 청했다. 강석은 망설임없이 맞잡아 악수를 수락하며 대답했다.
“강석이라고 합니다.”
박선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잘 알고 있다는 뜻과 같았다.
그렇게 강석이 손을 빼길 기다리는데 박선우가 마주잡은 손을 빼지 않은 채, 물었다.
“혹시 건물 좋아하세요?”
“·········예?”
77. ·········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