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Michelangelo in my previous life RAW novel - Chapter 89
89
시모네 카사니.
이탈리아 계통의 이민자 출신 미국인으로 가진 것이라곤 부모님이 운영하였던 건물 하나밖에 없는 30대 초반의 사내는 멍하니 앞을 바라봤다.
정확하게는 높은 콧날과 부드러운 입모양을 가진 이의 턱을 바라보고 있었다.
“(···얼마에 사려고 하는데요?)”
이곳은 마이애미에서도 해변가에 붙어있는 거리.
주택가격이 높은 서부 또는 북동부 지역보다야 비쌀 리는 없다지만, 관광지인데다 해변가고 탑스타들이 구매하는 대저택들도 있는 거리였다.
또 플로리다는 주에서 부과하는 소득세도 없고, 상속세도 없다. 미국의 전통적인 부호들이 플로리다에 저택들을 비싼 값을 주고 사는 이유가 있는 거였다.
이런 매리트가 있는 곳이니 만큼 부호거리 그 근처 언저리 끝자락에 붙어있는 이 곳도 마냥 싼값에 팔 순 없었다.
카사니가 침을 꿀꺽 삼키면서 답을 기다렸다.
그때였다.
사내의 입술이 움직였다.
“(그대가 주인 아닌가. 금액을 불러야 하는 건 그쪽이지. 자, 불러보시게.)”
천천히 그 말을 내뱉은 사내가 낮게 웃었다.
그와 동시에 사내의 얼굴을 가리던 역광이 구름에 가려지면서 흐린 하늘 아래, 그의 얼굴이 드러났다.
태양빛을 받아 붉은기를 띄우던 머리카락엔 윤기가 사라지고 칠흑만이 남아 온전히 검어졌다.
사내의 얼굴을 올려다보던 카사니의 눈동자가 커다래졌다. 역광이 사라진 뒤 드러난 사내의 얼굴이 상당히 앳되어서였다.
···어?
목소리와 이탈리아 억양만 들었을 땐 굉장히 점잖게 늙은 신사인 줄 알았더니···어린애였다.
생각해보니 언뜻 보이는 손이 지나치게 주름이 없었던 것도 같았다.
“(불러보래도.)”
그럼에도 할아버지나 쓸법한 말투나 단어들이 하나도 어색하지가 않았다. 마치 몸에 꼭 맞는 옷을 입은 사람 같달까.
‘그나저나 여긴 미국인데 어떻게 저렇게 앳되보이는 녀석이 이탈리아어를 잘하지? 이태리에서 살다가 미국에 놀러온 건가?’
어쩐지 동시대 사람이 아닌 것 같아 꼭 유령을 보는 것 같기도 했다.
뭐가 되었든 이렇게 특이한 사람을 만나는 건, 오랜만이라 카사니는 입을 꾹 다물었다.
평소의 카사니였다면, 열도 받은 김에 꼬맹이 주제에 날 놀리는 거냐고 황소처럼 들이받았을 텐데 어쩐지 이 꼬맹이 앞에선 그럴 수가 없었다.
아직 덜 자란 건지 작은데 거인 같았다.
스스로가 생각해도 이상한 감상이었다.
카사니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자조하듯 웃었다.
이제 올해로만 52번째였다.
매주 한명씩 이 건물을 보겠다는 사람이 나타났지만, 그들은 매번 카사니가 제시한 두가지 조건 중 하나는 못 들어주겠다며 매매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하나는 이 건물의 외관을 유지하는 것.
다른 하나는 이 건물을 제 값을 주고 거래해줄 것.
– ‘건물의 외관을 유지하자고? 야. 봐봐. 마이애미 사람들이 이 건물을 두고 뭐라고 하는지 알아. 해변끝에 위치한 신전이라고 해. 신전. 이 하얀 석벽 기둥들이 꼭 포세이돈 신전기둥 같잖아. 그리고 여기가 콜로세움이냐 원탁의 기사냐 무슨 돌기둥이 이렇게 저택을 둘러싸매고 있어. 이렇게 앞마당을 다 차지해버리면 실제로 여기서 살 사람들은 어떻게 하겠어. 이런 건물을 돈 주고 사서 외관을 유지해달라는 건 억···,’
– ‘여긴 원래 서핑샵이었어! 애초에 누가 주택용으로 사래?!’
– ‘성질 한번 더럽다니까. 좋아좋아, 좋다고 친구. 그러면 내가 백번 양보해서 이 집의 외관을 마음에 들어할 취향 특이한 친구를 찾아오지. 대신 그러면 가격을 내려야 할거야.’
– ‘가격은 내릴 수 없다고 했잖아!’
– ‘둘 중 하나라도 해! 외관을 고쳐도 된다고 하거나, 가격을 내리거나! 네가 원하는대로만 사주는 자원봉사가 아니라고!’
그러나 쉽지 않았다.
둘 중 하나에 동의하는 사람은 있을지언정, 둘 다 동의하는 사람은 없었다.
과연 눈앞의 이 꼬맹이는 조건을 수락할까.
카사니가 긴장된 기색으로 입을 열려고 했다.
그의 마음 한쪽 구석에는 이유는 몰라도 눈앞의 꼬맹이가 이 건물을 사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카사니가 눈앞의 상대가 자신보다 상당히 어려보여서인지 자연스럽게 어깨에 힘이 빠지는 걸 느꼈다. 조금은 편안해진 얼굴에 편해진 말투로 카사니가 입을 열었다.
“(좋아. 가격을 말해줄게. 근데 조건이 있어. 이 건물은···)”
“작가님!”
그 순간에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커다란 목소리였지만 무엇을 외치는지는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뭐라고 하는 거지. 카사니가 멀리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듣겠다고 귀를 쫑긋였다.
“강작가님! 어디계세요! 작가님!”
영어도 아니고, 이탈리아어도 아니었다. 무슨 언어지. 카사니가 귀를 기울이며 한 발짝 앞으로 내딛는 순간.
“강작가니이이이이이이임!”
“진유미 큐레이터님?”
눈앞에 있던 꼬맹이가 등을 돌려 큰 소리를 떵떵 쳐대는 여인에게 아는 척을 했다. 아는 사인가. 그것보다 방금 꼬맹이도 알아듣지 못할 말을 한 것 같은데···모국어인가.
이탈리아에서 나고 자란 게 아니란 말이야?
그러면 원래 말투라기보다 그런 방송을 보며 자라서 그런 말투가 된 건가?
카사니가 궁금한 퍼즐을 맞추는 사이.
“······작가님!”
여인이 이쪽으로 걸어왔다.
진짜 아는 사이였던 모양이다.
여인은 숫제 달려오고 있었다. 멀리 떨어져있던 가족을 만난 사람처럼 달려와서 꼬맹이를 만지지도 못하고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뭐라뭐라 말을 걸었다.
“작가님, 어디 가셨었어요. 숙소에는 안 들어오시지 전화는 받질 않으시지 아침 일찍부터 작업실에 갔는데 보이지도 않지···작업실에는 사방군데가 가루파편이 날리고, 파란색에 어우···저는 진짜 작가님만 쏙 사라져버린 건 줄 알고 너무 놀라서···진짜.”
여인은 울듯이 무어라 호소하고 있었다.
꼬맹이, 아니 사내는 어색하다는 얼굴로 콧등을 긁적이더니 뭐라뭐라 대답했다. 대충 내가 볼 때는 여인을 달래기 위한 대답 같았다.
뭐라 하는지도 모르겠는 말에 멍하니 서 있고 30초나 지났을까. 여인이 놀랐다가 푸르죽죽한 얼굴이 되었다가 사색이 되어서 나를 쳐다보았다. 나를 왜 보지. 당황해서 영어로 뭐라고 말이라도 해보려는데 여인에게 사내가 다시 뭐라 말하니 시선이 천천히 끼기긱 돌아갔다.
“······그러니까 아직은 땅이나 건물 같은 건 안 산 거다 이거죠?”
“예. 그래도 여기에 꼭 그리고 싶으니까 새치기는 금지입니다.”
“다, 당연하죠! 저희는 작가님하고 척을 질 생각이 없어요.”
진유미가 절대 그럴 리 없다는 뜻에서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서도 한쪽으로는 잔머리를 재빠르게 굴려댔다.
‘일단 작가님이 마음에 드는 건물을 먼저 발견해서 사겠다고까지 했는데 다른 데를 추천하거나, 여길 먼저 웃돈을 주고 사버리면···작가님한테 미움을 사도 단단히 살 거야.’
강석은 겉으로는 성실하고 착하고 유해보이는 모범생이지만, 그의 안에는 조각을 향한 광적인 집착과 능구렁이 십수마리가 똬리를 틀고 있었다.
진유미만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건물을 사면 안 된다. 차라리 이 근처 땅 하나를 사서 프레스코를 즐겼다가 들를 수 있는 소규모 갤러리 카페나 기념품 굿즈샵 같은걸···건물 안에가 빈다. 건물 안?!
‘···강작가님이 프레스코를 그리면 분명 돈을 벌 수단은 프레스코 감상 입장권밖에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안에 관련 굿즈샵을 내어서 임대비랑 일정수수료를 지급하는 방식으로 역장사를 하면···!’
이건 된다.
일단 이 문제는 관장님과 상의를 해야했다.
진도욱 관장님의 얼굴을 떠올린 진유미가 머리를 박터지게 굴렸다. 승진을 향한 열정과 황금 동앗줄을 잡고 날아오르고 싶은 욕망이 연료가 되어 머리를 새빨갛게 연소시키고 있었다.
‘그걸 그냥 해달라고 하면 빚을 지게 되는 느낌이야. 당연하지. 될 장사에 여기 온 김에 끼워달라고 하는 거잖아. 한두번은 작가님도 흔쾌히 허락하시겠지만···이런 식으로는 장기적 비즈니스 파트너로서 블룸 미술관이 성장할 수 없어. 어째야 할까. 어째야···맞아. 방금 작가님이 뭐라고 하셨지. 아직 땅이랑 건물은 안 샀다고 했지?’
진유미가 뭔가가 생각났다는 듯 퍼뜩 고개를 들었다.
진유미의 눈동자가 멍하고 퀭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카사니의 다갈색 눈동자와 허공에서 마주쳤다.
‘저 사람이다. 저 사람이 키야.’
작가님은 무조건 건물을 살 생각이시고, 얼마를 제시하든 웬만큼은 들어줄 수 있는 재력도 있지만···저 사람은 그걸 모른다.
그리고 작가님은 밑지는 계약을 싫어하지.
여긴 서부도 아니고, 한국만큼이나 양도세가 과하지도 않지만···미국의 주택 구매는 미국 거주자가 아닌 경우에야 외국인은 일시불로 납부해야만 하는 등, 우리하고는 다른 기준들이 몇가지 존재한다.
그걸 우리 블룸이 도와준다면?
‘작가님은 호의를 베푸는 마음으로 우리가 이 건물의 굿즈샵을 운영하는 걸 허락하실 거야.’
유일하게 작가님이 만들고 있는 가루들의 색깔을 보고 온 진유미는 어렵지 않게 이 하얀 건물이 어떻게 물들여질지 유추할 수 있었다.
멀어져보여 오히려 빨려들어가는 것 같은 파란색.
단 하나의 작품을 위한 갤러리가 탄생되는 그 모습을 순간적으로 상상한 진유미는 손바닥에 땀이 맺히는 것 같았다.
그곳에 우리 굿즈샵이 있다면···하나의 작품을 보기 위해 들어온 이들이 굿즈샵을 안 들어올 가능성이 얼마나 있을까.
진유미가 주판을 다 굴린 머리를 쓸어넘기며 강석을 바라보았다.
“큐레이터님?”
“아. 작가님, 죄송해요. 잠깐 동안 생각을 좀 하느라···저 아직 땅을 구매하지 않으셨다고 했는데···”
“예.”
“이거···아무래도 제가 관장님하고 얘기를 좀 나눠봐야 하겠지만, 저희 블룸 측에서도 계약이라거나 이런 부분에 있어서 도와줄 수 있을 것 같거든요. 아무래도 작가님이 혼자서 잘 하시겠지만, 미국의 세금 문제라거나 하는 면에서요.”
세금.
강석이 일 리 있는 말이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전생짬밥으로 계약에 독소조항이 있는지 없는지라거나, 계약을 제 쪽으로 유리하게 이끄는 방법에 대해서는 알았지만···미국의 세금 문제에 대해서까지는 강석도 알지 못했다.
“그래서 혹시 오늘 당장 구매하시지 않아도 된다고 하시면 날짜를 다시 잡아서 집주인분을 모신 자리에 저희 블룸미술관을 끼고 얘기를 나눠보면 어떨까요. 비용 처리 부분에 대해서도 저희랑 함께 진행하시면 더 빨리 업무처리를 하실 수도 있을 거고요.”
“···정말 그렇게 해주실 수 있으세요?”
왜 그렇게까지 하지.
강석이 놀라면서도 나쁠 것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진유미와 블룸 미술관은 그들대로, 강석은 강석대로 나쁘지 않은 거래였다.
그리고 이건···시모네 카사니에게도 그렇게 나쁘지 않은 거래가 될 터였다.
“그럼요!”
“좋네요. 그러면 이분에게 설명을 좀···”
진유미가 카사니에게 설명하겠다며 몸을 돌리는 그 순간이었다. 강석이 진유미를 제지하며 앞으로 나섰다.
“제가 설명할게요. 어차피 제가 집을 구매할 건데···”
“에, 네?”
진유미가 눈을 깜빡였다.
아서와 만났을 때만 해도 강석은 리스닝만 되고 말하는 건 어렵다고 하지 않았었나. 진도욱 관장이 대신 통역을 하던 것을 떠올린 진유미가 하룻밤 사이에 영어를 마스터했나 놀라는 그 순간.
강석의 입에서 유창한 이탈리아어가 터져나왔다.
“(이보게. 자네, 여기서 이렇게 얘기하기엔 오가는 돈이 클 듯 한데 다음에 다시 한 번 자리를 마련해보는 건 어떻겠나?)”
“(좋아. 그럼 연락처 알려줄래?)”
“(시간은 안 되는 날이라도 있나. 비우기 어려운 날 말이야.)”
“(어차피 너야 이 근방에서 가장 한가한 사람이거든. 언제든 불러주면 후다닥 날아올 수 있어. 제발 연락만 달라고.)”
“(배려 고맙네. 젊은 친구. 근데 자네, 말투가 상당히 재밌군.)”
“(하하. 말투가 재밌는 건 너잖아! 이탈리아 중세시대 영화라도 보면서 배운 거야?)”
“(음?)”
강석은 수십년을 썼던 말투인데다 세월이 많이 빗겨나가 몰랐지만, 지금은 쓰지 않는 단어들로 범벅이 된 강석의 말투는 카사니 입장에선 꽤 재밌는 성대모사를 보는 기분이었다.
물론 앳된 얼굴로 중세 귀족처럼 말하는 억양은 묘하게 어울려, 순간순간 카사니는 긴장으로 움찔거려야했지만···일단 디폴트는 웃겼다.
“(아니. 다시 생각해보니 멋있는 것 같기도 해. 한다고 나오는 그런 억양이 아니니까. 이탈리아어 진짜 잘하는데?)”
잘하고 말고가 어딨나.
전생의 고향말인데.
강석이 어색하다는 얼굴로 대충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를 마무리했다. 그리고 작업실을 돌아가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작, 작가님···.”
고개가 돌아간 위치에는, 이게 뭐냐는 표정으로 입을 쩍 벌린 채 강석을 바라보는 진유미가 서 있었다.
아.
강석이 낮은 탄성을 터트렸다.
“이탈리아어는 할 줄 압니다.”
“허어···!”
이렇게 원어민 수준의 이탈리아어를 하실 줄 안다고? 진유미가 놀라서 강석을 바라봤다.
수준급 조각실력에 회화실력, 그리고 거기에 언어까지.
강석이 아트페어를 빠르게 준비하는 이유를 알것만 같았다.
‘강작가님은 이미 준비된 인재다.’
몇달 전.
돌연 미켈란젤로의 무덤을 다시 고치고 싶으면 어떻게 해야하냐고 묻던 강석의 모습이 지금의 강석 위로 겹쳐져 떠올랐다.
‘······설마.’
설마 그것 때문에 이탈리아어까지 배운 건 아니겠지?
진유미가 그럼 진짜 세상 불공평하다는 표정으로 강석을 바라봤다.
정오가 다가오는 마이애미 해변가에서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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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은 진도욱 관장이 참여하면서부터 빠르게 진행되었다.
카사니는 딱 시세에 맞는 가격을 요구했고, 더불어 외관을 바꾸지 않았으면 한다는 말도 추가했다.
원래부터 주거용 목적이 아니었던데다 외관이 마음에 들어서 계약을 할 생각이었던 강석은 흔쾌히 수락했다.
물론, 나중에 확실히하기 위해 내관은 마음대로 하라는 말과 더불어 외관만 유지한다면 벽화든 뭐든 새겨도 된다는 계약서 조항을 추가하기로 했다.
···뭐. 애초에 시세는 상관도 없었다.
원하는 캔버스가 하나밖에 없다면 그것에 값을 흥정하는 건, 의미가 없었다.
그리고 재료비에 가격을 매겨서 뭐하겠나.
진짜 가격은 캔버스 위에 그림을 그린 다음에 정해지는 법 아니겠어.
강석이 입꼬리를 씰룩였다.
작품을 만들 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 * * *
시간은 또 빠르게 흘렀다.
계약이 마무리되는 며칠 동안, 강석은 광물들을 망치로 두들기며 추출물과 불순물을 분류하며 안료들을 만들었고···그 사이 아트바젤 인 마이애미비치가 개막을 할 준비를 모두 끝내었다.
그리고 12월 16일.
아트바젤 인 마이애미비치가 열리는 날이 왔다.
마이애미의 12월은 선선하고 맑고 밝다.
푸른 하늘.
청초한 난초빛의 바다.
잘개 부서지는 파도 물결.
하얀 백사장 모래.
아름다운 관광지 마이매이비치에서 열리는 아트바젤 인 마이애미비치 부스장으로, 수많은 슈퍼카들이 줄지어 입성하기 시작했다.
20주년을 맞아 역대 최대규모의 아트바젤 마이애미 페어가 문을 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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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부스 안쪽.
7개의 세션 중에 갤러리 세션 가장 구석진 곳.
넓은 부스 지면을 얻었지만, 국제 갤러리와는 비교되는 자리에 위치한 블룸 미술관.
아직 내부자들만 행사 부스를 돌아다니고 있어 사람들 발길도 없는 이곳. 블룸 미술관 초대작가 자리에 강석이 라피스 라줄리(청금석)를 굴리며 주변을 돌아봤다.
강석이 앉은 자리에는 100여개의 노을빛 잉크와 직접 제작한 100자루의 딥펜이 정성스럽게 놓여 있었다.
색깔과 형태의 의미가 있었기에 마치 좌판에 펼쳐놓은 것처럼 새하얀 테이블 위에 모두다 펼쳐놓은 강석이 라피스 라줄리를 굴리며 휘파람을 불었다.
한가한 행사장 안.
주변 사람들 모두가 아닌 척 강석이 앉아있는 테이블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100여개의 유리 딥펜의 형태가 아름다운 건 둘째치고, 테이블 위에 노을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아름다워.’
‘미친·········’
‘행사 시작하면 나도 하나 가서 사고 와도 되나?’
부스 입장을 시작하기도 전.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강석의 잉크와 딥펜을 노리는 사람들이 스물스물 몰려오고 있었다.
마치 폭풍 전야와 같은 아침이었다.
90. 1512년 7월 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