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Michelangelo in my previous life RAW novel - Chapter 90
90
* * * *
1512년 7월 9일.
페라라 공(公) 알폰소 데스테(Alfonso d’Este) 는 교황을 상대로 저지른 모든 죄를, 교황 율리우스와 따뜻한 포옹을 한 번 함으로써 모두 용서 받았다.
그로부터 며칠 뒤.
알폰소는 교황에게 미켈란젤로가 작업하고 있는 시스티나 예배당 천장화를 직접 보고 싶다며 의견을 적극 피력했다.
모든 것이 잘 맞물려 어느 날 좋은 오후.
알폰소는 몇몇 다른 귀족들과 함께 시스티나 예배당을 찾았다.
그때쯤 미켈란젤로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빠른 속도로 프레스코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고, 그의 몸은 어느새 시스티나 천장 서쪽 끝에 다다른 채였다.
알폰소와 함께 사다리를 타고 미켈란젤로와 조수들이 작업 중인 비계 위로 올라간 일행 중에는 로도비코 아리오스토도 끼어 있었다.
로도비코 아리오스토.
그는 페라라 일대를 지배했던 에스테가를 대대로 모시는 가신 집안 아리오스토 출신으로, 이때에도 알폰소를 수행하기 위해 따라온 참이었다.
둘을 비롯한 일행이 비계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그들이 프레스코를 목도했을 때.
알폰소와 로도비코의 얼굴에 번지는 것은 오로지 놀라움이었다. 로도비코 아리오스토는 거의 넋을 놓고 프레스코를 바라보았다.
이 일이 있고 그로부터 4년 뒤.
로도비코 아리오스토는 시스티나 예배당방문의 순간을 회상하며 미켈란젤로를 두고 [광란의 오를란도]를 통해 “초인의 미카엘, 성스러운 천사(Ariosto, [Orlando furioso], canto 33, line 2).”라고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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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우리가 로도비코 아리오스토를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시인으로 기억하게 해준, 기사도 문학의 최고 걸작품 [광란의 오를란도]에 그렇게 적어넣을 정도로 로도비코에게는 미켈란젤로의 프레스코가 가슴에 와닿은 것일 터였다.
아니, 그 작품을 만든 미켈란젤로가 놀라운 것이었을 터다.
* * * *
부스 입장이 시작되기 10분 전.
강석이 작품 과 를 보고 지나쳐야지만 도달할 수 있는 굿즈 자리에서 지구본처럼 생긴 라피스 라줄리(청금석)를 이리저리 굴리며 시간을 떼우는 사이.
갤러리 세션에 참가한 블룸 미술관 마지막 점검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분주하게 움직이는 그들의 이마에는 땀이 송글송글 맺혀있었다.
너무 덥지 않은 적당히 따뜻한 날씨에 천장에서는 에어컨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는데도 그들은 마치 폭우가 몰아치기 직전에 무더위 속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마냥 움직였다.
그들이 들고 있는 것은 액자였다.
원래라면 설치가 끝나고도 남았을 시점이었다.
근처 부스 사람들은 저들이 뭘 하는 것일까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가까이에 위치해있던 국제 갤러리 직원들도 같은 눈길이었다.
그도 그럴게.
블룸이 디피 위치를 바꾸는 게 지금 아침에만 벌써 세번째였던 탓이었다.
“대체 뭐하는 거지?”
“그러니까 원래 블룸이 디피는 정말 빠른 편 아니었나?”
“(블룸은 어디 나라야?)”
“(여기 써있네. 대한민국. south(남쪽). 근데 블룸, 블룸이면 그래도 아트바젤 마이애미비치에는 꽤 많이 참가한 기존 갤러리 아닌가?)”
저렇게 초보자처럼 굴어서야 이번 아트바젤에서 성과나 제대로 거둬가겠냐는 표정으로 블룸의 부스를 바라봤다.
아트페어.
여기는 여러가지 말로 포장했지만, 툭까놓고 결국 시장이었다.
비싼 값에 많이 파는 사람이 결국 최고의 영광을 모조리 쓸어가는 시장이란 소리였다.
그리고 이런 시장에서 디피(display)란 결국 팔 물건, 그림들이 조화롭게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는 구도로 놓는 영업 스킬 중에 하나였다.
그것조차 제대로 되지 않아서 무얼하겠나. 그렇게 생각한 사람들은 이내 블룸 미술관이 차지한 부스에서 시선을 떼었다.
하지만 계속해서 바라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블룸에 무슨 일이 있나?)”
“(몰라. 그것보다 아까 블룸 뒤쪽 보고 왔는데 엄청 예쁜 굿즈를 준비했던데?)”
“(진짜?? 별로 그렇게 안 보이던데···?)”
“(거기 말고 뒤쪽. 뒤쪽에 굿즈가 하나 더 있더라고, 그건 진짜···Perfectly! 후. 난 무조건 살 거야. 부스 입장 되자마자 다녀올거니까 그렇게 알아둬.)”
블룸과 친한 관계에 있거나, 또는 뒤쪽에 진열되어있는 강석의 굿즈를 봐버린 이들이었다.
“(부스 입장 때가 가장 중요한 거 알잖아. 사람들 제일 우글거릴 시간인데 사람 좀 빠지면 가면 안 돼? 굿즈가 그렇게 빨리 사라져버릴 일도 없잖아.)”
“(오, 제이미. 말리지마. 빨리 사라져버릴 것 같아. 이건 갤러리스트의 직감이라고. sixth sense말이야. 하여튼 fuck, 말리지마. 나 무조건 가서 사고 말 거니까.)”
“(······오케이. 알아서 해.)”
대부분 맹수처럼 시선을 쏘아대는 사람들은 강석의 굿즈를 초장부터 노리는 이들이었다.
어찌되었든.
사람들의 관심 속에서 블룸 미술관 직원들은 힘을 쓰느라 붉어진 얼굴로 열심히 작품을 날랐다.
그들이 이렇게 하는 이유는 하나였다.
조금이라도 과 를 좀 더 몰입감있게 감상할 수 있는 디피를 찾아주고 싶어서. 그게 오늘 다른 것을 점검할 시간에 오늘 아침에만 디피 위치를 세 번이나 바꾸는 이유였다.
철컥.
벽에 걸린 나사와 아크릴 투명 액자가 맞물리는 소리에 진유미가 천천히 땀을 흘리며 닦아냈다.
천천히 그녀가 또각또각 구두 소리를 내며 부스 입구에 다다를 수록 모든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진유미가 만족스럽다는 듯 중얼거렸다.
“됐다···.”
넓게 눈에 들어온 부스는 마치 안내 표지판처럼 과 가 숨겨져있는 벽에 절묘하게 가려진 안쪽 부스로 인도하는 모양새였다.
어둠속에서 빛 그림자로 감상하는 작품이었기에 사방이 벽으로 둘러싸인 장소 안에 그리고 안쪽 깊숙한 곳에 가 있는 형식이었다.
‘이 넓은 부스를 빌리기 위해 쏟아부은 돈을 생각하면···진짜···’
지난날 아트바젤 마이애미비치 관계자와 불꽃 튀는 전화를 몇 번이나 했던 걸 떠올리며 진유미가 실금실금 웃음을 흘렸다.
이제 부스 입장까지 얼마남지 않았으므로 흥분은 금물이나, 흥분을 안 할 래야 안 할 수가 없었다.
그때였다.
“후회 안 하겠어?”
어느새 접근한 블룸 미술관 진도욱 관장이 진유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눈동자에 비친 따스한 기색에 진유미가 고개를 팩 돌렸다.
“뭘요.”
새침하게 고개를 돌리는 사이.
진도욱 관장이 들고 있는 잡지가 눈에 들어왔다.
이번에 무려 16p에 달하는 박지엽 교수와 이지혜 기자의 인터뷰 내용이 실렸다는 그 잡지였다.
[미술입시].나도 미대입시 준비할 때 저거 많이도 읽었었는데···기억이 딴 데로 흐르는 그 순간. 진도욱 관장의 목소리가 진유미의 귓가를 파고들어왔다.
“디피 이렇게 바꾸는 거 말이다. 원래는 과 를 통해 유입되는 사람들에게 우리 소속 작가들 작품을 파는 게 목표였잖냐. 근데 이렇게 어서 오십쇼, 이 길이 가는 길입니다, 이런식으로 디피를 깔아놓으면···”
이거 완전 주객전도 아니겠어. 진도욱 관장이 재밌다는 얼굴로 디피 배치를 훑어봤다.
강석의 작품은 대여다.
팔리지 않는 작품이란 소리였다.
강작가님이 파는 건 굿즈 정도인데 굿즈도 좋은 작품은 맞으나, 100개라는 한정 수량이 있는데다가 정말 좋은 뜻에서 파는 모양 같았다. 비쌀 리가 없었다. 자릿값을 챙겨주겠다고 했지만, 그런 거 하나하나까지 받아먹으면 끝에가 좋지 못하기에 받지도 못할 터였다.
“위에는 뭐라 보고하게?”
블룸 미술관 위에 산강문화재단이 있었다.
우리 목표가 미술시장의 바로미터인 스위스 아트바젤 입구를 여는 것이라지만, 그거 너무 이득이 없다고 한소리 듣게 생겼잖아. 그 말을 삼킨 진도욱 관장이 진유미를 바라봤다.
그러자 진유미가 입술 사이로 흘러가는 웃음을 가만히 납둔 채, 진도욱 관장을 바라봤다.
“강작가님 작품을 몇 명이나 보러 올 것 같으세요?”
“···음?”
“아니. 사람들이 강작가님 작품을 몇 번이나 다시 볼 것 같으세요?”
“···으음.”
진도욱 관장이 진유미의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듣고 입을 다물었다. 진유미가 말하고 있는 건 그거였다. 강석의 작품을 보러 온 사람이 한 번만 볼 것 같으냐. 그말이었다.
그리고 그걸 듣고보니 틀린 말이 아닌 것 같았다.
‘내가 강작가님의 를 처음 보고 얼마나 감상했지···? 은 몇번을 찾아갔었지?’
답은 정해져 있었다.
‘그래. 이제 좀 감상했다 싶어서 정신을 차리면 어느새 20분이고, 30분이고 지나있는 작품이 꼭 있는데···그게 바로 강작가님의 작품이지.’
그런데 부스 특성상 사람이 볼 수 있는 공간은 한정되어 있고, 충분한 감상을 하기도 전에 자리를 비켜줘야 할 터.
‘사람들은 당연히 만족하지 못하고 다시 올 테고···밀린 사람들은 줄을 서야···그래. 줄. 줄을 서 있는 동안 시선을 둘 곳이라곤······디피된 작품밖에 없다.’
진도욱 관장이 꽤 한다는 표정으로 진유미를 바라보았다.
“너. 그냥 비켜준 게 아니구나.”
“가시는 길 지루하지 않게 놓아드린 거죠. 나쁘지 않죠?”
진유미가 자기가 생각해도 좋은 것 같다는 웃음을 터트렸다. 혀가 빼꼼 나왔다가 들어가는 걸 바라보며 진도욱 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쁘지 않았다.
아니, 진짜 괜찮은 생각이었다.
강작가님에게는 욕심 부린 것 같지 않아보이면서 우리는 우리대로 실속을 챙길 수 있는 디피라인.
묘한 감상을 담아 진도욱 관장이 진유미를 바라봤다.
언제 이렇게 컸지. 양선구 작가님 개인전을 전담하게 되면서부터 급속도로 실력이 늘어난 것도 같았다. 그 양반에게 신입 큐레이터들을 좀 더 맡겨봐야 하나···?
이런저런 생각에 골몰하는데 진유미의 시선이 느껴져 진도욱이 고개를 들었다.
진유미가 바라보고 있는 건, 진도욱이 들고 있는 잡지였다.
“왜.”
“아니. 그···다 보셨으면 저도 잠깐 봐도 돼요?”
“···그래라?”
진도욱이 잡지를 넘겼다.
그리고 강석의 컨디션을 살피기 위해 부스 뒤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멀어지는 진도욱 관장을 잠깐 지켜보던 진유미의 고개가 아래로 떨궈졌다. 글을 읽기 위함이었다. 그녀가 박지엽 교수의 인터뷰를 처음부터 읽기 위해 페이지를 넘기려는데 형관펜이 눈에 들어왔다.
죽죽 그어진 형광펜을 따라 그녀가 본능적으로 활자를 읽어내렸다.
[1512년 10월 31일.] [미켈란젤로가 총 4년 6개월(교황과 싸우고 도망친 1년 6개월 포함)이란 제작 기간을 거쳐 시스티나 예배당의 천장화를 완성시켰다.]어.
미켈란젤로 이야기다.
– ‘만약, 만약에 있잖아요.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의 무덤을 다시 만들고 싶다면···어떻게 하면 될까요?’
진유미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그러고보니 강작가님이 미켈란젤로에게 관심이 많아보였는데. 그런 생각을 하며 진유미가 펼쳐진 페이지에 빨려들어가듯 눈동자를 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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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2년 10월 31일.
미켈란젤로가 총 4년 6개월(교황과 싸우고 도망친 1년 6개월 포함)이란 제작 기간을 거쳐 시스티나 예배당의 천장화를 완성시켰다.
미켈란젤로는 천장화 완성을 하고 아버지에게 편지를 썼다.
[그림은 완성됐고, 교황은 만족했습니다.]그리고 다음날.
프레스코가 완성되었다는 소식에 시스티나 예배당으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오롯하게 그의 작품을 보기 위해 달려온 것이었다.
이 때를 두고 바사리는 이렇게 표현했다.
“천장화가 공개되자 각지의 사람들이 그것을 보려고 달려오는 소리가 귀에 울릴 정도였다. 그것은 과연 사람들이 보고 어안이 벙벙해질 만큼 위대한 것이었다(Vasari, Lives of the painters, Sculptors, and Architects, vol. 2, p. 6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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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유미가 거기까지 읽었을 때였다.
ㅡ!
짧은 경적이 넓은 전시장을 울렸다.
지금부터 입장이 시작될거라는 안내음이었다. 아트바젤 마이애미비치가 개막한다는 소리와도 같았다.
사전에 공지가 된 소리에 블룸 미술관뿐만이 아니라 각 부스 내에 사람들이 긴장한 모습으로 입구를 바라봤다.
진유미 역시 마찬가지였다. 강석의 작품을 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올 것 같았지만, 실제로 본 적이 없었기에···과연 얼마만큼의 사람들이 올 것인가 긴장되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저 멀리 환한 빛이 들어오는 게 전시장의 거대한 문이 열리고 있는 모양이었다. 진유미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눌렀다.
‘진정해. 진정해. 첫날부터 사람들이 오기야 얼마나 온다고 긴장을 해. 대부분은 유명한 거 보러 가지. 아트바젤 터줏대감이 한둘이 나온 게 아니잖아. 첫날부터 호화로운 밥상일 순 없는 법이라고. 입소문이 퍼지길 기다려야 해.’
스스로가 긴장을 누를 수 있는 말들을 마음 속으로 되내는 그때.
구두굽에 미약한 진동이 전해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지? 진유미가 놀라서 주변을 살피려는 순간. 정확하게 발구름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어디야. 본능적으로 진유미가 놀라서 소리가 나는 곳을 바라봤다.
그때였다.
저 멀리 코너를 돈 곳에서부터 들려오던 발구름 소리의 정체가 빼꼼 코너를 빠져나왔다. 하얀 옷에 청바지를 입은 사람이었다.
한 명? 앞에서 달려오는 한 명과 눈이 마주쳤다 싶은 찰나. 얼굴이 빨개진 채 달려오는 한 명의 뒤로 수십명이 꼬리를 물고 달려왔다.
“···엄마야!”
너무 놀라 진유미가 새가슴을 붙잡았다. 동시에 그들 전부가 자신이 있는 곳을 바라보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여기로 온다.
마치 어린시절 보던 동물의 왕국이 떠올랐다.
그때 보았던, 세렝기티의 누우들이 신선한 풀을 먹기 위해 목숨을 걸고 마라강을 건너는 모습이 꼭 이랬었는데···그런 생각을 하고 찰나가 지났을 때. 그들은 이미 제 앞에 목도해있었다.
하하. 하. 하. 살짝 떨리는 다리에 힘을 주며 진유미가 바로 섰다.
“······후. 모두 정신 똑바로 차려.”
“네!”
“네!”
“알겠습니다!”
진유미 주변에 서있던 직원들이 어느새 입구로 모여들어있었다.
아트페어에서 차분하게 감상을 하게 해주는 것도 중요했지만, 이렇게 사람이 많은 경우에는 동선이 겹치지 않게 깔끔하게 자르는 것도 갤러리스트와 큐레이터의 덕목이었다.
진유미는 속사포로 주문을 넣었다.
“절대 싼 값에 거저로 선착순 떨이팔듯이 넘기지마. 최대한 마진 떼어서 팔아. 모르는 거 있으면 바로 무전 치고, 오늘 한 번 제대로 팔아보자. 알았어?”
“예···!”
진유미가 속사포로 주변 직원들에게 주문을 넣었다 싶은 순간. 사람들이 그들에게 접근해 빠르되 크지 않게 교양을 챙겨서 물었다.
“(여기가 블룸 미술관 부스 맞죠? 혹시 작가 강석의 작품을 보러 왔는데 어디에 있나요?)”
“강석 작가님 작품을 볼 수 있을까요?”
“(저···실례합니다. 혹시 강석 작가님의 작품은 어디에 있나요?)”
진유미가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눈앞에 있는 푸른 눈동자의 외국인을 향해서였다.
“(강석 작가님의 작품 과 는 안쪽에 디피되어있습니다. 작품으로 가는 길을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이쪽으로 보시면···)”
수십명.
놀이공원 오픈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았지만, 아트페어에서는 보기 드문 광경이었다.
마치 자신이 좋아하는 연예인을 보기 위해 달려온 것 같은 팬들의 모습에 당황스럽게 시선을 교환한 몇명 타부스 직원들이 발빠르게 그 행렬에 합류했다.
‘이거 잘 모르는 작가였는데 뭔가 팬들이 엄청나네.’
‘그러니까 잘만 하면 리셀가 장난 아니게 뜯어볼 수 있을 것 같은데?’
‘일단 붙어. 바로 굿즈 쪽으로 가자.’
부스 끝.
강석이 앉아있는 곳에 굿즈를 사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강석의 작품을 사기 위한 진짜 팬들과 그냥 사람들이 많이 가길래 무심결에 따라온 사람들 몇명, 그리고 강석이 직접 만든 것으로 보이는 굿즈를 미리 봤었던 타부스 사람들 수십이 한 곳을 향해 걸어갔다.
목표는 강석의 작품이 있는 곳이였다.
그리고 그 행렬에는 강석에게 건물을 판, 시모네 카사니도 껴있었다.
* * * *
와우.
시모네 카사니는 짧은 감탄을 터트렸다.
– ‘(시간되면 구경하러오게.)’
그는 이번에 새로 맞춘 정장을 괜히 만지며 걸음을 재촉했다. 다들 편한 옷을 입고 있는걸 보아하니 괜히 너무 있어보이게 옷을 입었나 싶기도 했다.
벼락부자 같아 보이진 않겠지. 실제로 건물이 팔려 벼락부자가 되었지만, 시모네 카사니는 민망함에 괜시리 머리모양을 매만지며 앞으로 쏠리듯 걸어갔다.
강석의 권유에 진짜로 오긴 왔는데 이렇게 인기가 많을 줄은 몰랐다.
“(···솔직히 한국이면 전쟁 날까봐 무섭기도 하고, 워낙에 겨울엔 춥잖아. 그래서 망설이고 있었는데 아트페어에 온다길래 바로 날아왔지. 오는데 집부터 정확하게 9시간 걸렸어.)”
“(나는 쉬는거 겸사겸사해서···여기가 워낙 서핑타기가 좋잖아. 파도도 그렇게 험하지도 않고···그것보다 너무 기대된다. 심장이 벌써 튀어나올 것 같아. 오. 강석의 작품을 보면 울어버릴지도 몰라. 지금 딱 기분이 그래.)”
“(그거 재밌네. 그나저나 첫날에 오면 실물을 볼 수 있을까봐 일부러 오픈런 하러 왔는데···보이질 않네. 하긴, 당연한가?)”
“(아트페어에서 작가 본인이 나오길 기대하는 건 좀······)”
쏟아지는 영어를 들으며 카사니는 입모양을 소리없이 동그랗게 말았다. 미술에는 워낙 잘 모르지만, 강석은 꽤 유명한 아티스티인 것 같았다.
근데 다들 강석이 여기 있는 걸 모르는 모양이네. 카사니가 그들이 강석이 여기 있다는 걸 알고 기뻐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움직이며 부스 기둥을 통과했다.
마치 뚫린 문을 통과해서 방으로 들어가듯 걸음 한 발자국 떼는 그 순간. 온 사방이 하얀색으로 변했다. 뭔가 좁은 공간에서의 개방감을 느끼며 카사니가 감탄을 흘렸다.
사람들이 어느샌가 도서관에 들어온것마냥 조용해졌다는 것도 눈치채지 못한 카사니가 주변을 빙 둘러보았다. 흰색. 흰색. 흰색. 온통 흰색이었다.
작품 이름이 이라고 안했나. 어디있지.
‘근데 왜 갑자기 앞으로 가질 않아···? 뭐야?’
카사니가 턱을 치켜들고 앞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카사니는 시야가 온전히 장악되는 걸 느꼈다. 붉은색. 붉은색. 붉은색. 붉은색. 온통 붉은색이었다.
그런데 달랐다.
뭐지.
이런 감정을 뭐라고 하지···?
카사니는 박동하는 심장을 안간힘으로 진정시키며 앞으로 걸음을 뗐다.
카사니의 체중이 앞사람에게 쏠린다는 걸 신경쓰지도 않고 움직였다. 그러자 자리가 생겼다. 카사니는 그런 식으로 사람들 틈바구니에 끼어서 앞으로 이동했다.
붉은 하늘을 향해서였다.
흔한 TV나 사진으로는 볼 수 없는, 붉은 하늘이 있었다. 같은 붉은색인데 수십가지 말로는 할 수 없는 각기 다른 붉은색이 짙게 흩뿌려진 것 같은 붉은 하늘에서 빛이 강렬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태양이 붉은 하늘을 전부다 먹어치워버린 것 같은 느낌이었다. 빛은 산란하듯 여러 방향으로 흩뿌려졌고, 화려한 빛은 그림에 그림자를 피고 지워냈다.
구름이 흘러가듯 그 붉은 하늘을 이루고 있는 수십가지의 인영이 사라졌다 나타났다 다시 사라졌다.
사람이구나.
빛속에서 파도처럼 흐르는 수백 수천 명의 사람이 걸음을 앞으로 뗄 때마다 선명하게 앞으로 튀어나왔다. 플로리다 도심 속으로 가면 길을 걸을 때마다 만나는 수십 수백 수천 명의 사람들이 그곳에 담겨 있는 것 같았다.
셀 수 없는 숫자의 사람으로 이루어진 저녁 노을.
해가 지는 무렵 하늘이 햇빛에 벌겋게 물들어가고, 그 벌겋게 물든 하늘 아래를 사람들은 붉은 그림자와 함께 걸어가고···그런 풍경이 그곳에 담겨있었다.
산란하는 빛은 그 시간까지 담아낸 것처럼 수없이 반복되었다. 빛이 움직일때마다 그 풍경이 같지가 않았다. 그 안에 담겨있는 수백 수천명이 다 다른 사람이라 그랬다.
“이래서 노을······”
황홀했다.
그러나 그 황홀함에서 빠져나오기도 전에 카사니는 떠밀리듯 옆으로 움직여야만 했다.
“저기 강석 아니야?”
“뭐?”
뭐야? 뭐? 카사니가 조금이라도 더 감상하고 싶은 마음에서 발에다가 힘껏 힘을 주었으나 십수명이 밀어넣는 것에는 장사가 없었다.
파도에 몸을 맡기는 순간, 저 멀리로 떠밀려내려가듯 카사니는 어느새 검은 방에 도달한 채였다. 카사니가 고개를 돌려 하얀 방을 바라봤다. 사람이 가득했다. 여기서 역주행을 하는 건 민폐였다.
다 감상도 못했는데···아쉬운 붉은 노을을 다시 보기 위해 지금이라도 한바퀴 돌까 싶은 그 찰나.
빛?
하얀 빛이 카사니의 눈동자를 끌어당겼다.
본능적으로 어둠속에서 빛을 쫓아 카사니가 고개를 바로했다.
아······?
카사니가 굳은 것처럼 앞을 멍하니 바라봤다. 흔들리는 동공은 어느새 어린아이의 그것으로 돌아가 있었다.
거기엔 가 있었다.
백여구의 유리인간들을 뒤에서 조명으로 비추어 색유리를 통과한 빛이 색을 머금고 조각그림을 쏘아내어 만든 풍경.
낙조落照.
지는 해 주변으로 퍼지는 붉은 빛.
같은 붉은 빛이었지만 아까와는 달랐다.
은 붉은색을 여러개를 만들어 새로운 강석만의 레드를 만든 느낌이었다면, 는 대놓고 다른 색깔들을 섞었고, 백여개의 색깔을 온갖 곳에 흩뿌려트려 절대 붉은색만 있지 않았는데 어쩐지 풍경이 붉은 느낌이었다.
카사니 자신은 색감인지능력이 뛰어난편이 아니라 저 색깔들을 일일이 구별할 순 없었지만, 그냥 어째선지 숨이 턱턱 막히는 것 같았다.
– ‘아름답지?’
– ‘시모네. 저기 봐봐. 오늘 저곳에 다녀온 거야. 보이니?’
– ‘······잘 안 보여.’
– ‘하하. 아직 시모네 키가 너무 작나보네. 자, 아빠가 들어줄게.’
– ‘조심해! 시모네가 놀라잖아!’
– ‘괜찮아. 괜찮아. 자, 시모네!’
– ‘아, 잠깐만 잠깐만 으아···와아!’
언젠가 본 적 있는 풍경이었다.
카사니가 큰 손바닥으로 입을 가렸다. 눈가가 절로 찌푸려졌다. 기분이 나빠서는 아니었다. 그저···지금은 다시는 재현할 수 없는 어린 날의 기억이 떠올라서였다.
바다에 집어삼켜져버린 부모님과 함께 어릴적에는 이탈리아에서 살았었다. 바쁜 하루하루를 보냈지만, 주말이면 격주로 가족 나들이를 다니곤 했지.
그런 어린 어느날.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보았던 노을이 꼭 이렇게 생겼었다.
카사니가 노을을 바라보며 숨을 삼켰다. 노을마냥 카사니의 눈동자가 붉어졌다. 카사니는 바닥에 못이 박힌 사람마냥 그 작품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사람들이 떠밀어도 철근이 발목에 달린 것처럼 카사니는 절대 그곳을 내어주지 않았다.
그렇게 하염없이 작품을 얼마나 감상했을까.
어느 순간, 누군가가 어깨를 두들기는 손길이 느껴졌다.
뭐야. 카사니가 붉어진 얼굴로 시선을 주었다.
빛을 오래보다가 어둠에 시선을 주니 얼굴의 윤곽이 잘 잡히지가 않았다. 그러나 방해한 이를 향한 짜증으로 점철되어있던 카사니의 얼굴은 순식간에 누그려졌다.
어둠속에 얼굴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았지만, 알 수밖에 없었다.
“석.”
“(카사니. 와주었군, 친구.)”
짧은 말이지만 카사니는 속에서 울컥, 무언가가 올라오는 걸 삼켜내야만 했다.
이 감정을 무어라 표현해야할까. 강석이 자신을 위해서 만들었을리도 없음에도 어째선지 선물을 받은 기분이었다.
카사니가 작은 송곳니로 아랫입술을 꾹 눌렀다. 이런 작품을 보여줘서 고맙다고 해야하는데 말이 나오질 않았다.
먹먹한 뭔가에 잠식되어진 채 카사니는 감정만 꾹꾹 삼켜내었다. 그래서 자신이 누군가에게 이끌려 부스밖으로 인도되고 있다는 것도 알지 못했다. 당연히 자신이 스탕달 신드롬을 일으켰다는 사실도 몰랐다.
카사니는 호흡이 가빠지는걸 느끼며 빛으로 끌려나왔다.
“(좀 쉬는 게 좋겠어. 친구.)”
울렁거리는 심장. 식은땀. 현기증. 어지러움. 열. 가빠지는 호흡. 다리에 힘이 빠지는 느낌. 경련. 그 모든 것을 느끼며 카사니는 목소리를 쫓아 고개를 들었다.
물을 건네며 무표정한 얼굴에 자상함 한 스푼을 띄운 친구 강석의 모습은 마치···전설 속 죽음으로 인도하는 천사, 미카엘을 닮아있었다.
91. Sancte Míchaël Archánge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