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a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70)
나는 회귀자가 아닙니다 70화
심, 기, 체 (3)
“어, 음.”
리아크는 시선을 슬쩍 옆으로 돌리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미안하다.”
“…….”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
알몸으로 몸을 웅크리고 있던 오진이 사납게 뜬 눈으로 리아크를 노려봤다.
주섬주섬 일어나 속옷과 바지를 입은 후 깊은 한숨을 토해냈다.
“하아. 그래서 뭐가 문제라는 건데?”
“네 몸을 한 번 봐라.”
“몸?”
오진은 거울 앞에 선 채 양팔을 벌렸다.
꾸준한 단련 덕분에 조각 같은 근육이 박혀 있긴 했지만.
“아, 그거구나.”
짝.
하은이 손뼉을 쳤다.
“뭔데?”
오진은 영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너 몸 한 번 제대로 봐라. 삐쩍 말라서 부러질 것 같잖아.”
“에이, 그 정도는 아니….”
오진은 다시 한번 거울을 살펴봤다.
“…….”
“그치?”
그녀의 말마따나.
근육이 좀 붙어 있을 뿐이지 갈비뼈가 앙상하게 보일 정도로 몸이 말라 있었다.
“어….”
평소엔 익숙해서 잘 몰랐는데.
막상 이렇게 지적을 듣고 보니 확실히 마르긴 말랐네.
“에휴. 이 새끼 저번부터 너무 말랐다고 생각했었어!”
하은이 등짝을 후려치며 꾸짖었다.
“끄응. 그래서 뭘 해야 하는데?”
“뭘 하긴. 당연한 걸 물어보고 있나?”
리아크가 방 한편에 있는 서랍장을 입으로 물어 열었다.
후드드득!
서랍장 안에 가득 담긴 값싼 칼로리 바가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우선 이것부터 모두 버려라.”
“아니 어찌 귀중한 식량을….”
“이딴 걸 먹으니 몸이 그렇게 망가지는 거다!”
리아크가 버럭 소리치며 뇌전을 일으켰다.
파지지지직!
푸른 뇌전이 한가득 쌓인 칼로리 바를 새까맣게 불태웠다.
“아악!! 뭐 하는 짓이야!!”
오진은 경악성을 터트리며 잿더미가 된 칼로리 바를 끌어안았다.
“이, 이게 며칠 치 식량인데!!”
하루 두 개만 먹어도 살 수 있는 슈퍼 푸드인데!!!
“하아.”
리아크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힐난하는 눈빛으로 하은을 돌아봤다.
“대체 어쩌다 저렇게 돼버린 거냐?”
“어… 음. 그, 그게 말이지.”
하은은 난처한 표정으로 시선을 피했다.
오진이 저렇게 된 가장 큰 원인이 자신이었으니 뭐라 질책하기도 어려웠다.
“어쨌든.”
리아크는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
“앞으로는 고단백질의 고기를 각종 채소와 함께 먹어라.”
“엥? 그거면 돼?”
오진은 허탈하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심, 기, 체의 밸런스 어쩌고 하길래 뭐 거창한 문제가 있는 줄 알았는데.
그냥 잘 먹기만 하면 된다니.
너무 간단하지 않은가.
“네놈은 이제까지 그 간단한 것조차 소홀히 하고 있었다는 의미다.”
“윽.”
뭐라 변명할 말이 없었다.
하은에게 용마안을 구해준 후 지갑 사정이 널널해졌음에도 웬만해선 하루 식비로 5천 원 이상 쓴 적이 없었으니까.
‘너무 부실하게 먹는다고 누나한테 구박을 받긴 했지만.’
이게 몸에 베어버린 습관이다 보니 쉽게 고쳐지지 않았다.
“무릇 육체란 ‘심’과 ‘기’를 담는 그릇. 네놈은 다른 두 개는 과할 정도로 집착하면서 정작 중요한 그릇은 왜 신경 쓰지 않는 거냐?”
“…뭐라 변명할 말도 없네.”
이건 백번 자신이 잘못한 게 맞다.
생물인 이상.
불균형한 영양소의 섭취만큼 몸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건 없었으니까.
“좋아! 기왕 이렇게 된 거 오늘은 진짜 배 터질 정도로 먹어보자!”
하은이 반짝 눈을 빛내며 외쳤다.
“누나?”
“캬하하핫! 그러고 보니 우리 아직 새집 축하 파티도 아직이었잖아? 축하 파티 겸 너 몸도 빨리 회복할 겸 이 누나가 맛있는 거 만들어줄게!”
“아니.”
누나가 만들면 그건 그릇째 부수겠다는 건데.
“믿, 믿어 보라니깐! 이번엔 진짜 잘 만들 수 있어!”
가산을 모조리 탕진한 도박꾼 같은 말투.
오진은 못 미덥다는 듯 하은을 바라봤다.
“아이 씨! 만들어준다면 얌전히 처먹어 새끼야!”
투닥투닥.
하은이 주먹을 휘둘렀다.
“푸흐흐! 알았어. 그럼 누나 실력 한 번 믿어볼게.”
“히히. 고럼고럼. 이 눈나만 믿고 있으렴?”
하은이 으스대듯 콧대를 세우며 허리에 착, 소매를 걷어 올렸다.
[후훗. 재밌어 보이는구나. 본녀의 사랑스러운 아이를 위한 일이니… 이건 가만히 있을 수 없겠구나!]베가까지 눈을 빛내며 흥미를 보였다.
그렇게 오진은 침대에 누운 채 두 여인의 요리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꺄아아악! 이, 이거 왜 이래?!”
“아니 잿더미로 만들면 안 된다고!!”
실로 불안하기 짝이 없는 소리가 주방에서 흘러나왔다.
“…리아크.”
“뭐냐.”
“그냥 칼로리 바를 먹는 게 더 낫지 않았을까?”
“…….”
획. 리아크는 고개를 돌리며 입을 꾹 다물었다.
“하아.”
깊은 한숨을 내쉬며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장석호에게 받은 USB를 꺼내 들었다.
‘이 사이에 정보나 확인해 봐야겠네.’
이 정보를 얻기 위해 그 고생을 했던 게 아니던가.
“…….”
오진은 씁쓸한 표정으로 USB를 내려다봤다.
쯧.
혀를 찬 후 오래된 노트북을 꺼내 USB를 꽂았다.
“이건.”
정보를 쭉 읽어가던 오진의 눈이 가늘어졌다.
장석호가 말했던 흑성회의 목적.
“…지금 각성자들을 싸그리 다 죽인 후에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각성자로 만들겠다고?”
그게 흑성회의 목적이었던 건가.
“하.”
오진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알기 쉬워서 좋네.’
이토록 단순하기 짝이 없는 계획이 또 있을까.
드르륵.
마우스 휠을 내렸다.
“추신. 이 목적은 어디까지나 대외적인 목적일 뿐 파벌마다 각각 계획과 목적이 다르다, 라.”
뭐, 예상한 일이다.
‘이딴 미친 계획을 순순하게 따르는 놈은 없겠지.’
말 그대로 이건 대외적인 목적.
자신들의 세력을 넓히기 위한 보기 좋은 떡밥에 불과했다.
“이거 대충 무슨 꿍꿍이인지 알겠네.”
자료를 쭉 살피던 오진은 쯧, 혀를 찼다.
‘지금 각성자들을 일종의 특권 계급으로 놓고 비각성자들을 끌어모으려는 건가.’
현대에는 두 분류의 사람이 존재한다.
성좌의 성흔을 받은 각성자와, 그렇지 않은 일반인.
괴수가 날뛰는 세계에서 어디가 특권 계급인지는 굳이 생각할 필요도 없으리라.
‘흑성회는 비각성자에게 성흔을 줘서 각성자로 만들 수 있지.’
그렇기 때문에.
이용하려는 것이다.
비각성자라면 가지고 있을 수밖에 없는 각성자들에 대한 증오를.
“…진짜 목적에 대해선 장석호도 모르고 있나 보네.”
말단에 불과한 장석호가 알 수 있는 정보는 여기까지가 한계이리라.
‘뭐, 어쨌든.’
표면적이라고 해도 각성자들을 싸그리 없애 버리겠다는 건 그들의 주요한 목적 중 하나일 것이다.
‘한시라도 빨리 처리해야 하는 놈들인 건 확실하네.’
오진은 가늘게 눈을 뜨며 USB에 담긴 다른 파일을 열었다.
다른 파일에는 장석호가 말한 대로 몇몇 지부의 위치와 올빼미 파벌의 정무관들에 대한 정보가 적혀 있었다.
쭉 정보를 살펴보고 있던 도중, 한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천우성….”
오진은 아샤드 칸의 기억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그때 아샤드 칸과 얘기하던 게 천우성이었나.’
왕의 대리자이자 실질적으로 올빼미 자리 파벌을 이끄는 존재라.
“이건 준만 씨에게 말해줘야겠네.”
안 그래도 협회 한 번 들릴 생각이었는데 좋은 정보였다.
탁.
노트북을 덮은 후 USB를 다시 품속에 넣었다.
‘협회는 내일 들리는 거로 하고.’
리아크가 경고한 대로 오늘 하루는 푹 쉬어 볼까.
-달칵!
“오지나! 저녁 준비 끝났어!”
얼굴 곳곳에 소스를 묻힌 하은이 환하게 웃으며 방 안으로 들어왔다.
오진은 쓴웃음을 지으며 거실로 나갔다.
“자! 이 누나의 영양 만점 요리란다!”
[후후! 본녀도 공들여 준비했느니라!]양옆에 앉은 하은과 베가가 동시에 숟가락을 쭉 내밀었다.
인생에서 이런 호사를 누릴 날이 또 있을까.
‘뭐, 당연히.’
맛은 더럽게 없었지만.
* * *
다음 날.
오진은 일어나자마자 바로 협회로 향했다.
“…천우성이 흑성회였단 말씀입니까?”
장석호에게 받은 정보를 전해 들은 한 부장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예. 제가 알아낸 정보에 의하면 그렇습니다.”
“하. 설마 그자가….”
“협회 내부에 무슨 문제가 있는 겁니까?”
“…….”
한 부장은 머리를 감싸 쥐었다.
“오진 씨도 짐작하셨겠지만… 지금 협회는 완전히 두 파벌로 쪼개져 있습니다.”
역시.
내부 파벌 문제가 있는 건가.
그리고 그중 하나에 천우성이 잠입해 들어가 있는 거고.
“한쪽은 제가 속해 있는 협회장님 라인. 그리고 다른 쪽은 임원진들 라인입니다. 그중 임원진들의 수장이….”
“천우성이란 말씀이군요.”
“…그렇습니다.”
깊은 한숨 소리가 사무실 안에 울려 퍼졌다.
“오진 씨에겐 언젠가 말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돼버렸네요.”
“혹시 절 협회로 부르신 것도 그 이유 때문이었습니까?”
“…하하. 오진 씨는 못 당하겠네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물론 떨어진 협회의 위상을 끌어올리겠다는 목적도 있었습니다만… 북극성의 사도를 저희 라인 쪽으로 끌어들이겠다는 이유도 있었죠.”
그래서 굳이 ‘협회 정식 소속’이 아닌 애매한 위치를 권유했던 건가.
‘정식 소속이 되면 다른 쪽 파벌도 내게 명령을 내릴 권한이 생기게 되는 거니까.’
의문들이 하나씩 풀어지는 듯한 느낌.
‘하긴. 좀 이상하다고 생각하긴 했지.’
이제까지 자신은 협회 소속이면서도 ‘한 부장’ 외에는 직접적인 접촉이 거의 없었다.
물론 중간에 다른 특무관 하나와 만나긴 했지만 그건 예외로 치고.
‘일부러 접촉을 제한하고 있었던 거군.’
누가 어디 파벌일지 정확히 알 수 없는 상황에서.
확실한 ‘협회장 라인’ 중 하나인 그가 전담해서 자신과의 접촉을 담당했던 것이다.
“그럼 제가 도와드릴 게 있습니까?”
협회가 두 쪽으로 쪼개지건 세 쪽으로 쪼개지건 자신이 알 바 아니었지만.
다른 한쪽에 흑성회가 잠입해 있다면 얘기가 달랐다.
“…아뇨. 이 일은 일단 저희가 맡아서 처리해 보겠습니다.”
한 부장이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만약 오진 씨의 도움이 필요하게 된다면. 그때 도움을 요청하겠습니다.”
“물론….”
“물론. 그에 걸맞은 보수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리곤 다 알고 있다는 표정으로 씨익 웃었다.
‘역시 이 아저씨 말이 참 잘 통한단 말이야.’
정당한 보수와 명분이 있다면.
거절할 이유가 없는 제안이다.
‘문제가 좀 있긴 하지만.’
아직 천우성은 자신의 힘으로는 감당하기 힘든 적이라는 것.
중급 정무관도 가까스로 이겼는데 ‘왕의 대리자’라 불리는 흑성회의 핵심 간부를 상대로 이기기는 요원했다.
‘지금은 준만 씨를 믿고 기다리는 게 맞아.’
어차피 혼자 설친다 해도 천우성을 상대할 순 없다.
그 사이 힘을 키우는 게 더 현명하리라.
“아 참. 그리고 이거.”
오진은 가져온 와이어 슈터와 창을 테이블 위에 내밀었다.
한 부장은 완전히 박살 난 무기들을 바라보며 헛웃음을 흘렸다.
“시원하게 망가졌네요.”
“크흠.”
헛기침을 흘리며 고개를 돌렸다.
“그런 의미에서 새 무기 제작을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음… 잠시만요.”
한 부장이 박살 난 무기들을 챙기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 기왕 이렇게 된 거 한 번 직접 만나보시겠어요? 그편이 훨씬 더 오진 씨에게 최적화된 무기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은데.”
“만나다뇨?”
씨익.
그가 입가를 올리며 사무실 문을 열었다.
“와 보시면 아실 겁니다.”
[인물 정보 : 천우성]-올빼미의 왕 천도윤의 아들. 왕의 대리자라 불리며 실질적으로 흑성회를 관리하고 있다.
-현재 협회에 잠입해 있는 것으로 추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