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That Kind of Talent RAW novel - Chapter 19
19. 들춰진 베일(2)
넘어지듯 바닥을 굴러 녀석의 등 뒤에 자리했다.
보통은 등 뒤에서 찌르거나 베어내겠지만, 오우거의 가죽은 내 미약한 근력으로 뚫기엔 무리라는 것을 알기에 나는 욕심부리지 않고 힘껏 몸을 내던져 녀석을 밀쳤다.
오우거의 덩치와 힘을 고려해서 진짜 온 힘을 다했다. 오죽하면 내 몸이 반대로 튕겨 나왔을까. 솔직히 어깨가 바스러지는 줄 알았다.
그런 내 간절함이 하늘에 닿은 건지, 녀석의 몸이 앞으로 기울었다.
나는 바닥을 구르던 몸을 벌떡 일으켜 한 발짝 떨어진 곳에 서서 그를 확인했다.
코앞은 절벽. 이대로 떨어지면 나의 승리다.
이미 상체가 절벽 밖으로 완전히 빠져나왔다. 저대로면 머리부터 떨어지겠지. 다리부터 떨어진다면 모를까, 저 상태에서는 무슨 짓을 해도 올라오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이 빌어먹을 오우거 자식이.
기어코 그 상태에서 몸을 돌려 내 발목을 잡았다!
‘씨발!’
젠장 맞게도 오우거의 팔 길이를 고려하지 못했다.
몸이 훅 꺼지며 시야가 휙휙 바뀐다.
하늘이 멀어지고 있음이 작아지는 구름을 통해 실시간으로 느껴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내.
콰아앙!!
몸 전체에 무거운 충격이 전해졌다.
‘우욱.’
속이 진탕이 된 것 같다.
올라오는 구역질을 꾸역꾸역 삼키며 어찌어찌 일어나기 위해 바닥을 짚었다.
푹.
……푹?
아, 나 단검을 쥐고 있었지. 그런데 땅이 원래 이런 느낌이었나?
흔들리는 시야를 다잡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사방을 에워싼 마족들. 그리고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는 용사와 마왕.
……응? 아니 잠깐 이거 뭐야?!
심지어 내 밑에 있던 놈은 좀 전의 그 오우거다. 바닥을 짚으려 했던 내 단검이 찌른 곳은 다름 아닌 목.
‘오우거라 해도 체중을 실어서 찌르면 찔러지는구나… 가 아니라!’
나 지금 적진 한복판에 떨어진 거지? 게다가 저들 눈앞에서 동료를 죽인 거지? 그런 거지?
갑작스러운 난입 때문인지 사방이 조용하다.
마왕조차도 침묵하는 가운데, 나는 저들이 정신을 차리기 전에 빨리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에 무작정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내 생존 본능이 가리킨 곳은 다름 아닌 용사.
자폭이라도 하려는 건지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이 좀 불길하지만 달리 갈 곳은 없다.
사방은 마족들이 포위하고 있으니 어디로 가나 죽을 것은 뻔하고, 그렇다고 마왕에게 갈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이미 반쯤 죽어가는 것도 모자라, 자폭할 기세인 용사가 내 유일한 생명줄이라니. 뭐라 표현할 수 없는 기분에 표정을 굳힌 채 다리를 떨지 않도록 주의하며 걸었다.
용사의 앞까지 도달하는 것은 금방이었다.
이미 내가 떨어졌을 때부터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쪽을 보던 용사가 나와 눈이 마주치더니 이내 허탈하게 웃는다.
그리고 뭐라 말하고 싶은 듯 입술을 달싹이는데… 전혀 안 들리잖아.
‘말할 기운도 없는 건가.’
굳이 그럴 필요는 없지만, 일단 무슨 말인지 궁금했기에 나는 친절히 그의 어깨를 잡고 귀를 가까이 대주었다.
그러자 쌕쌕거리는 소리에 섞여, 희미한 목소리가 귓속에 흘러들어왔다.
“당신은… 정말….”
“……?”
더 이상의 말은 없었다.
뭐야, 끝이야?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
이변을 느낀 것은 그때였다.
용사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던 빛무리가, 나를 향해 쏟아져 내린 것이다.
처음엔 당황했던 나는 얼마 못 가 그가 무슨 생각인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
‘힘을 양도하고 싶었던 건가.’
─마왕을 죽일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인 자폭까지 포기해 가며.
환희나 고마움보단, 안타까운 마음부터 들었다.
용사의 힘은 의도적인 양도가 불가능하다.
그나마 가장 비슷한 선택지가 바로 힘의 파편을 대륙 전체에 흩뿌리는 것.
누가 파편의 주인이 될지도 미지수인, 말 그대로 용사의 의지는 아무런 소용도 없는 그런 방법밖에 없는데….
아니나 다를까, 용사의 힘이 내 몸을 그대로 통과하는 것이 느껴졌다.
정착은커녕 조금도 머무르지 못하고 마치 그물을 통과하는 물살처럼 유유히 통과한 그것은, 빛을 잃고 바싹 타버린 재처럼 조각조각 바스러지더니 이내 멀리멀리 사라졌다.
아마 이대로 대륙 전역에 퍼지겠지.
‘어째 피뢰침이 된 기분인데.’
용사의 힘을 한 몸에 받으면서도 저장해 두지 못하고 그냥 흘려보내는 것이.
‘……미련하긴.’
용사도 그걸 또렷이 느끼고 있을 텐데, 어째서 포기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끝끝내 밀어 넣던 힘이 서서히 약해지며 덩달아 용사의 몸 역시 내게 기대듯 무너진다.
그의 끝이 다가오고 있었다.
‘아, 눈 마주쳤다.’
나를 달래듯, 그가 희미하게 웃는다.
그 순간 무언가 말해야 한다는 강박이 나를 사로잡았으나, 밀려 들어오던 힘이 뚝 끊기고 모든 빛이 사라질 때까지, 그리고 그의 몸이 축 늘어지는 순간까지, 나는 어떠한 말도 할 수 없었다.
형용할 수 없는 기분에 사로잡힌 것도 잠시, 용사에게서 느껴지는 위화감에 나는 표정을 굳혔다.
‘……죽었어.’
내 유일한 생명줄이.
재차 확인을 해보지만 숨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맥박 역시 조금도 뛰지 않았다.
충격으로 멍해진 머릿속에 잊고 있던 사실이 하나 떠올랐다.
내가 떨어졌을 때 내려앉았던 정적. 그 정적이….
“…….”
“…….”
……아직까지도 이어지고 있었다.
그 사실을 깨닫기가 무섭게 사방에서 쏟아지는 시선들이 무진장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주춤거리며 슬그머니 일어서자, 나를 보는 이들의 눈동자도 서서히 올라간다.
아, 차라리 끝까지 몰랐다면 좋았을 텐데.
저 수많은 눈동자가 나를 따라 움직이고 있으니 긴장감에 절로 몸이 뻣뻣하게 굳어버린다. 저 시선들 중 마왕의 것도 있었기에 더욱 그랬다.
다, 다리가 떨리는 건 기분 탓이겠지. 아니, 손도 떨리는 것 같은데.
‘기분 탓이 아니잖아!’
이 상태로는 위험하다.
약육강식에 특화된 마족들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였다간 그대로 먹힐 거라는 것을, 이곳에 오기 전 열심히 공부했던 나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한시라도 빨리 자리를 뜨려는데.
“쿨럭.”
주륵.
입 밖으로 피가 울컥 튀어나왔다.
이곳에 떨어졌을 때부터 꾸역꾸역 참고 있던 그것이었다.
‘젠장, 왜 하필 지금…!’
지그시 입안 여린 살을 깨물었다.
떨어졌을 때 몸 전체에 꽤나 큰 충격을 받았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만 예상외로 잘 버티기에 조금은 괜찮을 줄 알았는데, 하필 지금 뱉어낼 줄이야.
극단적으로 표현해서 이 빌어먹을 몸뚱이를 갈아 치워버리고 싶을 정도였다.
그 와중에 축 늘어진 용사의 몸은 어찌나 무겁던지.
‘도망쳐야 하는데 이러면 짐만 되잖아. 확 버리고 튀어?’
진지하게 고민을 하고 있던 그때, 굳게 닫혀만 있던 마왕의 입술이 천천히 열렸다.
“너, 이름이?”
이건 무슨 의도일까.
도망치면 찾아내서 죽여버리겠다는, 그러니 도망칠 생각은 하지 말라는 의미인가? 어쩌면 성을 듣고 가족들을 찾아내 죽이거나 협박하려는 의도일지도 모른다.
어차피 도망쳐 살아남을 확률은 극도로 낮으니 이름이야 말하든 말든 상관없는 일이고.
그보단 가족, 가족들이라….
“……데온 하르트.”
선선한 바람에 흩날리는 하얀 머리칼이 뺨을 간질인다. 나는 걸리적거리는 그것을 쓸어올리고는 붉은 눈동자가 자리한 눈가를 매만지며 설핏 웃었다.
자, 이름을 말해 줬으니 어디 한 번 하고픈 대로 해봐.
그렇게 단단히 각오하고 있었으나, 돌아온 말은 의외의 것이었다.
상상조차도 못했던, 가능할 리가 없다고 생각한 그 말.
“마왕군이 될 생각은 없나?”
태어나서 처음으로, 마왕에게 스카우트 제의를 받아버렸다.
기쁘진 않다. 말이 제의지, 사실상 선택의 여지는 없는 거나 마찬가지니까.
여기서 거절한다면 어떻게 될지는 안 봐도 뻔한 일이다.
그렇지만 나는 이런 협박 따위에 흔들리지 않는다!
자꾸만 주르륵 미끄러져 내리는 용사의 시신을 고쳐 안으며 나는 감히 마왕 앞에서 당당히 거절 의사를 피력했다.
“서류 작업은 싫습니다!”
……조금 많이 돌려서 말하긴 했지만, 일단은 거절 의사가 맞다.
의외로 군단장들이 서류 작업에 시달린다는 이야기를 들었단 말이지. 굳이 이곳에 붙잡혀서까지 서류 작업에 시달릴 생각은 없다.
“그럼 하지 마.”
“……?”
“흐음, 서류 작업을 하지 않는 고위직이 뭐가 있을까….”
네? 저기요?
“뭐, 없으면 하나 만들면 되지. 0군단장 어때? 마음에 들지?”
아아아니, 잠깐만. 당신 미쳤어?
1군단장이 마왕의 대행자 역할을 맡을 정도인데, 무려 0군단장을 하라고? 아직 내 실력이 검증되지도 않았는데?
“반발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거야. 이 장면을 본 놈들이라면 반대는 꿈도 못 꾸겠지.”
그제야 나는 느꼈다.
이건 뭐가 잘못 돌아가도 단단히 잘못 돌아가고 있다고.
결과적으로 나는 거절할수록 높아져만 가는 대우에 짓눌려 가장 처음 제안했던 0군단장 자리를 수락할 수밖에 없었다.
***
콰아앙!!
묵직한 소리와 함께 데온 하르트가 떨어져 내렸을 때, 용사는 말로는 표현하지 못할 정도로 놀랐다.
아마 배에 꽂혀 있는 검만 아니었더라면 벌떡 일어섰을지도 모른다.
그도 그럴 것이, 결과는 이미 정해졌으니까.
용사는 마왕을 죽이지 못했고, 도리어 마왕의 손에 죽을 일만 남았다.
마왕을 죽이지 못한 용사는 존재 가치가 없다.
용사가 받는 모든 대우와 명예는 ‘마왕을 죽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인간’이라는 점에서 나오기에 마왕을 죽이지 못한다면 그 모든 것이 회수되는 것 역시 당연했다.
쉽게 말해 마왕에게 패배한 지금의 용사는 구할 가치도 없는 인간이 되어버렸다는 뜻이다.
‘그런데 어째서.’
이대로 도망치면 되는 것을 왜.
왜 굳이 이 죽을 자리에 온 것일까.
데온 하르트. 그에겐 ‘동료’로서의 의무뿐만 아니라 전투의 결과를 제국에 보고해야 하는 의무도 있다.
그러니 굳이 죽을 게 뻔한 이쪽에 난입하는 것보단, 조용히 자리를 뜨는 쪽이 훨씬 유익했을 터인데.
그럼에도 그는 적진 한복판에 난입했고, 지금 이렇게 이쪽으로 당당히 걸어오고 있었다.
‘하, 하하.’
가쁜 숨소리에 섞여 허탈한 웃음이 새어 나왔다.
설마 그 잠깐 사이에 동료애라도 생긴 겁니까. 그래서 이렇게 시체라도 수습하러 온 것이고요?
──마왕을 마주해 가면서까지?
배에 꽂힌 검 때문일까, 미묘한 감각이 아랫배부터 부글부글 끓으며 올라가 심장 주위를 맴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각에 차마 입을 열지 못하고 입술만 달싹이기를 한참, 그게 답답했던지 그가 재촉하듯 어깨를 잡고 귀를 가까이 댔다.
거기에 힘입어, 용사는 한 가지 무모한 선택을 할 수 있었다.
“당신은… 정말….”
세간에 알려진 이미지와는 달리 무모할 정도로 착하고 의리 있는 사람.
다음 대의 ‘용사’가 탄생한다면 그게 당신이 되면 좋을 텐데.
자폭을 위해 끌어올렸던 모든 힘을, 그에게 양도하려는 의도를 담아 쏟아붓기 시작했다.
용사의 힘은 의도적인 양도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용사인 그가 모를 리가 없었다.
그럼에도, 자신이 죽은 뒤 어떻게 될지는 불 보듯 뻔한 이 사람이 살길은 이것 하나이기에.
세계가 정한 허용선을 성큼 넘은 용사는 현재 이 상황을 관망하고 있을 세계를 불렀다.
‘세계여, 보고 있습니까.’
보고 있으리라. ‘용사’는 세계가 직접 선택하여 힘을 부여한 존재이니.
그러니 보고 있을 테고, 알고 있겠지.
‘이건 어디까지나 내 독단적인 행동입니다.’
그러니까.
그는 아무것도 모르니까.
세계의 뜻을 어긴 대가는 모두 내가 짊어질 테니.
‘이 행동에 대한 분노는 오로지 나만을 향하길.’
죄의 무게를 측정하던 세계가 판결을 내렸다.
순간 용사는 끔찍한 고통에 혀끝을 씹었다. 미처 나오지 못한 비명이 목 안 깊은 곳에서 요동쳤다.
근육을 헤집고 뼛속을 날카로운 것으로 찍어대는 듯한 고통. 그 상태에서 힘을 밀어 넣으니 머리마저 깨질 듯 아파온다.
아마 세계의 경고이자 응징일 테지만 무시했다. 속에서 울컥 올라오는 피를 집어삼키며 영혼이 부서지는 고통을 무릅쓰고 힘을 더 강하게 밀어 넣었다.
‘제발. 하다못해 파편 한 조각만이라도….’
이런 사람을 마왕에게 죽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다. 그러니 제발, 그에게 저항할 수 있는 힘을.
그러나 그의 간절함은 끝내 뜻을 이루지 못했다.
데온을 향해 쏟아졌던 모든 힘들이 빛만 잃은 채 그대로 나와 대륙으로 퍼진다.
마치 구름을 통과하는 새처럼 유유히 그의 몸을 통과한 그것들은 단 한 조각도 빠짐없이 바람을 타고 햇살을 타고, 허공으로 사라졌다.
‘……역시, 안 되는 겁니까.’
상황을 넓게 보면 손해 보는 것은 없다.
허용선을 넘긴 했지만 어쨌거나 용사는 자신의 ‘목숨’을 대가로 힘의 ‘양도’를 택했고, ‘목숨’이라는 대가를 받은 이상 세계는 그의 목적인 ‘양도’를 달성해야 한다.
그러니 저렇게 사라진 힘은 세계에 귀속되지 않고 여타 ‘양도’를 택한 용사들의 힘처럼 대륙에 머물며 또 다른 ‘영웅’을 만들어내겠지.
하지만 그러면 데온 하르트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