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That Kind of Talent RAW novel - Chapter 232
232. 균열(4)
‘그보다 데온 님은 어디에 계시는 거지?’
일단 집무실엔 아무도 없다. 방에 계시나?
열었던 집무실의 문을 닫은 에드가 다시 복도를 가로지르기 시작했다. 애초에 집무실과 데온 하르트의 방은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기에 그는 오래 지나지 않아 목적지로 한 방문이 시야에 닿는 곳까지 도달했다.
거기서 에드는 걸음을 멈췄다. 누군가 방문을 열고 나오고 있었다.
“단?”
“……부관님?”
익숙한 목소리에 무심코 호응하며 에드를 돌아본 단이 흠칫했다. 전에 없이 지친 기색의 마족이 어두침침한 복도 가운데에 서 있었다.
뭐지. 마스터가 자꾸 밀어내면서 받은 상처가 쌓이고 쌓여 결국 터지기라도 한 건가.
완전히 처음 보는 모습이다. 데온 하르트가 총지휘관이 되어 서류의 산에 파묻혔을 때도 저렇게까지 되진 않았기에 단은 상대가 저를 좋게 보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물을 수밖에 없었다.
“왠지 피곤해 보이시는데… 무슨 일이라도 있습니까?”
“아.”
그제야 제 상태를 자각한 에드가 손을 들어 얼굴을 쓸어내렸다.
손이 지나간 자리에 다시 평소와 같은 정돈된 표정이 들어찬다. 그는 별거 아니라는 듯 담담히 답했다.
“9군단장님과 5군단장님 사이에 충돌이 있어서.”
“아아…….”
결국 계획대로 됐구나. 단의 표정이 묘해졌다.
그럼 저 마족은 그걸 뜯어말리고 온 건가. 굳이 그럴 필요 없었는데 사서 고생하셨네.
이해는 된다. 일반적인 총지휘관이었다면 내부 주요 전력 간의 충돌은 확실한 손해이니 아무것도 모르는 에드로서는 데온 하르트를 위해 말렸을 것이다. 단은 새어 나오려는 침음을 억눌렀다.
‘무슨 마족이 이렇게 헌신적이어서…….’
존재조차 까맣게 잊고 있었던 양심이 슬금슬금 통증을 호소한다.
무심코 눈을 피하려던 단은 어느샌가 저를 보는 시선에 의아함이 서렸다는 것을 깨닫고 애써 모른 척 말을 뱉었다.
“힘드셨겠습니다.”
“딱히…….”
부정의 말은 끝을 맺지 못했다. 에드는 말끝을 흐리며 잠시 눈을 돌리더니, 이내 대화를 끝내려는 듯 질문을 던졌다.
“데온 님은 안에 계시나?”
“아뇨, 마스터는 아마 로프티 기사단 전용 연무장에 계실 겁니다. 마침 저도 그곳에 가려고 했는데, 같이 가시겠습니까?”
“……아니. 먼저 가라.”
어차피 대화거리가 없어서 가는 내내 어색한 분위기만 이어질 것이다. 사이가 좋은 것도 아니니 따로 가는 편이 서로에게 더 편하고 좋겠지.
에드의 말뜻을 눈치챈 단이 어깨를 으쓱하고 먼저 걸음을 뗐다. 에드는 잠시 기다렸다가 그와 일정한 거리를 두고 뒤따랐다.
따로 떨어져서 이동한 것이 무색하게도 둘은 목적지에 도착하기도 전에 같은 자리에서 멈춰서야 했다.
먼저 걸음을 멈춘 사람은 앞서 걷던 단이었다.
우뚝, 눈으로부터 충격적인 장면을 전달받은 뇌가 순간 일하기를 멈췄다. 일시적으로 모든 움직임이 정지했다.
“……미친.”
“음…?”
예고 없이 튀어나온 욕설에 생각 없이 걷던 에드가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말했다. 미친.
“저게 무슨…….”
둘 사이의 거리는 어느새 다시 좁아진 상태였으나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에드는 상황 파악을 위해 사정없이 흔들리는 두 눈을 힘겹게 정면에 고정했다. 그의 눈은 로프티 기사단과 데온 하르트를 담고 있었다.
데온 하르트를 ‘들고’ 있는 기사단원이 외쳤다.
“다들 한 번씩 다 받았냐? 그럼 이제 무작위로 던진다! 떨어뜨리는 놈은 죽을 준비해라! 물론 내가 아니라 대장한테!”
“우리가 대장을 놓칠 것 같냐? 한두 번 연습한 것도 아니고, 이미 실전도 몇 번 겪었잖아.”
“아니, 실전은 그렇다 쳐도 연습은 다르지. 연습은 항상 포대 자루에 돌이랑 모래를 가득 담아서 했잖아. 실제 대장으로는 한 적 없고.”
“대화 끝났냐? 아무튼 간다? 대장, 몸에 힘 빼세요!”
데온 하르트가 하늘을 날았다. 그가 떨어지는 곳에서 대기하고 있던 기사단원 하나가 안정감 있게 그를 받아든다. 그것도 잠시, 다시 데온 하르트가 공중에 던져졌다.
‘미… 아니, 맙소사.’
저들은 데온 님이 공이 아니라는 사실도 모르는 것인가.
간 크게 데온 하르트를 던지고 받는 행태에 에드의 안색이 창백하게 질렸다.
지금 이 광경만으로도 경을 칠만한데, 그들은 뻔뻔하게 데온 하르트를 상대로 투정도 부렸다.
“대자앙, 저희는 긴급 상황에서 거동이 힘든 대장을 들고 튀는 연습을 하는 중이라니까요? 자꾸 뒤척이시면 곤란합니다.”
“……이젠 그럴 일 없을 텐데.”
“혹시 모르잖아요? 자자, 저희를 믿고 몸에 긴장 푸세요. 가만히 계시기만 하면 저희가 다 알아서 하겠습니다.”
무겁지도 않은지 정말 높게도 던진다. 에드는 그쯤에서 생각하기를 포기했다.
에드가 넋을 놓아버린 사이, 다시 공중에 뜬 데온이 그 역시도 다른 이유로 반쯤 넋을 놓은 듯 멍하니 중얼거렸다.
“나 용산데. 내가 거동이 힘들 정도의 상황이면 너흰 이미…….”
“헛 그럼 그런 상황이 오기 전에 대장을 틀고 튀는 연습을 하면 되겠군요! 그땐 대장의 반항이 있을지도 모르니… 마음껏 뒤척이십쇼 대장! 그래도 떨어뜨리지 않도록 연습하겠습니다!”
“내가 진심으로 반항하면 너흰 못 버틸 텐데.”
“저희가 다칠 정도로 반항하실 겁니까?”
“……응.”
“대답이 늦었습니다.”
“응.”
“이미 늦었습니다. 안 들려요. 자, 다시 갑니다!”
……방에 들렀을 때 창밖이 소란스럽다 했더니 이것 때문이었군. 그냥 마스터가 방문해서 시끄러운 줄 알았는데. 간신히 집 나간 정신을 잡아 온 단이 고개를 흔들었다.
정신을 차리고 나니 그제야 연무장 한쪽에 있는 다른 마족들의 존재가 눈에 들어온다. 그들의 정체가 11군단장과 8군단장이라는 것을 뒤늦게 인지한 단의 눈이 다시 흔들렸다.
11군단장 리리넬은 그렇다 쳐도 8군단장이 왜 여기에 있는 건지. 심지어 그는 온몸에 피 칠갑을 한 채 주저앉아 두 무릎을 끌어안고 있었다.
천천히 둘에게 다가갔다.
“안녕하십니까.”
“그래, 안녕.”
“……난… 안 될 거야…….”
“……실례지만 8군단장님은 왜 이러고 계시는지요? 아니 그전에, 마스터는 왜 저렇게 넋을 놓고 계신 겁니까?”
정상인 상태의 데온 하르트가 저들의 미친 행태를 그냥 두고 볼 리 없다. 아마 무슨 핑계를 댔든 첫 시도를 하는 순간 단검을 빼 들고 응징했겠지.
대답이나 표정이 맹한 것도 그렇고, 저건 필시 넋을 놓고 있는 거다. 단은 확신했다.
역시나, 리리넬이 어깨를 으쓱했다.
“데몬교에서 군단장 소환에 성공했다는 소식이 많이 놀라우셨던 모양이야. 그 뒤로 줄곧 저 상태이시네. 기사단들은 데온 님이 기분 나쁘셔서 그런 줄 알고 풀어드리기 위해 저렇게 난리 치는 중이고.”
“예?!”
“방금 외침 못 들었어? ‘자, 정신 차리실 때까지 다시 갑니다!’라고 했잖아. 중간 부분은 목소리가 좀 작긴 했지만.”
“못 들었… 아니, 그게 아니라.”
데몬교에서 고위 마족 소환을 꾸준히 시도 중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정말 성공했다고? 그 드문 확률을 뚫고 하필이면 군단장을?
“……한 번도 이곳에 오신 적 없는 분이 여기서 이러고 계신 걸 보면 아마 8군단장님이 소환되신 거겠죠. 혹시 계약까지 맺으신 겁니까?”
“응, 맞아. 소환되었을 당시 상황이 엉망이어서 정신없는 와중에 얼떨결에 계약했다더라.”
무슨 상황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게 지금 8군단장의 피 칠갑과 연관이 있다는 것은 알겠다.
이제 겨우 마계에도 밑밥을 깔아두기 시작한 참인데 소환 성공도 모자라 계약까지 해버린 군단장이라는 거대한 변수가 등장했으니 마스터가 넋을 놓을 만도 하지. 인간계가 너무 빨리 무너지면 준비 시간이 모자랄 테니까.
축 늘어진 채 이리저리 던져지고 있는 데온을 짠하게 보던 단이 문득 들려오는 목소리에 시선을 내렸다.
8군단장이 공이 될 기세로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데온 님은… 기분 나쁘신 게 맞을 거야……. 하필이면 소환되어도 나 같은 게 됐으니까…….”
“응? 그런가요?”
“역시 난……!!”
리리넬의 순진한 갸웃거림에 8군단장 헬이 무너졌다.
‘아니, 왜 하필 여기서.’
11군단장은 8군단장의 성격을 알면서 왜 수긍하듯이 말한 건데.
아예 땅을 파고 들어갈 기세인 8군단장을 보며 단은 생각했다. 부관, 부관이 필요해.
몇 번 스치듯 본 8군단장은 언제나 부관이 곁에서 잘 달래주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부관은 어디에 있는 거지?
혹시 또 못 본 것은 아닐까, 급히 8군단장의 부관을 찾아 주위를 둘러보는데 그전에 근처에서 입을 다문 채 상황을 지켜보던 에드가 먼저 나섰다.
“아닙니다. 데온 님께서는 8군단장님의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을 잘 알고 계십니다. 그러니 절대 8군단장님에게 실망해서 그러시는 게 아닐 겁니다.”
“……그래…?”
“예.”
8군단장이 슬그머니 고개를 든다. 에드는 기꺼이 그 눈을 마주하며 의지를 담아 고개를 끄덕였다.
정당한 계약을 통해 인간계에 나간 마족은 이런저런 제약이 적어진다. 다른 일반 마족이라면 차이가 미미할지 몰라도 군단장씩이나 되는 마족이 계약을 맺었다면 총지휘관의 입장에서는 전력이 확 늘어 한결 편해질 터.
그렇지 않아도 전쟁이 고착화될 기미가 보이고 있었기에 지금 이렇게 들려온 소식은 반가울 수밖에 없었다.
순수하게 데온 하르트를 위해서 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사심으로도 그랬다.
‘마왕성에 귀환할 때였나.’
첫 번째 도시에서 마왕성으로 귀환하기 위해 이동할 때, 에드는 천천히 머릿속을 정리하며 생각했다.
‘상황, 즉 환경 때문에 데온 님께서 나를 멀리하신다면 그 환경을 바꾸면 돼.’
추측해보건대 아마 그 환경은 인간계와의 전쟁을 의미할 것이다.
여전히 그게 저와 거리를 둬야 할 정도인지 이해가 되지 않지만… 다른 것은 떠오르지 않으니 이것에라도 매달려 보는 수밖에 없다.
때문에 하루라도 빨리 전쟁을 끝내고 싶건만, 바람과 반대로 전쟁은 거의 대치 상태로 굳혀져 가는 눈치였다. 경계선에 있어야 할 9군단장 트로버가 마왕성에 돌아온 것만 봐도 그랬다.
‘그러면 곤란하지.’
고착화된 대치 상태는 일이 없어진 군단장의 귀환을 초래하고, 돌아온 군단장은 심심함을 못 이겨 다른 군단장과 문제를 일으키는 등, 갈등을 유발한다.
이는 단순히 거기서 그치지 않고 병력 운용에 문제를 준다. 자칫하면 전력이 깎이는 상황까지 이어진다는 뜻이다. 깎인 전력은 의미 없는 대치 상태 및 소모전의 고착화를 촉진시키겠지.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인간계와의 전쟁을 빨리 끝내고 멀어진 데온 님과 이전 같은 관계로 돌아가고 싶은 에드로서는 가장 피하고 싶은 결말이었다.
그러니 판을 뒤흔들 수 있는 8군단장은 아주 중요하다. 자리를 비운 8군단장의 부관 대신 그의 기를 살려주기 위해 에드는 단호히 말했다.
“데온 님은 필시 8군단장이라는 훌륭한 패를 적재적소에 사용하기 위해 고민 중이실 겁니다.”
“그런… 건가?”
“예. 그렇지 않습니까?”
데온 님.
에드가 뒤를 돌아보았다. 어느샌가 근처에 다가와 상황을 지켜보던 데온이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등 뒤에서는 로프티 기사단원들이 이마나 뒤통수 등의 머리 한 부분을 싹싹 문지르며 고통을 호소하고 있었다.
“뭐… 그렇지.”
“들으셨지요? 그러니 이만 일어나십시오. 바닥이 찹니다.”
데온은 고개를 끄덕이며 느릿느릿 일어나는 8군단장을 가만히 눈에 담았다. 한숨이 나올 것 같았으나, 그랬다간 저 자존감 바닥인 군단장이 다시 땅을 파고 들어갈 것 같아 꾹꾹 눌러 참았다.
‘진짜로 소환할 생각은 없었는데.’
그저 데몬교가 인간계에 남아있기 위한 핑곗거리 중 하나였다. 진짜로 소환해서 계약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어찌나 어이가 없던지.
‘확률 낮다며…….’
순간 넋이 나갈 정도였다.
그래도 이미 벌어진 일, 어딘가에 써먹는 모습은 보여야 한다.
데온은 일단 기웃거리며 제 눈치를 살피는 리리넬을 불렀다.
“잘한 거니까 눈치 보지 않아도 돼. 수고했어.”
“헉…! 다, 당연한 일이에요! 데온 님을 위해서라면야!”
“……그리고 헬?”
“죄송합니다…….”
이름만 불렀는데, 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