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That Kind of Talent RAW novel - Chapter 298
298. 나의 행복을 묻지 않기에(8)
“…….”
“기껏해야 2군단장과 4군단장 정도일까. ……12군단장도 심상치 않은 느낌이긴 하지만.”
4명 중 1명이 의심하는 꼴이잖아. 그게 뭐가 몇 없다는 거야?
“……그걸 내게 말하는 이유는?”
“그.”
“아니 그 전에, 그때 다 들었을 텐데 어째서 모른 척한 거지?”
일단 이 부분부터 해소하고 가야겠다. 줄곧 품고 있던 의문을 꺼냈다.
말이 끊긴 것은 개의치 않는 듯, 잠시 입을 다문 제이카르가 다시 대답했다. 두 의문 모두 하나의 답에 귀결되는 것이었다.
“요정왕이 그대를 두둔했으니까.”
데온으로서는 전혀 생각지 못한 답이었다.
“뱀파이어 수장이 난입했을 때를 기억하나?”
“그야, 당연히.”
당연히 기억한다. 잊을 리가 없지.
다른 누구도 아닌 나를 죽이겠다고 난입한 것이었으니까.
“그때 요정왕은 그대를 지키려 했지.”
데온 못지않게 제이카르 역시 그때의 일을 선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요정왕은 데온 하르트의 목숨을 지키고자 했다.
“그러니 ‘데온 하르트’는 죽어서는 안 돼.”
연유는 몰라도 그가 바란다면 그래야 한다.
그것이 데온 하르트에게 그를 의심하는 군단장의 수를 말해준 이유였으며, 제이카르가 침묵한 이유였다. 그날 연회에서 들은 대화 내용을 다른 이에게 전한다면 데온 하르트는 필시 죽었을 테니까.
데온의 입장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했다.
“……고작 그 이유로?”
“못난 동생이 쌍둥이 형제에게 해줄 수 있는 얼마 안 되는 것인데, 그 정도면 충분하지.”
“……!”
쌍둥이라고? 요정왕이랑?
어쩐지 그에 대한 말이 나올 때 요정왕의 태도가 유난이 날이 섰다 했다. 제 쌍둥이가 마족이 되었으니 예민할 만도 하지. 언젠가 요정의 영역에 갔을 때를 떠올리며 데온은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챙! 또다시 검이 가볍게 부딪혔다.
“그럼 마왕을 배신하려는 건가?”
“배신이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는군. 애초에 진심으로 그를 따른 적이 없었으니.”
제이카르는 쌍둥이 형제의 모든 악을 가져간 듯 살육욕을 타고 난 요정이었다. 그러다가 마기에 영향을 받아 마족이 되었고.
당시 요정왕은 괜찮으니 이곳에 있으라며 그를 감싸려 들었으나, 그저 싸우다 죽는다면 만족하는 제이카르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가장 전투가 잦은 마왕성에 들어갔다.
결국 그가 마왕의 밑에 들어간 이유는 ‘마족이어서’가 아니었다.
“충성심 따위는 처음부터 없었어.”
그러니 지금 이 상황을 두고 배신이라 말할 수는 없겠지.
“내가 1군단장이 된 이유도 충성심이 아닌 그저 가장 강해서였고.”
“……내가 만난 요정왕은 네게 호의적인 감정이 없는 것 같았는데.”
“그럴 만도 하지.”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처음부터 요정답지도 않게 태어나 차별받던 것을 제 쌍둥이랍시고 비호 아래 잘 키워 오른팔까지 앉힌 것도 모자라, 마족이 되었음에도 지금까지처럼 곁에만 있으면 된다고 감싸려 들었더니만, 그 결과가 마왕성으로 가버린 것이었으니. 어찌 배신감이 들지 않겠는가.
저번에 만났을 때의 반응은 굉장히 얌전한 것이었다.
“어찌 되었건 상관없다.”
상대는 어떨지 몰라도, 제이카르는 아직 제 쌍둥이 형제를 아낀다.
그가 요정족의 영역에서 욕구를 누르며 지냈던 것도 형제의 배려가 헛되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고, 마왕성에 들어간 또 다른 이유 역시 저 하나 감싸겠다고 반발하는 요정들을 홀로 상대하는 모습이 버거워 보였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싸우다 죽는다면 형제에게 도움이 되는 쪽으로 죽는 편이 좋을 테니.”
조만간 큰 전투가 벌어질 것이다.
요정왕의 쌍둥이라는 특수성에서 나온 감각과 살육에 한해서는 뛰어난 감각이 동시에 경고한다. 그때 거의 모든 군단장들이 죽을 것이라고.
데온 하르트의 편에 서도, 그를 적대해도 죽을 터이니. 그렇다면 그를 감쌌던 요정왕의 태도대로 데온 하르트의 편에 서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나는 그대를 돕겠다.”
대련은 여기서 끝이라는 듯, 검을 거둬들였다.
긍정도, 부정도 없이 침묵으로 응수하는 데온 하르트를 향해 제이카르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붙였다.
“오늘 즐거웠다.”
“…….”
“앞으로도 종종 대련하도록 하지.”
자주 교류하자는 의미였다.
***
에드는 단의 죽음 소식에 혼란을 감추지 못했다.
녀석이 얄밉고 싫긴 했지만 죽기를 바란 것은 아니었다. 착잡한 감정이 온갖 감정을 누르고 수면 위로 떠올랐다.
그렇지 않아도 단의 소식을 듣고 에드를 찾아온 벤이 이를 발견하고는 낮게 혀를 찼다.
“거슬리던 녀석이 간 건데, 반응이 왜 그래? 후련하지 않나?”
“……아, 벤.”
지나가는 누군가인 줄 알았더니만, 제 곁에 앉는 기척에 에드가 허공을 보던 시선을 돌려 옆을 보았다. 건방진 주치의가 묘하게 걱정 어린 눈으로 저를 보고 있었다.
……후련하지 않냐고? 쓴웃음을 지었다.
“후련하지.”
“전혀 후련해 보이지 않는 얼굴로 그런 말을 하면 잘도 믿겠군.”
“피곤해서 그래.”
거짓과 진실이 뒤섞인 말이 튀어나왔다.
더 캐묻지 않겠다는 듯 벤이 고개를 돌려 나란히 허공을 응시한다. 잔잔한 물음이 이어졌다.
“네 말대로 피곤해 보이는데, 고민거리가 많은 모양이지?”
“……그래.”
“그럴 만도 하지.”
가벼운 수긍이었으나 에드는 순간 뭐에 찔린 듯 몸을 굳혔다.
뻣뻣하게 얼어붙은 시선이 벤의 기색을 살핀다. 그의 수긍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물을까 고민한 것도 잠시, 스스로가 예민하다는 것을 아는 에드는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여러 요소에 짓눌린 듯 연신 얼굴을 문지르는 에드를 알 수 없는 눈으로 보던 벤이 문득 말을 꺼냈다.
“좀 쉬고 오는 것은 어떤가?”
“……뭐?”
“데온 님은 마지막 연회에도 참석하지 않을 생각이시던데, 이참에 너도 좀 쉬는 게 좋지 않겠나 싶어서.”
마지막 연회에서는 그간 벌어진 사냥대회의 결과도 발표하건만, 아예 빠질 생각이신 모양이다. 연회 내내 일이 터졌으니 그럴 만도 하지.
조용히 납득하던 에드가 벤의 뒷말을 곱씹고는 뒤늦게 답했다.
“난 이미 쉬고 있다만.”
“몸만 쉬고 있지, 마음은 쉬지 않고 있잖나. 아무래도 마왕성이라는 공간 자체에서는 심적 부담감을 해소하기 어려운 모양인데, 잠시라도 좋으니 마왕성을 자체를 벗어나서 좀 쉬고 오라고.”
“……하지만.”
“어차피 마계 전체가 휴식을 취하는 분위기라 성을 나간다 해도 마왕님께서 뭐라 하실 일은 없을 텐데도?”
그런가? 에드의 눈이 흔들렸다.
그렇지 않아도 술이 마시고 싶었는데. 정말 외출 요청 한번 해볼까.
“……그…럴까.”
결국 유혹에 무너진 듯 은근한 긍정이 나왔다.
***
벤의 말대로 외출 요청은 쉽게 받아들여졌다.
에드는 그길로 첫 번째 도시를 향했다. 사냥대회를 벌이며 마물을 한바탕 청소했기에 가는 길은 상당히 쾌적했다.
그리하여 빠르게 첫 번째 도시에 도착한 그는 곧장 눈에 띄는 술집에 들어가 자리를 잡고 앉았다.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그가 알게 된 진실은 생각보다 더 무거웠다.
‘데온 님께서 군단장들을 죽여 오고 있었다.’
덕분에 저를 멀리한 이유 역시 알게 되었으나, 에드는 전혀 기쁘지 않았다. 갑작스럽게 닥쳐온 진실이 폭풍처럼 저를 이리저리 휘몰아치고 있었다.
‘데온 님은 마왕님을 죽일 생각이시다.’
군단장을 죽이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나를 멀리하신 이유는 또 무엇일까.
답은 하나였다. ‘마왕을 죽이기 위해.’
군단장은 사전 작업일 뿐, 진짜 목적은 마왕님이다. 그래서 데온 님은 두 분 모두를 모시는 나를 멀리하신 것이다.
“어떡하지…….”
침음이 새어 나왔다.
이를 알려야 하는지, 침묵해야 하는지, 그도 아니면 데온 님을 도와야 하는지……. 에드는 어느 것도 감히 선택할 수 없었다. 그가 저를 죽이는 대신 ‘멀리하는 것’을 택했기에 더 그랬다.
멀리하며 위험 요소를 남겨둘 바엔 죽이는 편이 더 쉬울 텐데도, 그는 저를 살려두었으니까.
제게 던져진 일말의 얄팍한 배려와 정을 배신하고 싶지 않았다. 잊을만하거나 포기할만하면 돌아오는 따스함 역시도.
“말릴 방법은… 없나.”
가능하다면 데온 님을 말리고 싶다. 에드는 저를 선택의 갈림길에 세우는 지금의 상황이 너무 불편하고 버거웠다.
그래서 술을 연신 들이키며 끙끙 앓는데, 앞에 누군가 앉았다.
“뭔가 고민이 있는 것 같은데.”
“……에이가.”
“내게 말해봐. 어쩌면 해결이 가능할 수도 있잖아? 누군가를 말리는 것이라면 내 전문인데.”
들었군.
첫 번째 도시가 작은 것도 아니고, 그냥 눈에 띄는 아무 술집에 들어가는데 왜 자꾸 마주치는 건지.
에드가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든 말든 인큐버스가 꼬리를 살랑이며 눈을 휜다. 그게 썩 마음에 들지 않아 에드는 부러 딱딱하게 굳은 음성을 내었다.
“네가 무슨 수로?”
“몰랐어? 나 이래 봬도 정원 관리 보조로 마왕성에 자주 드나드는 몸이거든. 네 인맥이야 폭이 좁으니 보나 마나 마왕성의 인물일 테고. 어때, 도움 될 것 같지 않아?”
“…….”
“보안 문제 때문이라면 자세한 설명은 안 해도 좋으니 누구에게, 무엇을 그만두게 말려야 하는지 정도만 얘기해봐.”
결국 그게 다 말하는 셈 아닌가?
황당하다는 듯 에이가를 본 것도 잠시, 혼자 지금의 상황을 해결하기엔 역부족이라는 것을 아는 에드는 일말의 희망에 기대어 머릿속에서 천천히 말을 고르며 입을 열었다.
지금까지처럼 그저 혼자 묵묵히 버티고 기다리기엔, 그는 상당히 지쳐 있었다.
***
연회 마지막 날 겸, 사냥대회 결과 공개 날.
데온은 미친개들의 숙소에서 함께 간식을 먹고 있었다.
참석? 그딴 건 개나 주라지. 연회 내내 좋은 일이 일어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는데, 내가 뭐하러 거길 가겠는가. 미친 것도 아니고.
그저 숙소에 차곡차곡 쌓인 이불 뭉치에 푹 기댄 채 코앞에 내밀어진 간식을 날름 받아먹었다.
“오, 이거 맛있다.”
“그렇습니까? 대장 많이 드십쇼.”
“야야, 그거 내놔. 대장이 맛있대잖아.”
“응? 어어, 가져가 다 가져가. 입 안에 있는 것도 줄까?”
“그것까진 필요 없고.”
데온의 앞에 그가 맛있다고 했던 간식 종류가 우르르 쌓였다. 이를 눈으로 훑던 데온이 아무거나 집어 입에 넣는다. 우물거리는 뺨에 기분 나쁠 정도로 훈훈한 시선이 들러붙었다.
“……뭘 봐?”
“아닙니다.”
“어휴, 우리 대장 정말 잘 드시네. 이것도 드셔보십쇼.”
“이것도!”
이거 다 먹으면 배 터질 것 같은데.
곤란한 눈으로 앞에 쌓인 간식 더미를 보다가 고개를 들었다. 이 녀석들을 보고 있자니 문득, 첫날의 사냥대회 건이 떠올랐다.
“그런데 말이야.”
“예?”
“사냥대회 첫날에, 상당히 많이 잡았던데.”
“아, 그랬죠. 합산되어 올라가는 줄 알았는데, 따로따로 표기도 되는 거였습니까?”
“그건 아니고, 마왕이 알려주더라고. 어떻게 한 거야?”
이곳은 마계고, 마물들의 수나 질도 인간계에 비해 상당히 높다.
계산상, 미친개들의 수준으로 그렇게까지 많이 잡는 것은 불가능할 텐데. 대체 무슨 수를 쓴 건지.
의문은 금방 풀렸다.
“눈치를 보니까 마물 크기에 관계없이 ‘수’만 세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토끼 수준의 자잘한 놈들 위주로 몰이사냥을 했습니다.”
“……화면에서는 큰 놈들을 상대하던데?”
“그거, 그거 아닙니까? 가장 멋진 부분만 뽑아서 보여주는 거!”
“큰 놈들은 몇 번 상대 안 했는데도 그 장면이 나온 걸 보면 멋진 부분만 뽑아서 보여주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어쩐지 돌아온 마왕이 마력석을 하나하나 길게 살피고 있더라니.
하긴, 대충 아무 장면이나 뽑아서 보여주고 결과를 발표하는 거였으면 그렇게 오래 살피진 않았겠지.
이 새끼들, 잔머리 하나는 좋아가지고. 잘했네.
“설마, 다른 군단도 그런 식으로 사냥을 한 건가?”
“아무래도 그렇지 않을까요?”
“보니까 지나가다 마주친 다른 몇몇 군단들도 자잘한 놈들 위주로 쫓던데…….”
그래서 그렇게 많은 수를 기록하는 게 가능했던 거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