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reincarnated with an S-class constellation RAW novel - Chapter 92
92화. 짐승의 길 (1)
그것은 여러 동물이 뒤섞인 듯한 모습을 지닌 괴물이었다.
사자 같기도 했고, 곰 같기도 했고, 표범 같기도 했다. 얼핏 보기에는 공룡 같기도 했다. 길게 찢어진 입에서는 육식수의 송곳니가 엿보이고 있었다.
특징적인 건 그 머리에 나 있는 열 개의 뿔이었다. 불규칙하게 뻗어 있는 그 뿔들은 마치 악마의 뿔처럼 보였다.
그리고 크기가 어마어마했다.
어림잡아 50미터는 되는 것 같았는데, 아무리 봐도 육상에서 움직일 수 있는 덩치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괴물은 버젓이 가상의 바다에서 나와 움직이고 있었다.
‘느낄 수 있어.’
강유진은 저런 괴물들에 대한 지식이 별로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저건 폭력적인 지배의 상징이다.
“천상운!”
“…….”
무너지는 건물들을 피하며 강유진이 목소리를 높였지만, 천상운은 대꾸하지 않고 짐승의 머리를 향해 도약했다.
그리고 뒤랑달로 그 뿔 중 세 개를 잘라 낸 뒤, 얼굴에 나 있는 돌기를 발판 삼아 섰다.
그 모습은 마치 새롭게 돋아난 뿔처럼 보였다.
“다니엘서에 의하면 눈과 입을 지닌 작은 뿔이 세 뿔을 뽑아내고 나타난다고 했었지. 그 작은 뿔이 성도들과 싸워서 이긴다고.”
“천상운……!”
“그동안의 연구를 통해 완성된 술식으로…… 내가 그 뿔 역할을 할 수 있게 되었지.”
확인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저 거대한 짐승은 이미 천상운의 지배하에 있었다.
그리고 천상운 또한…… 거대한 짐승에서 막대한 힘을 받고 있었다.
“봐라. 모든 것을 짓밟아 복종시키는 힘을.”
천상운이 뒤랑달을 치켜들었다.
그러자 그 끝에서 빛이 맺히더니, 하늘로 솟구쳤다.
빛은 포물선을 그리면서 남쪽으로 날아갔고, 잠시 후 멀리서 폭발음이 들려왔다.
“남쪽에서 오고 있던 제갈금과 원필소의 병력을 날려 버렸다.”
“……!”
“다음에는 기회를 엿보고 있는 신민유를 처리해야겠지.”
“멈춰!”
강유진의 제지를 무시하고, 천상운이 다시금 뒤랑달을 치켜들었다.
북쪽을 향해 빛줄기가 날아가는 것을 보면서 강유진은 목소리를 높였다.
“판데모니움과 싸운다면서 당신은 인간한테 먼저 그 힘을 쓰는 건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군단을 만들려면 필요한 희생이야.”
“미쳤군.”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지.”
천상운의 얼굴 표정은 결연했다.
그것은 마치 흔들리지 않는 신념으로 무장한 기사 같은 표정이었다.
“그러면 이제 너를 처리하지, 강유진.”
“……!”
“네 스킬 한 방에 이 짐승이 소멸될 가능성이 있으니까 말이야.”
강유진은 이를 악물었다.
각성 스킬 [일체 분쇄]는 저 짐승을 소멸시킬 수 있는 비장의 카드다.
하지만 강유진의 육체 능력으로도 50미터 크기의 괴물 위로 뛰어올라 주먹을 휘두른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주위의 고층 건물들이 다 무너져 내렸기 때문에 발판으로 삼을 곳도 없었다.
만약 발판으로 삼을 곳이 있다고 해도, 강유진이 접근하는 걸 천상운이 용납해 줄 리가 없었다.
“너에게 승산은 없다.”
천상운의 차가운 목소리가 머리 위에서 울려 퍼졌다.
* * *
“어어억!”
지하로 추락하면서 석태준은 비명을 질렀다.
방금 전까지 천상운의 부하들하고 전투를 벌이고 있었는데, 갑자기 주위가 물바다가 되더니 거대한 짐승이 출현하면서 땅이 한차례 더 무너졌다.
“우, 우읍……!”
그냥 땅이 무너지기만 한 거라면 그나마 나았겠지만, 문제는 주위에 물이 가득했다는 점이다.
석태준은 물에 휩쓸린 채 지하 공간으로 떨어졌다.
‘큰일 났다……!’
여기저기 부딪치면서 물에 휩쓸려 가다 보니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강유진 같은 근력이 있었다면 어떻게든 뛰쳐나올 수 있었겠지만, 석태준의 힘으로는 불가능했다.
‘이거 잘못하면 죽겠…….’
주위도 깜깜해서 뭐가 뭔지 도저히 알 수 없고, 물 밖으로 빠져나갈 수 없었다.
그래도 석태준은 포기하지는 않았다. 산소 부족으로 생명의 위기를 느끼고 있었지만, 계속해서 발버둥 쳤다.
오른손에 잡고 있던 뒤랑달 레플리카도 내팽개치지 않고 여기저기 휘둘렀다. 어딘가에 박히면 그걸로 지탱할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하지만 이곳저곳에 부딪치기만 할 뿐, 물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다.
‘윽…….’
힘이 다하기 직전, 마지막 힘을 다해서 팔을 뻗었다.
그 순간, 무언가가 손목을 꽉 붙잡았다.
“……!”
강한 힘으로 끌어올려졌다.
순식간에 물 밖으로 나왔고, 숨을 쉴 수 있게 되었다.
“헉, 커헉, 헉!”
주저앉아 급하게 숨을 쉬었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는 않지만, 어쨌든 물 밖으로 나온 것 같았다.
“잘했어.”
그리고 목소리가 들려왔다.
“팔을 뻗지 않았으면 붙잡을 수 없었을 거야.”
차분한 남자 목소리였다.
하지만 어두워서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누, 누구시죠?”
“일단 이쪽으로 와. 자칫하면 붕괴에 휩쓸릴 수 있으니까.”
그 남자는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고 팔을 잡아끌었다.
“혹시 이현제 씨 쪽 사람인가요? 아니면 제갈금 씨 쪽?”
“…….”
“저기, 어디로 가는 거죠?”
“…….”
석태준이 아무리 물어도, 그는 아무런 대답도 해 주지 않았다.
조금 불안해지기 시작했을 무렵,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석태준.”
“제 이름은 어떻게…….”
“강유진을 도와줘.”
그 말을 듣고 석태준은 몸을 움찔했다.
“그 녀석은 정말 많은 걸 할 수 있는 놈이지만…… 그 녀석 혼자만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 있으니까.”
“…….”
“너 같은 사람이 도와주면, 그 녀석에게는 큰 힘이 될 거야.”
그 말을 듣고.
석태준은 그렇지 않다고 대답하려고 했다.
자신은 강유진보다 한참 약하다. 이죽헌 같은 기술이 있는 것도 아니고 주민하 같은 지혜가 있는 것도 아니다.
이죽헌처럼 열등감을 느끼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자기 분수는 알고 있다.
그냥 평범하기 그지없는 자신이 어떻게 강유진처럼 대단한 사람의 힘이 되어 줄 수 있을까.
그건 너무 분수를 모르는…… 거만한 생각 아닐까.
“저는…….”
“쓸데없는 생각하지 마, 석태준.”
석태준의 말을 끊으며, 그가 말했다.
“너는 어떻게 하고 싶은데?”
“…….”
어떻게 하고 싶은가.
그건 굳이 생각하지 않아도 답이 나온다.
“강유진 씨의 힘이 되고 싶어요.”
“그거면 충분해.”
어째서일까.
어두워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그가 미소를 지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쪽이야.”
그가 석태준을 자기 앞으로 끌어당겼다.
그리고 등을 살짝 밀었다.
“이곳에서 네가 할 일이 있어.”
“제가 할 일이요?”
“그래.”
그가 고개를 끄덕이는 기척이 느껴졌다.
“네 역할을 하도록 해. 네가 하고 싶은 대로.”
“내 역할…….”
“부탁한다.”
아무래도 앞쪽에는 무슨 기계 설비 같은 게 있는 것 같았다.
어둠 속에서도 뭔가 기계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고, 모니터 불빛 같은 것도 새어 나오는 것 같았다.
“저기, 여기서 어떻게…….”
석태준은 다시 고개를 돌리며 입을 열었다.
“어?”
이상한 일이었다.
방금까지 가까이 있었을 그 남자의 기척이, 어디서도 느껴지지 않았다.
* * *
– 너무 대단한데.
– 그러게. 천상운이 너무 엄청난 힘을 손에 넣었네.
– 방금 그 공격, 엄청난 에너지양이었어.
– 저런 힘을 손에 넣었으면 판데모니움하고도 싸워 볼 만하지 않을까?
– 수도권뿐만 아니라 한국의 계약자들은 전부 천상운에게 복종할 수밖에 없겠네.
– 다들 좀 호의적이네? 저 힘으로 같은 인간들부터 먼저 공격했는데 말이야.
– 그러게. 일방적인 학살이었는데.
– 일방적 학살이 아니라 서로 죽고 죽이는 전쟁을 하면 괜찮다는 거야?
– 그 부분을 생각하지 않더라도, 조금 문제의 소지는 있어.
– 그래. 저건 어쨌든 성경에 나오는 악의 짐승이야. 천상운이 지배해서 얌전해진 상태여도 말이야.
– 그런 존재의 힘을 빌려서 싸운다고 하면…… 이미지가 별로 좋지 않지.
– 우리들이야 별 상관없지만, 서양 쪽 성좌 중에서는 한국 전체를 악마 같은 집단으로 규정하는 성좌도 나올 거야.
– 유럽의 계약자 조직 중에서도 한국을 공격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겠지.
– 뭐 천상운도 그건 알고 있을 테지만.
– 그런 걸 우리가 걱정해 줘야 하는 거야? 그냥 구경이나 해.
채팅방에서 대화를 나누면서, 금각은 입술을 깨물고 관측기 화면 속의 짐승을 쳐다봤다.
아무래도 저건 폭력적인 지배를 상징하는 원초괴이의 일종인 것 같았다.
그것도 아종 같은 게 아닌 ‘진짜’다.
방금 천상운이 쓴 힘은 마법 같은 게 아니다. 남을 짓밟고 집어삼킨다는 개념을 에너지화하여 방출한 것이다.
그것은 정말로 세상을 지배할 수도 있는 힘이었다.
– 어쨌든…… 이제는 강유진도 끝인가.
– 그러게, 승산이 없네.
– 그 각성 스킬로 때리면 되는 거 아닌가?
– 아무 곳이나 때린다고 되는 게 아닌 것 같던데.
– 머리나 몸통 같은 곳의 포인트를 정확히 때려야 하는 것 같더라.
– 천상운이 그걸 허용하겠냐고. 게다가 저렇게 커다란 놈인데 불가능하지.
– 석태준하고 이죽헌, 주민하는 방금 땅 무너질 때 거기에 휘말린 것 같고, 이현제도 전투 불능이고…….
– 다 끝났네 뭐.
– 그동안 강유진 보느라 재밌었는데, 기분이 씁쓸하네.
– 그러게. 나도 좀 아쉽다.
– 어쩔 수 없잖아. 나중에 또 재미있는 놈이 나오겠지.
채팅방의 성좌들은 강유진 일행의 패배를 기정사실처럼 말하고 있었다.
강유진이라면 어떤 역경도 이겨 낼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면서 응원하는 게 채팅방의 요즘 분위기였지만…… 이번에는 상대가 너무 압도적이었다.
그래서 다들 체념한 듯이 말하고 있지만, 여느 때보다 발언 하나하나에서 아쉬움이나 안타까움이 강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 그럼 이번 시나리오는 천상운이 승리를 거두고 짐승의 힘으로 새로운 세상을 열기 시작했다는 결말로 끝나는 건가.
– 그래, 강유진 일행은 그 시나리오에서 안타깝게 패배한 조연으로 퇴장해 버리는 거지.
그리고.
마침내 관측기 화면 속에서 천상운이 강유진을 향해 뒤랑달을 치켜들었다.
* * *
“죽어라, 강유진.”
천상운의 목소리를 들으며, 강유진은 온몸의 힘을 끌어올렸다.
방금의 그 공격이 떨어지기 직전에 몸을 날려서 피할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강유진도 알고 있었다. 방금 천상운이 펼친 두 번의 공격을 되새겨 볼 때, 회피에 성공할 확률은 0퍼센트에 가깝다는 걸.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유진은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0퍼센트에 가깝다고 해도 완전히 0퍼센트인 건 아닐 테니까.
만약 특대 가호가 다시 한번 부여되면 확률이 더 올라가겠지만, 지난밤에 부여되고 24시간이 경과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특대 가호는 기대하기 어려웠다.
공격이 명중된 순간 성좌무구가 발동하면 좋겠지만, 그것도 기대할 수는 없다.
그냥 숨통이 끊어지는 게 아니라 육체가 소멸해 버릴 것 같았으니까.
‘그래도.’
강유진은 절망하지 않는다.
마지막까지 발버둥 칠 생각이었다.
‘위대하신 분…… 부디 나에게 힘을!’
그렇게 생각하면서, 강유진은 눈을 부릅뜨고 천상운을 노려봤다.
천상운의 뒤랑달이 강유진을 향했고, 그 끝에서…….
“……!”
하지만, 그 순간.
천상운의 눈이 갑자기 커졌다.
뭔가 믿을 수 없는 것을 봤다는 듯이, 다른 곳을 보면서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어째서, 네가…….”
강유진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땅을 박차고 달렸다.
어느 정도의 의미가 있을지는 모르지만 일단 움직이고 봐야 할 것 같았다.
“……!”
허를 찔린 천상운이 다시금 강유진을 향해 뒤랑달을 겨눴다.
그리고 그 순간, 거대한 벼락이 천상운에게 꽂혔다.
‘이현제……!’
시야 끄트머리에서, 만신창이가 된 이현제가 땅에 쓰러진 채 한쪽 팔만 치켜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마지막 힘을 쥐어짜서 천상운을 방해한 것이다.
그리고 그 덕택에, 비로소 닿을 수 있었다.
“강유진 씨!”
땅이 무너진 틈새에서, 뭔가가 날아올랐다.
날개 달린 사자, 첫 번째 짐승의 대용품.
괴물들의 어머니인 에키드나의 자식이지만, 지금은 가장 오랜 동반자 중의 하나.
키메라가 석태준을 등에 태운 채 날아오르고 있었다.
“너무 커졌잖아!”
강유진은 그렇게 소리치며 도약했다.
키메라는 원래 사자보다 큰 몸집을 지니고 있었지만, 지금은 몸길이가 5미터는 넘어 보였다.
“왠지 커졌어요!”
“크어어엉!”
석태준의 말에 대답하듯이 키메라가 울부짖었다.
그 등에 올라탄 채 강유진은 팔을 뻗었다. 그러자 석태준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무기를 건네주었다.
창으로 개조한 뒤랑달 레플리카를.
“강유진……!”
이현제의 마지막 벼락을 맞고도 천상운은 멀쩡했다.
다만 그 덕분에 천상운이 뒤랑달을 다시 치켜드는 게 조금 느려졌다.
그렇기 때문에 시간을 벌 수 있었다.
“하아압!”
전속력으로 날아오르는 키메라 위에서 전력을 다해 뒤랑달 레플리카를 투척한다.
개조 인간의 근력을 최대한 활용한 투창이, 천상운의 손에서 뒤랑달을 튕겨 낸다.
모조품이 원본을 떨어뜨리는, 아이러니한 상황.
“강유진……!”
물론 이게 큰 의미가 있는 건 아니다.
뒤랑달이 없다고 해도 방금 사용한 권능은 얼마든지 사용할 수 있을 테니까.
뒤랑달은 그냥 익숙한 무기이기 때문에 조준용으로 사용했을 뿐일 것이다.
천상운은 그냥 손짓만으로도, 어쩌면 눈짓만으로도 그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가능성이 높다.
다만 천상운은 허를 찔린 상태였다.
뒤랑달 대신 손을 치켜들어 공격을 시도할 때까지, 아주 잠깐이나마 빈틈이 생길 수밖에 없다.
“강유진 씨, 가세요!”
“크르르르르!”
어느새 키메라는 네 번째 짐승의 머리 높이까지 상승해 있었다.
그 위에서 강유진은 주먹을 꽉 쥐었다.
예전에 천무혁을 쓰러뜨렸을 때도 이렇게 셋이서 공중을 날았던 것을 떠올리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