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sorry I went to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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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고 받은 원고를 출력한 건 충동적인 일이었다. 사장이 그동안 원고 출력하는 것 가지고도 인색하게 굴어왔기 때문이다.
‘마음 같아선 프린터도 부숴버리고 사무실을 난장판으로 만들고 싶었지만, 되겠냐.’
소심한 사보타주의 결과인 원고를 가방에 처넣곤 바로 퇴근했다.
주말은 바빴다.
실업급여 신청 요강과 구직 사이트를 살폈다. 자기소개서 파일도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열었다.
문과라서 죄송한 사학과 학사.
경력도 학력도 그저 그런 서른두 살.
맥주 한 캔 따 놓고 자소서 양식을 앞에 두자 절로 딴생각이 났다. 맥주를 비운 정진은 가방 속에서 출력한 원고를 꺼냈다.
(무사이 지음)
‘뭐지, 판타지인가? 저자 이름도 닉네임 같은데.’
오래되고 영세한데다, 소설은 안 내는 회사를 어떻게 알고 투고했는지. 출판사 이름을 잘못 보고 보낸 건지도 몰랐다.
환빠 아재들의 집요한 투고에 단련된 정진이었기에, 판타지 정도야 가벼운 마음으로 검토를 시작할 수 있었다.
의외로 글 자체는 꽤 재미있어서, 하루를 꼬박 써 끝까지 읽었다.
그런데 완결이 아니었다.
‘이게 1부 끝이야? 원고지 6천 매나 써놓고?’
뒤에는 저자의 추신이 달려 있었는데, 수기로 먼저 쓰고 한글파일로 옮겼는지, 원고를 ‘받아 옮겨’ 썼다고 해 놨다. 글 자체를 무려 여덟 번이나 고쳐 쓴 거라고.
‘여덟 번?! 끈기가 대단하다.’
원래 분야가 다른 원고, 기준 이하의 투고자에겐 거절 메일조차 안 하는 게 관례였다. 하지만 이 저자는 글은 너무나도 공을 들여 쓴 것이 보여서 외면하기가 어려웠다.
원고를 다 읽은 정진은 저자에게 답장을 보냈다. 금세 회신이 와 몇 차례 메일을 교환하며 조언을 보탰다.
물론 정진은 소설 원고를 보는 편집자가 아니기 때문에, 해당 분야 원고는 황금*지나 자*과 모* 같은 출판사에 투고해 보라는 친절한 안내까지 했다.
‘그렇게 끝난 얘긴 줄 알았는데.’
되도 않는 동정심을 부린 결과로 이렇게 얼척없는 답이 다시 올 줄은 몰랐지. 새벽 세시에.
‘이 저자 혹시 퇴짜 맞은 줄 모르는 건가?’
[‘언젠가 뵐 날이 있길 바라며, 건필하십시오.’] 로 끝낸 메일은, 얼핏 보면 거절로 안 보일 수 있겠지만… 보통 그런 걸 자길 도와준단 뜻으로 이해하는지.‘알게 뭔가.’
메일앱을 닫은 정진은 핸드폰을 집어넣었다. 그러자 무슨 글자 같은 게 눈 앞을 스쳤다.
[―전언이 수신완료 되었습니다.]“웬 헛것이 다 보이고.”
정진은 머리를 털털 흔들었다. 강에서 센 바람이 불어와 좀 정신이 났다. 그리고는 다리를 마저 건너가려 할 때였다.
동작대교의 가로등이 일제히 꺼졌다. 드문드문 불이 켜졌던 강 건너 아파트촌도 완전한 어둠에 잠겼다.
“어?”
움직이지도 않았는데 난간 밖으로 몸이 기우는 것 같았다. 불길하게 차오른 강물이 인력을 지닌 듯 검게 일렁였다.
물은 싫었다. 나쁜 일은 항상 물에서 일어났다. 한강 다릴 걸어서 건너다니, 정말 취한 거다. 제정신이면 그런 짓은 안 했다.
‘누가 보면 자살하려는 줄 알겠어.’
실직으로 인한 비관자살 기사가 나는 건 사양이었다.
정진은 퍼뜩 난간에서 물러나려 했지만, 얽매어오는 물의 기운을 벗어날 수 없었다.
순식간에 강으로 몸이 쓸려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