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sorry I went to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69
오페라극장 살인사건 (1)
아슬란은 성정이 차갑고 잔인하긴 했지만, 쾌락살인마 같은 타입은 전혀 아니었다.
실제로 만나본 지금도 인상은 변하지 않았다.
‘지난 원고에서 전쟁 때 벌인 행적 보면, 사람 목숨을 하찮게 여기는 놈이기야 하지. 잔인한 행동도 서슴지 않고.’
하지만 그것은 비틀어진 관념 때문에 비롯된 행동이지, 살인 자체에 쾌락을 느낀다는 묘사는 한 줄도 나온 적 없었다.
‘게다가 의 아슬란은 아서가 저보다 약한 사람을 죽이는 고통을 겪도록 하기 위해서, 더 이상 위협을 줄 수도 없는 암살자를 끊임없이 보내고 있어.’
살인이 고통스러운 일이라는 걸 마음으로부터 이해하고 있지 않고선 불가능한 종류의 괴롭힘이었다.
‘아슬란이 쾌락살인마일 가능성은 낮아.’
원고가 묘사하는 아슬란은 일관적으로 결벽하게 구는 인물이었다.
전투 상황이 아닌 한 자신의 검에 고귀하지 않은 자의 피를 묻히는 것은 모독이라고 여겨, 상대의 신분이 걸맞지 않으면 대련을 수락하지도 않는 놈이었다.
키시온 기사단 소속 기사의 예의바른 도전을 그런 이유로 기각하는 인성 터진 장면이 지난 원고에 분명히 있었다.
‘제 나름대로는 신념 있는 악역이었잖아. 오로지 고귀한 혈통과 힘을 추구하고, 그 두 가지를 가진 자만이 옳다는 규율을 신봉하고.’
도대체 왜 저런 소문이 난 걸까?
앞으로 알아봐야 할 일이 점점 늘어나, 그에 비례하듯 편두통도 거세어지는 게 느껴졌다.
클레이오는 그 어느 때보다도 간절하게 타이레놀이 필요했다.
‘[경감] 마법식 쓸 줄 알면 뭐하나. 나한텐 적용을 못 시키는데. 쳇.’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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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이오는 진통제도 없이 두통을 견디며 기숙사로 돌아갔다.
마차 안에서 흔들리고 있자니 머리가 징징 울렸다. 화학과 약학에 대한 아무런 지식이 없는 21세기 사람이 바로 자신이라는 것에 대한 자괴감이 들었다.
‘내가 타이레놀 제조법만 알아도 떼돈을 긁어모을 뿐 아니라, 두통도 해결이 될 텐데. 후.’
오만떼만 잡생각에 시달리며 기숙사 계단을 터덜터덜 올랐다. 그런데 현관을 열자 그곳에는 의외의 인물이, 녹초가 된 클레이오를 기다리고 있었다.
성질 때문에 앉아있질 못해, 기숙사 응접실을 이리저리 초조하게 오가고 있는 프란이었다.
“네가 웬일로 여기에 왔어? 내일은 해가 서쪽에서 뜨겠네.”
“어딜 그리도 싸돌아다니고 있었냐! 병가를 냈단 놈이!”
“다닐 만 하니 다녔는데 이젠 정말 머리가 아픈걸.”
“…진짜냐?”
“진짜면 내일 이야기 할 수 있는 거야?”
“죽을 병 아니면 좀 앉아 봐.”
필드 트립 이후 프란은 한동안 학교를 쉬었다.
그 이후엔 ‘므네모시네의 문’이 열려 제베디의 수업이 쭉 휴강이었다.
그런 상황이니 방과 후에 자유연구시간을 보내야 하는 과제도 면제되어, 프란과 말을 나눈 지도 제법 되었다.
클레이오에게 데면데면 하던 프란의 태도는 180도로 달라졌다. 표정 역시 진지하다 못해 새하얗게 굳은 상태였다.
“도대체 무슨 일인데?”
“룬데인에서 줄지어 살인이 일어나고 있다. 어떻게든 해결을 해야겠어.”
“뭐?!”
클레이오는 길게 처진 눈이 휙 치켜 올라갈 만큼 놀랐다.
인민의 깃발 운영이나 노조 조직을 도와달란 소릴 했어도 이것만큼 놀라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 일이라면 자금을 기부할 의사도 있었다.
‘근데 웬 연쇄살인!?’
2왕자가 살인마일지도 모른단 뒤숭숭한 소릴 듣고 귀가해보니 이건 또 무슨 변고란 말인가.
지난 원고에선, 주요 인물들은 이런 흉악 범죄 따위완 전혀 연관되지 않았다!
“살인 사건이라면 내가 아니라 경찰에 먼저 가야 하는 것 아냐?”
프란이 응접실 테이블을 탕 내리쳤다. 그 서슬에 쌓여 있던 종잇장이 우수수 흩어졌다.
“오페라극장의 객석 안내 소년이나 꽃 파는 소녀 몇이 사라진들 경찰 놈들은 하나도 신경 안 써! 경찰국이 내 말을 들어먹으면 네게 왔겠냐! 피해자는 모두 평민들이다. 멍청한 경찰국 놈들, 사체가 발견 안 된 희생자는 실종자라고만 하니!”
프란은 이마에 핏대를 바락바락 세우며 흥분했다. 아무 이유 없이 저럴 놈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너는 이게 살인이라고 생각하는 근거가 있는 거겠지?”
“가을 초입에, 인쇄공 조합의 바틀비 씨가 찾아왔다. 극장에서 꽃을 파는 조카딸이 일주일째 집에 안 들어왔다더군. 그 애는 어린 두 동생을 돌보는 처지였어.”
프란은 그 모든 일을 겪고도, 여전히 노동조합에 도움을 보태고 있는 모양이었다. 한결같고, 이상에 헌신하는 인물.
‘목적이 과학적 진보가 되었든 노동자 권익 향상이 되었든 태도는 똑같구나. 본질은 안 변하네.’
“경찰이라고 했나? 제일 먼저 찾아갔지. 그 자식들이 뭐라고 지껄였는지 알아? ‘한창 나이 여자아이니 애인과 도피라도 했나 보지요.’ 이딴 개소릴 하며 귀나 후볐지.”
“…혹시 성흔은 안 써봤어?”
“넌 내 성흔이 만능인줄 아나 본데, 그건 원래부터 조금이나마 동조하는 마음이 있는 사람을 북돋우는 거지, 귀가 꽉 막힌 놈들의 귓구멍을 뚫을 수 있는 게 아냐. 하급 순경들이나 가난한 아이들 일에 신경을 쓸까, 서장 급만 돼도 요지부동이었다. 개새끼들.”
“고생이 많았구나.”
“내 수고가 문제냐! 결국 바틀비 양은 시체공시소에서 찾을 수 있었지. 훼손이 심해 팔목의 큰 화상 아니었으면 신원 확인도 불가능한 상태였다.”
“그런…!”
“그리고 그녀의 목덜미엔 독특한 에테르 반응이 있었어. 시체공시소엔 마법사 따위 배치되지 않으니 경찰국은 냄새도 못 맡고 있지 뭐야!”
클레이오는 프란의 쏘아져 나오는 말을 집중해 경청했다.
“수소문해보니 몇 달 전부터 그런 식으로 갑자기 사라진 사람들이 꽤 되더군.”
프란은 빠르게 설명을 해 나갔다.
바틀비 양을 발견한 뒤로도 그는 룬데인의 시체공시소 두 곳을 매일 찾아갔다. 거기에서 예의 인공적인 에테르 반응이 느껴지는 네 구의 신원 불명 사체를 더 발견할 수 있었다.
“어떤 사체는 목이 잘렸고, 어떤 사체는 물에서 발견 돼 부풀어 터졌고, 어떤 사체는 온 몸을 꺾어놨지만 그건 위장이었어. 동일범의 소행이다. 사람이 죽고 며칠이 지났는데도 안 빠져나가는, 그 이상한 에테르는 못 알아 볼 수 없어.”
비위가 약한 클레이오는 벌써부터 안색이 질려가고 있었다. 방비도 없이 알비온판 CSI에 갑자기 끌려 들어온 탓이었다.
하지만 혼란스런 와중에도 기본적인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건 잊지 않았다.
“그런데 프란, 3레벨 이상 검사만 쓸 수 있는 공용 스킬 [에테르 감지] 없이 어떻게 조사를 했지? 필드를 열어 에테르 반응을 추적하는 마법 역시, 마법식 슬롯이 세 개는 필요할 텐데?”
“타당한 의문이군. 내 에테르 감응력은 여전히 2레벨이지. 하지만 그 문젠 이걸로 해결 돼.”
프란은 쓰고 있는 금속 테 안경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이건 렌즈에 마석 수정을 씌우고 마석 동 안경테에 [감지]마법을 새긴 물건이야. 이번에 돈을 마련해 겨우 바꿨어.”
놀란 클레이오는 「이해」를 써서 프란의 안경을 자세히 살폈다.
[판별의 안경—등급: 최상품
—에테르를 감지하고 속성과 성질을 판별합니다.]
‘뭐야, 최상품이면 유물 아래잖아! 에테르 레벨도 낮은 놈이 별 걸 다 만드네!’
“그런 방법이 있을 줄이야….”
“원리만 알면 별 것 아니다. 나야 구현을 못 하니, 설계도를 그려서 가공전문 마법사에게 주문을 넣었다.”
프란의 설명에 어이가 없어진 클레이오였다.
‘참 쉽죠, 같은 소리 한다. 저 좋은 재능을 썩히고….’
“어쨌든, 경찰은 신원불명의 가난한 평민이라면 제대로 검시도 하지 않아. 한참 부패한 뒤라 판별 못한 모양이지만, 그 독특한 에테르 반응이 느껴지는 사체에는 공통점이 존재해. 온몸의 피가 빠져나가 있었다.”
클레이오는 디오네에게 받아 들어와, 봉투도 안 뜯고 소파 옆에 놔둔 소설책 를 흘끔 살폈다.
‘흡혈귀 소설이 베스트셀러더니 이젠 모방 범죄냐.’
“여론을 움직여보려 했지만, 정론지는 이런 이야긴 기사화하지도 않아. 3류 주간지들이나 기묘한 사체 얘길 떠들어대지. 경찰은 더 대단한 사람이 죽지 않고선 안 움직이려 들 거야. 네가 나서 줘야겠다. 수도의 영웅, 그 이름 좀 빌려 줘.”
딱 봐도 이건 클레이오의 역량을 넘어서는 일이었다.
어떻게든 빠져나가볼까 하던 클레이오는, 필드 트립 때의 일이 생각나 입을 꽉 다물었다.
그랬다.
프란이 죽다 살아난 밤, 이제껏 저 애가 겪은 일을 모두 듣고는 필요한 때에 도움을 주겠다고 클레이오 자신이 먼저 제안했다.
사람이 말을 했으면 지켜야 신뢰가 유지되는 법이다.
‘프란은 멜키오르까지 탐내고 있는 인재인데 이런 일로 어긋날 순 없어.’
이 정도로 언론과 출판이 발달해 있다면 프로파간다는 엄청난 무기가 될 것이다. 원래 선거에서도 캠페인의 실세는 공보국장인 법이다.
게다가 살인사건 자체도 문제다.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이상에는 원인이 있다.
지난 원고에는 등장도 않던 연쇄살인 범죄. 그것도 마법과 연관된 것이라면 가만히 좌시할 수 없었다.
‘후, 편집자 권한의 제한 시간이 조금만 더 길다면 를 자세히 읽어라도 볼 텐데. 그럴 수도 없으니.’
엄지와 검지로 미간을 꾹 눌러 뻑뻑한 눈을 좀 쉬게 한 클레이오가 잠시 후 고개를 들었다.
“내 이름을 빌려주는 일이야 어렵지 않아. 얼마든 팔아서 써도 돼. 하지만 그것만으론 이걸 해결할 수 없어. 경찰은 나에게도 특별히 협조적이지 않을걸.”
“왜지?”
“이제 막 기사 작위 하나 받은 전 평민의 명성이, 경찰국에서 백작가문의 이름보다 대단한 힘을 가질 것 같진 않거든.”
“……우리가 이미 성년의 나이에 이르렀는데도 부모의 이름으로 여전히 평가당해야 하다니.”
“성년이지만, 여전히 학생이지. 어차피 스무 살 전엔 어른 취급 받지도 못하잖아. 게다가, 학생이라 유리한 점 역시 있어.”
“도대체 뭐가?”
“손을 빌릴 동급생들이 널렸잖아. 운 좋게도 우리 해에는 유독 뛰어난 학생들이 많지.”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너도 굴러들어왔고. 근데 일단 왔으니까 어떻게든 붙여놔 보자. 뭐라도 되겠지.’
“알지 모르겠다. 학교엔 학생 치안 자치대라는 조직이 있는데, 학칙을 보면 ‘므네모시네의 문이 개방된 비상시에는 수도 전역에서 치안 유지 활동 가능’이란 조항이 있어.”
여왕의 정원을 파훼한 후에도 여전히 므네모시네의 문은 활성화된 채다.
이제 학교의 외부 결계는 수도방위대 소속 마법사들이 돌아가며 에테르를 주입해 기능을 유지하고 있다.
규정 적용이 가능한 상태란 뜻이다.
“일단은 여력이 되는 친구들을 모아 자체 조사를 해 증거를 모으면 어떨까. 확실한 증거가 있다면 당국도 더는 외면할 수 없겠지. 그 과정에서 문제가 생긴대도 치안 자치대 활동 규정으로 면피가 될 것 같다.”
프란의 얼굴에 드문 경탄이 떠올랐다.
머리가 좋은 그지만, 경험에서 우러나온 행정적 잔머리에서는 클레이오를 따를 수 없었던 것이다.
“학생 중 누가 치안 자치대 소속이지?”
“우리 학년에선 이시엘 키시온과 첼레스티스 탕페트 드 네쥬.”
프란을 얽을 생각으로 클레이오는 살살 미끼를 흔들었다.
우선은 믿음직스러운 이시엘과 호탕한 첼을 먼저 붙여 놓는 거다. 두 사람 다 정의감이라면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다.
‘그 두 사람이 오면 아서도 자동으로 따라오게 되지. 이렇게 갖다 붙여 줬는데도 제 사람으로 포섭 못 하면… 몰라. 아서 지 능력이 거기까지란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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첼은 두 번 생각하지도 않았다. 일단은, 야간 외출을 합법적으로 할 수 있다는 게 제일 강한 유인 요소였다.
“좋아! 안 그래도 문에 들어갔다 나온 후 침대에만 붙잡혀 있느라 등에 곰팡이가 피는 줄 알았다고!”
화상을 입고 독액에 맞은 상처가 이제 막 붙은 주제에 앞뒤 가릴 것 없이 승낙이었다.
“그런 사정이라면 나도 힘을 보태겠다. 증거를 확보해 경찰국에 넘길 수 있다면 정식 조사가 시작되지 않겠나?”
수도방위대에 붙잡혀 내내 보고서를 쓰느라 시달렸다는 이시엘 역시, 피곤하지도 않은지 의연히 참여의사를 표했다.
“나도! 이런 일에서 날 빼놓을 생각은 아니지?”
아서 역시 촐싹대며 들러붙었다.
자신보다 머리 하나는 큰 아서를 프란은 싸늘하게 밀어냈다.
물러서 있던 클레이오는 내심 한숨을 내쉬었다.
‘하긴. 공화주의자에게 왕자는 어느 놈이고 다 척결해야 할 지배계급의 일원이겠지. 껄렁한 저놈과 매사 진지한 프란의 기질이 잘 맞을 거 같진 않고.’
어쩌겠는가. 말을 물가까진 끌고 갈 순 있어도 강제로 물을 먹일 순 없는데.
‘그래도 부딪쳐 보다 보면 편견은 좀 없어지지 않으려나?’
하는 기대는 헛된 것일까….
안경을 치켜 올린 프란이 아서를 올려다보며 날을 세웠다.
“리오그난, 너는 치안 자치대 소속도 아니잖아.”
“그럼 치안 자치대원들의 친구 자격으로라도.”
“재미와 흥밋거리 따윌 찾아서 끼어드는 거라면 필요 없어!”
프란의 노성에도 아서는 말려들지 않았다.
단지 웃음기를 지운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숙이고, 자신보다 머리 하나는 작은 프란과 정중히 시선을 맞추었을 뿐이다.
뭐라고 화를 내려는 듯 입을 벌렸던 프란이 아서의 변모를 보며 말을 멈추었다.
“사람이 죽는 데 무슨 흥미고 재미가 있단 말이야. 죽은 사람은 다신 안 돌아와. 그런데도 경찰국 새끼들이 무거운 엉덩이 움직일 생각을 안 한다는데 어떻게 가만있어? 이럴 때 못 본 척 넘어가라고 검 배운 거 아니야.”
안경 너머 프란의 눈에 이채가 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