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in Character’s Little Sister RAW novel - Chapter (111)
외전 14. 우로보로스
집값이 떨어졌다고 시무룩해하는 동생과 달리, 이해기는 상심하지 않았다. 집값이 떨어지든 오르든 집은 집이다. 발 달려서 도망가고 그러지 않는다.
오염된 마기에 세상이 혼란스러워졌고 대마왕의 강림으로 세계가 반파된 후엔 폐허만 남았다. 사방 어딜 둘러봐도 이해기의 심상만큼이나 황폐하고 피폐했다.
멀쩡한 벽과 번듯한 지붕이 있고 사랑하는 형제들이 모두 살아 있으니 이보다 완벽한 집이 어디 있겠는가.
그래서 이해기는 번듯한 집에서 가족들을 위해 집안일을 할 수 있는 게 기뻤다.
예비 세최헌 이해기가 남아도는 체력으로 오전, 오후 하루 두 번씩 청소한 덕분에 이씨 남매의 구옥은 늘 깨끗했다.
그러나 그런 이해기가 손대지 않는 공간이 둘 있다.
하나는 이한생의 방이다.
이한생은 소중한 침실에 악마와 사기꾼의 출입을 불허했다.
이해기는 ‘네 방에서 벌레가 나오거나 냄새가 나는 순간 죽인다’로 응수했다.
화르세인지는 ‘절대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라 단언했고 그 말을 지켰다.
이해기가 보기엔 돼지 소굴이었으나 어쨌든 이한생은 냄새가 나지 않고 벌레가 출몰하지 않도록 방을 치웠다.
다른 하나는 이보배의 방이다.
방 청소 정도는 스스로 하겠다고 가장이 주장했고, 이해기는 받아들였다.
이보배는 나름 성실하게 방을 치웠으나 이 역시 이해기가 보기엔 뭔가 부족했다.
언젠가 대청소를 해야지.
그리 생각하던 회귀자는 형이 파괴 여행을 가서 심란해진 마음을 달랠 겸 벼르고 있던 계획을 실행했다.
“보배야, 내일 대청소할 건데 네 방에 들어가도 되니?”
“응.”
“옷장도 정리할 거야. 버리면 안 되는 물건은 빼놓거나 표시해 두렴.”
“알겠어.”
방주인 허락도 얻었겠다, 이해기는 거침없이 이보배의 방으로 들어갔다.
청소는 높은 곳에서부터 해야 하기 때문에 옷장 위 먼지부터 털었다.
‘이 옷장도 낡았구나. 화장대도 없고.’
늘 오빠들부터 챙기느라 자신은 뒷전인 여동생 때문에 이해기는 가끔 속상했다.
차라리 예전처럼 본인만 알면 얄밉더라도 걱정은 덜 될 거라 여기며 걸레로 옷장 위를 훑던 그의 손에 무언가가 걸렸다.
‘뭐지?’
이해기는 물체를 자신 쪽으로 당겼다.
먼지 구덩이에서 알이 굴러 나왔다.
크기와 모양은 타조 알과 비슷하고 껍데기엔 부활절 달걀처럼 알록달록하고 기하학적인 문양이 빼곡했다.
언뜻 보아선 어린아이 장난감 같지만 사실은 이런 먼지 구덩이에 방치되어선 안 되는 귀중한 히든 피스였다.
환수의 알.
믿을 사람 하나 없는 세계에서 회귀자가 너무나 갖고 싶었던 소환수를 품은 히든 피스.
정말 갖고 싶었지만 소중한 동생에게 양보했다.
자신의 선물이 먼지 가득하고 어두운 옷장 천장에 처박혀 있었단 사실에 회귀자는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상심이 컸다.
* * *
“서운하구나.”
‘갑자기 뭐래.’
작은오빠가 대청소를 했다 하여 공을 치하하려고 외식하러 나왔다. 외식 메뉴도 일부러 이해기가 좋아하는 양념게장으로 골랐는데 서운하다니?
이보배는 양념게장을 집어 이해기의 밥공기에 살을 쭉쭉 짜 넣어 주었다.
“청소하느라 고생하셨습니다. 많이 드세요, 이 사장님.”
그녀가 다른 오빠를 챙기면 ‘막내야, 나는?’ 하고 참견하는 이귀한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약간 쓸쓸한 기분이 들었다.
“공을 치하하는 자리에 술이 없으니 서운하다는 것 아니냐.”
화르세인지가 이보배를 나무랐다.
듣고 보니 맞는 말이라 이보배는 술을 주문했다.
“새우튀김도 내오거라.”
“게장 먹으러 왔는데 무슨 새우튀김이야.”
“날게는 비려서 싫다.”
‘낙지는 잘만 먹으면서.’
이보배는 새우튀김도 추가 주문하고 먼저 나온 술을 이해기의 술잔에 따라주었다.
“이제 됐지?”
게살 발라줘, 술도 따라줘.
이보배는 할 만큼 했다.
그런데도 이해기의 시무룩한 얼굴은 풀리지 않았다.
“왜 그러는데. 말을 해, 작은오빠.”
“환수의 알 말이다. 어떻게 그걸 그렇게 방치할 수 있니?”
‘내가 그걸 어디다 뒀더라.’
일단 보관 장소를 기억하지 못하는 부분에서 서운함 1점 먹고 들어간다.
이보배는 얌전히 게장 양념을 빨았다.
“네가 쓸모없다고 생각했어도 그렇지 오빠가 준 선물인데. 심지어 생물이잖니. 하다못해 따뜻하고 볕 잘 드는 곳에라도 보관했으면 내가 이리 서운하진 않았을 거다.”
짜고 맵고 단 양념을 쪽쪽 빨다 보니 혀와 뇌가 자극되어 보관 장소가 떠올랐다.
이보배는 입을 열어 변명했다.
“그게 원래는 이불이랑 같이 보관했는데, 이불 꺼낼 때마다 굴러떨어지더라구. 혹시 깨질까 봐 손이 안 가는 곳에 둔다는 게 그만. 내 방이 작아서 달리 둘 데도 없고.”
“그럼 가끔 들여다보기라도 해야지. 그 서늘하고 외진 구석에 처박혀 먼지 앉은 채로 방치되어 있는데 보는 내가 짠했다.”
얼마나 짠했는지 눈물까지 나더라며 이해기가 엄살떨었다.
이보배는 이해기의 말에 공감하지는 않으나 지은 죄가 있기에 눈치만 살폈다.
“포유류만 태교하는 게 아니다. 알도 부화하기 전까진 태교를 해. 환수의 알은 주인과 주위 환경을 분석해 적합한 형태로 부화하는데 지금 그 상황에선 어울리는 모습이 뭐겠니. 다듬이벌레나 바퀴벌레 말고 뭐가 나오겠니.”
“사기꾼 새끼가 밥 먹는데 역겨운 얘길 하는구나!”
칠흑의 대악마가 거론되자 대악마님 걷는 소리만 들어도 소름 끼쳐 하는 이한생이 정색했다.
“새우 잘 먹고 있으면서 새삼스레. 새우랑 바퀴랑 사촌인 거 몰랐냐?”
망나니의 눈이 왕밤만 해지더니 파르르 떨면서 잘 먹던 새우튀김을 응시했다.
양아치는 떨리는 손으로 새우튀김의 튀김옷을 벗겼다.
칠흑의 대악마와 다른 생김새에 안심하는 찰나.
“그거야 껍질이랑 다리 뗐으니까 달라 보이는 거고. 새우 다리랑 바퀴벌레 다리랑 비슷하다는 생각 안 해봤냐? 내륙 쪽 국가 중엔 새우랑 바퀴벌레랑 똑같다고 안 먹는 국가도 있어.”
“그, 그런!”
새우튀김을 독점하고 맛있게 먹던 이한생의 안색이 푸르게 변했다.
먹은 새우를 죄 게워낼 위기에 이보배는 이마를 짚었다.
“작은오빠가 막내 오빠 놀리는 거야. 남남이니까 안심하고 먹어.”
이보배는 새우와 바퀴벌레는 연관성이 없다는 사실을 검색해 막내 오빠에게 들이밀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사실을 알았어도 추락한 입맛은 돌아오지 않으니.
“입맛이 없다.”
체키빙 공자는 젓가락을 놓고 탄산음료로 목을 축였다.
그것도 까만 탄산은 칠흑의 대악마가 떠오른다고 투명한 탄산을 새로 주문했다.
이보배는 한숨을 쉬며 남은 새우튀김을 집었다.
사실이 아닌 걸 알지만 그런 얘기를 들으니 마찬가지로 입맛이 떨어졌다.
결국 새우튀김은 차게 식었다.
“진짜 놀려먹을 구실은 하나도 안 놓치지.”
이보배가 눈을 흘기자 이해기가 고개를 저었다.
“바퀴도 나름 먹을 만하단다.”
“거짓말.”
“진짜야, 먹어봤거든.”
“우웁!”
진짜 먹어봤다는 충격 증언에 화르세인지의 약한 비위가 버티지 못했다.
망나니가 후다닥 화장실로 달려갔다.
이보배는 식당이 붐비지 않아 주위 식탁이 비어 있는 걸 감사히 여겼다.
“바퀴는 언제 먹어봤어?”
“세상이 마기에 오염되었는데 식량이라고 멀쩡했겠니. 차원 상점에서 식량을 구매할 수 있긴 했지만 포인트가 없어서 못 사는 사람이 많았고.”
이해기가 게딱지에 하얀 쌀밥을 비비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빨간 양념이 실로 자극적이었다.
그가 기억하는 미래는 언제나 무채색이었다. 무채색의 기억에서 붉은색만이 선명했다. 찢어진 세계와 세계가 흘린 피처럼 붉은 하늘, 죽어가는 사람들이 흘리는 피만이 유일한 색채였다.
“그 바퀴벌레 볶음마저 없어서 굶어 죽은 사람이 즐비했었다. 그런 데다 마기에 오염된 사람도 있으니 사람이 사람을 믿지 않았지. 같이 싸운 동료도 믿을 수 없어 5분씩 쪽잠을 자는데 유일하게 등을 맡길 친구를 가진 사람이 있었어.”
게장을 싫어하는 사람도 게딱지에 밥 비비는 걸 보면 침이 고이게 마련이다.
화장실에서 돌아온 이한생이 게딱지에 흥미를 보이자 이해기는 게장 비빔밥을 양보했다.
화르세인지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게장 비빔밥을 먹고는 인상을 찌푸렸다.
“비리다.”
“이 새끼는 잘해주면 꼭 지랄을 해.”
이해기는 이한생이 한 입 먹고 남긴 밥을 도로 가져와 자신이 먹었다.
이해기의 고소에서 씁쓸함이 느껴졌다.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른다.”
“그 친구가 환수의 주인이었다는 거지?”
“그래, 죽을 만큼 부러웠다.”
무슨 일이 있어도 주인을 배신하지 않고 나의 편이 되어주는 존재.
가족, 친구, 연인을 모두 잃은 이해기에게 환수의 주인은 질시의 대상이었다.
환수의 알은 회귀자가 독식하고 싶은 1순위 히든 피스였다.
그런 것을 동생에게 양보했더니.
“어떻게 그걸 그렇게 방치할 수 있니. 오빠는 많이 서운하구나.”
“방치한 건 미안한데, 솔직히 나는 그렇게 좋은 건지 잘 모르겠거든. 정 갖고 싶으면 작은오빠가 가져.”
“내 몸은 내가 지킬 수 있다. 널 위해 준 거란다.”
‘그렇게 미련이 뚝뚝 떨어지는 얼굴로 그런 말 해봐야 설득력이 없잖아.’
이보배는 한숨을 쉬었다.
회귀자는 정말 어지간히 환수가 갖고 싶었나 보다.
그렇게 갖고 싶어 한 것을 선물로 받아놓고 방치했으니 조금 미안했다.
“보물은 그게 얼마나 귀한지 아는 사람에게 주어져야 보물인 거잖아. 난 진짜 괜찮으니까 오빠가 가져.”
“보배야.”
이해기가 낮은 목소리로 자신을 부를 때면, 이보배는 돌아가신 아버지가 떠오르곤 했다.
이해기는 아버지보다 어머니를 닮았는데도 그랬다.
“네가 옳든 그르든, 네가 어떤 상황에 처했든, 네가 무엇을 하든 네 편이 되어줄 존재가 얼마나 귀한지 나도 알고 너도 알지. 그래서 더 네게 주고 싶은 거란다.”
“그런 식이면 나도 그래서 더 작은오빠가 가졌으면 하는데.”
“큰일을 대비하는 용사 이해기라면 양심 없이 가져갔겠지만 지금 이해기는 은퇴한 용사라서 말이다. 네가 가지렴.”
이해기는 잠시 자리를 비운 형을 떠올리며 온갖 감정이 뒤섞인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존재만으로 회귀자의 회귀 이유와 인생 계획을 말아먹은 대마왕께선 지금 무엇을 하고 계실지.
‘신나게 뿌셔뿌셔 하고 있겠지.’
이해기는 자리에 없는 형 생각을 지우고 눈앞에 있는 동생에게 집중했다. 언제나 대견하고 미안한 막냇동생에게 전폭적인 지지와 애정을 드러냈다.
“네가 누구니. 포션 마스터가 되고 엘릭서도 제작할 연금술사잖니. 몸조심해야지.”
“포션 말인데.”
이보배는 포션 얘기가 나온 김에 말을 꺼냈다.
“내가 순금 제작 레시피를 얻었잖아. 제작하려면 대장간 설비가 필요해서 사계절 설비에 신세 지기로 했거든. 근데 대장간이 경기도에 있대.”
“태워다 줄까?”
“현우가 오가는 시간 아까우니까 아예 거기에 머무르는 게 어떻겠냐고 그러더라고. 직원용 숙소가 있대.”
“현우가 계속 같이 있는 거라면 찬성이다.”
“돼지 주제에 외박이라니 건방지구나. 하지만 이성 교제를 겸하겠다니 허락하겠노라.”
“그게 아니고.”
이씨 집안의 가장은 이보배다. 노느라 외박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일하느라 외박하겠다는데 허락받을 필요는 없었다.
이보배가 얘길 꺼낸 이유는.
“나 없다고 막내 오빠 머리 때리지 마.”
잠시 자리를 비웠던 사이 벌어진 일이 어마어마했다.
이보배가 웃으며 뼈를 때리자 이해기가 면구한 듯 고개를 떨궜다.
* * *
게장은 비려서 안 먹고 새우튀김은 사기꾼 때문에 못 먹었다.
이한생은 집에 가는 내내 배고프다고 투덜거리다 계란빵 노점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결국 체키빙 공자님 배를 채울 겸, 식후 디저트 삼을 겸 계란빵을 사 집에 오니 거실에 못 보던 것이 있었다.
‘알이다.’
TV 옆 햇빛 잘 들어오는 장소에 환수의 알이 놓여 있었다.
‘아까 왜 못 봤지.’
하도 자연스럽게 놓여 있어서 퇴근하고 돌아왔을 땐 인식하지 못했다.
이보배는 환수의 알을 쓰다듬었다. 먼지 구덩이에서 꺼냈다고 들었는데 깨끗했다.
“내가 열심히 닦았단다.”
얼마나 공들여 닦았는지 알 겉면이 매끈매끈 반질반질했다.
“이걸로 계란빵 만들면 먹다가 배부르겠구나.”
망나니가 계란빵을 먹으며 감탄했다.
“어허, 이건 먹는 게 아니야.”
“성신이 만드신 세계에 딱 저만한 알을 낳는 조류가 있는데, 알 요리 중에서 최고의 진미로 쳤느니라. 솔직히 맛이 궁금하군.”
화르세인지는 계란빵 기름이 묻은 손으로 알을 어루만졌다. 매끈매끈 반질반질한 겉면에 기름진 손자국이 남았다.
“화르세인지, 말로 할 때 손 떼렴.”
‘삶는 데 몇 시간 걸리나 궁금한데.’
이보배는 작은오빠를 배려해 입을 다물었다. 대신 다른 호기심을 풀기로 했다.
소환수의 알을 처음 받았을 때 물어봤어야 할 질문이었다.
“근데 이건 언제 부화해?”
알을 받을 당시엔 이해기에게 화풀이를 하느라 물어보지 못했다. 어지간해선 깨지거나 썩지 않으니 잘 보관해 두란 말만 들었다.
‘1년 되어가는 것 같은데.’
계란이 병아리가 되려면 대략 21일 정도가 소요된다.
혹시나 싶어 타조 알을 검색해 보니 40일 정도였다.
평범한 알이었다면 썩어 악취를 풍겼을 것이다.
“5년이랬나.”
“뭐?”
생각한 것보다 긴 기간에 이보배가 깜짝 놀랐다.
“부화기에 넣어봤는데도 부화할 기미가 보이지 않아서 이것저것 시도해 보고, 결국엔 포기했는데 갑자기 부화했다고 들었다.”
“그럼 부화 조건을 모른다는 거네?”
이보배는 답답한 마음에 환수의 알을 두드렸다.
이래서야 공중 부양 황금 피라미드처럼 언제 얻을지 기약 없는 공수표나 마찬가지였다.
“짐작 가는 게 있긴 하단다. 알에서 부화한 환수는 주위 환경과 주인에게 필요한 부분을 채워준다고 했잖니. 그러기 위해선 주인과 지속적이고 긴밀한 접촉이 필요해.”
본래 환수의 주인은 히든 피스로 얻은 알을 부화시키기 위해 의욕적으로 움직였다. 하지만 부화기에 넣거나, 마력을 주입하는 등의 방식으로도 부화하지 않자 포기하고 방치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본래 주인은 큰 부상을 입고 휴식하게 되었다.
심심한 마음에 알을 돌보고 말을 걸었더니 깨질 줄 모르던 알에 금이 간 것이다.
“가장 빠른 방법은 보배 네가 알을 상시 들고 다니는 거다.”
“이걸?”
이보배는 환수의 알을 들어 올렸다.
크기는 타조 알보다 크고 겉면은 매끄러워 떨어뜨릴 것 같으면서, 무게는 속 꽉 찬 수박보다 무거웠다.
심지어 생물이라 인벤토리에 수납할 수도 없으니 짐덩이 그 자체였다.
솔직히 유사시엔 알을 챙기느라 이보배 자신이 위험해질 것 같았다.
이보배의 표정이 떫든 말든 이해기는 계속 말했다.
“1년이나 방치했으니 한동안 갖고 다니는 것도 좋겠구나. 띠를 만들어줄 테니 안거나 업고 다니렴.”
이보배는 농담이라고 생각했지만 이해기는 진지했다.
그는 쓸데없이 야무진 손으로 금방 띠를 만들어 내밀었다.
작은오빠의 정성을 무시할 수 없었던 이보배는 결국 알을 업었다.
‘애완돌이야 뭐야.’
개나 고양이를 업고 다니는 사람은 보았어도 알을 업고 다니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
‘차라리 조카면 매일 업어줄 텐데.’
이 말이 턱 끝까지 치솟아 올라왔으나 이보배는 억지로 밀어 넣었다.
말하는 순간 ‘조카가 아니라 네 자식을 업어야지’란 말이 튀어나올 게 뻔하기 때문이다.
작은오빠 비위를 맞춰줄 겸, 큰오빠가 사라져 허전한 마음을 채울 겸 이보배는 업은 알을 둥개둥개 얼렀다.
평범한 돌도 애완돌이랍시고 보다 보면 정이 든다는데 살아 있는 알은 오죽하겠는가.
벌써부터 정이 드는 것 같았다.
“주위 환경에 맞춰서 태어나는 거면 생김새는 어때? 작은오빠가 본 환수는 어땠어?”
애정의 시작은 관심이다.
이보배는 기왕 데리고 살 환수라면 예쁘거나 귀여운 게 좋다고 생각했다.
“얼음 쏘는 타조였다.”
“타조?”
“외형은 주인의 인식에 영향받는 것 같더구나. 원주인은 알이 크니까 계속 타조를 생각했다고 말했거든.”
말이 타조지 사실은 굉장히 예뻤다며 이해기가 그림을 그렸다.
그의 야무진 손끝은 공작은 잘했으나 그림 실력엔 별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미술 수행 평가가 항상 만점이었던 건 이해기가 전교 1등이었기 때문임을 암시하는 그림이 탄생했다.
“푸하하하, 이게 대체 무어냐!”
이한생이 이해기가 그린 타조를 보고 배를 잡고 비웃었다.
이보배는 망나니가 한 대 맞기 전에 말을 돌렸다.
“그럼 얘는 뭐로 나오려나. 병아리?”
부족한 상상력에 타조 얘기까지 들으니 이보배의 머리에선 노란 병아리만 둥둥 맴돌았다.
커다란 병아리면 귀여울 것 같아서 히죽 웃자 이한생이 혀를 찼다.
“쯧, 병아리나 떠올리다니 돼지의 상상력이 실로 빈곤하구나.”
“병아리가 어때서. 귀엽기만 하구먼.”
“사기꾼의 말을 모두 믿는 건 아니다만, 만약 절반이라도 진실이라면 이 알은.”
화르세인지가 기름 묻은 손을 씻고 와 알을 쓰다듬었다.
“원하는 짐승의 외형을 지닌 환수로 키울 수 있는 마법의 알이니라. 성신의 기적에 버금가는 훌륭한 일이로다.”
망나니의 눈이 꿈과 희망으로 가득 찼다.
“병아리는 귀여우나 양계장에서 얻어 와 키울 수 있는 흔한 동물이지. 외형을 정할 수 있다면 진귀하고 아름다우며 모두가 부러워할 동물로 정함이 옳다.”
“아, 그러세요. 공자님이 생각하는 동물은 뭔데요?”
이보배는 팔짱을 끼고 체키빙 공자의 대답을 기다렸다.
말하는 폼이 유니콘이나 불사조 같은 판타지 세계 동물을 얘기할 듯싶었다.
화르세인지는 오만하게 쪼개더니 대답했다.
“판다다.”
개인이 키우면 모두가 놀랄 만한 동물이긴 했다.
이보배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이해기에게 물어봤다.
“먹는 것도 외형 따라가?”
“식량은 마석이면 된다. 마석은 내가 가져올 테니 걱정하지 말렴.”
“유지비 비싼 몸이었구나.”
“대나무를 먹여도 되느냐?”
“소환수는 마석만 섭취해.”
판다로 결정된 것도 아닌데 양아치가 실망했다.
“대나무를 먹지 않는 판다는 매력이 줄어드는데……. 코끼리나 기린은 어떠하냐. 크기도 조절할 수 있다면 모두가 부러워하고 시기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