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in Character’s Little Sister RAW novel - Chapter (24)
“이럴 거니까.”
이해기가 쓴웃음을 지었다.
“네가 한생이가 맞다면 어이없긴 하겠다. 형한테 많이 맞았지, 우리 한생이.”
세상에 균열이 생기고 많은 것이 변했다. 반항하던 동생은 형을 우러러보게 되었으며, 철없던 형은 믿음직한 가장이 되었다.
정말 많은 것이 변했다. 믿음직한 가장은 시스템이 견제할 재앙이 되었고 동생은 재앙을 죽여 회귀했으며 또 다른 동생은 시스템의 새로운 견제 수단이 되었다.
속성은 약간의 능력을 쓴 것만으로도 코피를 흘릴 정도로 상극. 시스템의 전폭적인 지원도 있겠다, 이한생이 전성기의 이해기만큼 성장하면 이귀한에 대한 훌륭한 카운터가 될 것이다.
“신이 주신 사명을 거부하고 하려는 게 고작 가족놀이냐! 집어치워라! 저 악마는 반드시 사라져야 한다! 악마의 변덕에 세계를 맡길 셈이냐?”
이귀한이 전력으로 상대하면 이한생은 상대가 되지 못한다. 하지만 이귀한은 인간성을 상실한 미래에도 이해기를 죽이지 못했다. 지금의 이귀한이라면 묵묵히 죽어줄 확률이 높았다.
“셋째가 정 그러면, 죽어줄게.”
그래. 바로 이렇게.
이보배의 머릿속이 새하얀 백지가 되었다. 그녀는 아무 말도 못 하고 입술만 깨물었다.
“죽어주겠다고? 그 말을 어떻게 믿느냐?”
화르세인지가 미심쩍단 얼굴로 물었다. 이귀한은 태연하게 말했다.
“죽어줄게. 일단 네가 실력을 키워야지. 지금은 나 때리다 네가 죽겠다. 시스템도 있고, 둘째가 적당히 버스 태워주면 10년이면 크지 않을까? 나 대충 10년만 너희랑 있다 죽을게.”
10년만 놀겠다던 때보다 어투는 가벼웠고 내용은 비교 불가능할 정도로 무거웠다. 숨이 턱하고 막혀와 이보배는 뭐라 반응할 시기를 놓쳤다.
그녀 대신 이해기가 외쳤다.
“무슨 소릴 하는 거야, 형!”
“솔직히.”
이귀한이 머리를 긁었다.
“네 말대로 너희가 죽은 다음에 참을 자신 없고, 참을 이유도 없어. 뿌셔뿌셔 해봐서 아는데 진짜 재밌다? 짜릿짜릿해. 솔직히 그럴 때만 내가 살아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래도 말이야…….”
이귀한이 다 마신 콜라 캔을 손으로 찌그러뜨렸다. 캔은 찌그러지고 찌그러지다 겉면이 매끈한 공이 되었다.
“난 고향에 오고 싶었고, 너희가 보고 싶었어. 둘 다 이뤘으니까 이젠 인간으로 죽고 싶어.”
이귀한이 공이 된 캔을 손안에서 굴렸다.
“내 존재 자체가 해악인 건 알아. 내가 너무 많이 달라진 것도 알아. 나는 옛날에 선을 넘었고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어. 너희가 보고 싶어서 마지막 한 발을 내딛지 않았을 뿐이야. 사실은 너희를 봐도 아무것도 안 느껴지면 다 죽여 버리려고 했는데.”
이귀한이 눈을 깜빡였다. 동생을 죽일 생각이었다고 말하면서 표정 한 번 바뀌지 않았다.
“너희가 소중한지, 너희를 소중하게 여기는 나에 집착하는 건지 모르겠는 때가 있어. 솔직히 위험한 거 맞으니까 이렇게 살아도 되나 싶었거든. 그래서 둘째한테 부탁해 볼까 했는데 너무 미안해하는 거 같아서 죽여달라고 말하기 좀 그렇더라고. 근데 셋째가 해주겠다네?”
이귀한이 활짝 웃으면서 손뼉쳤다. 손안의 공이 납작해졌다.
“난 환영이야! 죽어줄게!”
이귀한이 응원하듯이 두 주먹을 쥐었다. 납작해졌던 것이 다시 공이 되었다.
“형, 그건…….”
이해기가 눈물을 참으려 어금니를 꽉 물었다. 화르세인지는 죽겠다는 말을 소풍 가는 것처럼 말하는 이귀한 때문에 당황했다.
“그렇게 말해 나를 방심시키려는 것이냐! 소, 속지 않는다, 이 악마야!”
“아닌데? 진짠데? 죽어줄 건데? 우리 셋째야말로 이 형님을 쓰러뜨릴 수 있을 만큼 성장해 줘야지! 어이어이, 형은 믿는다고.”
“개소리하지 마! 형은 작은형만 믿고 나는 안 믿잖아! 어? 방금 내가 무슨 말을 한 거지?”
이보배는 충격받았다.
이귀한이 그녀와의 재회에서 아무런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면 오빠 손에 죽었을 것에 충격받은 것은 아니다.
화르세인지 속에서 종종 튀어나오는 이한생의 잔재에 충격받은 것도 아니다.
이보배의 앞에서 태연하게 죽어주겠다고 말한 이귀한의 발언에 충격받았다.
“형, 정말 진심으로 말하는 거야?”
“응!”
“형도 알다시피 나는 형에게 이래라저래라 할 자격이 없어. 하지만 형이 정말 그걸 원한다면……. 형 뜻대로 할게.”
“장하다, 둘째야.”
“뭐냐. 진짜로 죽어주겠다는 건가? 그, 그렇다면 한번 속아주도록 할까!”
“한생이의 성장이 급선무겠지. 독식하려고 정리한 자료 안 버렸으니까 그걸 참고로 한생이 성장 코스를 짜서…….”
“너흰 열심히 성장해. 난 버킷 리스트 짤래.”
믿기 힘든 일이 벌어졌다. 이보배의 눈앞에서 오빠가 오빠를 죽일 계획을 짜고 있었다.
실행일은 언제, 그때까지 성장은 어떻게, 필요한 장비는 무엇, 장소는 어디. 처음엔 반대했던 작은오빠가 계획을 짤 땐 가장 열심이었다.
‘이게 뭐지?’
이보배의 정신이 멍해졌다.
“꼭 죽어야 해? 큰오빠의 힘이 문제면 그걸 없애거나.”
“네가 몰라서 그런다, 돼지.”
“네가 못 봐서 그래, 보배야.”
“막내는 계속 몰랐으면 좋겠당.”
세 오빠는 그녀의 주장을 일축하고 다시 큰오빠 살해 10년 대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늘 형들이 자기 따시킨다고 투덜거리던 막내 오빠까지 셋이서 똘똘 뭉쳐 이보배를 따돌렸다.
정신이 멍해지고 눈물이 쏟아졌다.
이보배는 열심히 살았다. 정말 성실하게, 열심히. 쓰레기 무단 투기 정도는 했지만 그 외 법은 준수하면서 착하게 살았다.
진짜 착한 건지, 나쁘게 살 용기와 힘이 없어서 착하게 산 건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렇게 살았다.
그런데 자꾸 그녀에게 벅찬 일이 닥쳐온다. 그중에서도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회의가 제일 질이 나빴다.
“내 시체도 장난 아닐 텐데 어떻게 처리하려고?”
“그건 시스템이 어떻게든 하겠지.”
“듣자 듣자 하니까 못 하는 말이 없어!”
이보배는 이귀한이 만든 공을 집어 던졌다. 공은 이귀한에게 맞아 튕겨 나가 이해기를 맞추고, 이어 이한생의 이마까지 때리고서 바닥으로 떨어졌다.
“죽어? 뭐? 죽여? 가장 앞에서 못 하는 말이 없어!”
이보배는 가장 나쁜 말을 한 큰오빠의 등부터 후려쳤다. 그다음은 막내 오빠, 마지막이 작은오빠였다.
를 처음 맞은 이한생이 끔찍한 비명을 질렀다. 이보배는 노성으로 비명을 덮었다.
“그래! 나 아무것도 모른다! 뵈는 게 없다! 나 혼자 생산계라 느낌으로 와닿는 것도 없고 미래 얘기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러면 안 돼. 진짜 오빠들 나한테 이러면 안 돼. 말로만 공주라고 막내라고 예뻐하면서 중요한 일엔 나 빼먹지! 내 얘긴 무시하지! 이렇게 동생 울리면 좋아?”
“마, 막내야.”
“옆에 있으면 안 좋아서 죽겠다고? 인간일 때 죽겠다고? 6년 내내 속 썩이다 돌아오더니 하는 말이 그거야? 고작 그런 거야? 그렇게 치면 막내 오빠부터 죽어야지! 내 마음이랑 통장이 얼마나 아팠는데!”
“끄으윽, 돼지 네가 감히.”
“감히다! 그래, 감히다! 더 맞아라!”
“끄아아악!”
이보배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10대를 때렸다. 이한생이 바닥에 쓰러져 곡을 했다.
“내가 모를 수도 있지! 지는 아는데 나는 모르면 멍청해 보이기도 하겠지! 그래, 내 눈엔 안 보인다. 나는 본능이 뒈져서 큰오빠가 그냥 오빠로 보인다! 시력 1.3, 1.0인 내 눈엔 큰오빠 잘만 보이네!”
“보배야, 진정하고.”
“내가 지금 진정하게 생겼어!”
이보배는 이해기의 멱살을 잡고 짤짤 흔들었다.
“큰오빠가 안 참는단 보장 있어? 왜 믿지를 못해? 허구한 날 믿는다고 옆에서 내시처럼 조잘거리더니 왜 이런 건 안 믿어? 맨날 사람이라고, 큰오빠는 충분히 사람이라고 말하더니 사실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거였지? 그러니까 이러는 거잖아! 작은오빠가 본 미래는 이미 죽었어! 뒈졌어! 왜 죽은 미래를 기준으로 생각하는데? 그거 소설에서 맨날 나오는 회귀자의 오만이거든?”
쓰읍, 후우.
정신없이 말하다 보니 숨이 가빴다. 이보배는 호흡을 고르기 위해 잠시 돌아섰다.
다시 고개를 돌리니 망할 오빠 새끼들이 공손히 무릎 꿇고 고개를 조아린 자세로 있었다.
“귀환자, 회귀자, 환생…… 씹. 환생자인지 빙의자인지 잘 들어.”
이귀한, 이해기, 이한생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서로 싸우지 말고, 형제끼리 다투지 말고, 부모님 돌아가셔서 서로 지탱해 줄 건 우리밖에 없으니까 잘살자. 잘살아보자. 죽여달라느니, 죽여주겠다느니 그런 무서운 말은 하지 말자.”
귀환자, 회귀자, 환생 혹은 빙의자. 소설 속 주인공처럼 화려해진 오빠들과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하는 주인공의 여동생인 자신.
조연에 불과한 여동생의 안일한 발언이래도 좋았다. 독자들에게 고구마를 선사하는 주인공의 여동생의 답답한 발언이라도 좋았다.
이보배는 세계의 위기와 오빠 중 고르라면 서슴없이 후자를 고를 테니까.
“큰오빠, 다시는 그런 말 하지 마. 우리가 보고 싶었다며. 나도 큰오빠가 보고 싶었어. 우리랑 행복하게 살면 안 돼? 큰오빠가 참는 게 힘들어도 더 참아주면 안 될까? 내가 너무 이기적인 부탁 하는 거야?”
이보배는 오빠들 앞에 무릎 꿇고 흐느꼈다. 아기 피부처럼 부드러운 손이 그녀의 얼굴을 감쌌다.
“막내야, 나도 정말, 나도 정말 그러고 싶은데. 나는.”
그 순간 시스템 알림이 시끄럽게 울렸다. 이보배만 받은 게 아니었다. 이해기와 이한생은 물론이고 이귀한까지 눈을 찌푸리고 귀를 막았다.
이보배는 눈물 젖은 눈으로 허공에 뜬 휘황찬란한 퀘스트창을 보았다.
[이귀한(???)을 정화하시오.]-난이도 : 불가능
-보상 : 없음
-페널티 : 없음
-현재 오염도 : 99%
※정화 완료 시 이귀한은 죽지 않음.
이보배는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눈물을 훔치고 다시 봐도 퀘스트창의 문자는 바뀌지 않았다.
“지금.”
“내가 보는 게 진짠가?”
“퀘스트가 하나 더 왔다.”
“너흰 뭐 보여? 난 다 깨졌는데.”
직감이 왔다. 지금 이보배가 받은 퀘스트를 두 명도 같이 받았다는 직감이.
이귀한은 퀘스트는 아니지만 뭔가 알림이 뜨긴 뜬 듯했다.
깨진 문자가 가득한 알림창을 노려보던 이귀한이 해석을 마쳤다.
“믿겠다는데?”
시스템이 특정 인물에게 직접 의사를 표현한 최초의 사례였으나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이보배는 내용에 주목했다.
믿겠다. 남매가 받은 퀘스트와 연관 지으면 무엇을 믿겠다는 건지 분명해졌다.
“시스템이 큰오빠의 인간성을 믿겠대! 믿어보겠대!”
“방사능 바퀴를 참겠다니……. 그냥 방사능 바퀴도 아니고 날개 달린 왕바퀸데.”
이보배의 눈에서 슬픔의 눈물이 걷히고 감동의 눈물이 번졌다. 이귀한은 눈살을 찌푸리며 감탄하고 이해기는 시스템을 선뜻 믿지 못하고 머리를 굴렸다.
이한생은 초를 쳤다.
“처치 퀘스트는 그대로 남아 있다. 넌 여전히 세계의 적이니라.”
“믿는 것과 거슬리는 건 별개란 이야기군. 하긴, 그렇겠지.”
이해기가 말한 뒤 턱을 짚고 고심하더니 입을 열었다.
“시스템이 믿어보겠다니 다행이긴 한데 정화 방법이 문제로군. 형은 짚이는 거 없어?”
“몰랑.”
“정화수를 제작해야 하는 건가? 하지만 그건 형에겐 소용없을 텐데. 역시 엘릭서를 제작해야 하나? 엘릭서 제작만큼은 피하고 싶은데…….”
이해기가 미래의 지식을 중얼거리며 상념에 잠겼다. 하지만 그럴 필요 없었다. 이보배는 답을 알았다.
“나 알아! 알 것 같아! 막내 오빠가 할 수 있어!”
“한생이가?”
“막내 오빠! 큰오빠한테 정화 스킬!”
“정화 스킬이 있다고?”
이해기가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떴다. 화르세인지는 날을 세웠다.
“내가 왜 악마에게 신이 주신 힘을 써야 한다는 것이냐! 공격도 아니고 정화에!”
“대놓고 정화라잖아. 빨리 해봐!”
화르세인지는 싫다고 하다가 이보배가 접근하자 어깨를 움찔거렸다. 10연타는 평생 잊지 못할 아찔한 추억이었다.
“주인을 때린 건방진 돼지 같으니. 난 화르세인지 드 체키빙이다! 폭력에 굴할 것 같으냐!”
“아휴!”
이보배는 의 스킬 설명을 읊었다. 피해가 없고 사랑하는 만큼 통증이 강해진단 얘기에 망나니가 정색했다.
“그런 스킬이 있을 리 없다!”
“있어! 그러니까 큰오빠랑 작은오빠도 아파했지.”
“페널티보다 아팠는데……. 그런 공격을 받았는데도 반격하지 않는다니, 악마 새끼도 가족놀이에 심취했구나. 하지만 나는 다르다!”
“아니, 너도 같아.”
이해기가 화르세인지의 말을 정면에서 반박했다. 망나니가 시끄럽게 떠들자 이해기가 말했다.
“우린 네가 누구든, 기억상실이든 환생이든 빙의든 가족으로 받아들이겠다고 결정했어. 너도 균열에서 나온 후 다시 도망갈 수 있었지만 얌전히 집까지 우릴 따라왔지. 가족회의에도 참석했잖아.”
“크윽, 그건.”
“막내 오빠…….”
“으윽.”
망나니가 눈을 감고 오만하게 턱을 치켜들었다.
“어쩔 수 없지. 통하지 않아도 난 모른다, 돼지.”
이한생이 이귀한에게 정화 스킬을 사용했다. 밝고 포근한 빛이 이귀한의 몸을 감싸다가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이귀한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오오! 오오오오오!”
“어때? 어때?”
“0.00001퍼센트 정도 뿌셔뿌셔 충동이 줄어든 기분이 들어.”
수치로 들으니 효과가 없는 것에 가까웠다. 이보배는 혹시나 싶어 퀘스트창을 살폈다. 오염도가 98.99999로 바뀌었다. 효과가 있었다!
“효과가 있어!”
“0.00001이라……. 쿨타임은 어떻지? 하루에 몇 번이나 쓸 수 있어?”
“흥! 알아서 무엇 하게? 돼지가 간곡히 빌어 시도해 봤을 뿐! 난 너희를 가족으로 생각하는 게 아니다! 어디까지나 거룩한 돼지의 충심에 답을 해준 것뿐이야!”
“가족이 아니라니. 어쩔 수 없네.”
이해기가 갑자기 꺼낸 얘기에 이보배가 눈을 부라렸다. 이해기는 작게 쉿, 하고는 화르세인지에게 말했다.
“가족도 아닌 사람을 부양할 순 없지. 여길 나가줘야겠어. 그동안의 병원비는 받지 않을게.”
“무슨 소리냐. 신의 사도를 모시는 건 크나큰 영광이다!”
“보면 알겠지만 우리 집은 가난해서 신의 사도님을 모실 여유가 없거든. 부잣집을 알아봐.”
“크윽.”
“시스템 신께서 널 보살피시니 돈은 퀘스트로 벌면 될 거야. 아, 능력은 아무 데서나 쓰면 안 돼. 균열에서 봤던 무서운 누나가 잡아가.”
“그것은!”
“아니지. 힐을 쓸 수 있댔지? 납치당할지도 모르겠네. 사지가 잘려 평생 힐만 하는 도구로 쓰일지도 모르지.”
화르세인지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 실컷 겁을 줬으니 이젠 구워삶을 차례였다.
“한생아. 선생님들은 너더러 겉멋 든 양아치라고 했지만 난 늘 널 믿었다. 네가 사실은 따뜻하고 상냥한 아이란 걸 믿었어.”
“나도 믿었어.”
“막내 오빠가 할 땐 하는 사람인 거 내가 제일 잘 알아!”
이보배는 이한생의 손을 꼭 잡았다.
“두 번이나 날 구해줬잖아. 고마워, 오빠.”
“으으으으.”
“형이 고개 숙여 부탁한다! 형을 구해다오! 형을 구할 수 있는 건 너뿐이다, 한생아!”
“나도 숙인당. 날 정화해 줘! 나 열심히 참을게!”
“으으으으으으.”
너밖에 없어! 너만 믿는다! 부탁해!
애정과 관심이 고파 엇나간 양아치는 쏟아지는 관심과 기대를 견디지 못했다. 이한생이 눈 꼭 감고 외쳤다.
“하면 될 거 아냐!”
“와아!”
0.00001퍼센트씩 어느 세월에 정화하나, 그런 현실적인 고민은 집어치웠다.
남매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이씨 집안 셋째 아들을 끌어안았다.
* * *
사람은 머리를 쓰면 배가 고프다. 감정 소모가 심해도 배가 고프다.
가족회의는 머리와 감정 모두 소모되는 일이었다. 이씨 사 남매는 배가 고파 잠잘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배달?”
“나가자, 보배야.”
“지금 시간이 늦어서 야식집만 문 열었을걸. 나가나 안 나가나 메뉴는 그게 그건데.”
“집 미어터지겠다. 나가자.”
이보배는 이해기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셋일 때도 좁았던 집에 하나가 추가되었다. 성인 넷이 거실에 있으니 숨이 막혔다.
‘소파랑 게이밍 의자 치우면 잘 공간 나오겠지.’
넷은 24시간 영업하는 감자탕집에 들어가 감자탕 대자와 소주 세 병을 주문했다. 이보배는 침을 꼴깍 삼키며 감자탕이 끓길 기다렸다.
아침에 라면 끓여놓고 뛰쳐나간 후 계속 굶었다. 배가 요동쳤다.
‘응? 알림이 더 있었네?’
[압도적으로 강한 자를 위엄으로 무릎 꿇렸습니다! 위대한 업적!] [ 습득!] [ SS급]-상대의 의사를 무시하고 무릎 꿇릴 수 있다.
-단, 상대가 시전자를 가장으로 인식해야 한다.
‘이 무슨…….’
에 이어 쓰레기 SS급 스킬이 또 나왔다. 다른 사람에겐 써먹을 수 없고 오빠들에게만 사용 가능한 가정용 스킬이다.
이보배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감자탕이 끓기 기다리는 오빠들을 보았다.
“너 왜 이게 뭐냐고 안 물어봐?”
“돼지 뼈 스튜 아니냐! 이런 건 내 쪽 세계에도 있다!”
“씁, 아무래도 수상한데. 형, 이 새끼 맞기 싫어서 기억 안 돌아온 척하는 거 아닐까?”
이해기는 마흔을 넘겨 쉰을 앞뒀다면서 유치하게 굴었다. 많이 힘들었고, 가장 걱정하던 게 해결되어 안심한 건 알겠지만 듬직하던 작은오빠가 그리웠다.
이보배는 스킬도 시험해 볼 겸 잔소리했다.
“오빠들, 밥 먹을 땐 조용히 하자.”
스킬의 효과는 놀라웠다. 작은오빠, 큰오빠는 물론이고 막내 오빠까지 무릎 꿇고 공손한 표정을 지었다.
“방금 미지의 힘이 느껴졌는데?”
“내가 왜 천것들이나 하는 자세로 앉은 것이냐!”
“막내가 뭔가 했어.”
‘오빠들 진정시킬 때 유용하겠네.’
남들에겐 쓰레기의 SS지만 이보배 한정 SS급이다. 이보배는 찬찬히 새로 얻은 스킬에 대해 설명했다. 강제로 무릎 꿇린다는데 두 오빠의 반응이 온건했다.
“나 어설프게 뿌셔뿌셔 하고 싶을 때 진정용으로 좋겠는데.”
“그러게, 형 진정시킬 때 좋겠어. 나중에 형이 힘 쓰고 있을 때도 통하는지 시험해 보자.”
“감히 주인을 무릎 꿇리겠다니! 가암히!”
“화내지 마. 공자님이 날 가장이라고 생각해서 스킬이 통하는 거잖아. 아니면 정말 기억 돌아왔는데 큰오빠에게 맞을까 봐 구라 치는 거야?”
“그럴 리 있나! 내가 돼지 널 가장이라 여기는 건! 네가 하도 병원비 타령을 하기에 위로 오빠가 둘이나 있다면서 고생한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내 집은 체키빙 공작가인데 이런 듣도 보도 못한 집안의 일원이라 여길 리 있겠느냐!”
그 말이 사실이면 은 남의 집 식구에게도 통한다는 이야기다.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가장이 멋있긴 하지. 딴 사람에게도 통하면 진짜 SS급이네.’
그렇다고 지나가는 사람 붙잡아 실험해 볼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보배는 추측이 진짜든 아니든 주위에 가장임을 광고하고 다녀야겠다고 다짐했다.
다음 날 아침. 이보배는 힘겹게 눈을 떴다. 눈을 뜨긴 했지만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피곤한 하루였지.’
이보배는 피곤하고 길었던 어제를 회상하고는 피식 웃었다.
“아구구, 어깨야, 팔다리어깨무릎 삭신아.”
스킬로 포션이나 만들던 그녀에게 균열에서 개미를 때려죽이는 건 가혹한 노동이었다. 마비된 사람 운반은 어떻고?
포션은 상처는 치료해도 근육통은 치료해 주지 않는다. 전신의 근육이 비명을 질렀다.
“나 죽어.”
“이따 찜질방 가자. 이건 응급조치.”
이해기가 전자레인지에 돌린 물수건을 어깨에 얹어줬다. 뜨끈하니 근육이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 이보배는 부엌에서 나는 냄새에 행복해져서 웃었다.
“김치찌개?”
“응. 엄마 손맛은 아니지만.”
“다음엔 내가 만들게. 진짜 엄마 손맛.”
“맛이 있지도 없지도 않은 기적의 김치찌개. 기대한다.”
어제 남매는 좁아터진 거실에 모여 잠을 청했다. 전신 근육통엔 불편한 잠자리도 한몫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보배는 모여 잔 걸 후회하지 않았다. 일주일만 지나도 징그러워지겠지만 지금 당장은 그렇게 하고 싶었다.
“큰오빠랑 막내 오빠 깨울까?”
“조금 더 자게 둬.”
이해기가 검지로 입을 가리더니 손가락으로 이귀한을 가리켰다.
“돌아오고 나서 처음으로 자고 있으니까, 깰 때까지 두자.”
먹을 필요 없고, 마실 필요 없고, 숨 쉴 필요 없다던 큰오빠는 인간이고 싶어 먹고 마시고 호흡했다. 그런 큰오빠지만 잠은 자지 못했다.
깨고 나면 꿈일까 봐 무섭다는 얘길 들은 게 어제다.
이보배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이해기도 마찬가지로 흐뭇하게 웃었다.
“어제 라면 둔 냄비는 어쨌니? 찾아도 안 보이던데.”
“미안, 치우기 귀찮아서 인벤토리에.”
“에휴, 이리 다오. 내가 설거지할게.”
오빠가 돌아왔다. 하나만 돌아온 게 아니라 셋 모두 돌아왔다. 모두 돌아와 모였다. 이보다 더 행복할 순 없었다. 이 세상 무엇도, 어떤 말도 이보배의 행복을 망칠 수 없을 것이다.
“내일 휴가 끝나지? 피곤해서 어쩌냐.”
“시발.”
출근만 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