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other of the Soon-to-be Crazy Male Lead RAW novel - Chapter 122
곧 미치는 남주의 엄마입니다 122화 –
다자르의 도움을 받아 결계를 뚫고 곧바로 시아스터가로 향한 엘스턴은 실베스타인을 발견했다. 그는 실리아의 방에서 하염없이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공중에서 천천히 바닥으로 내려온 엘스턴이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에반로아르 자작님, 맞으십니까?”
“헉. 누, 누구십니까?”
난데없이 나타난 엘스턴에 놀란 실베스타인의 뒤편에서 칼이 버럭 외쳤다.
“조심하셔야 합니다! 악시온 님과 바닐라 님을 데리고 간 자입니다!”
“뭐라고?”
실베스타인의 눈빛에 경계가 서리는 걸 보며, 엘스턴은 아차 했다.
‘아. 망했다.’
급했던 나머지, 그가 한때 변절자였다는 것을 잊은 것이다. 칼이 재빨리 창밖으로 뭔가를 던지자 폭죽이 터지는 것 같은 소리가 울려 퍼졌다. 분명 저건 도움을 요청하는 신호탄이었다.
엘스턴이 땀을 삐질 흘렸다.
“아니, 그게 아니라. 제가 시아스터 공작님께 부탁을 받고 여러분을 데리러 왔는데요…….”
“겁도 없군요. 감히 주군의 이름을 입에 담다니!”
흑매를 부르는 신호였는지 곧바로 흑매가 나타났다. 그들은 엘스턴을 보며 눈을 사납게 부라렸다. 엘스턴은 어렵지 않게 그들의 눈빛을 읽을 수 있었다.
저 망할 배신자 녀석! 처단만이 살길!
“으악. 잠깐, 잠깐만요. 제 얘기를 조금만 들어 주십시오!”
“닥쳐라!”
콰아앙! 제 앞으로 빠르게 날아오는 흑매들을 보며 엘스턴이 히익 움츠러들었다.
그로부터 삼십 분 정도의 시간이 지난 뒤, 엘스턴은 너덜너덜한 모습으로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그의 앞에 칼이 끓여 준 차가 조심스레 놓였다.
맞은편에 앉은 흑매의 단장 레온이 뒷머리를 벅벅 긁었다.
“에이, 그런 사정이 있으셨으면 빨리 말씀을 하시지. 하하. 엘스턴이 그 유명한 마탑주였군요? 그리고 지금은 저희 편이신 거고.”
레온의 눈이 테이블에 놓인 다자르의 검에 가 닿았다. 다자르가 엘스턴에게 함께 들려 보낸 검은 시아스터가에서 대대로 내려오는 것으로, 주인의 의지만을 따르는 검이었다.
곧, 엘스턴이 이 검을 가지고 있다는 건 다자르가 그를 증명하기 위해 일부러 딸려 보냈다는 것이고. 엘스턴은 결백하다는 얘기였다.
훌쩍…….
“예에. 그래도 믿어 주신다니 다행입니다.”
“그럼 이곳에는 왜 온 겁니까? 무슨 일이 있는 건가요?”
레온의 옆에 앉아 불안한 낯으로 몸을 들썩이고 있던 실베스타인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는 엘스턴이 다자르의 부탁을 받고 이곳에 왔다는 걸 안 직후부터 눈에 띄게 불안해하고 있었다. 무언가를 직감한 것처럼 말이다.
“그게, 음…….”
엘스턴이 제 앞에 놓인 찻잔을 괜스레 손가락으로 만지작대다가 작게 한숨을 쉬고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실리아가 갑자기 사라진 것, 악시온이 루벤으로 각성하기 직전이라는 것, 그리고…… 곧 초월자들이 들이닥칠 거라는 것.
“시, 실리아 님이 사라지셨단 말입니까?”
“……맙소사.”
칼과 실베스타인의 안색이 핼쑥해졌다.
“예. 그리고 시아스터 공작님께서 여러분을 모두 데리고 오라고 하셨습니다. 다만 그곳은 위험하기에…… 혹여 원치 않으면 자작저로 돌아가셔도 되고요.”
다자르는 그들에게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하지만 그나 엘스턴은 알고 있었다. 그들이 절대 제 안위를 위해 돌아갈 일이 없다는 것을.
“지금 당장 가시죠.”
“누님을 찾아야 합니다!”
“악시온 님을 지킵시다!”
방 안에 있던 모두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엘스턴은 고개를 끄덕이고 재빨리 다자르의 검에 손을 올린 채 마법을 펼쳤다.
이 검에 담긴 다자르의 의지가 있어야만 그에게 갈 수 있었다.
“그럼 이동하겠습니다.”
눈앞이 껌껌해졌다가 순식간에 밝아졌다. 눈 깜박할 사이에, 그들은 루벤의 섬의 별장에 도착해 있었다.
공간을 이동하는 마법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이 머리를 붙잡고 끙끙대는 게 보였다. 실베스타인은 휘청이는 칼을 부축하며 그의 앞에 나타난 남자를 향해 물었다.
“실리아가…… 사라졌다는 게 사실입니까?”
그의 목소리에는 가시가 솟아 있었다. 제 동생이 사라졌다니. 그동안 이 초월자는 옆에서 무얼 했단 말인가? 그도 모르게 그에 대한 원망이 샘솟았던 것이다.
그러자 다자르가 마치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네. 사실입니다.”
분명 이 상황에서는 가족인 실베스타인이 더욱 상심한 얼굴이어야 할 텐데.
어찌 된 모양인지, 다자르는 실리아의 오라버니인 실베스타인보다 얼굴이 상해 있었다. 게다가 저 절절한 눈빛이라니. 실베스타인은 다자르의 눈을 마주한 순간 직감했다.
이 남자, 제 동생을 마음에 품고 있구나.
그것도 단순한 연모의 감정이 아닌, 그보다도 더욱 깊고 절절한 감정이 그의 안에 가득 차올라 넘쳐 흐르고 있었다.
그 감정을 마주한 실베스타인은 이곳에 오기 전까지 그에게 가지고 있던 원망을 조심스레 내려놓았다.
그리고 진지한 낯을 하고 물었다.
“……제가 뭘 해야 합니까?”
잠시 침묵한 뒤, 다자르는 실리아가 사라지던 순간 그가 보았던 장면을 설명했다. 실리아가 큰 상처를 입고, 목걸이에서 시작된 빛이 번쩍였다는 것. 그리고 그가 그때 느꼈던 공간의 파동 또한.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실베스타인의 얼굴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심각해졌다.
“그랬군요. 제가 건넨 목걸이가…….”
그가 입술을 아프게 물더니, 무언가를 떠올리듯 잠시 눈을 깊게 감았다 떴다.
“아마도 실리아는 우리가 존재하는 이곳, 곧…… 이 세계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한 것 같습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그 목걸이의 재료에……. 이계에서 온 것으로 알려진, 스스로 공간을 이동하는 보석이 포함되어 있거든요.”
실베스타인은 차분히 목걸이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루벤의 힘을 막기 위해 고서적에 나온 대로 그가 모은 재료는 아주 희귀하고 특이한 것들이었다. 그중 주인과 함께 공간을 이동하는 보석도 포함되어 있었고 말이다.
하지만 다른 재료들을 함께 모아 목걸이를 만들 때, 이런 기능이 작동하지 않도록 했다. 보석의 원기능은 실베스타인이 원하는 게 아니었으니까.
“아시다시피 실리아의 몸은 결계나 마법이 통하지 않죠. 하지만…… 그 보석은 이계의 물질이니만큼…….”
보석의 원기능을 막기 위해 다른 재료를 혼합했지만 그 재료들은 이 세계의 물질이기에 실리아에게 영향을 미치지 못했고…….
결국 보석의 원기능만이 그녀에게 작용했다는 이야기였다.
“아마 그때 보석이 실리아를 다른 세계로 옮길 정도로, 강한 외부의 힘이 작용했던 것 같고요.”
실베스타인은 안색이 좋지 않은 다자르를 빤히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잘하면 실리아가 이동한 경로를 쫓을 수 있습니다.”
“……!”
황금빛 눈이 크게 흔들렸다.
* * *
내가 어린 다자르를 쫓아온 지 벌써 한 달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희아. 준비됐어?”
똑똑, 다자르가 밖에서 문을 두드렸다. 나는 재빨리 검은색 숄을 걸치고 밖으로 나가려다 문득 거울을 스치듯 보았다.
거울에는 머리카락이 그사이 더 자라나, 뿌리 염색하지 않은 검은 머리가 더 드러난 동양인 여자가 보였다.
어쩌다 보니 투 톤의 머리 색을 지니게 된 여자는 조금 우울해 보였다. 거울 속의 여자가 푸욱 한숨을 쉬었다.
“어떻게 하면 돌아갈 수 있는 거지?”
다자르를 쫓아 시아스터가로 들어온 한 달 동안 아주 많은 일이 있었다. 루벤의 추종자가 되어 제 아들을 감금한 다자르의 아버지는 할아버지의 손에 힘을 잃었고.
……본래 처단당할 뻔했지만.
다자르를 가엽게 여긴 건지, 아니면 제 아들이라 마음이 약해진 건지. 시아스터가의 가주, 곧 다자르의 할아버지는 그를 살려 둔 채로 어딘가에 가두었다. 그곳이 어딘지는 다자르도 알지 못했다.
“여기도 대강 정리가 되었으니 돌아가려고 온갖 수단을 다 썼는데…….”
어린 다자르에게 부탁해 온갖 결계를 몸에 둘러 봤지만, 어떠한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다시 내 몸이 결계 따위는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했을 뿐.
“희아? 안에 있는 거야? 이러다 할아버지와의 식사 자리에 늦겠어.”
거울을 보며 멍하니 생각하고 있다가, 다자르의 목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아차. 아무 말도 없이 기다리게 했네.
오늘은 이곳 시아스터가의 가주, 다자르의 할아버지와 함께 식사하기로 한 날이다. 나는 재빨리 주변을 정리하고 밖으로 나갔다.
“미안. 잠깐 딴생각하느라 답을 못 했어.”
검은 정장으로 말쑥하게 차려입은 꼬마 신사가 날 올려다보고 있었다. 어린 나이에도 아주 수려한 외모의 소년은 조금 불안한 낯이었다.
‘얘 또 이런 얼굴이네.’
다자르는 내가 그의 결계를 온몸에 두르며 원래 세계로 돌아가려고 방법을 찾는 동안, 점점 얼굴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아무 말도 없길래 갑자기 사라진 줄 알았잖아. 희아.”
다자르는 내 얼굴을 보더니 눈에 띄게 안심한 표정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 모습을 보니 갓 태어난 새끼 오리가 어미를 쫓는 장면이 연상되는 건 왜일까.
나는 검지로 뺨을 긁으며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미안, 미안. 가자, 다자르.”
“으응.”
작은 손이 내 손을 맞잡아 왔다. 따스한 온기를 느끼며 나는 속으로 길게 숨을 내쉬었다. 이곳에 더 있으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