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other of the Soon-to-be Crazy Male Lead RAW novel - Chapter 5
곧 미치는 남주의 엄마입니다 5화 –
그동안 악시온의 육아로 바쁜 나날을 보내면서도, 나름 악시온이 마룡에 동화되지 않을 방법을 강구했다.
‘어? 그러고 보니…….’
그러다 떠올린 원작의 내용.
‘바닐라가 나중에 얻게 되는 목걸이가 마룡의 힘을 약화시켰던 것 같은데.’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바닐라를 괴롭히던 악시온이 어떤 사건을 통해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던 쯤, 바닐라 또한 그를 사랑하게 되면서…….
‘그때쯤 목걸이가 일시적으로 마룡의 힘을 끊어 내지.’
하지만 피폐 중의 피폐를 달리는 원작상, 둘 사이에 다시 오해가 싹트면서 목걸이는 박살이 난다.
‘그러니까, 바닐라가 마룡의 힘을 끊어 낼 키란 말이지.’
그리고 바닐라가 악시온에게 이성적으로 끌렸던 이유 중 하나. 어렸을 때부터 진창을 구르며 살아남기 위해 그가 습득한 방대한 지식.
곱게만 자란 자신이 우물 안 개구리라는 걸 깨닫고 그에 대한 호기심이 싹트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의 악시온은 바닥을 구를 일이 없지 않은가? 끔살 루트를 타지 않기 위해 금이야 옥이야 키울 생각인데!
‘이래서는 안 돼. 이래서는…….’
악시온이 일곱 살쯤 있을 끔살 루트를 피한다 할지라도, 마룡을 해결하지 못한다면 결국 시한부 생이다.
‘마룡의 드래곤 하트를 품은 악시온은 겉으로 보기엔 평범한 아기여도, 지금의 기억을 모두 간직한 채 성장해.’
그럼 지금부터 지식을 쌓는다면 당연히 바닐라보다 방대한 지식을 쌓지 않을까……?
‘일단 시도라도 해 보자.’
다음 날, 이른 아침 맘카페 모임을 하고 돌아온 나는 평소처럼 악시온의 놀이방으로 향했다.
악시온과 한참 놀아 주는 동안 칼도 내 옆에 자리를 잡고 취미인 바느질을 했다.
난 그를 보며 넌지시 말했다.
“칼. 우리도 가정 교사를 알아보자.”
“예? 가정 교사라뇨. 이제라도 제대로 교육을 받고 싶다는 생각이 드신 겁니까?”
“엉?”
바느질하던 걸 내려놓은 칼이 날 그렁그렁한 눈으로 응시했다.
내 기억상 실리아는 농사 덕후이긴 해도 아카데미를 우수하게 마친 인재인데.
저게 무슨 소리야?
“나? 무슨 교육을 말하는 거야?”
“예절 교육이요! 어렸을 때 예절 선생으로 유명하신 안젤라 선생님을 모셨는데, 아가씨께 학을 떼며 저택을 나가셨지 않습니까. 그 후 주인어른께서 데려오신 선생님들도 모두 울며 뛰쳐 나가셨구요. 설마 벌써 잊으신 건 아니겠죠?”
“…….”
기억을 들춰 보니 그랬던 적이 있는 것도 같다.
도대체 이 몸은 왜 이렇게 특이한 거야?
나는 한숨을 포옥 내쉬고 고개를 휙휙 저었다.
“기억해. 그런데, 내 예절 교육이 아니라. 악시온 말하는 거야, 악시온!”
“……악시온 님이요?”
칼이 고개를 갸웃하며 내 품에 안겨 있는 악시온을 보았다.
한창 꺄꺄 하며 내 머리카락을 잡고 손장난을 치던 악시온은 새근새근 잠들어 있었다.
“악시온 님께서는 이미 완벽하신데 무슨 가정 교사입니까. 아가씨. 하하. 농담도 참.”
분명 내 아이에 대한 칭찬인데, 왜 날 돌려 까는 느낌이 드는 거지?
나는 입을 비죽 내민 채 어깨를 늘어뜨렸다.
“다른 집 애는 벌써부터 가정 교사를 들인다는데, 후우. 우리 악시온이 이러다 뒤처지는 건 아닐지 걱정된다구.”
정확히는 여주 바닐라에게!
내 한숨 섞인 말에 칼도 조금 진지하게 받아들일 생각인지 “으으음.” 하며 고심하는 표정을 했다.
“나중에 또래를 만나서 무시라도 당하면……. 내 심장은 아파서 너덜너덜해질 거야.”
“무시라뇨! 귀여운 악시온 님을 어찌 무시할 수가 있겠습니까!”
칼이 바느질하고 있던 천 쪼가리를 꽉 쥔 채 외쳤다.
나는 짐짓 ‘아이고. 세상 물정을 이리 모를 수가.’ 하는 얼굴을 하고 혀를 쯧쯧 찼다.
“요새 애들이 얼마나 무서운데 그런 소리야? 저번에 신문에 실린 거 못 봤어? 이제 막 아카데미에 입학할 꼬맹이들이 몰래 부모님 마차를 운전해서 사고 낸 거?”
“세상에. 정말요?”
뻥이다.
“그럼, 그럼! 요새 애들이 그렇게 무섭다구. 또래 애들끼리는 또 얼마나 살벌하겠어? 동물의 왕국이다 이거야.”
“……동물의 왕국이요? 그게 어디에 있는 나라였죠?”
눈을 끔벅이는 칼은 퍽 순진해 보였다.
칼 할아범, 이렇게 남의 말을 잘 믿으면 어떡해? 저택 밖에선 어떨지 참 걱정된다.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악시온의 가정 교사. 이게 중요하다구.”
“으으음. 듣고 보니 그런 것 같군요.”
마침내 고개를 끄덕이는 칼을 보고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좋아. 넘어왔어.
“그래. 그러니까 가정 교사를 고용하자구.”
오빠인 에반로아르 자작이 자리를 비웠을 때 자작가의 주인은 나지만 실제 운영은 칼이 도맡아 하고 있었다.
아마도 농사 덕후인 동생이 못 미더워 그에게 맡겨 둔 것이겠지.
물론 운영을 그가 하고 있다 하더라도, 결정권은 내게 있으니 명령 하나만 하면 되었다.
하지만 그와 가족처럼 지내 온 실리아였고, 나 또한 할아버지뻘인 그에게 그러고 싶진 않았다.
“……그렇지요.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아가씨.”
칼이 조금 어두운 낯을 하고 나를 물끄러미 보았다.
“문제? 무슨 문제?”
그가 조금 망설이다가, 작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돈이 없어요.”
“……응?”
“가정 교사를 부를 만큼의 여유가 없단 말입니다. 저희 저택의 식솔들을 모두 챙기고 나면 남는 돈이 없으니까요.”
으에엑?
화들짝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설 뻔했다.
악시온을 안은 팔에 바싹 힘을 주고 땀을 뻘뻘 흘렸다.
“잠깐. 왜 돈이 없는데? 밭도 저렇게 크고 땅도 많잖아?”
“……그건 주인어른께서 남기신 유산으로 장만하신 거구요. 아가씨께서 딱히 경제 활동도 하지 않고 계시니, 당연히 외적인 수입은 없고. 영지에서 걷어 들이는 세금으로 근근이 살아가고 있답니다.”
“아니, 실베스타인은 그동안 뭘 하고? 실베스타인이 벌어 둔 돈은 있을 거 아니야? 명색이 황실 아카데미 교수인데, 그래도 돈 꽤 벌지 않아?”
실베스타인은 이 몸의 오빠 이름이었다.
무슨 전공이었는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황실 아카데미의 교수였다. 대대로 학자 집안이었던 에반로아르 자작가의 가주다웠다.
지금은 무슨 연구를 한다면서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칼이 한숨을 폭 내쉬었다.
“그 돈은 당연히 쓸 수 없지요.”
“뭐? 왜?”
“실베스타인 님께서 저택을 나서시면서 신신당부를 하셨거든요.”
“……뭐라고?”
그러자 칼이 슬그머니 눈을 돌렸다.
“실리아 님에게 할당된 재산 외에는 그 어떤 것도 건들지 못하게 하라고요.”
“…….”
“아마 예전에 실리아 님께서 가문의 돈으로 온갖 작물 씨앗을 사들였던 것 때문이겠죠. 그때 타격이 어마어마했다고 들었습니다.”
그, 그럴 수가.
“고로, 실리아 님의 돈으로 가정 교사를 고용하게 되면 그때부턴 가계부가 마이너스로 돌아서겠죠. 안 그래도 악시온 님에게 들어가는 분유 값, 기저귀 값이 장난이 아닌 마당에요.”
그가 피곤한 낯으로 저 멀리 시선을 던졌다.
그의 손에 들려 있던 바느질거리가 문득 눈에 들어왔다.
어, 언제부터 칼이 바느질하는 취미를 가지게 되었더라……?
“아가씨께는 심려를 끼쳐 드리고 싶지 않아 그간 버티고 있었는데, 어쩔 수 없겠네요. 휴.”
“으윽…….”
칼의 얼굴에 가득 밴 삶의 노고를 보며, 난 심장이 따끔대는 감각에 시달려야 했다.
“지난번에 수확한 벼는? 그건 전혀 수익이 안 났던 거야?”
“네? 저기 밭에서 기르고 있는 정체불명의 노란 게 벼라고 하는 식물입니까?”
응?
“몰랐어?”
“몰랐지요. 아가씨께서 갑자기 새로운 씨앗이라며 연구한다고 하신 게 2년 전입니다. 아직 어디에 써먹을지 고심하고 계신 거 아니었습니까?”
어라. 이게 무슨 소리야.
“그런데 참 신기하지요. 첫해에는 어디선가 가져오신 책을 보며 그렇게 열심히 키우셨는데도 거의 다 죽게 만드시더니. 그다음 해에는 갑자기 사람이 바뀐 것처럼 척척 저 벼라는 식물을 키워 내지 않으셨습니까?”
“…….”
아주 신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칼을 보며 나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잠깐, 그다음 해는 내가 이 몸에 빙의하게 된 때인데.
그럼 그 전까지는 실리아가 벼를 키우는 방법을 몰랐다고?
“그럼 내가 키운 거잖아?”
“네?”
“아, 아니야.”
아까부터 충격을 연달아 먹어서인지, 자세가 불편했나 보다.
“이잉.”
악시온이 몸을 꼼지락대며 칭얼대려 했다.
“일단 나중에 얘기하자.”
“알겠습니다.”
아이를 급히 달래고 침실에 눕힌 후 나도 그 옆 침대에 벌러덩 누웠다.
칼은 바느질을 마무리하겠다며 제 방으로 향했다.
침대에 누운 채로 눈을 끔벅끔벅했다.
“그러니까…….”
실리아는 책을 보면서 벼농사를 짓는 지식을 쌓았고, 마침 나는 주식이 쌀인 곳에서 자라며 할머니의 벼농사를 도와 일한 경험이 있었다.
“결국 둘이 합쳐져서 결과물이 나왔다는 거네.”
하지만 수확한 벼들은 창고에 가득 쌓여 있기만 했다.
그다음 이 벼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도 아직 모르는 게 틀림없었다.
“이걸로 돈을 벌면 되잖아?”
침대에 누워 중얼댔다.
그럼 가정 교사도 부를 수 있고, 여주 바닐라에게 악시온이 무시당할 일도 없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끔살 루트를 탈 일도 없겠지. 게다가 지금쯤이면 원작에서 서술된 그쯤일 것이다. 시기를 잘 타면 대박이었다.
그래, 완벽한 계획이었다.
* * *
하지만 내 예상과 달리, 저 벼들을 사 줄 상대를 찾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이게 굉장히 좋은 식량이 된다니까요?”
“그러니까, 뭐 하러 그런 처음 보는 걸 먹겠습니까. 먹었다가 무슨 일이라도 나면 어떻게 해요?”
악시온이 뒤뚱대며 걸어가는 걸 황홀한 낯으로 구경하던 엘스턴이 내 말에 심드렁하게 답했다.
“윽.”
마탑에라도 팔아치울까 했는데.
엘스턴도 다른 식품 업자와 마찬가지의 반응이었다.
처음 보는 걸 무턱대고 사들일 수 없다. 당신의 뭘 믿고 그런 도전을 하겠는가.
다들 그렇게 답하며 거들떠도 보지 않았다.
‘분명 에서 과거 식량난이 일어났었다고 했었는데.’
이곳의 주식은 미아르라고 불리는 것이었다. 밀과 비슷한 외양에, 비슷한 특징을 지닌 미아르는 어디에 뿌려도 잘 자라는 작물이었고.
덕분에 제국은 풍족한 식량을 누리며 발전해 왔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미아르의 수확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그게 바로 식량난의 시작.
원작에서 악시온이 아주 어렸을 때부터 온갖 고난을 겪게 된 배경이기도 했다. 그쯤에는 그가 어딜 가든 인심이 각박했으니까.
‘아직 그때가 아닌 건가?’
때를 잘못 잡았나 싶어 시무룩해져 있는데, 그런 나를 힐끗 본 엘스턴이 눈을 빙그르 돌리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제가 시아스터 공작가에 다녀왔지 않습니까?”
아, 맞다.
바닐라가 배우는 과목이랑 교사들에 대해 알아 오기로 했었지.
알아 오면 뭐 해. 우리 악시온은 배우지도 못할 텐데. 흑흑.
더 추욱 늘어지는 어깨와 우울해 보이는 낯을 본 엘스턴이 당황한 표정을 했다.
그러며 급히 말했다.
“다자르 공작이 고민을 털어놓더군요. 식량이 필요하다고. 새로운 식량이.”
“……네?”
“혹시 마탑에서 새로운 식량을 개발해 줄 수 있냐고 묻길래, 생각은 해 보겠다고 했습니다만…….”
역시!
그렇다니까! 내 기억에 따르면 지금쯤이라고!
“엘스턴!”
나는 생명의 은인을 바라보는 것처럼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그에게 한걸음에 달려갔다.
아무렇게나 놓여 있는 두 마른 손을 꽈악 잡으며 외쳤다.
“공작께 절 소개해 주세요!”
“히익. 여, 영애. 아픕니다. 아파요!”
손뼈가 바스라질 것 같다구요옥…….
엘스턴의 목소리가 점차 작아지더니 이내 털썩 쓰러졌다.
이 개복치 같은 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