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other of the Soon-to-be Crazy Male Lead RAW novel - Chapter 4
곧 미치는 남주의 엄마입니다 4화 –
악시온은 한창 배밀이를 하다가, 기어 다니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행동반경이 점차 커지더니 걸음마를 시작한 지금은 뽈뽈뽈 여기저기를 쏘다녔다.
아장아장.
아장아장아장.
“악시온, 왔어요?”
“우에!”
할범미소를 짓고 있는 칼을 뒤에 달고 여기저기 쏘다니던 악시온은 결국 내가 있던 응접실까지 점거했다.
“악시온.”
“우아!”
이젠 저를 부르는 것도 알아듣고, 부르면 눈을 마주치고 방긋 웃는다.
빵끗.
그러면 동그란 눈이 반달 모양으로 접히고 작은 입술이 벌려지며 혀가 살짝 튀어나온다.
그 모습이 꽤 귀여워, 복숭아처럼 발갛게 물든 통통한 뺨을 깨물어 주고 싶을 정도다.
‘후우. 나도 내가 이렇게 악시온을 귀여워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비록 이 아이가 미래에 나를 죽일지도 모르지만……. 지금의 악시온은 순수한 아기일 뿐이다.
처음에는 끔살 루트로의 수치를 쌓지 않기 위해 악시온의 육아에 신경을 썼지만.
실제로 살을 부대끼며 지내다 보니, 나도 인간인지라 정이 무럭무럭 싹트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꺄아-!”
매일 봐도 귀여운 악시온은 다른 사람에겐 조금 치명적인 듯했다.
“커헉.”
주르륵. 맞은편 소파에 앉아 있던 마법사 엘스턴의 입에서 홍차가 흘러내렸다.
붉은빛의 액체가 흥건히 제 바지를 적시고 있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엘스턴의 눈은 악시온에게 고정된 채 굳어 있었다.
“……엘스턴?”
“허억…….”
기저귀를 해 볼록한 엉덩이를 한 채 뒤뚱뒤뚱 걸어 엘스턴의 앞에 도달한 악시온이 그를 보고 웃었다.
“우이!”
“크흡.”
치명적인 악시온의 미소를 정면에서 보고 만 엘스턴은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도망치듯 상체를 급히 뒤로 뺐다.
하지만 소파에 앉아 있는 그의 퇴로는 이미 막힌 것이나 마찬가지.
“이런, 악시온. 이리 오세요.”
“마-!”
“옳지, 옳지.”
저를 부르자 뽈뽈뽈 내게 와 안기는 악시온은 내 아이지만 똑똑했다. 하. 맙소사. 벌써 이렇게 똑똑해도 되는 걸까? 역시 남주는 떡잎부터 다른 건가.
“우리 악시온 참 귀엽죠?”
“……조, 조금요. 크흠!”
바지를 흠뻑 적신 사람이 할 답은 아닌 것 같은데.
엘스턴은 보기보다 솔직하지 못한 사람인 것 같다.
그때 분명 자기는 거짓말을 못 한다고 했었는데, 제 정체도 숨기고 있는 사람이 퍽 거짓말을 못 하겠다.
“엘스턴. 바지가 젖었어요.”
“네? 제 바지가요? 앗!”
붉은빛으로 물든 제 바지를 내려다본 엘스턴이 재빨리 손을 휘저었다.
이상한 수식을 그리듯 손가락이 바쁘게 움직이더니 이윽고 바지는 원상태로 돌아왔다.
마탑의 주인다운 실력이다.
‘그래서 제가, 아니 마, 마탑주님께서 아주 깜짝 놀라셔 가지고…….’
‘저, 저도, 아니! 저희도 호기심이 생겨서…….’
사실 그가 마탑주인 건 그를 만난 첫날 눈치챘다. 제 입으로 자신이 마탑주라고 몇 번을 말했는데 모르면 바보지.
게다가 실리아의 지식에 따르면, 원래 마법을 하려면 복잡한 영창이 필요했다.
아무리 간단한 마법이라도 수식만으로는 부릴 수 없었다.
그런데 저렇게 휙휙 손 하나로 마법을 부리는 걸 보면…….
‘마탑주가 너무 허술한 거 아니야? 마탑의 미래가 걱정되네.’
그러고 보니 원작에서도 몇 번 등장했었다.
시종일관 웃으며 주인공을 도와주지만 사실 속으로는 꾸미는 게 있는, 흑막 캐릭터.
적인지 아군인지 구분이 안 되는 그런 모호한 위치의 캐릭터 말이다.
이름도 엘스턴이 아니고 분명 엄청 길었다.
‘흑막이 저래도 돼?’
내게 안긴 악시온을 사랑스러워 죽겠다는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그를 보면 흑막이라고 생각되진 않는다. 볼을 발그레 물들인 저 홍조도 그렇고.
“크흠. 아까 보시니 좀 어떤가요? 악시온 심장에 문제는 없나요?”
악시온이 한창 낮잠을 잘 시간에 맞추어 도착한 엘스턴은 악시온의 상태를 확인했다.
그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정기적으로 행해 오고 있는 일이었다. 요새 들어 찾아오는 횟수가 좀 잦아지는 것 같긴 한데…….
“네. 악시온 님은 오늘도 무척 건강하시더군요.”
내 목소리에 흠칫 정신을 차린 엘스턴이 살짝 흘러내린 침을 소매로 박박 닦으며 답했다.
우리 악시온이 쓰는 턱받침이라도 선물로 줄까 싶다.
“드래곤 하트도 잠잠하고요. 다만, 저번에 말씀드렸던 건은 아마 확실한 것 같습니다.”
“아……. 드래곤의 마력이 봉인되었다는 거요?”
“네.”
원작대로, 악시온은 무의식적으로 제힘을 봉인했다.
“신기한 일입니다. 이제 갓 한 살이 된 아이가 드래곤의 마력을 봉인하다니.”
언제 꺼냈는지 모를 수첩에 정신 사납게 뭔가를 휘갈긴 엘스턴이 고뇌하는 얼굴을 했다.
악시온을 체크할 때마다 가끔 혼자 저러곤 했기에, 나는 그를 무시하고 악시온을 고쳐 안았다.
악시온은 그사이 잠들어 있었다.
뽈뽈 대며 저택을 휘젓고 돌아다녀 피곤했나 보다.
엄지손가락을 입에 문 채 잠든 악시온을 사랑스럽게 바라보다가 포슬하게 자란 블론드빛 머리칼을 쓸어 넘겨 주었다.
아이의 머리카락은 마치 솜처럼 부드럽다. 가지런하게 자란 눈썹도 부들부들, 콧방울은 말랑말랑.
포동포동하게 튀어나온 뺨을 콕 찌르면 쏘옥 들어갈 걸 알지만, 잠들어 있으니 괴롭히지 말아야지.
부캐 악숀맘으로 활동하며 부족한 육아 지식을 습득한 덕에, 예전보다는 악시온을 양육하는 데에 여유가 생겼다.
……는 사실 허세고. 아직도 여유는 없지만, 그래도 나름 익숙해져 가고는 있다.
‘악숀맘네 아이는 엄마 닮아서 참 예쁠 것 같네!’
‘맞아! 그런데 악숀맘은 왠지 어디서 본 것 같단 말이야?’
아주머니들이 꺄꺄 대며 그리 말했을 때, 내 정체를 들켰나 싶어 놀랐지만 그럴 걱정을 할 필요는 없었다.
‘이 몸이 하도 두문불출한 덕분에, 영지민들이 내 얼굴을 정확히 몰라서 다행이야.’
영지민들이 내 얼굴은 전혀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오빠인 에반로아르 자작이 대외적으로 나서는 동안 저택에만 처박혀 있었던 덕이었다.
그 오빠는 현재 비밀리에 저택을 비운 상태이기에, 에반로아르 자작가는 텅 빈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 몸이 대리 가주직을 할 리도 없었고.
“칼, 악시온을 눕혀 주고 올래?”
“네, 아가씨.”
살짝 떨어져서 우릴 지켜보고 있던 칼 할아범이 빙그레 웃으며 악시온을 받아 들었다.
악시온의 울음에 함께 울던 칼도 아이와 함께하는 삶에 조금 익숙해진 듯하다.
기억을 들춰 보니 결혼도 안 하고 평생을 이곳 에반로아르에 바친 듯하던데. 그에겐 아마 내가 자식, 손주처럼 느껴지겠지.
‘가주가 없는 저택을 혼자 꾸리다시피 하고 있기도 하고.’
칼의 어깨 위로 살짝 솟은 악시온의 머리를 귀엽게 쳐다보고 있는데, 엘스턴이 수첩을 탁 닫더니 말했다.
“후……. 저도 이제 그만 돌아가 봐야겠군요.”
“어라, 벌써요?”
평소라면 마탑에 돌아가기 싫다며 유유자적 시간 때우다 가던 사람이.
웬일이람?
“네. 아쉽지만…… 오늘 아주 무서운 곳에 가야 하거든요.”
“무서운 곳이요? 어딘데요?”
그러자 주섬주섬 옷자락을 정리하던 그가 비밀 이야기를 꺼낼 것처럼 주변을 휙휙 둘러보았다.
어차피 시종도 별로 두지 않아 에반로아르 저택은 텅텅 비어 있는데, 뭘.
“에반로아르 영애께서는 확실히 사교 활동에 관심이 없으신가 보군요.”
“……싸우자는 건가요?”
소매를 살짝 걷어 농사로 단련된 팔을 살며시 드러내자 엘스턴이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서 목 부근을 살포시 가로막는 것이, 첫날 쥐고 흔들었던 멱살을 보호하는 듯했다.
“크흠. 그게 아니라, 요새 사교계를 떠들썩하게 만드는 소식이 있다는 걸 모르셨나 해서요. 하하. 알려 드리려고요!”
“무슨 소식인데요?”
“아무리 영애셔도 시아스터 공작가는 아시지요?”
어떻게 모르겠나. 원작 여주네 집인데.
나는 수긍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당연히 알죠. 저 나름 자작가의 영애라고요.”
“크흠. 시아스터가의 가주이신 다자르 님께 알고 보니 숨겨진 아이가 있었다지 뭐예요!”
“아하.”
내 옆으로 다가와 크나큰 비밀을 말해 주듯 속닥댄 엘스턴이 내 반응을 보고 기운 빠진다는 얼굴을 했다.
“뭡니까? 그 반응은. 알고 계셨어요? 지금 저 놀린 겁니까?”
“아뇨. 설마요. 그냥 뭐. 귀족들에게 숨겨진 아이가 있는 건 종종 있는 일 아닌가요?”
원작을 알고 있는 나로서는 여기서 놀라는 게 더 우스운 일이었다.
사실 시아스터가의 외동딸, 여주 바닐라는 엘스턴이 말하는 것처럼 다자르 공작의 진짜 아이가 아니니까.
바닐라는 다자르 공작의 조카였다.
지금은 목숨을 달리한 형의 딸.
“에반로아르 영애는 참, 가끔 보면 무심함의 최강자 같다니까요.”
“칭찬 고마워요.”
“……쳇. 어쨌든 그래서 다자르 님의 요청을 받고 공작령에 가게 되었습니다. 자식이 맞긴 맞는지, 그 무서운 공작님이 온갖 전문가는 다 끌어모으고 있다더군요.”
“오호. 그래요?”
“네. 악시온 님과 비슷한 나이인 것 같더군요. 요새는 가정 교사들까지 모집하고 있는 것 같던데…….”
“……네?”
심드렁하게 엘스턴의 이야기를 흘려듣던 나는 그의 마지막 말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벌떡 자리에서 일어선 내게 턱을 맞을 뻔한 엘스턴이 호엑 하며 뒤로 물러섰다.
“뭐, 뭡니까?”
“방금 뭐라고 하셨어요?”
“예? 온갖 전문가를…….”
“아뇨. 그거 말고요!”
“아, 가, 가정 교사들을 모으고 있다고요……?”
“맙소사!”
콰광. 마른하늘에서 때아닌 벼락이 울려 퍼졌다. 내 머릿속에서 난 소리였다.
여주가 공부를 시작했다니!
우리 악시온은 이제 막 걷기 시작했는데!
“가정 교사가 몇이나 온대요?”
“그, 글쎄요. 자세한 건 저도…….”
“가서 모조리 확인하고 오세요. 어느 영역, 어떤 선생님, 명성, 이력, 이런 것들 모두요!”
엘스턴이 엉겁결에 고개를 끄덕이는 게 보였다.
그의 등을 밀며 어서 다녀오라고 재촉하면서 나는 불안에 몸을 떨었다.
머릿속에서 여주 바닐라가 팔짱을 끼고 악시온을 내려다보고 있는 그림이 재생되었다.
예쁜 입꼬리가 비틀려 올라가고…….
터져 나오는 비아냥.
‘훗. 넌 남주라는 게 이런 것도 모르니?’
그럼 악시온은 큰 충격을 받겠지.
엄마인 나를 저주할지도…….
‘그러다 끔살 루트를 밟으면 어떡하지?’
말도 안 되는 상상임을 알면서도 마음속 한편에서 불쑥 불안이 샘솟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이런 걱정을 하는 건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