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other of the Soon-to-be Crazy Male Lead RAW novel - Chapter 79
곧 미치는 남주의 엄마입니다 79화 –
“저기 나무에 걸렸구나.”
“우웅…… 미, 미안.”
바닐라가 나무를 올려다보며 울상을 지었다. 지금으로부터 10분 전, 악시온과 바닐라, 그리고 나는 이제는 일상이 된 모래 놀이를 하는 중이었다.
엘스턴과 흑매들이 열심히 일하는 동안.
……그리고 애써 아닌 척하고 있지만, 바닐라가 몰래 다자르를 기다리는 동안 말이다.
오랫동안 놀기에는 날씨가 제법 추워 이전보다 놀이 시간은 줄어들었지만, 바닐라는 여전히 포크레인을 가지고 힘차게 놀았다.
‘실리아. 나도 시온 딸랑이 흔드러바도 대?’
악시온을 위해 가끔 들고 오던 딸랑이가 신기했던 모양인지, 바닐라는 내 손에 들려 있던 딸랑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물었더랬다.
‘그럼요.’
별생각 없이 바닐라에게 쥐여 주었던 게 문제가 될 줄은 몰랐다. 안 그래도 간혹 바닐라의 힘이 어린아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것을 느끼고 있긴 했다.
모래 놀이를 할 때 손을 팡팡 치면 힘 조절이 안 돼 손이 깊숙이 박히는 걸 몇 번 봤으니까. 게다가 역시 초월자라 몸놀림도 잽쌌고.
결국 딸랑이는 바닐라의 손에 들어간 뒤, 하늘을 슝 날고 말았다.
‘앗!’
‘우아?’
‘딸랑아!’
바닐라의 뛰어난 동체 시력 덕분에, 딸랑이를 금방 찾긴 했다.
우리가 모래 놀이를 하며 놀 때 햇빛을 가려 주곤 했던 커다란 나무 위에 있었다.
어깨를 늘어뜨리고 내 눈치를 보는 바닐라의 등을 살포시 쓰다듬어 주었다.
“괜찮아요. 바닐라. 실수였잖아요. 신경 쓰지 않아도 돼요.”
“……아, 안냐! 내, 내가 가지고 오께!”
“네?”
바닐라가 두 소매를 걷어붙이며 당차게 외쳤지만, 나는 그에 동의해 줄 수 없었다.
아무리 바닐라가 초월자이고, 잽싸고, 힘이 세도…….
‘어떻게 어린아이보고 나무를 타게 해?’
내 상식이 허락해 주지 않았다.
나는 재빨리 고개를 저으며 바닐라의 어깨를 탁 잡았다. 무쇠 팔로 다소 강하게 잡았는데도, 바닐라는 휘청이지조차 않았다.
대신 제 어깨에 가해지는 힘에 놀란 듯 동그래진 눈으로 날 바라보았다. 아파 보이진 않았다.
“실리아. 힘세다!”
“네, 네에. 고마워요. 아무튼, 바닐라는 가만히 있어요. 제가 올라갔다 올 테니까.”
나는 황급히 바닐라와 악시온을 저만치 밀어두고 악시온의 손을 바닐라에게 건넸다.
바닐라가 반사적으로 악시온의 손을 잡았다.
“자아. 악시온을 데리고 있어 줄래요?”
“어……? 실리아눈 나무보다 작자나. 위험하단 마리야.”
그래. 그렇지만 너는 나보다도 작지 않니?
나는 바닐라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며 싱긋 웃었다.
“바닐라는 누나니까 악시온을 지키면서 잘 있을 수 있죠?”
“시온을 지켜……?”
“네. 제가 없을 때는 바닐라가 우리 악시온의 보호자나 마찬가지예요. 우리는 가족이잖아요?”
“우웅! 마자, 우리눈 가족이야!”
바닐라는 이 ‘가족’이라는 말에 껌뻑 죽었다. 기분이 안 좋았다가도, 금방 헤벌쭉대며 어깨를 펴곤 했다.
이번에도 바닐라는 금방 헤헤 웃으며 악시온의 손을 두 손으로 소중히 잡았다.
“내가 시온을 지키고 이쓸께! 다녀와, 실리아!”
“네. 그래요. 고마워요, 바닐라.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나는 두 팔을 걷어붙이고 전쟁터에 나서는 장수처럼 비장하게 척척 걸었다.
가만 보자.
실리아가 나무를 탄 적이 있던가?
기억을 뒤져 봤지만, 없었다.
‘나도 나무를 타 본 건 아주 어렸을 때 할머니 집에서뿐인데.’
그때가 언제더라.
잘 기억도 안 날 정도로 어렸을 적이라서, 어떻게 나무를 탔는지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끄응. 작게 신음을 뱉으며 나무 앞에 섰다.
고개를 쓱 올리니, 나무 중간 부분에 걸려 있는 딸랑이가 보인다.
그냥 지금이라도 포기할까, 하다가 고개를 휘휘 저었다. 저 딸랑이는 악시온이 제법 아끼는 것이었다.
지난날 엘스턴이 제가 직접 만든 거라며 건네주고 간 황금 딸랑이.
그래. 저걸 포기해 버리면……
‘엘스턴이 울지도 몰라.’
악시온은 그러려니 해도, 엘스턴의 반응이 썩 달갑지 않을 것 같았다.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두 손을 펼쳐 나무 기둥을 붙잡았다. 그리고 천천히 나무를 오르기 시작했다.
내가 그냥 평범한 귀족 영애였다면 나무를 탈 생각은 절대 하지 않았겠지만, 실리아의 무쇠 팔과 무쇠 다리라면 무난히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읏차.”
역시, 실리아의 힘은 대단했고 나는 생각보다 더 수월하게 나무를 오를 수 있었다.
“우와아. 실리아 대다내!”
“우웅!”
아이들의 응원을 받은 덕분에 나는 딸랑이가 닿을 만한 곳까지 올라왔다. 이제 여기부터는 조금 벅차겠는데.
아무리 실리아라고 해도 나무에 오랫동안 매달려 있는 것은 힘들었는지, 손이 조금씩 떨리기 시작했다.
나는 조금 더 힘을 내서 손을 쭉 뻗었다.
딸랑!
“됐…… 다……!”
딸랑이가 손에 잡혔다.
그리고 바로 그때.
뚜둑. 불길한 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어…… 어……?”
“실리아!”
“우아아!”
분명, 방금까지 밟고 있던 나뭇가지가 부러지는 소리…… 라고 인식한 순간 나는 아래로 추락하고 있었다.
으악!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상황에 나는 비명을 채 입 밖으로 내지 못하고 곤두박질쳤다.
곧, 바닥이 다가올 것이었다.
직관적인 예감과 함께 걱정이 스쳤다.
‘애들이 놀라면 어떡하지?’
내 몸에 대한 걱정보다, 내가 떨어지는 걸 본 아이들이 혹시 놀랄 것이 더욱 걱정되었다.
나는 눈을 질끈 감고 황급히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안았다. 혹여 머리에서 피라도 날까 싶어서였다. 그럼 아이들이 더 놀랄 테니까.
그리고 곧 다가올 끔찍한 고통을 기다리는데.
“……!”
탁! 누군가 땅을 박차는 소리가 들린다 싶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누군가의 품에 안겨 있었다.
떨어져 내리는 나를 낚아챈 것이다.
나는 날 구해 낸 구세주의 목을 황급히 두 팔로 감싸 안았다. 본능적인 행동이었다.
‘다자르……!’
당연히, 상대가 다자르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뛰면서 신력을 내뿜은 것인지, 그에게서는 은은히 신력이 풍겨 나오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언제나 이런 순간 날 도와준 건 다자르였으니까.
비록 그에 대한 의심이 마음속에서 싹트고 있긴 했지만, 나도 모르게 이런 순간 날 구해 주는 건 당연히 다자르일 것이라고 여기고 있었던 듯싶다.
뒤이어 들린 목소리에 쩡 굳어 버린 걸 보면.
“이런. 심장이 떨어지는 줄 알았습니다. 괜찮으십니까? 실리아.”
“……어?”
타닥, 바닥에 내려앉은 그가 호흡 한 번 흐트러지지 않은 듯한 목소리로 부드럽게 물었다.
“혹시 불편하신 곳이 있다면 바로…….”
“모로카닐?”
“네.”
놀랍게도, 나를 안아 든 것은 다자르가 아니라 모로카닐이었다.
눈을 한 번 깜빡이고, 두 번 깜빡여도 내 앞의 수려한 얼굴은 변하질 않았다. 마침내 눈을 비비고 나서야 깨달았다.
와. 진짜 모로카닐이잖아?
“고맙…… 아니, 어…… 여기에 왜 모로카닐이 있어요?”
“실리아!”
“우아!”
내가 맹한 얼굴로 어버버 하는 동안, 바닐라가 악시온을 안아 들다시피 하고 후다닥 우리 옆으로 뛰어왔다.
그러고는 악시온을 뒤에 숨기듯 두며 고사리 같은 손으로 모로카닐의 정강이를 두들기기 시작했다.
“실리아를 내려죠! 나뿐 치밉자! 납치버엄!”
실상은 모로카닐이 날 구해 준 것인데, 모로카닐을 처음 보는 바닐라는 그가 저택에 침입한 납치범이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그럴 만도 했다.
이곳 시아스터가는 외부인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곳이었으니까.
……우리를 제외하고.
“당씬! 쩌번에 치밉한 사람이지! 혼나!”
“앗, 바닐라.”
내가 깜짝 놀라 모로카닐에게서 내려가기 위해 그의 목에 둘렀던 손을 풀려던 바로 그때.
“역시 내 딸이야. 더 때려. 더. 침입자는 쫓아내야지.”
귀에 익은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나는 멈칫하고 삐걱삐걱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아주 기분이 좋지 않아 보이는 다자르가 입매를 굳힌 채 삐딱하게 서 있었다.
그가 나와 모로카닐을 번갈아 보더니 눈을 가늘게 떴다.
“……뭐 하냐, 둘이?”
왜인지 모르겠지만, 기분이 묘했다. 어음, 그러니까…… 뭐지, 이 이상하게 찔리는 기분은?
가족 앞에서 낯부끄러운 현장을 들킨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아니, 그것만으로는 조금 부족한데…….
다만 좋지 않은 쪽인 건 명확했다.
그러면서도, 다자르가 돌아온 걸 보니 미묘하게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아니, 저 얄밉고 재수 없는 얼굴이 왜 반갑고 그러지?
나는 내 기분을 이상하게 만든 범인을 향해 일부러 퉁명스럽게 툭 말했다.
“그러는 댁은 여기서 뭐 해요? 감옥에 안 있고.”
그러지 않았다간, 왠지 이상한 내 마음이 들킬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