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other of the Soon-to-be Crazy Male Lead RAW novel - Chapter 97
곧 미치는 남주의 엄마입니다 97화 –
“우어어…….”
눈앞에는 땅과 한 몸이 되어 애벌레처럼 바닥을 기고 있는 남정네들이 있었다.
그 꼴을 보아하니, 이들을 더 이상 흑매라고 칭하기도 민망할 정도였다. ‘균열의 날’에 지붕을 날아다니며 마물을 제거하던 이들이라고는 전혀 생각할 수 없는 몰골이었으니까.
‘내가 가래떡을 못 준 게 좀 되긴 했지.’
남아 있던 쌀들을 모두 써 버렸던 까닭이다. 나는 내 외침이 들리지 않는 것처럼 바닥에 몸을 비비고 있는 그들을 바라보며, 다시 한번 박수를 짝! 쳤다.
“자, 여러분. 가래떡이 먹고 싶나요?”
“……!”
꿈틀!
바닥에 몸을 붙이고 있는 남정네들이 일제히 몸을 꿈틀거리는 모습은 생각보다 꽤 그로테스크하고 기이했다. 하지만 이 쓰레기들의 이런 이상한 모습이야 여러 차례 봐 왔기 때문에, 이 정도쯤은 거뜬하게 이겨 낼 수 있었다.
나는 어깨를 활짝 펴고 외쳤다.
“여기 있는 이 벼가 익기를 기다리고 있었죠? 그래야 가래떡을 먹을 수 있을 테니까요. 이제 여러분이 기다리고 기다리던 그날이 왔답니다.”
“……!!”
꿈틀, 꿈틀!
이번에는 연이어 몸이 두 번이나 꿈틀댔다. 살짝 뒤로 물러나고 싶은 기분이 들었지만, 굳건히 이겨 내고 검지로 한쪽을 가리켰다.
벼가 노랗게 익어 머리를 숙이고 있는 논밭을 향해서였다.
“자, 여길 보세요. 여기 이 노란 벼들이 보이나요? 이 벼가 곧 쌀이 되고, 쌀로 가래떡을 만들 수 있게 돼요. 기대되지 않나요?”
“……가, 가래떡!”
애벌레 무리 중 한 남자가 벌떡 몸을 일으켰다. 흙먼지가 잔뜩 묻은 하얀 머리카락이 용맹하게 흔들리고, 퀭한 두 눈에 빛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그는 바로 레온이었다.
“누님!”
평소 멍하기만 하던 목소리에는 절박함이 깃들어 있어, 듣는 이로 하여금 동정이 올라오게 했다.
비록 그 내용은 가래떡 중독자의 애절한 호소였지만.
“이, 이제 가래떡을 먹을 수 있는 겁니까?”
“가래떡!”
“가래떡!”
레온의 목소리가 논밭을 울리자 애벌레들이 하나둘 일어나 가래떡을 외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정말, 그들과 어울리고 싶지 않게 했다. 내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그들과 거리를 유지하고 싶다는 마음이 올라왔다.
길 가다 우연히 마주쳐도 인사를 하고 싶지 않고, 누군가 ‘저 사람 아는 사람이야?’라고 물으면 ‘아니! 전혀!’라고 답해 주고 싶은 기분.
나는 어색하게 웃으면서 박수를 가볍게 쳤다.
짝……!
“네. 이 벼를 수확해서 조금의 공정만 거치면 금방 가래떡을 만들 수 있어요!”
그 ‘조금의 공정’에 꽤나 많은 과정이 들어가 있지만, 지금 저 반짝반짝 빛나는 눈을 보니 그 과정을 자세히 설명해 주기는 어렵겠다.
“우오오! 가자, 동지여!”
“가래떡을 위하여!”
마치 사지라는 것을 알면서도 자신의 명예를 위해 전쟁터에 뛰어드는 영웅처럼, 흑매들의 눈빛은 형형하게 빛났다.
“명령만 내려 주십쇼! 누님!”
레온이 옛날에 한번 본 적 있는 ‘미식의 길’이라는 작은 노트를 꺼내며 결연한 얼굴을 했다. 나는 최대한 자애롭게 웃으면서, 천천히 그들이 해야 할 일들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제가 미리 논밭의 물은 빼 두어서, 바로 일 시작하면 돼요. 이제부터 저 벼를 모두 베고 말릴 거예요. 그러기 위해선 일단 도구가 필요하겠죠?”
미리 가져다 둔 낫을 흑매들에게 쥐여 주고, 함께 논밭으로 향했다. 농사 덕후인 이 몸도 오랜만에 농사일을 하려고 하니, 신이 난 모양이었다. 왠지 심장이 두근거리는 것을 보아하니.
‘으으으. 이 망할 농사 덕후 같으니.’
결연한 눈빛의 흑매들을 뒤에 달고 희열에 젖어 성큼성큼 걷는 자작 영애라니. 거참 그림 이상하겠군. 벼를 베러 논밭으로 향하는 주제에 이런 그림과 가슴 벅찬 심장이라니.
이 오글거리는 심정은 그 누구도 알아주지 않을 터였다.
빨리 벼를 모두 베어 버리고 일을 끝내자는 생각으로 척척 걷던 바로 그때였다.
“형님들, 실리아! 너무 멋있는 그림입니다.”
어디서 나타난 건지, 퐁실퐁실한 분홍빛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세드릭이 불쑥 말했다. 그는 순수하게 감동에 젖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의 정신세계가 이상하다는 건 흑매를 형님으로 모실 때부터 알고 있었지만, 최근 들어 그의 정체가 흑막일 것이라고 의심하고 있는 와중인 터라 어쩐지 조금 꺼려졌다.
나는 성큼성큼 걷던 걸음을 끼익 멈췄다.
“저도 함께해요! 네?”
며칠 전 마탑주를 보며 이래라저래라 하대하던 그 재상이 맞는지, 헤헤거리며 레온의 옆에 바짝 붙은 세드릭은 나사 하나 빠진 것 같았다.
명색이 황실에서 새로운 식량의 개발법을 배우기 위해 온 인력이긴 하니까. 그를 보내 버릴 수도 없고…….
나는 탐탁지 않은 기분으로, 그를 뒤에 매달고 논밭으로 향했다.
왠지 머리가 아파 온다.
* * *
흑매들이 도운 덕분에, 벼를 수확해 말리는 건 생각보다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역시 노동력만큼은 최강이라니까.’
곧 가래떡을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신이 난 흑매들은 가래떡님을 뵙기 전에 몸을 정갈히 해야 한다며 단체로 목욕을 하기 위해 자리를 비웠다.
덩달아 흑매들을 따라간 세드릭까지 보내고 나서, 나는 랄프가 보내온 기계들을 둘러보았다.
탈곡과 도정을 위해 만든 기계는 내 마음에 쏙 들었다.
‘랄프는 정말 대단하다니까.’
마법과 신성력이 판을 치는 이 세계관에서 어떻게 이런 기계를 만들어 내지? 기계가 작동하게 하는 근원의 힘은 마석이라고 듣긴 했지만, 어쨌든 신기하긴 했다.
나는 기계들을 고이 모셔 두고 내 방으로 향했다. 지난날 미야가 홀먼 백작가로 나를 초대한 그날이 코앞이었던 까닭에, 미리 준비를 할 생각이었다.
“어디 보자아…….”
실리아가 옷이 많이 없긴 하지만, 지난날 ‘안식의 장’을 위해 드레스를 조금 장만해 뒀던 덕분에 티타임 참여는 가능할 것 같았다.
“맙소사. 그때 그 서신이 티타임의 초대장이었단 말입니까?”
칼은 내가 드레스를 뒤적이자 크게 놀라 어버버 하다, 그 이유를 듣고 울 것 같은 얼굴을 했다.
그가 나나 실베스타인이 뭘 할 때마다 저런 반응을 보이는 건 이제 지겨웠기에, 무심하게 고개만 끄덕였다.
“흐읍. 실리아 님께서 티타임이라니……. 돌아가신 가주님께서 들으시면 눈물을 흘리실 겁니다.”
그렇게 말하는 칼은 진정 감동한 얼굴이었다. 윽. 저 표정은 저 레퍼토리가 적어도 몇 시간은 이어진다는 신호인데.
이제껏 그를 겪어 오며 그의 행동 패턴을 파악한 나는 구겨지는 얼굴을 굳이 막지 않았다.
드레스는 나중에 고르고, 일단 여길 나가야겠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재빨리 방에 딸린 드레스룸을 나섰다.
하지만 계속 졸졸졸 내 뒤를 따르는 칼을 확인하고, 아예 방을 나가기로 했다.
벌컥! 문을 열어젖히는 순간.
“어? 모로카닐?”
“아. 에반로아르 영애.”
모로카닐이 노크를 하려는 포즈로 문 앞에 서 있었다. 루벤의 섬에서 다자르와 대치할 때 만나고, 저택에 들어온 뒤 마주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여긴 무슨 일이에요?”
악시온이 루벤인 것을 알면 안 되는, 가장 조심해야 하는 존재.
……라고 다자르가 이야기해 줘서일까.
저택에서 그를 마주할 기회는 충분히 있었지만, 내가 굳이 찾지 않긴 했다. 물론 피하기도 했고.
지금 이렇게 마주하는 것도 사실 조금 껄끄러웠다.
“잠시 시간 되십니까?”
“어…….”
악시온은 지금 낮잠을 자고 있고, 나는 막 칼에게서 벗어나려는 참이었다. 딱히 지금 당장 뭔가를 해야 하는 것도 아니었고…….
나는 눈동자를 도르륵 굴리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요. 뭔데요? 무슨 일이라도 있어요?”
“아니요.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닙니다.”
모로카닐이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예전 같으면 저 미소가 에인젤의 미소라고 생각했을 텐데, 지금은 조심스러울 뿐이다.
“일단 밖으로 나갈까요? 지난번에 걸었던 정원으로 가시는 건 어떻습니까?”
“……좋아요.”
정원이라면, 예전에 모로카닐이 이 저택에 다자르의 감시자로 왔을 때 저녁에 한번 들렀던 곳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나를 에스코트하는 모로카닐을 따라 정원으로 걸음을 옮겼다.
정원에 도착하자, 모로카닐이 입술을 뗐다.
“혹시 다자르가 이상한 말을 하진 않았습니까?”
“네?”
이상한 말?
무슨 말?
내가 눈을 끔벅이자 모로카닐이 눈을 어둡게 하고 속삭이듯 말했다.
“‘그녀’에 대해서, 들으신 게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