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mortal RAW novel - Chapter 202
202 예측 불가
금설화가 사마천웅을 만난 건 다음 날 아침이었다.
창천사마세가의 가주 집무실.
사마천웅은 온화한 얼굴로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은 금설화에게 말했다.
“허허허, 녀석, 이제 요조숙녀가 다 되었구나. 지난 몇 년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이 네 미모와 재능을 칭찬하던지 귀가 따가울 지경이었다. 그래서 늘 네가 보고 싶었는데, 직접 보니 오히려 목단화라는 별호가 모자라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과찬이세요, 백부님.”
금설화가 걱정스러운 기색으로 말을 이었다.
“얼마 전에 세가 내에 큰 우환이 있었다고 들었어요. 그래서 백부님의 건강을 많이 걱정했는데, 오히려 마지막에 뵌 사 년 전보다 더 건강하신 것 같아서 마음이 놓여요.”
그녀가 말한 ‘우환’은 사마세가의 가신들이 대학살 당한 사건을 가리켰다.
그녀의 대꾸에 사마천웅은 혀를 찼다.
“허, 그처럼 입단속을 했는데 그 일이 네 귀에까지 들어갔느냐?”
“작은 일이 아니었잖아요.”
“하긴 천하 상계의 오 할을 장악한 너희 가문이 그 일을 모를 리는 없겠지.”
만금산장이 하고 있는 여러 사업이 무림과 밀접하게 관련된 건 하루이틀 일이 아니었다.
당연히 그들과 사업적으로 연관된 사람은 무수히 많았고, 그건 천하에 그들의 이목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는 말이나 같았다.
오죽하면 천하에서 가장 방대한 정보망을 가진 문파는 천하삼정이나 개방, 하오밀문이 아니라 만금산장이라는 말까지 돌 정도니까.
“그런데 백부님이 요즘 연공실에서 지내신다는 말을 듣고 많이 놀랐어요.”
“그랬느냐.”
사마천웅은 쓰게 웃었다.
그가 어제 도착한 금설화를 이제야 만나게 된 연공실에서 나온 조금 전에서야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진무앙을 만난 후 그는 모든 업무를 소가주인 사마무광에게 넘긴 후 자신은 연공실에서 먹고 자는 생활을 하고 있었다.
폐관은 아니었지만 아침 식사 때나 잠깐 얼굴을 비칠 뿐이었다.
금설화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연세가 있으신데, 무리하는 건 아니신지요.”
“허허허, 별걱정을 다 하는구나. 나는 아직 젊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도 있지 않느냐.”
내공이 아무리 두터운 절정고수라 해도 반로환동의 경지에 이르지 않으면, 육체의 노쇠 현상을 피하지 못한다.
물론 일반인에 비할 수 없이 느리게 진행되긴 하지만.
칠십을 넘은 사마천웅이 연공실에서 생활하면 몸에 무리가 갈 게 뻔한 것이다.
“제가 주제넘은 걱정을 한 거라면 정말 죄송해요.”
“아니다, 허허허.”
금설화의 마음이 진심이라는 걸 느낀 사마천웅은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그가 말을 이었다.
“그런데 너는 이곳에 무슨 일로 온 것이냐? 들으니까 시중드는 아이 한 명만 동행했다던데. 네 아비가 그런 조촐한 여행을 허락했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구나.”
그는 금설화의 부친 금진운이 그녀를 끔찍하게 아낀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가 섬서성 내의 가까운 곳에 여행을 가도 호위무사들을 수십 명이나 딸려 보냈다.
그런 그녀가 달랑 여종 한 명만을 데리고 천 리 넘게 떨어진 낙양까지 왔으니 이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금설화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것을 본 사마천웅의 미간이 좁아졌다.
“아우에게 안 좋은 일이라도 생긴 것이냐?”
금설화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녀의 이야기는 반 시진이나 이어졌다.
이야기가 끝난 집무실은 깊은 정적에 휩싸였다.
사마천웅은 무서운 눈으로 금설화를 보며 입을 열었다.
“설화야, 사흘 후 출발하도록 하자. 만금산장과 화산파가 연합한 힘을 상대하려면 충분한 준비가 필요하다.”
금설화의 얼굴에 당황과 감격한 기색이 뒤섞여 떠올랐다.
사마천웅이 이야기를 듣자마자 출정을 결정할 거라는 생각을 못했기 때문이었다.
“백부님…….”
“네 아버지는 내게 피를 나눈 친형제나 다름없는 사람이다. 그가 곤경에 처했다는데 어찌 나 몰라라 할 수 있겠느냐.”
그가 탄식하며 말을 이었다.
“한 가지 아쉬운 건, 본가에 있었던 사건으로 정기가 많이 손상되어 양대문파를 상대하기에는 전력이 부족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내가 직접 지휘할 테니 어느 정도 대등한 싸움은 가능할 것이다.”
그의 눈빛이 강렬해졌다.
“설화야, 걱정하지 말거라. 반드시 네 아버지를 구해낼 테니.”
금설화가 길게 숨을 내쉬며 말했다.
“백분님, 말씀은 감사하나 제가 이곳에 온 건 사마세가의 힘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에요.”
사마천웅의 얼굴에 노한 기색이 떠올랐다.
“그게 무슨 말이더냐! 아우에게 불상사가 생겼는데 내 도움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니. 본가의 정기가 손상되었다고 네가 나를 무시하는 것이냐!”
분노한 그의 기세는 거칠고 사나워서 금설화가 견딜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얼굴이 창백해지고 이마에 식은땀이 솟은 그녀가 고개를 깊숙이 숙이며 말했다.
“백부님, 노여움을 거둬주세요. 제가 어떻게 감히 백부님을 무시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 마음은 전혀 없어요.”
그녀의 간절한 말에 사마천웅의 기세가 누그러졌다.
금설화가 말을 이었다.
“아버님에게 문제가 생겼고, 배후에 화산파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후 저는 은밀히 도움을 청할 수 있는 곳을 알아보았어요.”
현명한 조치라 사마천웅은 고개를 끄덕이며 귀를 기울였다.
“처음엔 백부님을 떠올렸지만 그 사건으로 인해 세가의 전력 삼분지 일을 잃었다는 소식을 듣고 포기했어요. 그건 무시해서가 아니라 백부님이 그 전력으로도 망설이지 않고 나설 거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에요.”
“음…….”
“산장과 화산파가 연합한 힘과 싸운다면 설사 승리한다 해도 사마세가는 회복하기 힘든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어요. 저는 사마세가를 그런 위험한 상황에 끌어들여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어요.”
합리적인 판단이지만 마음에 드는 건 아니어서 사마천웅은 눈살을 찌푸렸다.
금설화는 죄송하다는 듯 고개를 숙이며 말을 이었다.
“두 번째는 무림맹에 도움을 청하는 방법이었지만 그 또한 가능하지 않다는 판단을 내리게 되었어요. 그곳은 역병과 다른 질병의 창궐 때문에 고통받는 무한 백성들을 돕는 데도 사람이 부족한 상황이라고 들었기 때문이에요.”
만금산장이 위기에 빠졌을 때 금설화가 도움을 청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우군은 화산파, 창천사마세가, 무림맹이었다.
그런데 세 곳 모두 ‘도움 불가’ 상황이었다. 그렇다면 당연히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사마천웅이 그걸 물었다.
“설화야, 내게 도움을 청할 게 아니라면 왜 나를 찾아온 것이더냐?”
금설화가 고개를 들고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리고 눈을 빛내며 대답했다.
“저는 사마세가에 생긴 우환에 대해 걱정이 되어서 조사를 좀 했었어요. 죄송해요, 백부님.”
“흠…….”
“여러 가지 정보를 얻을 수 있었어요. 세가 내에서 다른 움직임을 보였던 일군의 가신들이 있었고, 그들이 한날한시에 참살되었다는 것을요. 그렇게 정보들을 분석하다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어요.”
“뭐가 이상했다는 것이냐?”
“반역을 꾀한 자들을 참살한 주체가 백부님이 아닌 것 같다는 것이었어요. 군웅각에 모인 가신들이 참살당할 때 백부님과 소가주님은 내전에 계셨다고 하더군요. 무엇보다도 반역에 가담하지 않은 가신들은 그날 본가에 들어오지 않았어요.”
사마천웅의 눈이 깊어졌다.
금설화가 말을 이었다.
“그날 전후로 사마세가에 드나든 대규모 외부 세력의 흔적도 발견할 수 없었고요. 그런 의심스러운 움직임이 없었기에 반역을 모의한 가신들도 의심 없이 군웅각에 모였던 것이죠.”
사마천웅은 절로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금미호(황금으로 빚은 아름다운 여우)라는 별명답게 금설화는 영리했다.
“이해하기 힘든 상황이었어요. 제가 아는 백부님은 세가의 무사들을 가족처럼 생각하는 분이세요. 설령 반역 모의를 한 가신들이라 해도 그렇게 모조리 참살하실 분은 아니었죠. 우두머리 몇 명이라면 모를까, 나머지는 무공을 폐하거나 세가에서 제명하는 게 제가 아는 백부님의 방식이었죠. 그런데 결과는 반역에 가담한 가신의 전원 참살이었어요.”
“그래서?”
“정보 분석 결과 저는 군웅각 참살의 주체가 극소수이며, 전원 참살을 반대하는 백부님을 침묵시킬 수 있는 존재라는 결론을 내렸어요.”
사마천웅이 물었다.
“네가 생각하는 그 존재가 누구더냐?”
금설화는 단호한 어조로 대답했다.
“암천광무존이세요.”
그제야 사마천웅은 금설화가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지, 그리고 자신을 왜 찾아왔는지 알아차렸다.
“너는 내게 그분의 행적을 알고 싶어서 찾아온 게로구나.”
금설화가 고개를 숙이며 간절한 어조로 말했다.
“예, 백부님. 제발 도와주세요. 저는 무존을 반드시 만나 뵈어야 해요.”
사마천웅은 탄식했다.
“영리한 너도 등잔 밑은 보지 못하는구나…….”
“예?”
“너는 오는 도중에 ‘진무앙’이라는 청년을 호위무사로 고용했다고 했지?”
“예.”
“왜 그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은 것이냐?”
“분명 그는 무공이 뛰어난 사람이긴 했지만, 혼자인데다 비밀이 너무 많은 것처럼 느껴져서 믿기 힘들었기 때문이에요.”
“금미호라는 별호에 어울리는 예리한 안목이로다.”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는 사마천웅의 말투에서 묘한 기색을 느낀 금설화가 물었다.
“백부님, 혹시 진 소협을 아세요?”
사마천웅은 고개를 끄덕였다.
“모르는 분이라고 할 수 없지…….”
놀란 금설화의 안색이 변했다.
사마천웅이 사용한 ‘분’이라는 극존칭 때문이었다.
“설마… 진 소협이…….”
“그분이 네게 진정한 신분을 밝히지 않았는데 내가 감히 그분에 대해 언급을 할 수는 없다.”
그의 말에 엄청난 충격을 받은 금설화의 입이 저절로 벌어졌다.
사마천웅이 직접 진무앙과 암천광무존의 관계를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저런 말을 듣고 아무것도 유추하지 못한다면 그냥 바보다.
사마천웅의 말이 이어졌다.
“네가 그분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네 문제는 아주 쉽게 해결이 가능하겠지……. 설화야, 너는 아직 그분에게 호위무사로 고용한 대금을 지불하지 않았다고 했지?”
“예.”
“잘됐다. 네가 직접 그것을 갖고 수향루로 가거라. 그곳에 가면 언행과 몸가짐에 각별히 주의하거라. 그곳엔 그분의 지인들이 함께 머물고 있다. 그리고 그분들 중 네가 가볍게 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
금설화의 얼굴이 굳어졌다.
사마천웅이 따스한 눈으로 그녀를 보며 말을 이었다.
“네 미모가 남다른 건 사실이지만, 그걸 이용할 생각은 하지 말거라. 역효과가 날 수도 있으니. 오직 너의 진심을 보여 드리거라. 그분을 설득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네 바람의 성사 여부가 갈릴 것이다.”
“아…….”
사마천웅이 입을 다물었다.
금설화는 그와의 대화가 끝났다는 것을 깨닫고 일어나 정중하게 절을 했다.
“강녕하세요, 백부님.”
사마천웅이 단단해진 표정으로 그녀에게 말했다.
“만약 그분이 거절하신다면 다시 날 찾아오거라. 그때는 설령 본가가 망하는 한이 있더라도 나설 테니.”
금설화는 감격한 얼굴로 대답했다.
“예.”
그녀는 깊숙이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하고 집무실을 떠났다.
홀로 남은 사마천웅의 눈이 깊게 가라앉았다.
“무존께서는 네 조부인 금 대인과의 인연이 작지 않은 분이니 사정을 알고 나면 외면치는 않으시리라. 후우… 그러기를 바라지만 작은 인연에 매이는 분이 아니라서 정말 예측이 어렵구나…….”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