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mortal RAW novel - Chapter 357
357 그 인간은 답도 없다
낙양 수향루 별채.
아침 식사를 마친 직후부터 강석초는 방에 돌아갈 생각은 하지 않고 뭐 마려운 강아지처럼 정원을 뱅글뱅글 돌고 있었다.
작은 정원석에 앉아 턱을 괴고 그를 지켜보던 소소가 물었다.
“강 소숙, 무슨 일 있으세요? 그만하시고 들어가 봐야 할 것 같은데… 소혜 언니가 창으로 내려다보고 있잖아요.”
그 말에 고개를 든 강석초는 별채의 방 창문에 얼굴을 내밀고 걱정스럽게 그를 내려다보고 있는 진소혜와 눈이 마주쳤다.
그는 어색하게 웃으며 별일 없는 것처럼 활기차게 손을 흔들었다.
그러고는 소소의 옆에 있는 바위에 털썩 앉았다.
소소가 별처럼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강 소숙, 진짜 무슨 일이라도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말씀해 주시면 안 돼요? 혹시 제가 도움이 될지 모르잖아요.”
강석초의 입에서 긴 한숨이 흘러나왔다.
“어휴…….”
소소를 한 번 힐끗 본 그가 말문을 열었다.
“그 인간이 귀가 중이다.”
그 말에 아이의 얼굴이 꽃처럼 환하게 피어났다.
“진 숙부님이 돌아오고 계신다고요?”
“응.”
소소가 고개를 갸웃하며 또 물었다.
“그런데 왜 한숨을 쉬세요? 하늘이 무너질까 봐 걱정하는 사람처럼 보여요.”
“그 인간이 돌아오면 하늘만 무너질 것 같냐? 땅도 꺼질 거다.”
“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소소야, 그 인간이 나가 있는 동안 수향루에 예쁜 여자들이 계속 찾아온 거 알지?”
“물론이죠.”
“전부 돌아가지도 않고 여기 뭉개고 눌러앉은 것도 알지?”
“당연하죠. 매일 식당에서 그분들과 마주치는걸요.”
“그 여자들이 전부 그 인간하고 인연이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도 알지?”
“예. 루주님한테 진 숙부님이 어디에 있느냐고 추궁하다가 엄청나게 얻어맞고 잠잠해진 분이 한둘이 아니잖아요.”
“이 와중에 그 인간이 돌아와 봐라, 어떻게 될 거 같냐?”
소소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장죽을 휘두르는 난향에게 진무앙이 쫓겨 다니는 그림이 실제보다 더 선명하게 머릿속에 그려졌기 때문이다.
아이가 난감한 표정을 짓자 강석초는 다시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소소야, 이건 아무리 똑똑한 너라도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어른들 사이의 일이라서요?”
“아니. 무앙의 일이라서 그렇다. 다른 사람이라면 중재라도 하지, 그 인간은 답도 없다. 그나마 이 낭랑의 옆에 있을 때는 어느 정도 제어라도 되지…….”
강석초는 말을 이으며 이를 갈았다.
“부드득! 밖으로 나가기만 하면 완전히 자기 하고 싶은 건 다 하면서 돌아다니니… 으으으. 천하의 어른들이 모두 그 인간처럼 살면… 으으으… 그런 아사리 개판도 없을 거다!”
소소는 동의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말을 받았다.
“진 숙부님이 엉뚱한 사고를 많이 치시는 건 맞지만, 정말 좋은 분이세요. 얼마나 정이 많고 사람을 아끼시는데요.”
“흥! 그건 네 눈에 꺼풀이 씌워져 있어서 그렇게 보이는 거야. 언젠가 너도 그 꺼풀이 벗겨지면 무앙의 본모습이 어떤지 알게 될 거다.”
소소가 배시시 웃었다.
“참 신기해요.”
“뭐가?”
“강 소숙은 진 숙부님이 없을 때는 온갖 욕을 다하고, 계실 때는 그분한테 세상 구박 다 받으시죠. 그런데도 매일 진 숙부님 걱정을 하면서 기를 쓰고 그분 옆에 있으려고 하시잖아요.”
강석초가 움찔하며 소리를 버럭 질렀다.
“내가 언제!”
“늘 그런데요?”
강석초는 코가 떨어져 나가라 코웃음을 쳤다.
“흥! 네가 아아아아주 잘못 본 거다.”
“아닌데…….”
큰소리 땅땅치던 강석초가 갑자기 시무룩한 표정으로 둥글둥글한 어깨를 웅크리며 고개를 푹 숙였다.
소소가 물었다.
“계속 걱정되세요?”
“응.”
“아줌마들은 모두 진 숙부님하고 인연이 있다고 하셨잖아요. 그러니까 그분이 돌아오면 정리가 되지 않을까요?”
“걱정거리가 그뿐이면 다행이게?”
“또 있어요?”
“운상이가 형, 누나, 동생들을 데리고 돌아올 때가 다 되어가.”
“운상이라면 저를 구할 때 도움을 주시고 형제분들 모시고 오겠다면서 떠나신 그분이요?”
“응.”
소소의 얼굴에도 걱정스러운 표정이 떠올랐다.
아이는 예전에 강석초에게서 아홉 형제자매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소소가 물었다.
“강 소숙, 진 숙부님이 여기에 아줌마들하고 동생 분들이 있는 걸 보면 야반도주하실까 봐 걱정하시는 거죠?”
강석초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인간은 그러고도 남아. 한두 번 그런 것도 아니고.”
소소의 작은 얼굴에도 드디어 심각한 기색이 떠올랐다.
“문제는 문제네요.”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예.”
“이를 어쩌냐…….”
가만히 궁리하던 소소가 물었다.
“진 숙부님이 언제쯤 도착할지 아세요?”
“대별산을 통과했다고 했으니까 늦어도 이삼 일 이내에 낙양에 들어올 거다.”
소소가 벌떡 일어섰다.
엉거주춤 따라 일어선 강석초가 물었다.
“어디 가려고?”
“루주님 좀 뵈려고요.”
“왜?”
“일단 숙부님이 도착하셨을 때 그분 눈에 아줌마들이 띄면 안 되잖아요.”
강석초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 낭랑한테 여자들 숨겨놓으라고 하려고?”
“예. 일단 진 숙부님이 수향루에 들어오게 해야죠. 문 밖에서 그분들 보고 바로 도망쳐 버리시면 붙잡을 방법이 없잖아요.”
“그건 그래. 루에 들어와야 그 뒤에 발을 묶든 마음을 묶든 뭐든 할 수 있겠지.”
소소가 당찬 표정으로 강석초를 보며 말했다.
“강 소숙은 형제자매 분들을 찾아주세요.”
강석초는 꺼리는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되물었다.
“응? 그 인간들을 왜?”
“그분들이 진 숙부님보다 먼저 루에 들어오면 안 되잖아요. 강 소숙이 그분들을 찾아서 이야기를 해주세요.”
“뭐라고?”
“진 숙부님이 도착하면 밖에서 루를 포위하라고요.”
강석초는 소소가 현명한 전략을 생각해 냈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렇다고 마음이 썩 내키는 건 아니었지만.
그가 주눅이 잔뜩 든 표정으로 말했다.
“운상이 자식도 내가 무앙이 여기 있다는 걸 말해주지 않았다고 그 지랄을 했는데… 다른 형제들도 날 가만두려 하지 않을 거야.”
소소가 그의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저는 강 소숙이 잘해내실 거라고 믿어요.”
강석초의 입에서 앓는 신음이 흘러나왔다.
“으으음…….”
소소는 겨울이 지나 이제 열 살이 되었다.
안색이 조금 창백하다는 걸 제외하면 미모는 꽃처럼 피어나고 있었고, 영민함은 난향조차 감탄할 정도였다.
그렇다고 갑자기 열 살짜리 어린아이가 어른이 되는 일은 없다.
그런 소소에게 계속 약한 모습을 보일 수는 없는 일 아니겠나.
그건 인간 강석초의 자존심 문제였다.
그가 주먹을 불끈 쥐며 말했다.
“좋아. 형제자매들을 찾아서 부탁해 보마. 몇 군데 부러지긴 하겠지만 설마 죽이기야 하겠냐.”
“역시 강 소숙은 용감하세요. 소혜 언니가 반할 만해요.”
강석초가 어깨에 힘을 잔뜩 주며 말을 받았다.
“당연하지. 내가 이래 봬도 돈마불 권마 강석초야!”
소소는 강석초에게 배꼽인사를 하고는 루주 집무실로 뛰어갔다.
아이가 사라지자 강석초가 바위에 털썩 주저앉으며 중얼거렸다.
“그 인간하고 얽히기만 하면 어떻게 된 게 늘 살얼음판을 걷는 것 같냐… 내 팔자도 진짜… 춘추서각에서 그 인간을 보았을 때 바로 낙양을 떴어야 했는데…….”
소슬한 늦겨울의 서늘한 바람이 그의 목덜미를 스치고 지나갔다.
이래서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다는 옛말이 전해져 내려오는 것이다.
* * *
대별산은 안휘, 호북, 하남 등 세 개 성의 경계에 걸친 대산이다.
남쪽에서 북쪽으로 계속 달리다가 산을 벗어나면 그곳이 바로 하남성이다.
다가닥! 다가닥!
산기슭의 내리막길을 달리다가 평지의 관도로 들어선 사두마차의 속도가 조금씩 느려졌다.
마부석의 신완아가 공야무룡에게 말했다.
“말들이 많이 지쳤어요. 좀 쉬었다 가는 게 좋을 것 같아요.”
푸르르- 푸르르-
말들의 숨소리가 거칠었다.
고개를 끄덕인 공야무룡이 마차 안에 대고 소리쳤다.
“주공, 이대로 계속 달리면 말들이 쓰러질 것 같수. 마을이 나오면 오늘은 그곳에서 쉬겠수다.”
안에서 심드렁한 진무앙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라. 걔들도 팔자에 없는 곰 한 마리를 태우고 달리려니 얼마나 힘들겠냐.”
공야무룡의 눈썹이 꿈틀하며 위로 치솟았다.
신완아가 재빨리 그런 그의 꽉 움켜진 손을 살며시 잡으며 고개를 저었다.
공야무룡이 길게 숨을 내쉬며 손에 힘을 풀었다.
“내가 이러다 제 명에 못 죽지…….”
그의 구시렁거림을 들은 신완아가 소맷자락으로 입을 가리고 소리 죽여 웃었다.
공야무룡이 그녀를 돌아보며 물었다.
“왜 웃어?”
“가가는 죽고 싶어도 못 죽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무슨 소리야?”
“주공께서 당신의 허락도 없이 가가가 죽는 걸 눈 뜨고 보시겠어요?”
반박할 수가 없는 말이라 공야무룡의 어깨가 축 늘어졌다.
“죽는 것도 허락을 받아야 하는 더러운 세상.”
“나는 세상이 좋기만 한 걸요.”
“뭐가 그렇게 좋은데?”
“언제까지고 내 옆에 이렇게 건강하게 살아 있는 가가를 볼 수 있을 테니까요.”
공야무룡의 입이 헤벌쭉하게 벌어졌다.
“나도 아매와 함께 있는 게 좋아. 벽에 똥칠할 때까지 옆에 있을 거야.”
신완아가 공야무룡의 팔에 머리를 기대며 말했다.
“저도요.”
그때 안에서 진무앙이 외침이 들려왔다.
“당장 안 떨어져!”
기겁한 공야무룡과 신완아가 후다닥 떨어졌다.
진무앙이 마부석 뒤의 창을 열고 얼굴을 내밀며 말을 이었다.
“눈꼴이 시어서 두고볼 수가 없네. 너희가 내 염장을 지르려고 작정을 한 거지?”
당황한 신완아가 손사래를 치며 급하게 말했다.
“그럴 리가 있겠어요. 왜 저희가 주공의 염장을 지르겠어요.”
“가뜩이나 심란한데 너희가 코앞에서 꽁냥거리는 이유가 뭐야? 날 열받게 하려고 작정하지 않았으면 어떻게 이러냐고!”
신완아는 바로 고개를 숙였다.
“죄송해요, 주공. 저희 생각이 짧았어요.”
진무앙이 홱하고 공야무룡을 노려보았다.
공야무룡은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하늘에 시선을 주고 있었다.
“곰탱아.”
“왜 부르슈?”
“너 정말 짝 잘 만난 줄 알아.”
“그거야 처음 봤을 때부터 알고 있었수.”
“쟤 아니었으면 넌 지금 마차 뒤를 따라 뛰고 있었을 거다. 평생 완아 업고 살아라.”
“말씀하지 않으셔도 그럴 거유.”
“이 곰탱이 자식! 한 마디를 안 져!”
빠악!
“으악!”
진무앙의 손바닥이 공야무룡의 뒤통수를 인정사정없이 후려갈겼다.
비명을 지른 공야무룡이 곰처럼 몸을 잔뜩 웅크리며 소리쳤다.
“왜 때려요!”
“얄미워서 때렸다, 새끼야!”
“내가 뭘 잘못했…….”
“더 맞을래?”
“흡!”
공야무룡은 바로 입을 닫았다.
“지금부터 낙양 도착할 때까지 입 열지 마. 열 때마다 처맞을 테니까.”
“아매하고 둘이 있을 때도…….”
빠악!
“으악!”
이번엔 주먹으로 이마를 정통으로 얻어맞은 공야무룡이 비명과 함께 고개가 뒤로 확 꺾였다.
놀란 신완아가 공야무룡이 떨어지지 않도록 그의 팔을 와락 부여잡았다.
어느새 이마에 커다란 혹이 생긴 공야무룡은 눈물을 글썽글썽하며 신완아를 바라보았다.
억울해 죽겠다는 눈빛이었다. 하지만 감히 다시 입을 열지는 못했다.
진무앙이 고개를 끄덕이며 심드렁하게 말했다.
“그 자세, 계속 유지해라. 성질 긁지 말고.”
진무앙이 창을 닫자 신완아가 공야무룡을 끌어안으며 속삭였다.
“그러게 선 넘지 마시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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