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the 17th century, he became the king of Taiwan RAW novel - Chapter 116
116화
“절대 반대입니다!”
요한은 아직 어떤 말도 하지 않았건만, 진정이 다급히 그리 말하였다.
그는 요한이 필리핀으로의 원정을 진지하게 고려하고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 같은 짐작은 물론 틀리지 않았다.
‘고려’ 자체는 당연히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다만 요한이라고 지금의 대두국이 대규모 원정을 일으킬 상황이 아니라는 사실을 모르지는 않았다.
“왜 반대하는 거지? 필리핀의 절반을 집어삼킬 기회 아닌가?”
“···영토를 새로 얻는다 해도, 그 영토를 관리할 여력이 없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과유불급이란 말이 있듯, 더 많은 영토를 탐했다간, 기존의 영토도 잃을 수 있습니다.”
요한도 진정의 의견과 같은 의견이었다.
하여 그는 이견을 제시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유구 정복의 대가라면 대가인 셈인가.’
아쉽지 않다면 거짓말이었다.
필리핀은 굉장히 매력적인 영토였다.
크기로 보나 인구로 보나 이보다 매력적인 영토는 별로 없었던 것.
이미 루손 섬 북부를 점유하고 있다는 점도 필리핀을 한층 더 매력적으로 만들어주었다.
육지로 이어졌으니 세를 확장하기가 한결 쉬워진 것이다.
하지만 진정의 지적처럼 현재 대두국은 영토를 넓힐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이미 확보한 영토를 제 것으로 소화하기도 벅찬 상태였으니 말이다.
“무엇보다 그자들을 어찌 믿을 수 있겠습니까? 전에 분석한 정보를 소신이 다시 읽어본 결과, 그 술탄국은 스페인과 불과 2년 전에 평화 협정을 맺은 바 있습니다. 2년 만에 협정을 깨려는 나라를 신뢰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이 역시 맞는 말이었다.
스페인이라고 신사적인 나라인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스페인이란 나라는 그리 머지않은 미래에 세계적인 악명을 떨칠 대영제국의 본보기가 되어주는 나라였다.
그들이 갑자기 뒤통수를 친다 해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하지만 요한은 역사를 공부한 적이 있어서, 스페인의 행동 방식은 어느 정도 파악이 되었다.
스페인에서 대두국을 뒤통수치려고 할 때, 그 조짐을 파악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반면 마긴다나오 술탄국은 정보랄 것이 없었다.
마긴다나오 술탄국과 동맹한다면, 지금의 스페인처럼 이유도 모른 채 뒤통수를 맞을 수 있으리라.
“그래도 그들을 이용할 수는 있겠지.”
“어떤 식으로 이용하신다는 말씀이신지?”
“이들과 동맹하는 것처럼 상황을 조성해서 스페인을 두렵게 만드는 거야.”
요한은 꼭 군사 동맹을 맺지 않더라도 마긴다나오 술탄국을 이용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네덜란드의 독립 전쟁이 끝나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그리고 그 말은 스페인이 네덜란드의 독립을 인정한다는 말이며, 정식으로 네덜란드와 외교 관계를 맺는다는 사실을 의미하였다.
이게 왜 중요하냐면 앙숙과도 같은 스페인과 네덜란드가 서로 힘을 합칠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생겼기에 대두국에겐 무척이나 중요한 일이었다.
요한은 두 나라 모두와 악연이 있는 상태였고, 두 나라 입장에선 꽤 탐이 날 수도 있는 영토를 보유하고 있었다.
만약 두 나라가 국익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힘을 합쳐 대두국을 공격한다면 요한도 상당히 곤란해졌다.
‘내 능력으로도 범선으로 이루어진 선단을 상대하는 것은 쉽지 않지.’
바다에서 무적과도 같은 능력을 갖춘 요한이었다.
하지만 그런 요한도 ‘소수 정예’를 상대로는 한계가 분명히 존재했다.
소수 정예를 상대할 때는 각개격파라는 무기를 쓸 수 없었기 때문이다.
“두려움에 빠진 스페인은 더욱더 저자세로 나오게 되겠습니다.”
“아마 그리될 거다. 오히려 스페인도 마긴다나오 술탄국을 따라서 군사 동맹을 제안할 수도 있어.”
물론 요한은 스페인과도 군사 동맹을 맺을 생각은 없었다.
그래도 선택지가 많아진다는 건 여러모로 좋은 일이었다.
‘안 그래도 기술 발전이 더딘데 이참에 스페인의 기술자 여럿 데려오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
17세기부터 본격적으로 유럽과 동북아시아의 기술 격차가 커지기 시작한다.
몇 세기 전까지만 해도 명이나 조선으로부터 남만 오랑캐 취급을 받던 유럽이 동북아시아를 기술력으로 압도하게 되는 것.
요한은 이런 세계 역사를 알고 있는 만큼 과학과 기술을 소홀히 다룰 생각이 없었다.
스페인의 기술자를 받아내려 하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뭐 정작 스페인도 유럽에서는 기술이 그렇게 발달한 나라라고 보기는 어려웠지만 말이다.
***
“정성원이란 자를 아십니까?”
진정과의 대화가 끝이 나려고 할 때, 진정이 갑자기 정성원이란 인물을 아느냐고 물었다.
“그게 누구지?”
“남안후의 유자(조카)라고 하는데, 엄청난 재력을 자랑하는 거상입니다.”
요한은 어깨를 으쓱하였다.
정지룡은 형제가 대단히 많았다.
형제가 많은 만큼 조카 수도 무척 많았는데, 친형제만 아니라 ‘의형제’까지 따지면 100명은 족히 넘을 것이다.
일개 상인으로서, 또는 일개 해적으로서 세력을 확장할 때, 마치 조폭들이 부하를 의형제로 받아들이는 것처럼 다른 해적과 상인들을 마구잡이로 정씨 일족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워낙에 형제가 많고 조카 수는 더더욱 많다 보니 요한이 그들 전부를 기억할 수는 없었다.
물론 정성원이란 자에 대해서도 전혀 아는 바가 없었고 말이다.
“누군지 모르겠는데?”
“그렇습니까?”
“왜 그러지? 그자를 갑자기 왜 언급한 거야?”
요한이 묻자, 진정이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말하였다.
“방금 말씀드린 정성원이란 자가 안평의 건물과 땅을 마구잡이로 사들이고 있는데, 사실상 정부에서 보유한 땅보다 넓은 땅을 보유했을 정도입니다.”
그 같은 말을 듣자 요한의 얼굴도 심각해질 수밖에 없었다.
안평을 점령한 요한은 안평의 ‘알짜’ 자산을 제외하면 네덜란드 소유였던 자산 대부분을 정부에 고스란히 넘겼었다.
물론 요한은 정부 자산과 왕실 자산을 확실하게 분리하고 있었기에 그 많은 자산을 공짜로 넘겨주지는 않았다.
건물의 자산을 메겨 현금으로 대신 받는 형태로 넘겨주었다.
어쨌거나, 이때 정부에 넘긴 자산이 건물만 수백 채에 달할 정도였다.
안평의 명물인 붉은 거리를 제외하면 기존 안평의 건물 7할 이상이 정부 소유가 되었으니까.
“도대체 얼마나 많은 건물을 보유하고 있기에 그러지?”
“소신이 파악한 것만 300채가 넘습니다.”
“300채라.”
현대에서 건물 300채라면 아무리 못해도 조 단위 자산일 것이다.
하지만 이 시대에는 단층 건물이 많았고 안평의 건물들도 층수가 그리 높지는 않아서 건물 가치도 은자로 수십 냥에서 수백 냥 수준이었다.
이조차도 물론 대단한 것이겠지만 말이다.
“그자의 땅을 밟지 않으면 붉은 거리 광장으로 갈 수 없을 정도입니다.”
“···붉은 거리의 동서남북에 있는 건물을 모두 사들였다는 건가?”
“그렇습니다.”
“동쪽의 홍등가 거리도 모두 그의 것이 되었겠어.”
요한의 표정이 더욱더 심각하게 굳어졌다.
한 사람이 그 정도로 많은 자산을 보유하였다니.
안평이 요한의 도시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안 그래도 정씨 일족 상인들의 영향력이 너무 강한 게 우려되었는데, 설마 건물까지 이렇게 많이 가지고 있을 줄이야.’
현재 정씨 일족 상인들을 비롯한 중국 화교가 대두국의 경제 80% 이상을 지배하고 있었다.
대두국의 무역 비중은 남명이 가장 높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성원이라는 이름의 정씨 일족 상인이 안평의 건물들을 마구 사들이고 있다 하니 요한으로선 경각심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떤 식으로든 제재하긴 해야겠군.”
진정은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그 역시 정성원이란 자를 제재해야겠단 생각은 줄곧 해왔을 것이다.
꼭 현대의 자본사회를 경험하지 않아도 일개 개인이 도시의 경제를 장악하는 것이 긍정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모를 수 없었으니.
하지만 정성원은 정지룡의 유자로 알려져 있다.
정지룡은 요한의 장인이기도 했으니 진정이 정성원을 건들기는 부담이 되었을 터.
그런 만큼 요한이 직접 나설 필요가 있었다.
‘문제는 정지룡이 나보다 정성원을 더 가치 있는 존재로 여길 수 있다는 것인데, 그럴 리는 없겠지?’
정지룡이 자신의 친족도 아닌 정성원을 그리 가치 있게 여기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정성원에 대해 아직 아는 바가 크게 없는 만큼, 어떤 것도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말이다.
***
“오셨어요?”
“자고 있지 그랬어.”
그동안 밀린 일이 원체 많아서 여독을 풀 시간도 없이 급한 업무를 처리하였다.
급한 일 처리는 새벽이 다 되어서야 끝이 났는데, 침실로 돌아오니 정은지가 책상에 앉아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침 소첩도 밀린 업무가 있어서 전하를 기다릴 겸, 업무를 보고 있었어요.”
“미르 상단의 일을 말하는 거지?”
“맞아요.”
요한의 상단이자, 정은지가 10%의 지분을 가진 상단이 바로 미르 상단이었다.
주로 도자기를 취급하였는데 그 이문이 상당하였다.
그러니 정은지도 왕후가 된 이후에도 미르 상단을 계속 키우려 하는 것이다.
왕실 재산을 관리하는 것보다 미르 상단의 재산을 관리하는 게 훨씬 이익이었으니.
“조선 도공들은 어때? 대만 생활에 잘 적응하였어?”
“네. 잘 적응하였고 현재 그들이 만든 도자기가 서역 상인들에게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어요.”
사쓰마 번과 평화 조약을 맺을 때, 요한은 포로 교환이란 명목으로 사쓰마 번이 납치하였던 수십 명의 조선인을 송환받았다.
물론 사쓰마 번이 납치한 조선인은 그보다 훨씬 많았지만, 아쉽게도 이미 그들은 구주에 정착한 상태였다.
구주에서 보낸 세월이 벌써 50년이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60명의 조선인, 도공만 따지면 무려 15명의 조선인이 대두국에 합류하였다.
요한은 정부 차원에서 이들의 정착을 도움과 동시에 이들의 기술을 높이 사, 미르 상단의 임원이나 직원으로 영입을 꾀하였다.
이 같은 요한의 의도는 성공적이라서 조선인 도공 15명 전부가 미르 상단의 임직원이 되었다.
“계속 관심을 둬서 혹여나 그들이 불만을 품지 않게끔 나 대신 잘 관리해줘.”
“그럴게요.”
“그런데 미르 상단의 여윳돈이 많이 늘었다고 하던데, 어느 정도나 늘었지?”
미르 상단은 사실상 요한 개인이 소유한 개인 회사였다.
그렇다 보니 미르 상단의 여유 자금은 요한이 언제든 사용할 수 있는 현금이나 마찬가지였다.
당연히 요한으로선 미르 상단의 여유 자금이 얼마인지는 대단히 중요할 수밖에 없었다.
“현재 미르 상단이 보유한 여윳돈은 117만 냥이에요.”
“117만 냥? 앞으로 사용 될 임직원 월급이나 투자 비용을 제외하고 남는 돈이 117만 냥이라고?”
“맞아요.”
“···대단한데?”
요한은 혀를 내둘렀다.
도자기 사업이 엄청난 이문이 남는다는 사실은 요한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요한은 도자기 사업을 장기 사업으로 보고 상당한 규모의 투자를 이어가는 중이었다.
그런데 낼 돈 다 내고 117만 냥이나 남았다고 하니 요한으로선 놀랄 수밖에 없었다.
‘나는 많아야 50만 냥을 예상했는데 말이지. 어쨌든, 이러면 필리핀 원정을 앞당기는 것도 가능하겠는데?’
여유 자금이 최소 200만 냥 정도는 더 있어야 다음 원정을 계획할 수 있었다.
물론 사쓰마 번에서 받게 될 배상금이 그 이상이긴 했지만, 그건 15년에 걸쳐 받게 될 돈이었다.
그렇기에 다른 곳에서 자금을 가져올 필요가 있었는데, 요한에겐 마침 몇 개의 상단이 더 있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가진 모든 상단의 여유 자금을 다 합쳐야 200만 냥 정도 모일 것으로 생각하였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미르 상단 한 곳에서만 100만 냥 이상 모였으니, 그의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흐르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도자기의 가격을 지나치게 올린 것은 아니겠지? 생산량이 늘거나 가격을 올리지 않는다면 이 정도의 수익이 불가능할 텐데 말이야.”
“수도 이전에 관한 소문이 퍼졌을 때, 안평의 건물을 저렴하게 사들였어요. 그리고 반년이 지나니 값이 두 배 이상 올랐는데, 이때 모두 팔았어요.”
“···대단한데?”
설마 땅장사로 이만한 돈을 벌었을 줄이야.
요한은 혀를 내둘렀다.
“다만 정성원이란 상인이 계속 건물을 사들이고 있어서 조금 더 비싸게 팔 수 있었을 거라는 아쉬움이 있어요.”
“정성원? 설마 미르 상단의 건물들도 정성원이란 자에게 판 것인가?”
“네. 그자가 가장 비싸게 건물을 사들였어요.”
“그렇단 말이지?”
여기저기서 정성원이란 자의 이름이 계속 들려오고 있었다.
그만큼 안평의 거물로 자리 잡았다는 의미일 터.
‘역시 수도를 이전하는 것이 최선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