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the 17th century, he became the king of Taiwan RAW novel - Chapter 222
융무제의 제안을 받은 이정국은 고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사형, 고민할 거 뭐 있습니까? 거절하십시오. 이제 와서 왕은 무슨 왕입니까. 대사형이 스승의 유지를 이어 대서국의 황제에 오르면 되는 일인데.”
손가망이 왜 쓸데없는 고민을 하냐는 식으로 말하였다.
하지만 우습게도 이정국이 고민하는 이유 중에는 손가망도 포함되어 있었다.
‘황제는 이놈에게도 친왕의 자리를 제안하였지.’
이정국에게 진왕이라는 왕위를 제안한 융무제는 손가망에게도 이자왕인 안서왕이란 왕위를 제안하였다.
어찌 보면 이는 전형적인 이이제이 술책이었다.
서군의 내부를 분열시키기 위한 수작이었던 것.
그리고 이정국과 손가망의 관계를 생각하면 이 같은 수작은 상당한 효과를 자랑할 수밖에 없었다.
아마 손가망도 내심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되었을 것이다.
이정국이 대서국을 건국하면 자신은 이자왕을 능가하는 일자왕 작위를 얻어야 할 것이라고 말이다.
남명 황제에게 이미 이자왕에 해당하는 왕작을 제안받았으니, 그런 생각을 갖는 것도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제안을 거절하면 정성공 그놈이 우리를 놓아줄 거 같으냐?”
“하! 그놈이 우리를 상대로 뭘 할 수 있겠습니까? 팔기가 두려워서라도 결국엔 우리를 놓아줄 수밖에 없을 겁니다.”
“정성공의 성격을 몰라서 그래? 그자는 반역과 배신, 변절을 극도로 경멸하는 자다. 청나라보다 우리에게 더욱 적대감을 품고 있을 거야.”
서군이 본거지로 돌아가려면 어쨌든 장강을 넘어야 했다.
문제는 정성공의 대응이었다.
청나라의 대대적인 공세를 받는 상황에서도 정성공은 악착같이 서군을 공격하였다.
그 과정에서 어렵게 수복한 고토를 상실하였지만, 그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배신자를 응징하고 후방을 안정시키는 것이 당장 영토를 지키는 것보다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당연히 서군은 이런 정성공의 공세에 큰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황제의 제안에 응하자는 겁니까? 남명 놈들이 얼마나 간사한 놈들인데, 그놈들이 약속을 지킬 거 같습니까? 전쟁이 끝나면 바로 보복하려 들 것입니다.”
지금이야 왕위까지 제안하며 이정국과의 싸움을 피하려 하는 융무제지만, 그거야 남명이 청나라와 전쟁 중인 상황이라 그런 것이다.
즉, 청나라와의 전쟁이 끝난다면 융무제가 어떤 식으로 나올지 알 수 없다는 뜻이다.
사실, 손가망의 말처럼 대군을 모아 이정국을 토벌할 가능성이 가장 높았다.
이정국이 진왕으로 책봉되어 파촉 지역을 통치하게 된다 해도, 파촉 지역의 생산력만으로는 남명 전체의 생산력을 감당할 수 없었다.
아마 지금의 병력조차 감당할 능력이 없어 10만 명 정도를 유지하는 게 한계일 것이다.
그마저도 손가망의 봉지가 따로 있어서 하나로 합심하지 않으면 10만 명은커녕 5만 명이 한계일 것이고.
손가망이 융무제의 제안을 거절하라 말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였다.
굳이 융무제의 제안을 받아 파촉 지역만 점령하고 만족하느니, 광동성이나 복건성 일부 지역까지 점령해 버리는 것이 훨씬 나았기 때문이다.
“양왕만 회유한다면 남명의 보복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양왕 말입니까?”
“그래. 어차피 대서국을 세우든, 남명의 번왕이 되든, 양왕의 허락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니 양왕에게 사람을 보내 그의 의중을 알아낼 필요가 있다.”
이정국은 더는 고민하지 않기로 하였다.
어차피 중요한 것은 그나 손가망의 생각이 아니었다.
요한의 생각이었다.
균형의 수호자를 자처하는 그가 어떤 의중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 대륙의 판도가 달라졌다.
남명의 전쟁이 지지부진 끌리다가 허무하게 패배하는 그림이 그려진 것도 전부 요한의 개입 때문이 아니었던가.
사실 이정국은 자신의 반란조차 요한의 의도라고 생각하였다.
그렇기에 이정국은 요한의 힘을 인정하고 그의 지시에 따르기로 하였다.
***
“잔당들은 어떻게 되었지?”
요한이 묻자 시랑이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답하였다.
“소탕은 성공적입니다. 앞으로 창해에 왜구를 표방하는 해적 무리가 등장할 일은 결단코 없을 겁니다.”
“좋아. 잘 했다.”
왜구 소탕 작전을 성공적으로 끝이 났다.
사실 성공할 수밖에 없는 작전이었다.
왜구가 처음 창해에 자리 잡을 때부터 대두국 해군이 모든 것을 지원하였다.
근거지를 마련해준 것도 대두국 해군이었는데, 당연히 왜구들의 약점도 전부 파악해 놓은 상태였다.
그러니 왜구를 소탕하는 건 대두국 해군에게 있어 너무도 쉬운 일이었다.
애초에 체급부터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차이가 나기도 했고 말이다.
‘근데 조금 아깝긴 하단 말이지.’
확실히 왜구는 계륵이긴 계륵이었던 모양이다.
막상 왜구를 토벌하고 나니 아깝다는 생각이 드는 것을 보면.
하지만 그의 선택은 틀렸다고 보기 어려웠다.
왜구에게 충성심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충성심은커녕 언제든 요한의 목을 물어뜯을 생각으로 가득한 것이 왜구였다.
심지어 대두국 상인을 약탈하는 일도 잦아졌으니 왜구를 정리하는 건 최고의 선택이라 할 수 있었다.
“전리품이 상당하다던데.”
“그들의 근거지에서 대략 350만 냥의 은자를 획득하였습니다. 물론 이밖에 각종 보물과 금, 1만 명에 가까운 노예도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은자만 그 정도라니. 엄청나군.”
요한은 혀를 내둘렀다.
그동안 전리품을 분배하는 과정에서 천문학적인 이익을 거두었었다.
그런데 왜구들이 몰래 모으고 있던 은자가 350만 냥이나 되다니.
심지어 은자 말고 다른 재물까지 포함하면 500만 냥은 훌쩍 넘을 거 같았다.
‘시마즈 미츠히사에게 200만 냥 정도 분배해 줘도 남는 게 상당한데?’
500만 냥이면 요한에게도 적은 돈이 아니었다.
물론 전쟁 특수로 평소와는 비교도 안 되는 돈을 벌고 있기는 했다.
하지만 그만큼 나가는 돈도 상당히 많았다.
조선에 지원해 준 은자만 수백만 냥이고, 청나라에도 돈을 빌려줬었으니까.
그러니 왜구 소탕으로 얻은 전리품은 요한에게 있어 여러모로 만족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나저나 노예가 1만 명이라. 이들을 어떻게 처리하는 것이 좋을까?’
다만 한 가지, 그를 고민하게 만드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노예들이었다.
***
요한은 왜구의 노예를 처리하는 것에 대해 오래 고민하지 않았다.
마침 시기적절하게 남명의 칙사가 그를 찾아왔기 때문이다.
참고로 이전에 사절단을 이끌고 요한을 찾았던 황도주는 작년 겨울에 다시 본국으로 돌아갔었다.
그리고 이번에 요한을 찾은 것은 병부 상서 정지봉이었다.
정지봉은 정지룡의 동생이었으니 요한에게 있어 집안 어른이나 마찬가지였다.
물론 요한이 그런 걸 신경 쓰는 사람은 아니었다.
애초에 그의 아내, 정은지가 정지룡의 친딸도 아니었기에 정지봉을 상대로 구태여 예우를 갖출 필요는 없었다.
“이번에 왜구를 토벌하였는데, 노예로 잡힌 명의 백성을 확보하였다. 이들을 송환해 줄 것이니, 그에 대한 준비하는 게 좋을 거야.”
대두국에는 노예 제도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니 노예로 써먹을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대두국의 백성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여러모로 골치 아팠다.
왜구에게 엄청난 적대감을 가지고 있을 텐데, 왜구를 불러온 것이 대두국이란 사실을 알게 되면 반란을 일으켜도 이상해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
하여 남명으로 송환시키기로 하였다.
“왜, 왜구를 토벌하셨단 말씀입니까?”
“그래. 황상께서 바라시던 일이지 않은가.”
융무제를 위해서 한 일은 아니지만, 요한이 이 정도의 가식을 못 떠는 사람은 아니었다.
“허어! 남명을 대표하여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전하께서는 남명의 은인이십니다.”
은인 소리를 들었는데도 요한의 표정은 흔들림이 없었다.
참으로 낯짝이 두껍다고 할 수 있었다.
사실상 왜구의 배후나 마찬가지면서 은인 소리를 듣고도 찔리는 기색 하나 보이지 않았으니.
그는 본래 국익을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할 인물이었으니 사실 이 정도야 대수로운 일도 아니었다.
‘왜구로 남명을 실컷 견제했다가, 용도를 다한 왜구를 토벌한 대가로 남명으로부터 각종 보상까지 얻게 되겠군. 이럴 때 일석이조라는 말을 쓰는 거겠지?’
오히려 요한은 속으로 그 같은 생각을 하였다.
융무제가 어떤 보상을 해줄지 기대를 한 것이다.
“청나라와 평화 조약을 맺고 싶다고?”
“예, 그렇습니다.”
왜구에 대한 이야기가 끝이 나고 곧바로 본론에 들어갔다.
정지봉 쪽에서 급하게 본론을 꺼낸 것인데, 그만큼 남명의 사정이 급박하다는 것을 의미하였다.
“그런데 왜 나를 찾아왔지?”
요한은 어깨를 으쓱하며 그렇게 물었다.
제삼자인 자신이 너희가 전쟁을 멈추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냐고 묻는 거 같은 그런 태도였다.
물론 남명의 선택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요한이 청나라에 행사할 수 있는 영향력을 생각하면 두 나라의 전쟁을 중재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했으니까.
‘하지만 그것을 공짜로 해줄 필요는 없지.’
내심 요한도 이대로 전쟁이 멈추면 좋겠다고 생각하였다.
남명에 내전이 일어난 상황이지 않은가.
지금 전쟁이 계속 이어지면 청나라와 남명 간 균형의 추가 확연하게 기울 수 있었다.
균형의 수호자인 요한으로선 이를 두고 볼 수는 없는 일.
다만 남명의 상황을 뻔히 아는데 아무런 대가도 받지 않고 그들을 위해서 움직이고 싶지는 않았다.
하여 정지봉이 중재를 청할 때도 그는 천연덕스럽게 대꾸할 뿐이었다.
“전하께서 중재를 해주셨으면 합니다.”
“중재라. 나는 청나라에 별다른 영향력이 없는데 말이야.”
정지봉은 그런 요한의 반응을 예상한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대뜸 이 같은 말을 하였다.
“더 많은 도시를 가지고 싶지 않으십니까?”
“도시?”
“복건성에서 두 개, 광동성에서 두 개의 도시를 추가로 드리겠습니다.”
요한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네 개의 도시라니.
이미 그가 소유한 도시가 세 개나 되는데 네 개의 도시를 추가로 얻는다면 사실상 남방의 교역은 그가 장악하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늘어난 교역량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테니, 경제적인 이익은 실로 엄청나다고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정지봉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조차지’까지 제안하였다.
“또한 도시 주변으로 30만 평 이상의 영역을 자유롭게 토지를 개발할 수 있는 권리를 드리겠습니다.”
“기존의 도시들도 해당되는 건가?”
“그렇습니다.”
“그렇단 말이지.”
겨우 전쟁을 중재하는 것으로 이 정도의 보상이라니.
요한으로선 융무제의 제안을 거절할 이유가 없어 보였다.
“이번에 왜구를 토벌하시기까지 하셨으니, 아마 식읍도 추가로 얻으실 수 있을 겁니다. 최소 3만 호 이상의 식읍을 말입니다.”
도시에 이어 식읍까지 준다니.
‘황제가 미쳤나?’
요한은 저도 모르게 그런 생각을 하였다.
그만큼 파격적인 보상이었다.
이미 그가 보유한 식읍이 2만 호였다.
여기에 추가로 3만 호를 준다면 그의 식읍은 5만 호가 되었다.
식읍이란 단순히 경제적인 이익뿐만이 아니라, 그 지역에서 엄청난 영향력까지 얻는다는 걸 생각하면 절대 이렇게 퍼줘서는 안 됐다.
아무리 남명의 상황이 급하다고 해도 말이다.
그런데도 이렇게 식읍까지 퍼주는 것은 융무제에게 다른 의도가 있다는 것을 의미하였다.
‘황제 자리에서 폐위 될 것을 우려하는 건가? 그래서 나를 어떻게든 자신의 편으로 만들려고 발악하는 거 같은데?’
본래 융무제의 적은 요한이었다.
부와 권력 심지어 군사력까지.
그 모든 걸 손에 쥔 것이 요한이었으니까.
하지만 전쟁에서 대패할 상황에 부닥치면서 융무제의 적은 남명 내부에도 생기게 되었다.
그리고 그 적은 결코 한 명이 아닐 것이다.
황제로서의 권위가 흔들릴 정도로 적이 많아졌을 터.
이런 이유라면 요한에게 파격적인 제안을 하는 것도 이해할 수 있었다.
요한이 도와준다면 누가 반란을 일으키든 진압하는 건 어렵지 않았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