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the 17th century, he became the king of Taiwan RAW novel - Chapter 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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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손 섬 북부를 장악하다.
“바, 바다를 보십시오. 추장님! 바다에서 무언가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산으로 둘러싸인 지형이라 해서 그것이 난공불락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루손 섬은 말 그대로 섬이었다.
그리고 이바탄 족은 바로 그 루손 섬의 최북단에 있었다.
즉, 사면 중 한 곳은 반드시 바다로 이어져 있다는 뜻.
요한에겐 흑기군만 있는 것이 아니었고, 아주 강력한 해군력도 보유하고 있었다.
“함대다. 적의 함대야!”
“서, 설마 저 엄청난 수의 배들이 다 명나라 함대라는 건가?”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지금이라도 투항하는 것밖에 방법이 없을 거 같습니다.”
‘金’이라 적힌 깃발로 가득 찬 바다를 본 순간 이바탄 족은 전의를 상실하였다.
100척이 넘는 함선이 바다를 뒤덮었는데 전의를 유지할 수 있을 리가 없었던 것이다.
‘네덜란드를 무찔렀다는 소문이 사실이었구나.’
타이는 800톤짜리 네덜란드 함선을 처음 봤을 때 느낀 경외심을 다시 한 번 느꼈다.
아니, 지금 느끼는 감정은 그때 이상으로 격렬하였다.
그의 눈에 보이는 함선들은 단순히 크기만 큰 것이 아니고 규모까지 말이 안 될 정도로 대단했으니 말이다.
***
“이바탄인지 뭔지 저 부족까지 투항했으니, 루손 섬 북부는 확실하게 요한의 땅이 되었다.”
마투스의 말에 요한은 흐뭇한 얼굴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백 단위의 피해도 감수하고 나머지 부족에 대한 군사 행동을 감행한 그였다.
하지만 의외로 피해는 크지 않았고 얻은 것은 예상보다 훨씬 많았다.
‘특히 인구가 대단했지. 거의 50만에 근접한다고 할 정도니 말이야.’
팡가시난 족의 탈리부가 은밀하게 부족 연합의 존재를 알려주었다.
그리고 그들이 모으기로 한 병력도 알려주었는데,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요한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거의 1만에 근접한 숫자의 병력이 집결한다고 들었기 때문이었다.
전사로만 1만이면 인구는 얼마라는 소리인가?
루손 섬 북부의 인구를 25만 정도로 추산하던 요한으로선 당연히 믿기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막상 군대를 이끌고 적대 부족을 하나하나씩 각개격파하기 시작하자, 요한은 탈리부의 말이 거짓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1만까지는 아니어도 최소 8천에 근접한 병력을 모았던 것이다.
이것만 봐도 부족 연합의 거느린 인구가 실로 엄청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루손 섬 북부의 인구가 진짜 50만이라면, 내가 통치하는 인구가 75만이라는 건가. 100만이 되는 것도 시간문제겠어.’
청나라나 남명의 인구를 생각하면 100만이란 인구는 그리 많아 보이지 않았다.
아니, 조선이나 일본을 봐도 그랬다.
그러나 17세기 중반에 100만 정도의 인구라면 그래도 어디 가서 무시당할 인구는 아니었다.
즉, 이전과 다르게 도시국가 레벨은 완전히 넘어섰다는 의미였다.
“아무튼, 우리가 루손 섬 북부를 장악한 이상, 스페인도 이제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겠어.”
물론, 어떤 결정을 내릴지는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가 볼라니에 도착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바다에서 백기를 든 함선이 항구에 도착하였다.
그 함선은 코르세오라는 이름의 전형적인 서양 함선이었다.
“뭐? 스페인이 아니라 네덜란드라고?”
하지만 정작 배에서 내린 이는 스페인 사신이 아니었다.
스페인이 아닌 네덜란드의 사신이었던 것.
***
안토니오 캄브는 감탄한 표정을 지으며 항구를 가득 메운 정크선을 바라보았다.
“이토록 큰 정크선이라니. 숫자도 무척이나 많지 않은가.”
현재 그는 마르텐 프리츠 사령관의 명령을 받고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사절로서 요한을 찾았다.
하지만 그의 본래 직업은 함선을 지휘하는 해군 제독이었다.
그의 시선이 가장 먼저 향한 곳도 당연히 항구에 정박한 정크선이었다.
“그래 봤자, 정크선일 뿐입니다. 저기 보십시오. 함포가 겨우 이십 문도 안 됩니다.”
“한 척에 이십 문이면 아무리 못해도 이천 문은 있다는 뜻일세. 그렇게 생각하니 더 무시무시하게 느껴지지 않는가?”
부관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저들을 무시하지 말게. 우리는 몇 번이나 저들에게 패배를 겪었어. 저들을 무시하는 건 우리 자신을 무시하는 것과 다름이 없네.”
늘 장난기 넘치는 안토니오 캄브는 모처럼 진지한 목소리로 그와 같이 말하였다.
그러자 부관은 그의 말을 부정하지 못하고 입술을 깨물었다.
다른 유럽 국가들이 요한을 우습게 봐도 네덜란드만큼은 요한을 우습게 볼 수 없었다.
안토니오의 말처럼 이미 네덜란드는 요한에게 수차례 패배를 경험하였으니까.
“호오, 병사들의 군기도 예사롭지 않아 보이는군.”
“···제가 보기에도 저들, 미다그 왕국의 군대는 우리가 알던 일반적인 아시아의 군대가 아닌 거 같습니다.”
“일단 확실한 건 저들을 적으로 돌리면 우리에게 손해라는 점일세. 하하, 뭐 그래서 내가 여기까지 온 거지만 말이야!”
그렇게 안토니오 일행은 요한이 거느린 해군과 흑기군의 전력을 자세하게 살피며 볼라니로 향하였다.
스페인의 사신으로 요한을 찾았던 파블로가 그랬던 것처럼, 안토니오 일행 역시 볼라니로 향하던 도중, 감탄을 거듭하였다.
“미다그 왕국의 세력이 이 지역을 확실하게 장악한 것처럼 보입니다.”
“정말 대단하단 말이지. 우리가 이 지역에 있을 때는 워낙에 사납게 저항하여, 어떤 세력도 이들을 길들일 수 없다고 여겼는데, 요한이란 자는 어떻게 이들을 길들인 것일까?”
요한이 다스리는 지역은 놀랍도록 평온하였다.
이민족을 다스리는 건 단순히 군사력만 강하다고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강한 군사력만 있다고 다 되었다면, 스페인이 지금처럼 수많은 반란에 직면하지 않았을 것이다.
네덜란드가 갑자기 자신의 동맹이었던 일로코 족에게 뒤통수 당할 일도 없었을 것이고.
그렇기에 안토니오는 요한이 더 놀랍게만 느껴졌다.
‘사령관은 우리가 먼저 평화 조약을 제안하면 옳다구나 하고 제안을 받아들일 거라 하였는데···. 아무래도 사령관의 생각이 틀린 거 같단 말이지.’
원래도 그는 요한을 높게 평가하였었다.
자신의 조국, 네덜란드를 패퇴시킨 인물이었으니까.
하지만 안토니오는 볼라니에 오자 자신이 그를 높게 평가했다는 게 착각이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높게 평가했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그조차 한참 낮게 봤던 것이다.
***
척, 척, 척, 척.
군기가 바짝 든 흑기군 병사들이 거구의 백인 사내를 요한의 옆으로 안내해주었다.
“네덜란드에서 왔다고?”
“안토니오 캄브 제독입니다. 각하.”
“반갑다. 캄브 제독.”
요한은 그런 백인 사내를 향해 악수를 건넸다.
“이야···. 힘이 정말 엄청나십니다. 어떤 운동으로 이만한 힘을 키우신 겁니까?”
“따로 힘을 키운 건 아니고, 나는 타고 날 때부터 힘이 셌네.”
“주님께서 내려주신 힘이란 말씀이군요. 하하하! 이토록 주님의 총애를 받으시다니, 너무 부럽습니다!”
“별걸 다 부러워하는군.”
그는 느꼈다.
안토니오란 사내가 예사롭지 않은 인물이란 사실을.
하지만 대수로운 일은 아니었다.
어차피 지금 상황에서 네덜란드가 쓸 수 있는 카드는 그리 많지 않았으니까.
‘네덜란드가 쓸 수 있는 카드 중에 가장 위협적인 건 정지룡과 손을 잡는 거지.’
남과 북에서 요한을 압박하는 것.
그것만 아니라면 네덜란드는 그리 위협적이지 않았다.
“자네를 호위해준 병사들은 어때 보이던가?”
“굉장히 훈련이 잘된 병사들처럼 보였습니다.”
“따로 실수한 건 없었겠지?”
“물론입니다. 하하, 눈빛이 너무 강렬해서 놀라긴 했지만, 나중에는 오히려 대단하게 느껴졌습니다.”
“다행이야. 자네를 호위한 병사들은 전부 일로코 족 출신이라, 자네를 해코지하지 않을까 걱정했거든.”
한 시도 말을 멈추지 않던 안토니오가 처음으로 입을 다물었다.
이토록 잘 훈련된 흑기군 병사들이 네덜란드가 야만족으로 취급하던 일로코 족이었다는 사실에 놀란 것이다.
“그런데 어쩐 일로 나를 찾아왔지?”
“···하, 하. 서로 이익이 되는 제안을 하려고 찾아왔습니다.”
“전쟁을 멈추자는 제안이라면 받아줄 수 없다.”
요한은 단호하게 말하였다.
그러자 안토니오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저희를 적대해서 얻게 될 이익보다 우호 관계로 바뀌었을 때 얻는 이익이 더 크지 않겠습니까?”
“내가 의리파라 동맹을 배신하고 싶지 않아서 말이지.”
아마 그가 조선어로 이 같은 말을 했다면 여기저기서 표정 관리에 실패하는 이들이 속출했을 것이다.
누구도 스페인을 동맹이라 여기지 않았고, 요한 역시 스페인을 적대했으면 적대했지, 우호적으로 대하지는 않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안토니오는 필리핀의 내부 사정에 어두웠고, 요한의 말을 진심으로 여겼다.
스페인을 돕기 위해 수천이나 되는 병력을 동원하였는데 당연히 요한의 말을 진심으로 여길 수밖에 없었다.
“이것만큼은 드리고 싶지 않았는데, 어쩔 수 없군요. 평화 협정을 맺어주신다면 스페인과의 전쟁에서 나포했던 스페인 함선들을 넘겨 드리겠습니다.”
요한은 그 말을 듣고 속으로 환하게 웃었다.
그 역시 네덜란드와의 전쟁을 이어나갈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마침 네덜란드가 먼저 평화 협정을 제안하고 마치 배상금처럼 스페인 함선까지 넘긴다고 하니, 기분이 좋지 않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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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은 뜸을 들이지 않았다.
안토니오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한 것이다.
거기에 요한은 하나의 조건을 더 얹었다.
바로 무역 통상 조약이었다.
처음엔 바타비아의 무역 허가권을 넘기는 것에 거부감을 드러냈던 안토니오였다.
하지만 채색 자기를 본 순간 바로 무역 통상 조약에 응하였다.
‘영국 상인에 이어 네덜란드 상인에게까지 도자기를 팔기 시작한다면 돈을 쓸어담는 건 일도 아니겠어.’
수요는 넘쳐나는데 공급은 한정되어 있었다.
요한은 벌써 부자가 된 거 같은 기분을 느꼈다.
“혹시 흑기군의 훈련에 참관해도 되겠습니까? 남다른 군기를 보여주는 그들이 평소에 어떤 훈련을 받는지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습니다. 흐흐.”
협상이 모두 마무리되자, 안토니오가 조금 무리한 부탁을 하였다.
하지만 요한은 흔쾌히 그의 부탁을 들어주었다.
“이들이 바로 흑기군이군요! 정말 엄청난 강군입니다!”
“대만의 병사들을 보여주지 못한 게 아쉽군. 진짜 정예는 본토에 있는데 말이야.”
흑기군의 훈련을 지켜보던 안토니오는 감탄을 거듭하였지만, 요한은 별거 아니라는 식으로 너스레를 떨었다.
그러자 안토니오는 입을 떡 벌리며 놀라워하였다.
“대단합니다! 유럽의 그 어떤 군대도 동수의 흑기군을 정면으로 상대할 수 없을 겁니다!”
요한이 바라던 반응이었다.
아마 안토니오의 성격이라면 함대로 돌아가서 흑기군의 전력에 대해 열심히 떠들어대지 않을까 싶었다.
‘잘하면 흑기군이 마치 몽골 군대가 그랬던 것처럼 유럽인들에게 공포를 주는 그런 군대가 될 수도 있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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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니오가 다시 돌아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번에는 스페인의 사신인 파블로가 요한을 찾아왔다.
“루손 섬 북부의 소유권을 인정하겠습니다.”
파블로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요한이 원하는 대로 루손 섬 북부를 넘겨주기로 한 것이다.
물론 북부의 기준이 어딘지는 자세히 따져봐야 하겠지만 말이다.
‘기준을 세우는 거야 어려운 일이 아니지. 우리가 다스리는 부족들의 영역을 기준으로 삼으면 되니까.’
어쨌든, 이로써 필리핀에서 얻어야 할 것은 거의 다 얻은 거나 마찬가지였다.
새로운 영토에, 마닐라와의 무역로를 확보하였고 흑기군의 병력을 2배 가까이 늘리기도 하였다.
덤으로 네덜란드로부터 받게 될 스페인 함선들까지.
그야말로 알차기 그지없는 전쟁이었다.
‘슬슬 대만으로 돌아가야겠어. 그리고 대만으로 돌아가면 가장 먼저 왕관부터 쓰는 게 좋겠지?’
총독이니, 총병관이니, 섭정이니···.
요한은 타인을 상대할 때마다, 매번 다른 직책으로 자신을 소개하고는 하였다.
심지어 흑기군 내에서조차 총사령관, 총병, 대장, 장군 등등.
여러 호칭으로 불렸다.
지금까지는 이런 자신의 신분을 잘 이용하였던 요한이지만, 더는 애매한 신분으로 살고 싶지 않았다.
진정한 군주 즉, 일국의 왕이 되어야 할 순간이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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