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the 17th century, he became the king of Taiwan RAW novel - Chapter 93
093화
요한이 사쓰마 번과의 전쟁에서 이기면 얻게 될 이익을 생각하자, 정지룡은 원종의 말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로선 요한을 돕지 않을 이유가 없다.’
대두국이 더 강해지는 것?
이제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요한을 동등한 동맹이라 여겼기 때문이었다.
동등한 동맹, 심지어 피로 이어진 혈맹이라면 대두국이 더 강해지는 것은 그에게 절대 손해가 아니었다.
대두국의 존재만으로 청나라가 그를 함부로 대할 수 없는 강력한 요인이 될 테니까.
“좋다. 그 정도는 들어주지. 물론 조정을 설득하는 일도 어렵지는 않을 거다. 지금 조정은 힘을 외부로 투사하고 싶어 안달이 나 있는 상태니 말이야. 단, 조건이 있어.”
지금은 비록 남명의 최고 권력자가 되었다지만, 그는 한때 상인이었던 인물이다.
상인인 그가 이런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아무리 요한의 성장이 그에게도 이익이 된다지만, 지금 그는 요한의 부탁을 받는 입장이지 않은가.
요한에게 무언가를 요구할 절호의 기회였다.
“어떤 조건이든 제가 들어줄 수 있는 조건이라면 다 들어 드리겠습니다!”
“흑기군의 파병 기간을 늘려줬으면 좋겠군. 적어도 1년 이상 말이야.”
정지룡은 흑기군의 유용함을 인정하였다.
해적으로 출발한 정지룡이었기에 흑기군이 얼마나 강군인지 모를 수가 없었던 것이다.
흑기군은 병사 한 명, 한 명이 강군이었다.
단순히 정병이 모여서 강군이라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고도로 훈련된 ‘군대’였다.
그가 사병으로 키우는 오번병 같은 경우, 개개인을 정병이라 부를 수는 있어도 오번병 전체를 강군이라 부르기는 어려웠다.
제대로 된 실전을 겪은 적도 없었고 조직력도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반면 흑기군은 달랐다.
흑기군은 산전수전을 다 겪은 군대였다.
조직력도 실로 대단했고 말이다.
그래서 정지룡은 흑기군을 조금 더 오래 빌리기로 하였다.
1년 정도만 더 빌려도 청나라는 물론이고 융무제 역시 감히 허튼 생각을 하지 못할 것이리라.
“그 정도는 어렵지 않을 거 같습니다.”
정지룡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이러면 그에게 손해는 없었다.
***
“이제는 척후선도 보내지 않는군.”
요한이 구치노시마 섬을 장악한 지도 벌써 한 달이 지났다.
그 사이 사쓰마에서는 계속해서 배를 보내 아군의 정보를 수집하려고 하였다.
물론 요한은 사쓰마가 아군의 정보를 수집하는 걸 가만히 지켜보지 않았다.
그 또한 야쿠시마 섬 근방으로 척후선을 보내 사쓰마의 정보를 수집하면서 그와 동시에 사쓰마의 척후선을 철저하게 막아냈다.
“보내는 족족 나포되니 소장이었어도 감히 척후선을 보낼 생각을 하지 못했을 겁니다.”
“지금까지 나포한 관선이 21척이었던가.”
“격침된 배까지 포함하면, 왜구는 서른 척이나 되는 손실을 보았습니다.”
실로 엄청난 피해가 아닐 수 없었다.
제대로 된 전투도 치르지 않고 입은 피해라는 것이 더더욱 치명적이었다.
“그렇게 많은 배를 잃었는데도 움직이지 않는다니. 어지간히 신중한 인물인가 봐.”
시마즈 미츠히사는 확실히 만만한 인물은 아닌 거 같았다.
보통 이 정도 피해를 봤으면 이성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설령 이성을 잃지 않아도 분개한 부하들에 의해 공격을 강요받기도 하였다.
하지만 사쓰마는 이런 상황에서도 군사 활동을 금하고 더 많은 배를 모으는 것에만 열중하고 있었다.
‘확실하게 이길 수 있다는 판단이 서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겠다는 뜻이겠지.’
누구는 답답하게 여길 수도 있지만, 한 세력의 수장으로선 나쁘지 않은 판단이었다.
다만 그의 상대가 요한이라는 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우리가 움직여도 근처까지 가기 전까지는 전혀 눈치 채지 못하겠어.”
“척후선을 운용하지 않고 있으니, 근해에 가기 전까지는 우리의 움직임을 알아차리기 어려울 겁니다.”
사쓰마는 방심하지 않았다.
수십 척의 척후선을 잃고도 꾸준하게 척후선을 보내려 노력하는 것만 봐도 그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사쓰마도 요한이 공격을 선택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원래 공격은 방어보다 몇 배는 어려운 법이었다.
그런데 요한은 함선의 숫자도 사쓰마보다 훨씬 적었으니, 사쓰마의 모든 전력이 집결한 야쿠시마 섬까지 노릴 거라고는 감히 생각하기 어려웠다.
‘당연히 사쓰마 반도나 오스미 반도에 대한 공격은 더 예상 못 하고 있겠지?’
사쓰마 반도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사쓰마의 본거지였다.
오스미 반도는 바로 그런 사쓰마 반도를 마주 보는 지역이었다.
한마디로 두 반도는 사쓰마 번의 본거지라는 의미였다.
그리고 요한은 바로 그 사쓰마의 본거지를 공격할 생각이었다.
“오늘, 적의 본거지를 공격한다.”
“적의 본거지라면, 설마 구주(규슈) 땅을 노리려는 겁니까? 하지만 그곳은 방비가 만만치 않을 겁니다.”
“수군은 전부 야쿠시마 섬에 집결해 있지. 그리고 적은 우리의 정보를 파악하지 못한 상태고. 눈과 귀를 잃은 적을 상대하는 건 어린아이를 상대하는 것만큼 쉬운 일이잖아?”
방비가 두터워도 상관없었다.
적은 요한이 말했던 것처럼, 눈과 귀를 잃은 상태였다.
이런 상태에서는 설령 요한의 공격을 예상한다 해도, 야쿠시마 섬을 노릴지 아니면 두 반도를 노릴지 어떤 것도 판단하기 어려웠다.
한정된 수군으로 그 모든 지역을 방어할 수는 없는 일이었고, 결국 일방적으로 얻어맞을 수밖에 없었다.
***
구시키노의 남쪽 해안을 시마비라하마라 불렀다.
검은색 모래가 깔린 아름다운 바닷가였다.
그리고 그런 바닷가를 아련한 눈으로 바라보는 사내가 있었다.
일본 전통 의상인 기모노를 입은 사내였다.
하지만 일본 전통 의상을 입은 그의 외모는 어딘가 낯설게 느껴졌다.
체구도 큼직한 것이, 일본인보다는 조선인에 가까운 외형이었다.
“이곳까지 따라올 줄은 몰랐소.”
사내, 심당수는 탐탁지 않은 표정을 지으며 뒤를 돌아보았다.
그의 뒤에는 허리춤에 일본도를 찬 사무라이가 있었다.
“하하, 도조를 호위하는 것이 저의 숙명입니다.”
“누구로부터 나를 지키는 것이오?”
“도조를 노릴 사람은 많습니다. 워낙 능력이 출중하시지 않습니까.”
능글맞게 웃으며 말하는 사무라이를 보며 심당수는 쓴웃음을 지었다.
사무라이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심당수는 정유재란 때 일본으로 납치된 심당길(조선 명 심찬)의 아들이었다.
그리고 심당길은 조선에서도 명성이 높았던 도공이었고 심당수 역시도 그런 심당길의 재능을 완벽하게 이어받았다.
사쓰마에서 괜히 도자기 생산의 총책임자가 된 것이 아니었다.
실력이 워낙 좋아, 조선인의 후예이면서 웬만한 사무라이보다 좋은 대우를 받기도 했다.
이런 그이니 당연히 노리는 이가 많을 수밖에 없었다.
다만, 호위 목적이 전부가 아니라는 게 문제였다.
아니, 호위보다 주목적은 바로 감시였다.
그가 도망치지 못하게 감시하는 것.
그것이 사무라이에게 주어진 주된 임무였다.
‘이리 감시하지 않아도 나는 어디로도 도망칠 수 없는데 말이야.’
물론 도망칠 기회만 있다면 언제든지 조선으로 도망치고 싶은 게 그의 본심이었다.
사쓰마 번에서 아무리 그에게 잘 대해주었다고 해도, 그의 고향은 조선이었다.
비록 조선에서 태어나지 않았어도 그는 조선인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조선으로 도망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의 조선인 아내, 형제 그리고 그의 자식들까지, 가족 모두가 사쓰마 번에 있었기 때문이다.
가족 전체가 안전하게 도망칠 기회가 생기지 않는 한, 그는 사쓰마를 떠날 수 없었다.
물론 그런 기회가 생길 일은 희박하였고 말이다.
‘그나저나 도조라. 내가 그런 별명으로 불린다는 걸 알게 된다면, 이삼평 아저씨가 실컷 비웃겠군. 내 주제에 감히 도자기의 시조라면서 말이야.’
심당수는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콰아앙!
“음?”
그때였다.
남쪽 먼 곳에서 아련하게 무언가 터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는 언젠가 한 번 들은 적이 있는 포성과 비슷하게 느껴졌다.
처음엔 자신이 잘못 들었다고 생각하였으나, 포성이 연달아 들리자 그는 사무라이를 돌아봤다.
사무라이의 얼굴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심각하게 굳어있었다.
“가미노가와의 하구가 있는 곳이 아니오?”
“마, 맞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왜 포성이 들리는 것이오? 내가 알기로 그곳에는 포루가 따로 설치되어있지 않았는데.”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포성은 시간이 갈수록 커졌다.
이는 절대 훈련에서 나올 수 있는 포성이 아니었다.
사쓰마의 경제 상황을 고려했을 때, 한 번의 훈련에 이 정도로 많은 화약을 사용할 리가 없었으니까.
“적이 쳐들어온 것이 아니오?”
“북쪽도 아니고 남쪽으로 적이 쳐들어오다니요.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만약 여기서 말하는 적이 내부의 적, 그러니까 같은 일본 세력이라면 그럴 가능성은 없다고 봐야 했다.
이 근방은 전부 사쓰마의 영역이었다.
남쪽엔 아예 다른 세력이 존재하지 않았고.
“하지만 지금 사쓰마 번은 전쟁 중이지 않소. 대두국이라고 했던가.”
“···그 역시 가능성이 없습니다. 고작 도이 놈들이 사쓰마 반도까지 왔을 리가 있습니까?”
“그렇소? 그렇다면 방금 들린 포성의 정체는 무엇이란 말이오?”
“······.”
사무라이는 침묵하였다.
그런 사무라이의 모습에 심당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정치나 군사 일에 크게 관심이 없는 그였지만, 이번엔 이상하게 궁금증이 생겼다.
도대체 누가 사쓰마의 본거지를 공격하고 있단 말인가.
‘대두국이라. 아무리 봐도 그들밖에 없는데···.’
너무 절묘한 시점이었다.
하필 대두국과 전쟁 중인 상황에서 가미노가와가 공격받았으니.
물론 조금 전에 들려온 포성이 적의 공격인 것은 아직 확실하게 밝혀진 것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허어. 저건 뭐란 말인가?”
그러던 중 바다에서 무언가 이상한 것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하, 함대입니다.”
“이런 곳에서 저 정도 규모의 함대라니···.”
시간이 지나자 형체가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하였다.
심당수는 함대의 형체를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쿠로호네(흑선)이라 불리는 거대한 배가 선두로, 그 뒤에는 7척의 흑선과 수십 척의 당선과 수십 척의 관선이 오와 열을 맞추며 어디론가 이동하고 있었다.
그 위용은 실로 엄청나서 마치 바다를 뒤덮은 것처럼 보였다.
“일개 오랑캐치고는 수군 전력이 막강하기 그지없구려.”
사무라이가 도이(섬 오랑캐)라 칭했던 것을 빗대어 그리 말하자 사무라이는 입을 다물었다.
어떻게든 부정하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부정한단 말인가.
저들이 대두국의 함대라는 건 너무도 명백한 사실인데 말이다.
***
요한이 멀리 보이는 육지를 가리켰다.
“저곳이 이즈미인가?”
그의 물음에 일본식 상투, 촌마게를 한 거구의 사내가 ‘하이!’를 외치고는 이어서 설명하였다.
“그렇습니다. 참고로 이즈미는 사쓰마 번의 국경과도 같은 곳입니다. 이웃 번과 접해 있어서 번의 방위에 있어 중요한 거점 중 하나입니다.”
“국경이라, 그래서 저리 포대가 잘 갖추어진 것인가?”
“하이?”
거구의 사내, 오쿠보 데이다라가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손에 쥔 망원경을 들어 정면을 바라보았다.
물론 망원경을 써도 보이는 것은 없었다.
거리가 상당했기 때문이었다.
“항구 근처로는 가지 않고 주변만 정리한다. 배 몇 척만 침몰시켜도 충분한 피해를 줄 수 있어.”
요한은 80척의 함선을 이끌고 사쓰마 반도를 침공하였다.
바다에서 조우한 사쓰마 번의 함선이야 당연히 나포하거나 침몰시켰고, 바닷가의 마을과 도시, 항구에도 포격을 가하였다.
나포한 함선이 벌써 오십 척이 넘었다.
물론 숫자만 많을 뿐, 세키부네 급 함선이라 그리 가치가 높지는 않았다.
바닷가에 인접한 도시나 항구에도 큰 타격을 주었다.
사쓰마 반도의 서부는 완전히 초토화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리고 마침내 요한의 함대는 사쓰마 번의 서북단 끝자락인 이즈미까지 도달하였다.
그야말로 사쓰마 반도 서부 전체가 그에게 공격을 당한 셈이었다.
‘이즈미까지 공격하면 더욱더 좋겠지만, 굳이 무리수를 던질 필요는 없지.’
사쓰마 수군과의 전투를 대비해야 하는 상황에서 해안 포대에 힘을 쏟는 건 좋지 않았다.
지금쯤이면 야쿠시마 섬에 주둔하던 사쓰마 수군이 대대적인 반격에 나설 시기이기도 했고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서쪽으로 무언가 다가오는 것이 그의 눈에 보였다.
상당한 규모의 함대였는데, 당연히 그 함대의 정체는 사쓰마 번의 수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