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ectious Disease Survival RAW novel - Chapter 32
32화 은인 (2)
깡- 까강- 퍽-! 데엥-
창문 너머로 일단의 무리가 보였다. 돌이나 쓰레기 같은 것을 철민 아저씨 건물에 던지며 위협하고 있었다.
“저 사람들은 누구죠?”
창밖을 지켜보던 철민 아저씨는 귀찮고 언짢다는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이 일대에 사는 중국인들과 조선족들이야.”
가까운 곳에 큰 공단이 있어 수많은 제조업 공장이 있었고, 그 공장들에서 근무하던 외국인 근로자들인 모양.
“저 사람들이 왜 아저씨 집을 향해 돌을 던지는 거예요?”
“우리 집을 약탈하기 위해서지. 날 밖으로 유인해 내려고. 정부에 구조되지 못했는지 자기들끼리 뭉쳐서 주변을 약탈하고 다녀.”
아저씨는 창문 틈을 열더니 석궁에 잰 화살을 쏘았다.
철컥- 피잉-
“箭. 破损. (화살이다. 피해.)”
“厚脸皮的家伙 你死了! 扔更多! (건방진 녀석들 다 죽었어. 더 던져.)”
조선족과 중국인 중 아저씨의 화살에 맞은 사람은 없었다.
바짝 약이 올랐는지 알아들을 수 없는 중국어를 외치며 더욱 힘차게 건물로 돌을 던져 댔다.
철민 아저씨는 건물로 접근하려는 조선족과 중국인들을 견제하기 위한 화살만 날릴 뿐이었다.
충분히 맞출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직접 괴한들을 맞추지는 않았다.
“괜히 죽이면 물불 안 가리고 덤벼드니…….”
“이런 일이 흔한가요?”
“흔하지. 허벅지에 화살을 맞고도 덤비는 놈이 있어서 머리에도 한 발 박아 저세상으로 보내 준 적이 있었는데. 동료 녀석들이 화가 나서 물불 안 가리고 덤비는 바람에 힘들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야…….”
철민 아저씨의 얘기를 들어 보자면, 공단 인근에는 세 부류의 무리가 있다고 했다.
첫 번째, 어떤 이유에선지 정부의 구조를 거부한 채 공단 내에 자리를 잡은 한국 국적의 사람들로 이루어진 무리. 인근 공단에서 제일 큰 세력을 구축 중이다.
두 번째, 조선족과 중국인들이 모여 이룬 집단들. 두 번째로 큰 세력인데 가장 호전적이라고 한다.
세 번째, 베트남이나 태국에서 온 동남아시아 계통의 외국인 근로자들. 앞의 두 부류에 비해 작은 세력이지만 상당히 집요하다고 한다.
세 집단이 서로 앙숙인 데다, 각 세력의 규모 차이가 그다지 크지 않기 때문에 각자의 구역을 정해 놓고 생활을 한다고 했다.
여기서 문제는 철민 아저씨의 집이 조선족 무리와 동남아시아 무리 경계의 중간에 걸쳐 있다는 것.
살아남은 세 무리는 각각 주변의 대형 마켓, 편의점, 유통단지 등을 약탈하거나 생존자들 혹은 정부 자산을 털어서 연명하는 모양이었다.
호전적인 조선족&중국인 무리와 집요한 동남아시아 무리가 번갈아 가며 철민 아저씨 건물을 약탈하기 위해 노리고 있어 상당히 난처한 상황 같았다.
다만, 철민 아저씨의 집이 요새 같이 튼튼한 데다 격렬하게 저항하기 때문인지 지금까지 잘 버티고 있는 것 같았다.
‘혼자서 대단하시네…….’
확실히 요새같이 튼튼한 집에서 석궁, 창, 쇠못 총 같은 직접 만든 무기들로 접근하는 사람들을 견제하니, 이곳을 노리는 무리들 입장에서도 답이 없어 보였다.
“사실 우리도 식량이 다 떨어져 가는 찰나였는데, 자네를 구하면서 식량을 얻은 셈이야. 우리에겐 약탈해 갈 식량이나 생필품이 없는데도 저 녀석들은 그걸 모르니…….”
철민 아저씨가 답답하다는 듯이 속마음을 내뱉었다.
생존자와 감염자 간의 대립이 아닌, 생존자와 생존자 간의 불필요한 대립이다 보니 이렇게 서로의 에너지와 자원을 소비하는 것은 생존에는 불리한 것이 맞다.
“아까우시겠지만 거처를 옮기시는 게 맞지 않을까요? 서연이의 안전을 생각해서라도…….”
“그 생각을 안 해 본 것도 아니야. 하지만 일평생 벌어서 겨우 마련한 내 집을 떠나는 게 쉽지 않더라고. 더욱이 먼저 간 안사람과 내 딸과의 추억이 깃들어 있는 곳이니…….”
철민 아저씨의 표정에서 애틋함과 굳건함이 느껴졌다.
28살. 길지 않은 인생이지만 경험상으로 저런 태도와 표정을 짓는 사람의 성향은 상당히 완고하기에 말로 아무리 설득을 해 봐야 소용이 없다.
덥석- 철컥-
가만히 있던 내가 한 편에 놓여 있는 석궁을 집어 드니 철민 아저씨의 눈빛에 긴장감이 돌았다.
“다른 생각은 없어요. 이곳이 아저씨에게 소중하다고 하니……. 있는 동안은 저도 좀 도와드릴게요.”
“…….”
석궁을 들고 한쪽의 창문으로 다가가 밖을 살폈다.
그런 나의 행동을 본 철민 아저씨의 표정에서는 긴장감이 한 꺼풀 벗겨졌다.
건물에서 15m 떨어진 곳에는 SUV 한 대와 1톤 트럭 한 대가 서 있는 게 보인다.
트럭 뒤편의 적재함에서는 4명이 서서 주워 온 돌을 던지고 있었다.
“한 8~10명쯤 되어 보이는데요? 생각보다 숫자가 많네요?”
“저놈들한테 총이나 석궁이 없는 게 다행이지. 지난번에는 건물에 달라붙어 문을 부수려고 하는 바람에 쫓아내는데 꽤 고생 좀 했어.”
피잉- 팍-
철민 아저씨는 조선족과 중국인 무리가 건물로 접근하려 할 때마다 석궁에 걸어 두었던 화살을 날려 접근을 저지했다.
나도 철민 아저씨를 따라 간간이 화살을 날려 건물로 접근하려는 것을 막았다.
조선족과 중국인 무리는 접근할 수도 있는 감염자들을 경계하랴 돌을 던지랴 한참을 분주하게 움직였다.
하지만 이내 준비해 온 돌이 다 떨어졌는지, 알 수 없는 소리를 내지르고는 타고 온 차에 시동을 걸어 돌아갔다.
“我会回来的! (다시 오겠다!)”
부르릉- 부아앙-
“휴……. 드디어 갔군. 서연아, 그만 나와도 된다.”
철민 아저씨는 창가에서 물러 났고, 숨어 있던 서연이도 거실로 나왔다.
“도와줘서 고맙네. 그동안 혼자 쫓아내느라 얼마나 신경을 곤두세웠는지 몰라. 오늘은 대응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아 겁이 났는지 쉽게 물러난 셈이야.”
서연이는 상당히 겁먹은 표정으로 아빠 뒤에 딱 붙었다.
“잠깐 봤지만, 상당히 무섭더군요. 만약 중장비라도 끌고 온다면…….”
“…….”
내 얘기를 듣고 난 후의 철민 아저씨의 표정을 보아하니 나와 같은 생각을 안 해 본 것은 아닌 것 같았다.
“하지만 거처를 다른 곳으로 옮긴다고 하더라도 지금보다 안전한 곳을 과연 찾을 수 있을지 모르는 일이야. 게다가 옥상에 설치된 태양광 발전 패널 역시 쉽게 포기하기가 어렵고…….”
철민 아저씨의 말대로 건물의 위치가 좋지 않다는 것을 제외하면, 건물 자체는 태양광 발전 패널에 의해 자체적으로 전력을 수급할 수 있으며 2층 건물은 요새 수준으로 튼튼했다. 그래서 쉽게 포기할 수는 거처였다.
더욱이 앞서 말했다시피 이 건물은 철민 아저씨가 평생에 걸쳐 이룩한 재산이며, 온 가족의 추억이 담겨 있는 장소이기에 그 의미가 다를 것이다.
“으윽…….”
가슴에서 욱신거리는 통증이 느껴진다.
“태경이 너는 몸도 성하지 않으니 내 방에 가서 좀 쉬도록 해.”
“알겠습니다. 실례 좀 하겠습니다.”
끼이익- 철컥- 털썩-
침대에 누워 있자니 극도의 안도감이 들었다.
‘휴……. 감염자가 안 돼서 정말 다행이야. 엄마는 어떻게 지내고 계시려나? 희윤 누나랑 지훈 지현 남매한테 다시 돌아가도 되겠어.’
엄마에게 나의 생사조차 전하지 못 하는 상황이 벌어지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여기까지 온 김에 안테나는 구해서 돌아가야지.’
3일 동안 의식을 잃고 있다가 깨어서 그런지 누워 있어도 쉽게 잠이 오지는 않았다.
‘그러고 보니 아까 그 석궁 겉보기엔 조악했어도 성능은 정말 괜찮았던 거 같은데…….’
자고로 활은 초심자가 다루기는 다소 어려운 무기인 데 반해 석궁은 초심자여도 제법 높은 정확도를 보인다.
감염자들이 등장하기 전, 개인이 활을 소지하더라도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석궁은 소지하고 있으면 불법무기소지죄가 적용되었다.
밀덕으로서 여러 종류의 무기에 얕은 지식을 갖고 있지만, 아무래도 주 관심사는 현대식 화약을 이용한 무기였기에 석궁이란 무기를 만들 생각을 못 했다.
하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 화약을 이용하는 현대식 무기를 구하지 못한다면, 석궁이야말로 최고의 무기였다.
‘왜 석궁을 만들 생각을 못 했지?’
화약이 터지면서 폭발음을 발생시키는 총기류에 비하면 석궁의 현이 튕기며 화살을 쏘아 내는 소리는 무음 수준이다.
화력, 연사력, 사거리 측면에서는 총기에 비할 바가 안 됐지만, 지금 구할 수 있는 무기 중에서는 석궁만 한 게 없었다.
숙련된다면 석궁보다는 활이 좋다.
활은 석궁에 비하면 조준의 어려움이 있지만, 속사의 수준은 차원이 다르기 때문이다.
몸은 침대 위에 누워 편안하게 있지만, 머릿속은 온통 제작하고자 하는 석궁의 구조, 재질, 크기 등을 생각하느라 바빠졌다.
‘예전에 유튜브에서 본 게 있었지. 몸체는 나무를 깎아 만드는 게 손쉽고, 방아쇠, 시위, 활대 재료는…….’
내가 머물고 있던 이곳은 과거에 철물점을 했던 곳. 어지간한 공구와 재료는 다 있을 것이다.
‘아니, 부족하더라도 가까운 곳에 공구 상가 거리가 있으니까 가서 구하면 되겠네.’
* * *
2일 후.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그럼 무사히 잘 지내시길 바랄게요.”
“그래, 자네도 목표한 바를 무사히 달성하길 바라네.”
“삼촌 잘 가요~.”
지난 이틀 동안 몸은 많이 회복할 수 있었다.
멍은 아직 남아 있지만 움직이는 데 불편하거나 통증이 느껴지지 않게 됐다.
몸을 회복하며 철물점 부녀와 함께 지내는 동안 이런저런 일을 많이 도와주다 보니 제법 친해졌다.
나는 나대로 할 일이 있었고, 내가 원룸을 떠날 때 가져온 식량은 셋이 5일 동안 나눠 먹으며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몸이 회복된 지금 떠나기로 했다.
얼마 남지 않은 식량이지만 철민 아저씨는 남은 음식을 3등분 해서 내게 나눠 줬다.
초코 비스킷 과자 2개, 초코바 3개, 고추참치 캔 1개, 캔옥수수 1개, 햇반 1개와 한동안 마실 식수.
“원래 네 식량이었던 걸 가지고 생색내려니 미안하군. 그리고 이건 자네를 위한 선물이야.”
“이렇게나 많이요? 절 구해 주시고, 석궁 만드는데 도와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한데 화살까지 주시다니…… 감사합니다.”
“50발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야. 갇혀 지내면서 할 게 없으니, 허구한 날 화살만 만들어서 창고에 한 1000발은 있으니 부담스러워 말게.”
철민 아저씨가 챙겨 준 화살 외에도 내가 챙겨 온 공구와 무기들을 트럭에 실었다.
‘뜻밖의 수확이군.’
철민 아저씨가 식량을 구하기 위해 돌아다니며 파악한 공단 인근의 상황과 지리에 대한 정보를 전해 들은 것과 100발의 화살은 상당한 도움이 될 것이 분명했다.
나는 손을 흔들며 트럭에 시동을 걸었고, 철민 아저씨는 밖의 상황을 잠시 살펴보더니 차고의 문을 열어 주었다.
부르릉- 부릉- 부아아앙-
목적지는 HAM 통신에 필요한 안테나를 구할 수 있는 전파사.
하지만 전파사까지 트럭을 타고 접근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철민 아저씨의 집과 전파사까지는 약 2km.
트럭으로는 1.2km 정도 이동한 후 공영주차장에 트럭을 숨겨 놓은 후 도보로 전파사까지 접근하는 것이 계획이다.
전파사는 동남 아시아계 외국인 근로자 무리 영역의 한 가운데 있기에 섣불리 트럭으로 접근했다가는 십중팔구 차량을 뺏길 게 분명하다.
공단 내는 각 무리가 감염자들을 보이는 대로 처리하기 때문에 감염자들이 많지는 않다고 했다.
다만 공단이 넓고 수많은 공장이 있기에 모든 공장을 다 뒤지며 감염자들을 처리할 수는 없다.
따라서 언제 어디서 감염자를 마주칠지는 모르니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끼이이익- 끼익-
출발하기 전 지도를 보며 숙지해 둔 경로를 따라 목적지인 공영주차장에 도착하여 트럭을 주차했다.
‘이제 다시 치열한 생존을 할 시간인가?’
허리춤에는 칼과 화살 주머니를 차고, 손에는 석궁을 든 채 전파사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