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ectious Disease Survival RAW novel - Chapter 56
56화 확장 & 파밍 (2)
철민 아저씨와 일권 아저씨는 바리케이드 사이사이에 비계 파이프를 덧댄 후, 철사로 고정하는 작업을 하느라 바빴다.
“희윤 씨! 가서 철사 좀 더 가져다 주세요. 일권아! 여기 파이프 좀 잡아 줘!”
“형님, 이렇게 잡으면 됩니까?”
휘릭- 휘릭-
철민 아저씨는 파이프와 파이프가 맞닿는 곳마다 연신 철사를 감아 대느라 정신이 없었다.
평소 내부에서 아이들을 돌보던 수연 아주머니까지 나와서 희윤 누나와 함께 자재들을 나르느라 정신이 없었다.
시간이 촉박한데도 불구하고 철민 아저씨는 바리케이드의 빈약해 보이는 곳들을 찾아 능숙하게 보강작업을 이어 갔다.
하지만 철민 아저씨가 작업을 서두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더라도, 감염자들의 접근을 살피고 있는 내 입속은 바싹바싹 타들어 갔다.
큰 도로변 옆 건물 옥상에서는 점점 다가오는 감염자들과 부지런히 바리케이드 보강작업을 하느라 정신없는 사람들의 모습이 한 눈에 보였다.
감염자들의 진행 속도를 확인하며, 틈틈이 바리케이드를 보강하는 철민 아저씨와 사람들의 작업 과정을 확인했다.
평소라면 빨라 보였을 철민 아저씨의 작업속도가 한없이 더디게 느껴졌다.
‘이 속도면 금방 원룸 앞을 지나가겠는데?’
까맣게 타들어 가는 내 심정을 하늘이 알아 주었는지 감염자 무리의 이동 속도가 줄어들었다.
자신들의 먹잇감이 없어진 것을 이제야 알았는지 이동하던 것을 멈춘 후, 사방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현재 내 위치로부터 불과 수백 미터 앞, 자신들이 쫓던 목표물을 놓친 감염자들은 폭발 후 비산하는 파편들처럼 먹잇감을 찾기 위해 사방팔방으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크아아아아아악- 크아악- 크아아아악-
수천 명의 감염자가 모여 내는 기괴한 소리는 수백 미터 떨어진 내 귓가까지 울려 퍼졌다.
[치직- 태경아, 상황은 좀 어때?] [치지직- 심각해요. 감염자들이 생각보다 많아요. 대략 500m 떨어진 곳부터 사방으로 흩어지기 시작해서 어느 방향에서 언제쯤 들이닥칠지 가늠하기가 어려워요. 바리케이드 보강작업은 잘 진행되고 있나요? 오버-] [일단 급한 대로 파이프 덧대서 철사로 감고 있어. 태경아,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재빨리 도망쳐라!] [네, 알겠습니다. 무슨 일 생기면 바로 말씀드릴 테니까 서둘러 작업해 주세요.]돌이켜 보면 정말 운이 좋은 셈이었다.
군인들을 따라 생존자들이 떠나간 후, 한동안 원룸 건물 인근에는 감염자들이 거의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에 생존 시설을 구축하는데 집중할 수 있었다.
간간이 나타나는 감염자 한둘 정도는 생존에 큰 위협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자재들을 수급한 후, 원룸 건물과 오피스텔 건설현장의 시설 확장에 투자할 수 있었다.
하지만 눈 앞에 나타난 수많은 감염자 무리를 보니 인천 남동 공단에 갔던 경험이 떠올랐다.
셀 수 없이 많은 감염자.
그들에게 둘러싸인 채 폐쇄된 공간에서 갇혀 있던 경험은 정말로 끔찍했었다.
얼마 없는 물과 음식을 최대한 아껴 가며, 가능한 늦은 죽음을 맞이하기 위한 노력은 지금 돌이켜 생각해 봐도 정말 처절했다.
그래도 그때와 다른 점이 있다면, 함께 이 상황을 타개할 생존자 8명이 함께 있다는 것과 한동안 먹고 마실 수 있는 식량과 물이 있다는 점이다.
무엇보다도 앞으로 오피스텔 건설현장에 비닐하우스를 지어 식량을 생산해 낼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희망이다.
마치 창세기의 대홍수를 대비해 준비한 노아의 방주처럼 지금껏 준비한 것들이 우리의 안전한 방주가 되어 주길 바랄 뿐이다.
그에에엑- 크워어억-
“꺄아악~! 살려 주세요~!!”
자세히 듣지 않았으면 인지하지도 못할 정도의 작은 소리가 들렸다.
‘뭐지? 이 근처에 다른 생존자가 또 있었나?’
감염자들이 광범위하게 산개하다 보니 어딘가 숨어 있던 생존자를 발견한 것 같았다.
하지만 워낙 작은 소리였기 때문에 방향과 거리를 특정하기 힘들었으며, 시야에 들어오지 않았기에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알 수가 없었다.
게다가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누구를 도와주고 챙겨 주다가 덩달아 험한 꼴을 당하기 쉽기에 섣불리 나서지 않는 것이 좋다.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감염자들의 동태를 살피다 보니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대략 1시간 정도 지난 건가?’
그 사이 감염자들은 내가 감시하고 있는 곳으로부터 250~300m 정도 떨어진 위치까지 이동했다.
큰 도로에서 갈라지는 골목길로 빠져나간 감염자들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원룸 건물로 다가오는 감염자들의 수가 너무 많았다.
더 가까워졌다가는 도망치기도 쉽지 않을 것 같다는 판단이 들었다.
‘안 되겠는데?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니…… 슬슬 돌아가야겠는데?’
[치지직- 감염자들은 대략 200~300m 거리까지 다가왔어요. 저도 이만 원룸 건물로 돌아가겠습니다. 오버-] [치직- 알았다. 조심히 돌아오도록 해.]철민 아저씨는 아직도 열심히 작업 중인 듯 바리케이드 사이와 철조망 사이를 분주히 돌아다니고 있다.
원룸 건물로 복귀하여 작업을 도울 생각에 서둘러 상가 건물을 빠져나와 원룸 건물로 발걸음을 옮기려 했다.
저벅- 저벅-
계단을 내려와 상가 건물의 뒷문으로 막 나서려는 찰나, 출입문 밖에서 뭔가 인기척이 들렸다.
‘발걸음 소리? 누가 있을 턱이 없는데…… 감염자인가?’
출입문을 잡았던 손을 놓고 벽면에 붙어 몸을 숨긴 뒤, 옆구리에 메고 있던 석궁을 쥐었다.
스으윽- 철컥-
석궁을 어깨에 견착한 채 인기척이 나는 방향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두리번- 두리번- 크에엑- 저벅- 저벅-
석궁의 가늠쇠 너머 시야에 들어온 것은 원룸 건물로 향하는 감염자였다.
‘아니…… 벌써 여기까지?’
골목길로 들어선 감염자 중에서 바리케이드를 재정비하는 소음을 쫓아 여기까지 온 모양이다.
출입문 너머로 보이는 감염자는 하나.
감염자의 목표물을 바리케이드 개량 작업 중인 철민 아저씨와 다른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주변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채 원룸 건물로 향했다.
빗맞히지만 않는다면, 석궁에 재워진 화살 한 발로 깔끔하게 처리할 수 있다.
원룸 건물로 향하는 감염자의 뒤통수를 조준하기 위해 출입문 밖으로 나섰다.
살금- 살금-
원룸 건물로 향하는 감염자.
그런 감염자의 머리에 화살을 박기 위해 집중하는 나.
그 순간, 건물 출입구를 나서면서 좌우를 한 번 더 살피지 않은 것이 나의 크나큰 실책이었다.
크에에엑- 크와아아아악- 타다닥-
눈앞에 있는 감염자의 머리를 향해 석궁의 방아쇠를 당기려는 상황, 바로 옆에서 감염자의 그로울링 소리가 들렸다.
“뭐야? 하나가 아니었어?”
석궁의 가늠쇠 너머로 보이는 감염자보다 느닷없이 옆에 나타난 감염자를 먼저 처치해야만 했다.
갑자기 나타난 감염자는 생각보다 너무 가까웠기 때문에 정확하게 조준할 틈도 없이 가늠쇠의 범위 안에 들어오자마자 쏠 수밖에 없었다.
휘릭- 철컥-
하지만 긴박한 상황에서 방향을 바꿔 쏜 화살로는 달려드는 감염자에게 치명상을 입히지 못했다.
피잉- 퍽-
어깻죽지에 화살이 박힌 감염자는 별다른 대미지를 입지 않은 듯 더욱 흉포한 기세로 달려들었다.
크르르르륵- 타다닥-
석궁에 화살을 다시 재울 틈도 없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
“치잇…… X됐다.”
나를 덮치기 위해 태클을 걸어오는 감염자를 피한 후, 바리케이드가 설치된 위치와 평행한 방향으로 뛰기 시작했다.
목적지는 아직 바리케이드 보강작업 중인 철민 아저씨와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20미터가량 떨어진 오피스텔 건설현장 출입구였다.
타다닥- 타닥-
찰나의 선택이었지만, 갑작스러운 상황에서 내린 선택 치고는 가장 합리적인 선택 중 하나였다.
바로 뒤에서 나를 덮치려던 감염자가 쫓아오고, 왼쪽에서 원룸 건물로 향하던 감염자가 쫓아오고 있는 상황.
일 대 일이었다면, 어깻죽지에 화살이 박힌 감염자 하나 정도는 조심스럽게 처리할 수 있었다.
문제는 나를 덮치려던 감염자의 인기척에 반응하여 원룸 건물로 향하던 감염자의 이목마저 나에게 쏠렸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어디서 감염자가 더 나타날지 모르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눈앞의 감염자 하나를 처치하기 위해서 싸운다는 건 상당한 위험을 감수하는 일이었다.
“태경아!! 더 빨리!!”
“빨리!! 빨리!!”
바리케이드를 보수하던 사람들이 감염자들로부터 도망치는 내 모습을 발견했는지 조심하라고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피잉- 퍼억-
왼쪽에서 쫓아오던 감염자는 철민 아저씨가 쏜 화살에 허벅지를 맞으며 넘어졌다.
“태경아! 이쪽! 이쪽으로 와!!”
왼쪽에서 달려드는 감염자가 넘어진 틈을 타 왼쪽으로 크게 돌며, 목적지를 바리케이드 보강작업을 하는 곳으로 바꿨다.
그 사이, 일권 아저씨가 바리케이드를 넘어 나를 향해 뛰어왔다.
한 손에 중식도를 뽑아 든 일권 아저씨는 제일 먼저 내 뒤를 쫓는 감염자에게 달려들어 중식도를 휘둘렀다.
휘릭- 퍼억-
서로 마주 달려드는 속도에다 일권 아저씨의 체중과 힘이 실린 중식도는 내 뒤를 쫓던 감염자의 두개골을 깔끔하게 두 쪽으로 쪼갰다.
크르…… 콰직- 털썩-
머리가 두 쪽이 난 감염자는 미처 비명을 지를 틈도 없이 땅바닥에 쓰러졌다.
“태경아, 비켜라!”
감염자 하나를 재빠르게 처리한 일권 아저씨는 허리춤에서 얇고 긴 발골용 칼을 꺼내 쓰러져서 기어 오는 감염자에게로 향했다.
사악- 툭- 사악- 투욱-
꿈틀- 꿈틀- 크르륵-
일권 아저씨는 한쪽 다리에 화살이 박혀 엉금엉금 기어 오는 감염자의 양어깨 인대를 끊어 냈다.
양어깨의 인대가 끊어진 감염자는 양팔이 움직이지 않는 듯 축 늘어뜨린 채 한쪽 다리를 연신 버둥거리며 제자리에서 꿈틀댔다.
“이렇게 감염자로 살게 두는 것보다 깔끔하게 보내 주는 것이 내가 베풀 수 있는 유일한 배려다.”
일권 아저씨는 감염자의 아래턱 부분에 얇고 긴 칼끝을 찔러 넣기 시작했다.
푸욱- 서걱- 툭-
도축된 소나 돼지에게서 살을 발라내는데 사용되는 얇고 긴 칼이 쓰러진 감염자의 하악골 뒤로 들어가 대후두공에 연결된 중추신경계를 끊어 버리자 감염자의 꿈틀거림이 멈췄다.
“후우- 큰일 날 뻔했네.”
“하악…… 하악…… 그러게요. 감염자가 벌써 여기까지 왔을 줄은 몰랐는데……. 일권 아저씨 덕분에 살았어요. 고맙습니다.”
“얼른 복귀하자. 우리가 벌인 소란 때문에 감염자들이 이 근방까지 온 것 같아.”
골목길 사이사이를 통해 감염자의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메아리쳐 들려온다.
일권 아저씨와 함께 바리케이드 안쪽으로 복귀하니 철민 아저씨, 희윤 누나, 수연 아주머니가 안도의 한숨을 쉬며 반겨 주었다.
“무사해서 다행이야. 태경이 네가 꼼짝없이 당하는 줄 알았어. 철민 씨가 석궁으로 도와주지 않았으면 진짜 큰일 날 뻔했어.”
“감사해요. 그럼 이제 바리케이드 보강은 끝난 건가요?”
“파이프 덧대서 철사로 감을 수 있는 데는 다 했다. 더 보강하고 싶으면 이제는 용접해야 해.”
확실히 이전에 비하면 바리케이드 사이의 틈이 깔끔하게 메꿔졌고, 중간중간에 높이도 보강이 된 모습이었다.
보강작업을 얼추 마무리 지은 후 철민 아저씨와 희윤 누나는 오피스텔 건설현장으로 이동했고, 수연 아주머니는 원룸 건물로 돌아가 아이들을 돌보기로 했다.
나와 일권 아저씨는 바리케이드 안쪽에 숨어 한동안 주변의 동태를 살피기로 했다.
십여 분이 흐른 뒤.
크에에에엑- 크아악- 저벅- 저벅-
건물 사이로 보이는 큰 도로변에 감염자 무리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어서 골목길 사이사이에서도 감염자들의 모습이 나타났다.
지난번 공단에서 겪은 공포가 다시 한번 스멀스멀 올라오며, 등줄기를 따라 식은땀이 흐르는 것이 느껴진다.
크에에에에엑-
감염자의 울음소리가 또다시 울려 퍼진다.
울음소리에서 기세등등함이 느껴지는 것은 나의 착각이기를 바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