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ectious Disease Survival RAW novel - Chapter 73
73화 파밍 (1)
“쉿! 전방에 감염자 하나. 내가 가서 조용히 처리할 테니까 민수 네가 엄호 좀 해 줘.”
“넵, 조심하세요.”
가만히 서 있는 감염자의 뒤로 재빠르게 다가가 턱뼈 아래 살이 연한 부위에 있는 힘껏 대검을 쑤셔 넣었다.
살금- 살금- 살금- 푸욱-
대검이 감염자의 뒤통수 뼈 하부에 닿는 것이 느껴졌다. 재빨리 대검 손잡이의 끝을 손바닥으로 쳐올려 뇌에서 내려오는 척수신경을 끊어 버렸다.
빡- 콰직! 서걱-
끄으윽……. 툭-
뇌와 신경이 연결되는 부분이 칼날에 의해 헤집어진 감염자는 실 끊어진 목각인형처럼 바닥에 쓰러졌다.
“휴…… 아직은 어렵네. 칼날이 뼈에 걸려서 한 방에 처리하지 못할 뻔했어.”
“괜찮아요. 일권 아저씨한테 배운지 며칠 안 됐잖아요. 일권 아저씨도 이 정도면 센스가 상당한 거라고 하시던데.”
민수와 함께 단둘이 바리케이드 밖을 살피기 시작한 지 3일째.
바리케이드 밖을 나와 주변을 정찰하고 쓸 만한 것들을 구하러 다니기 시작한 지가 열흘째 되는 시점이었다.
초기에는 일권 아저씨, 나, 민수 이렇게 셋이서 주변을 돌아보았으나, 일주일 정도 지난 이후에는 나와 민수만 밖에 나와 주변을 살피게 되었다.
처음 일주일간 일권 아저씨를 따라다니며 많은 걸 배웠고, 근접 전투 포지션 한 명과 원거리 전투 포지션 둘이 있는 조합은 굉장히 안정적이었기에 효율적으로 정찰을 진행할 수 있었다.
하지만 세 사람이 다 나와 있는 동안 원룸 건물이나 건설현장에 문제가 생길 경우, 철민 아저씨 혼자 상황을 해결하기 어려울 수도 있었다.
결국, 한 사람 정도는 철민 아저씨와 함께 건설현장에 있어야 했고, 그 역할로는 일권 아저씨가 가장 적합했다.
민수와 내가 둘이서만 다녀야 하는 상황이 된 만큼, 둘 중 한 사람은 감염자와의 근접전을 소화해 내야만 했다.
사격 국가대표라고는 하지만 민수 역시 운동선수였기 때문에 운동신경과 반사신경 그리고 집중력이 훌륭했다.
하지만, 체급에 의한 근력 차이가 있는 데다 내 운동신경과 반사신경이 민수 보다 뛰어났기에 근접전은 내가 담당하기로 했다.
일권 아저씨에게 접근전에 관한 기술과 노하우를 전수받았고, 일권 아저씨의 지도에 따라 사흘 동안 감염자들을 상대로 실습을 진행했다.
과거 체중이 많이 나갔을 때의 나였다면 불가능했을 일이었지만, 지금은 정상 체중이 된 데다 매일매일 수련을 해 왔기에 일권 아저씨의 기술들을 충분히 전수 받을 수 있었다.
일권 아저씨와 따로 움직이기 전, 아저씨의 마지막 당부를 떠올렸다.
“태경아, 네 성장 속도는 너 스스로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훌륭해. 다만, 겁이 너무 많아. 어떤 상황이든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쉬운 일조차 과하게 조심하는 경향이 있어. 네 운동 신경, 반사 신경, 상황 판단력이면 감염자 한둘 정도에 크게 겁먹을 필요 없으니까 좀 더 자신감을 가지도록 해.”
확실히 내 성향은 감염자들과의 접촉을 최소화하려는 경향이 강했고, 되도록 먼 곳에서 석궁으로 해치우는 방식을 선호했다.
그렇지만, 지금은 일권 아저씨의 가르침 대로 군용대검을 사용하는 데 익숙해지기 위해 상당히 노력하고 있었다.
점장 아들이 쓰던 장도(長刀)의 경우, 장소의 제약만 없다면 굉장히 강력한 무기였다.
하지만 워낙 부피가 큰 탓에 휴대의 불편함이 있었고, 좁은 장소에서는 제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오히려 방해물이 되었다.
결국, 일권 아저씨의 추천대로 두꺼운 가죽으로 만든 호완(전완 보호대)을 차고 군용대검으로 감염자들을 상대하는 방법을 익히기 시작했다.
처음엔 쇠꼬챙이 같은 짧은 칼로 감염자를 상대해야 한다는 것에 대해 두려움과 부담감이 느껴졌지만, 차츰 익숙해지다 보니 일권 아저씨가 짧은 단검을 권한 이유를 체감하고 있었다.
3일 동안 민수와 붙어 다니면서 합을 맞춰 본 결과, 이제는 제법 합이 잘 맞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감염자들을 처리하는 방법과 순서에 대해 한참을 토론하고 난 후에야 실전에 돌입했지만, 지금은 대충 서로의 눈빛만 몇 번 주고받으면 바로 달려들어 해치우는 수준이 되었다.
원룸 건물과 오피스텔 건설현장 밖을 정찰하는 건 생각보다 재밌었다.
뭐든지 처음이 어렵다는 말이 딱 맞았다.
바리케이드 밖으로 나와 감염자들과 맞닥뜨리는 것은 스스로 위험을 자초하는 행위였기에 두려움이 앞섰다.
그렇지만 감염자들과의 대치가 잦아지는 만큼 경험이 쌓여 익숙해졌고, 스스로 성장하는 것이 느껴졌다.
감염자 두어 명 정도는 쉽게 처리할 수 있게 된 후부터는 바깥을 돌아다니는 것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그동안 한정된 장소에 갇혀 지내다가 비교적 자유롭게 밖을 돌아다닐 수 있게 된 셈이었으니, 당연히 재미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방심은 금물이었다.
늘 민수와 나의 주변을 경계했고, 주변에서 이상한 징조가 조금이라도 보이면 바짝 긴장했다.
그 외에는 사람이 떠난 지 한참 지난 장소들을 돌아다니며 쓸 만한 것들을 찾아다니는 재미가 상당했다.
“오! 노트북이다. 민수야 너 노트북 없지? 이거 챙겨라.”
“넵, 감사합니다.”
“오…… 닌텐도잖아? 이건 꼬맹이들 가져다주면 엄청 좋아하겠는데? 쓸 만한 게 생각 외로 많네.”
인근 빌라의 한 가정집을 뒤지다 보니 생각보다 쓸 만한 것이 많이 나왔다.
휙- 주섬- 주섬-
커다란 이불을 한 장 펼친 후 옷가지, 이불, 닌텐도, 휴지 등 쓸 만한 것들을 담아 보따리처럼 묶었다.
“슬슬 돌아가자. 어차피 수레도 거의 다 꽉 찼으니까 이거까지만 들고 가자.”
“넵, 잠시만요. 뭐 뭐 남았는지 리스트 좀 적을게요.”
부피가 작고 가벼운 것들은 1층에 세워 둔 손수레로 나르면 되지만, 부피가 크고 무거운 것들은 나중에 트럭으로 실어 날라야 했다.
추후 뭔가 필요한 게 생겼을 때, 어디에 뭐가 있는지 알아야 바로 가지러 올 수 있었기에 들리는 곳마다 주소와 함께 물품 리스트를 적어 두고 있었다.
나는 민수가 수첩에 리스트를 적는 동안 창문을 통해 밖을 살피기 시작했다.
길거리 군데군데 방치된 승용차와 화물차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 순간, 굉장한 아이디어가 생각났다.
“민수야, 내일부터는 길거리에 버려진 차에서 휘발유랑 경유를 좀 모아야겠다.”
“휘발유랑 경유를요? 아! 차에서 뽑으시게요? 좋은 생각입니다!”
법과 도덕을 기준으로 사회가 돌아갈 때는 당연히 길가에 있는 차에서 연료를 빼 가면 절도죄로 처벌을 받기 때문에 하지 않을 뿐, 사실 주차된 차에서 연료를 빼내는 건 상당히 쉬웠다.
대부분 승용차는 작은 빠루(쇠지렛대)로 연료 주입구 커버를 젖힌 후, 연료 마개를 열고 호스를 넣어 뽑아내면 끝이었다.
어려운 기술이나 큰 힘이 필요한 것도 아닌 단순한 작업.
물론 트럭 같은 경우에는 연료 탱크 주입구에 잠금장치가 있다고 하지만, 승용차보다 좀 더 번거로울 뿐 뽑아내는 일이 어려울 건 전혀 없다.
볼트 커터로 탱크 주입구를 뜯어내고 호스를 넣어 연료 뽑아내도 됐고, 전동 드릴로 연료 탱크 바닥을 뚫어 뽑아내는 방법도 가능하다.
그 외에도 방치된 차량을 이용할 방법에 대해 여러 가지 아이디어가 솟아났다.
민수의 리스트 작성이 끝나고, 즐거운 마음으로 손수레를 끌며 오피스텔 건설현장으로 복귀했다.
지난 열흘 동안 하루에도 몇 차례씩 쓸 만한 것들을 수레로 나르다 보니 건설현장 한쪽 편에는 온갖 잡동사니들이 쌓여 있었다.
고물상을 방불케 하는 모습이었지만, 철민 아저씨는 상당히 즐거워했다.
철물점을 운영하며 각종 전동 공구류 수리와 어지간한 전기·전자 제품 수리까지 했던 분이라 그런지 밖에서 가져온 온갖 물건의 활용 방법에 대한 아이디어가 샘솟는 모양이었다.
“끄응, 어이구 허리야…… 태경이랑 민수 왔으니까 잠시 쉬었다가 합시다.”
“철민 아저씨, 육묘 작업은 어때요?”
“싹은 틔웠고, 좀만 더 자라면 땅에 옮겨 심어야 할 거 같아. 그리고 옆에다가 비닐하우스 한 동을 더 지어야겠어. 두 동에서 생산될 양으로는 10명이 먹기엔 좀 부족할 거 같아.”
“그러시죠. 그럼 내일은 저희도 비닐하우스 짓는 작업을 도울게요.”
* * *
이틀 후.
“오늘은 뭘 득템 하려나? 엊그제 갔던 주변을 더 둘러볼까?”
“태경이 형, 오늘 20L짜리 기름통하고 호스 챙기신다면서요?”
“아! 맞네. 깜박했다. 민수야 손빠루 좀 챙겨 줘. 내가 얼른 올라가서 기름통하고 호스 좀 챙겨 올게.”
어제 비닐하우스 짓는 것을 도와주느라 하루 종일 정신이 없었던 탓인지 휘발유랑 경유를 구해 올 기름통을 챙긴다는 것을 깜박했다.
비닐하우스는 이미 두 동이나 지어 본 경험 덕분인지 한 동을 짓는데 하루 밖에 안 걸렸다.
파이프로 뼈대 세우고, 위에 비닐 덮는 작업에 사람 손이 많이 필요할 뿐 나머지 작업은 철민 아저씨와 일권 아저씨 두 분으로도 충분했다.
타다다닥- 타다닥-
계단을 뛰어올라 옥상의 창고로 향했다.
“비어 있는 기름통이 어딨더라? 휘발유랑 경유 담을 것 한 통씩만 있으면 되려나? 흠…… 혹시 모르니까 세 통 들고 가 볼까?”
자동차 연료 탱크에서 연료를 뽑아낼 도구인 2m 길이의 물 호스와 탱크에 구멍을 뚫을 전동 드릴, 그리고 뽑아낸 연료를 담을 기름통 3개를 챙겼다.
휘발유과 경유는 굉장히 중요한 에너지 자원이었기 때문에 구할 수 있는 수단만 있다면, 최우선으로 확보해야 하는 품목 중 하나였다.
휘발유는 시체를 소각하거나 발전기를 돌릴 때 사용할 수 있었고, 경유는 트럭과 지게차의 연료로 쓰임과 동시에 옥탑방 난방에도 쓸 수 있었기에 굉장히 중요한 자원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어디 주유소라도 털어오고 싶었지만, 아직 원룸 건물과 오피스텔 인근 지역조차도 조사를 끝내지 못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점점 돌아보는 속도가 빨라졌고, 쓸 만한 물건들도 제법 거두어들이고 있었다.
원룸 건물과 오피스텔 건설현장보다 더 큰 계획이 생겼기 때문에 주변을 둘러보는 속도를 점점 더 높일 계획이었다.
“민수야, 오늘은 자동차 연료 탱크 살펴보는 것부터 하자.”
“넵, 좋습니다.”
나와 민수는 옆 건물 주차장에 세워진 쥐색 세단 옆에 섰다.
“민수야, 손빠루 좀 줘 봐.”
“여기 있어요.”
휴대하기 쉽게 만들어진 작은 빠루를 건네받은 후 차량의 좌측 리어 펜더에 달려 있는 연료 주입구 커버의 틈에 집어넣어 비틀기 시작했다.
꽈악- 콰직-!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연료 주입구 커버는 너무나도 쉽게 깨져 버렸고, 까만색 연료 탱크 마개가 눈앞에 드러났다.
꾸욱- 딸칵- 스윽- 스윽-
연료 탱크 마개를 열자마자 휘발유 향이 코끝을 찔렀다.
“휘발유네. 이민수, 연료 탱크에서 휘발유 빼는 거 해 봤어?”
“아니요. 안 해 봤어요. 저는 사실 운전면허도 없어요. 운전도 야매로 배운 거라…….”
“이게 말이야. 원리를 알고 나면 진짜 쉬워. 압력과 높이 차이에 의해 발생하는 ‘사이펀’이라고 하는 현상을 이용한 방법인데, 연료 탱크보다 낮은 위치에 통을 두고, 호스의 한쪽 끝을 휘발유가 있는 곳까지 집어넣은 다음 호스 내에 휘발유가 찰 때까지 입으로 빨아! 그다음엔 반대쪽 끝을 가져온 기름통 입구에 놓으면. 짜잔! 콸콸 쏟아지는 거 보이지?”
콸- 콸- 콸-
민수는 놀랍다는 표정을 지으며, 휘발유가 연료 탱크에서 빨려 나오는 것을 유심히 지켜봤다.
“우와! 어떤 원리인지 이해는 안 되지만, 진짜 신기하네요.”
“어때, 쉽지? 너도 할 수 있겠지?”
“넵, 다음엔 제가 해 볼게요.”
승용차에서 뽑아낸 휘발유는 20L짜리 기름통을 2개나 반이나 채웠다.
휘발유 50L라니, 대박이었다.
인근에 있는 모든 차량에서 연료를 뽑아낸다면, 지게차와 발전기를 아끼지 않고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 연료 수급의 방법이 생긴 만큼, 좀 더 공격적으로 주거지역을 확장할 준비가 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