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ectious Disease Survival RAW novel - Chapter 79
79화 High risk high return, Low risk low return (2)
“태경이 형, 이쪽이요! 빨리요!”
민수가 가리킨 곳은 주유소 옆에 있는 오래된 창고 건물이었다.
크워어억- 키에에엑-
크르르륵- 끄웨에엑-
사방에서 들려오는 감염자의 울음소리와 인기척이 점점 더 가까워졌다.
민수가 제안한 창고 이외의 장소를 고민할 틈이 없는 상황.
일말의 망설임 없이 눈앞의 창고 출입구로 뛰었다.
타다닥- 타닥-
그와 동시에 우리는 또 다른 문제에 봉착해 버렸다.
철컥- 철컥-
“형, 큰일 났어요. 문이 잠겼어요.”
점점 가까워지는 감염자들의 울음소리에 마음이 조급해졌다.
한 가지 다행스러운 점은 자동차 도난방지 시스템이 계속 울리고 있어 감염자들의 이목을 끌고 있다는 것.
감염자들의 이목이 우리를 향하기 전에 몸을 숨겨야만 했다.
“창문! 민수야, 창문이라도 찾아봐!”
민수와 나는 창고 주변을 돌며, 들어갈 만한 곳을 찾기 시작했다.
두리번- 두리번-
초조한 발걸음으로 창고 담벼락 부근을 돌다 보니 바깥에서는 눈에 잘 띄지 않는 조그만 창문을 발견할 수 있었다. 게다가 운이 좋게도 창문은 잠겨 있지 않았다.
“민수야! 여기! 내가 먼저 들어가서 안전한지 확인할 테니까, 너도 바로 따라 들어와.”
“태경이 형, 조심하세요.”
스윽- 탁-
창문을 통해 들어온 곳은 창고 내부의 작은 공간이었다.
작은 공간은 햇빛이 거의 들지 않아 어두웠다.
그리고 내가 들어오면서 일으킨 먼지가 공기 중에 흩날리며 호흡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어두침침한 시야와 퀴퀴한 공기 따위를 신경 쓰는 것보다 재빠르게 내부 상황을 파악하고, 급작스럽게 발생할 수 있는 공격에 대비하는 것이 최우선이었다.
공간 내부에는 칸막이가 있었고, 먼지가 수북하게 쌓인 청소도구와 잡동사니들이 아무렇게나 쌓여 있었다.
다만, 세면대와 양변기가 있는 걸 보아 과거에 화장실로 쓰였던 곳이 지금은 창고로 쓰인다는 정도의 추측만 할 뿐이었다.
짧은 시간 동안 창문 안쪽을 파악하는 사이, 민수 또한 창문을 넘어 내부로 들어왔다.
휘익- 탁-
“태경이 형, 괜찮으세요?”
“괜찮아. 특별한 건 없고, 우선 이곳에서 바깥 상황을 좀 지켜보다가 다시 움직이자.”
“네, 알겠습니다.”
나와 민수는 약속이라도 한 듯 벽에 바짝 붙어 바깥 상황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삐잉- 삐잉- 삐잉- 삐잉-
크에에에에엑- 키에에에엑-
크르르르르륵- 크워어어어-
요란하게 울려대는 자동차의 도난방지 시스템과 그 소리를 쫓아 몰려든 감염자들의 울음소리가 이 일대를 소란스럽게 만들고 있었다.
게다가 감염자들이 계속해서 몰려들고 있었기에 주유소는 더욱 아수라장이 되어 버렸다.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자동차 도난방지 시스템의 경보가 끝났다.
하지만 먹이를 찾지 못한 감염자들은 자신들의 울분을 담아 더욱 그로테스크한 울음소리를 내뱉을 뿐이었다.
크워어어어억, 크르르륵, 키에에에엑, 캬아아아악……
그 사이, 해가 지기 시작했고, 나와 민수가 있는 공간은 시시각각 어두워지고 있었다.
“태경이 형, 손전등이라도 켤까요?”
“그래, 감염자들도 슬슬 잠잠해지는 거 같고, 이곳에만 계속 있을 수는 없으니까 창고 내부라도 좀 살펴보자.”
바깥에 감염자들이 얼마나 있을지 모르는 상황.
이미 바깥이 어두워진 시점에서 위험을 무릅써 가면서까지 ‘요새(fort)’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 창고의 출입구가 잠겨 있던 걸 봐서는 창고 내부에 누군가 있을 것 같진 않았다.
민수와 나는 각자 손전등을 꺼내든 후, 과거 화장실이었지만 지금은 창고로 쓰이는 장소의 출입문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철컥- 끼익-
오래된 철문의 경첩이 내는 뻑뻑한 금속 마찰음이 적막한 창고 안에 울려 퍼졌다.
꼭 의식해야 할 정도로 큰 소리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조용한 창고의 분위기가 괜한 긴장감을 불러일으켰다.
저벅- 저벅-
어두운 창고 내부는 우리가 조금 전까지 머물던 공간과 마찬가지로 퀴퀴한 먼지 냄새만이 창고 안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또한, 별다른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는 걸 보니 창고 내부에 감염자나 생존자는 없는 것 같았다.
손전등 불빛을 따라 보이는 창고 내부의 모습은 특별할 게 없었다.
창고는 복층 구조로 되어 있었으며, 2층은 1층 면적의 절반 정도의 크기에 철골 구조와 샌드위치 패널로 만들어져 있었다.
창고 구석에 망가진 주유기들과 드럼통이 줄지어 서 있는 것으로 보아 주유소에서 쓰던 창고 같았다.
“태경이 형, 이거 유조차 아니에요?”
“뭐? 유조차? 어디보자.”
창고 출입구 앞에는 ‘X-오일’이라는 마크가 붙은 작은 트럭이 세워져 있었고, 트럭의 적재함에는 조그마한 탱크가 달려 있었다.
생각지도 못한 반가운 소식에 곧장 트럭으로 달려가 상태를 살폈다.
트럭의 운전자석 문에는 ‘키아-봉구III’라는 모델명이 붙어 있었다.
그리고 적재함에 달린 탱크에는 커다란 글씨로 ‘위험물’이라는 경고 표시와 함께 차량 적재 용량에 대한 안내가 붙어 있었다.
차량 총 중량 : 3,450kg
허가 내용 : 경질유 2,000L (1.경유 1,000L, 2.경유 1,000L)
적재 중량 : 1,600kg
허가 번호 : XXXXXXX
주유소에서 배달용으로 사용하는 소형 유조차였다.
언제든 출동할 수 있도록 준비된 차량이었는지 트럭의 열쇠도 꽂혀 있었고, 탱크에는 경유가 가득 채워져 있었다.
“태경이 형, 대박이에요!”
“그래, 완전 대박이야! 근데, 배터리가 방전됐는지 전원이 안 들어온다.”
다만, 문제는 자동차에 시동을 걸 방법이 없다는 것.
배터리가 완전히 방전됐는지 키를 ‘on’ 위치로 돌려도 자동차 계기반에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하지만, 이 기회를 그냥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민수야, 창고 좀 샅샅이 뒤져보자. 혹시 자동차 배터리 같은 거 있나 찾아봐.”
“자동차 배터리요? 알겠습니다.”
어떻게든 소형 유조차에 시동을 걸어 경유 2,000L를 요새로 가져가야만 했다.
창고 내에는 두 개의 불빛이 정신없이 돌아다니기 시작했고, 1층과 2층을 왕복하며 자동차에 시동을 걸 방법을 어떻게든 찾아낼 기세로 움직였다.
“뭐 좀 찾으셨어요?”
“아니, 배터리는커녕 배터리 비슷한 것도 없다.”
1층과 2층을 4번이나 오고 가며 창고를 샅샅이 뒤졌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방법도 찾지 못했다.
밤은 점점 더 깊어져만 갔고, 한기가 스멀스멀 침투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여기서 자고, 내일 해가 뜨면 다시 생각해 봐야겠어.”
“아까 보니까 2층에 천 쪼가리 같은 게 엄청 많던데요? 그거라도 덮고 자면 덜 춥지 않을까요?”
아마도 기름을 닦을 때 쓰는 보루를 얘기하는 모양이었다.
“그래, 그거라도 덮고 자자. 내일 움직이려면 잠이라도 푹 자 둬야지.”
2층에는 성인도 들어갈 만한 크기의 봉투 6개에 기름을 닦기 위한 천 쪼가리들이 한가득 들어 있었다.
민수와 나는 봉투에서 천 쪼가리들을 꺼내 바닥에 깔고, 낙엽을 덮듯 온몸에 천 쪼가리들은 두툼하게 덮은 후 잠을 청했다.
“민수야, 미안하다.”
“뭐가요?”
“형이 굳이 오늘 와 보자고 해서 괜한 고생을 했잖아.”
“아니에요. 그래도 여기 와 본 덕분에 유조차도 찾았잖아요. 물론 아직 시동을 못 걸어서 가져갈 방법은 없지만요.”
저녁도 먹지 못하고 움직인 탓에 굉장한 허기가 느껴졌다.
대책 없이 주유소를 찾아온 것에 대한 막심한 후회와 미안함이 밀려왔다.
* * *
위이잉- 위이이잉-
품 안의 핸드폰에서 진동 알람이 울렸다.
알람을 끄기 위해 핸드폰을 확인해 보니 오전 7시였다.
창고 2층에는 창문이 하나도 없었기에 바깥의 상황을 알 수가 없었다. 해가 뜬 건지, 구름이 낀 건지, 비가 오는지도 구분이 되지 않았다.
부스럭- 부스럭-
민수도 잠에서 깬 모양인지 연신 부스럭댔다.
지난밤 사이 온몸을 파고드는 추위는 상당했다.
기름을 닦기 위한 천 쪼가리라도 있어서 그나마 잠이라도 잘 수 있었으니 운이 좋았던 셈이다.
“태경이 형, 잘 주무셨어요?”
“그래, 민수 너는? 밤새 추웠지?”
“몇 번 깼어요. 아마, 천 쪼가리라도 안 덮었으면 얼어 죽었지 싶어요.”
“슬슬 준비해서 움직이자.”
“넵.”
천 쪼가리에 파묻고 있던 몸을 일으켜 풀어 뒀던 허리띠와 배낭 그리고 보호구 등을 착용했다.
1층 창문으로는 햇빛이 들어오는 걸 보니 날이 밝았음을 알 수 있었다.
바깥의 상황을 알아보기에 앞서 다시 한번 창고 내부를 둘러보다가 드럼통에 담긴 것들이 ‘등유’라는 것을 확인했다.
창고에 쌓여 있는 드럼통의 개수는 일견해도 서른 통 가까이 되었다.
‘대박인데?’
등유는 난로에 넣어 사용할 수 있는 연료였기에 가져만 간다면 겨울을 보내는데 굉장히 유용할 것이 분명했다.
경유 2,000L와 등유를 가져갈 수만 있다면, 최소 올겨울 동안 장비 운용과 난방에 대해서는 걱정할 필요 없었다.
등유가 담긴 드럼통들을 요새로 가져갈 방법에 대해 궁리를 하는 중에 나를 부르는 민수의 목소리가 들렸다.
“태경이 형, 2층으로 올라와서 이것 좀 보세요.”
“뭔데 그래?”
“여기 창고 옥상으로 올라갈 수 있는 출입구가 있어요. 근데 문이 안 열려요. 잠겨 있는 것 같지는 않은데…….”
2층 구석에는 창고 옥상으로 올라갈 수 있는 사다리가 있었고, 사다리의 끝에는 철판 덮개로 막혀 있었다.
철판 덮개 걸쇠에는 자물쇠가 걸려 있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문이 열리지 않았다.
아마 뭔가가 철판을 짓누르고 있는 모양.
“민수야 비켜 봐. 내가 한번 밀어 볼게.”
끄응- 들썩- 들썩-
끄으응- 철커덩- 콰앙-!
젖먹던 힘을 다해 철판을 밀어 올린 결과, 몇 번 들썩거린 이후에 세차게 열렸다.
“후아…… 열렸다!”
사다리를 타고 창고 옥상으로 올라가 보니 의외의 장면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뒤집힌 철판 옆으로 수십 장의 벽돌이 쓰러져 있었고, 옥상 바닥에는 벽돌로 적힌 ‘SOS’와 함께 쓰레기들이 너저분하게 널려 있었다.
그리고 옥상의 구석에는 말라비틀어진 시체 한 구가 바닥에 누워 있었다.
아무래도 이곳의 마지막 생존자는 누군가가 자신을 구조해 주기를 기약 없이 기다리다가 끝내 최후를 맞이한 것 같았다.
나와 민수 역시 눈앞의 시체와 같은 처지에 놓여 있었지만, 삶의 태도는 달랐다.
옥상에 갇힌 채 누군가의 구조를 기다렸던 눈앞의 시체와는 달리 나와 민수는 어떻게든 이곳을 빠져나갈 생각이다.
지금껏 살아온 날들은 나 스스로 쟁취해 낸 삶이었고, 내일을 살기 위해서는 오늘의 생존 역시 스스로 쟁취해 내야만 했다.
지난밤, 철민 아저씨에게 무전이 왔었다.
민수와 내가 밤이 늦도록 복귀하지 않자 걱정되는 마음에 보낸 무전이었고, 무전을 통해 민수와 내가 처한 상황을 철민 아저씨에게 설명했다.
철민 아저씨와 일권 아저씨가 우리를 구출하러 오겠다는 의사를 밝혔지만, 정확한 위치를 전달하기 어려울뿐더러 아무런 문제 없이 무사히 도착한다는 보장도 없었다.
괜히 구하러 왔다가 덩달아 위험에 빠지는 상황이 될 수도 있었기에 두 사람의 도움은 거절한 상황이었다.
결국, 나와 민수의 자력으로 이 상황을 타개해야만 했다.
옥상 난간 아래로 주유소와 주변의 상황이 보였다.
주유소에는 스무 명이 넘는 감염자들이 배회하고 있었고, 인근 도로에도 감염자들이 잔뜩 몰려 먹이를 찾아 헤매고 있었다.
주유소 인근이 자동차 도난방지 시스템의 경보음으로 인해 감염자들의 핫플레이스가 되어 버렸다.
마실 물도 얼마 남지 않은 상황.
우리가 이곳을 최대한 빠르게 빠져나가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소형 유조차에 시동을 걸어야만 했다.
이곳을 빠져나갈 방법을 마련하기 위해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SU편의점, 뼈마루감자탕, △△미술학원, 김밥지옥, 에디야커피, ○○카센터…….
‘카센터? 저기다!’
주유소 맞은편 건물에서 두 칸 떨어진 곳에 ‘○○카센터’라는 간판이 보였다.
지금으로서는 저 카센터야말로 우리의 유일한 희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