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Leveling: Murim RAW novel - Chapter 295
295화 – 외전 19. 예언 (2)
● ● ●
꿈인가?
뭐, 맞겠지.
하늘꼭대기에서 땅바닥으로 곤두박질치고 있으니.
쐐애액-.
꿈이라 그런지 옆으로 스치는 성층권의 공기도 상쾌하네.
나는 지나치게 현실감이 넘치는 찬바람을 느끼며 고꾸라진 채 고개를 아래로 내렸다.
시커먼 우주에서, 극광이 보이는 에메랄드빛 하늘. 다시 파아란 하늘, 구름.
마지막으로 지면.
먼저 바다가 보였다. 그리고 그 옆으로 보이는 거대한 도시.
뉴욕인가?
저 끄트머리 섬에, 비뚜름히 자빠진 자유의 아줌마상이 보이고 있거든.
온갖 컨텐츠에서 매번 세계멸망의 상징물로 쓰이는 아줌마.
잠깐.
자빠진?
나는 눈을 크게 떴다.
확실히 그러네.
정수리에서부터 발끝까지 반쪽이 나 있는, 자유의 여신상이 시야에 똑똑히 잡힌다.
미안해요, 아줌마. 매번.
자유의 아줌마의 상태에서 짐작건데, 이번 꿈의 컨셉은 아포칼립스인갑다.
잠시 고개를 여기저기 틀어보니, 확실히 폐허가 된 뉴욕시를 확인할 수 있었다.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허드슨야드 베슬 등등.
자유의 여신상 외에도 거의 모든 뉴욕의 랜드마크가 갖가지 각도로 기울어져 있었다. 어떤 건 45도, 어떤 건 거꾸로. 어떤 건 각도를 잴 수 없었다. 완벽히 산산조각 나 있었으니까.
아, 저게 초인청인가?
317층에 달하는 마천루가 피사의 사탑처럼 기울어있는 모습이 참으로 기괴하구나.
그뿐이면 말도 안 해.
곳곳에 벌레처럼 꿈틀거리는 헌터들이 보인다.
각지에서 시커멓게 치솟는 화마들의 피처링까지.
멸망한 세계관을 가진 SF영화의 한 씬 속에 들어와 있는 느낌이다.
을씨년 그 자체랄까.
하…… 지난번엔 천계를 마음 가는 대로 휘젓고 다니던 손오공 같더니, 이번 꿈은 오행산 밑에 갇힌 손오공처럼 꿈도 희망도 없네.
소름 돋는다.
현실 같이 생생해서 더 그렇…….
콰과과광-.
“커어어억!”
……아, 뭐지?
이런 게 루시드 드림인가?
파괴된 뉴욕시를 감상하던 중 마침내 그 한가운데 운석처럼 내리꽂혔는데…….
레알로 아프다.
무방비로 문지방에 찧은 발가락 신경이 온몸을 장악한 것처럼, 뼈 마디 근육 한 가닥 하나하나까지 다 저릿저릿하다.
콰르르르-.
아무튼 그 덕분에 뉴욕의 단단한 센트럴 로드 한가운데에 광대한 크레이터가 파였고, 아스팔트 조각조각 수십만 개가 파편처럼 흩어져 사방으로 비산했다.
어어!?
곧.
내 몸이 내 의지에 반하며, 고장난 안드로이드처럼 삐걱대며 천천히 일어섰다.
이 와중에도 양손에는 각기 한 자루씩의 도끼를 움켜쥔 채 말이다.
처음 보는 무긴데…… 희한하게 익숙한 느낌.
뚜둑, 뚝.
녹슨 로봇처럼 왼팔이 뻐득뻐득하게 끊기듯 펴졌다. 오른팔은 새까맣게 타, 마치 빌트인 인덕션처럼 시커먼 도끼 자루와 아예 일체가 되어있었다.
“제기랄. 또…… 실패했네.”
입이 저 혼자 움직이면서 말한다.
말과 함께 입에서 피가래가 거칠게 토해진다.
보진 못했지만 온몸은 피투성이겠지.
― 최후의 헌터여. 너는 패했다. 이제 그만 포기하라. 너희 인류는 우리의 발아래에서 훨씬 고귀해질 것이니.
어디서 들리는 건지 모르겠지만 귀 안쪽 깊숙이까지 소리가 울리는 게, 뉴욕시 전체가 꼭 거대한 석굴암이라도 된 것 같다.
내 고개가 하늘 쪽으로 꺾여 올라간다.
언제 나타난 것일까.
연기인지 뭉게구름인지 모를 시커먼 연기덩어리가 오연히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내 입이 또 움직인다.
“하……. 똥벼락을 뒤집어쓰고서 향기로워졌네 할 새끼네, 이거. 큿.”
고철처럼 삐걱대는 육신을 간신히 바로 잡은 꿈속의 나.
인벤토리에서 담배 한 가치를 꺼내 아직도 재처럼 이글대고 있는 왼팔에 갖다 댔다.
치이익.
금세 연기를 뻐끔 내뱉는 만드라고라 플러스 한 가치를 자연스레 입에 물었다.
이 상황에서 웃기긴 한데, 나 좀 멋있잖아? 인벤토리도 있고. 그래도 담배는 너무 갔네. 나, 모태 비흡연잔데.
뭐, 암튼.
어차피 꿈이니까, 지금의 상황을 즐기며 꼼꼼히 살폈다. 이 정도의 자각몽을 꾸는 건 처음인지라 모든 게 신기하기도 했고.
치익.
마지막으로 콜라 한 캔을 인벤토리에서 꺼내 한 모금 들이키며 피가래를 뱉어낸 꿈속의 나.
“크큿, 역시 이놈의 콜라는 마지막까지 별로네요, 씨부.”
씨부!?
“이제 죽거라, 최후의 헌터여.”
치이익-.
마지막 담배 한 모금을 빨아들이고는 필터까지 침범된 꽁초를 버리며 고개를 아래로 내렸다.
신발 밑창까지 잔뜩 적시고 있는 피 웅덩이.
아마도 수천수만 명이 쏟아냈을 그 핏물에 꿈속의 내 얼굴이 비쳤다. 죽은 피라 그런가. 시뻘겋지만 반질반질한 액체 위로 떠오른 내 얼굴이 똑똑히 확인된다.
한 십 년쯤 지나면 저렇게 되려나?
나이 든 내 모습이 엄청 어색하다.
그래도 멋있긴 하네.
S급 헌터나 입을 법한 럭셔리한 명품슈트를 입은 최후의 헌터라니.
큿, 꿈이라는 게 의식 저 너머의 실제적인 꿈이라더니.
멸망하는 세상이라는 설정만 빼면, 어릴 때부터 바라고 또 바라던 모습 그 자체잖아.
이번엔 꿈속의 내가 고개를 다시 든다.
고고한 연기, 그리고 그 양옆으로 저 멀리 두 개의 달이 보인다.
그리고,
‘게이트……인가?’
커다란 검은색 공간이 달 사이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얼마나 거대한지 곧 두 개의 달 모두 잡아먹힐 것처럼 어마어마한 규모의 게이트였다.
뿐이랴.
대가리 터진 붕어빵이 팥고물들을 뿜어내는 것처럼, 게이트 입구라고 예상되는 지점에서 무수히 많은 점들이 쏟아져나오고 있었다.
내 눈이 이렇게 좋았나 싶을 만치 그 점들이 생생히 시야에 잡힌다.
몬스터들이구나.
맞다. 쩍 벌어진 우주급의 게이트를 통해 갖가지 괴수들이 이리로 분출되고 있었다.
이 지구로.
마치 흰개미떼가 다른 개미집을 발견하고 공격하듯 몬스터들이 온 하늘을 뒤덮으며 날아내린다.
비단.
점들은 몬스터뿐만이 아니었다.
두 개의 달.
그러니까 광월과 음월 중에 광월이 게이트 접목 현상 탓인지 산산조각 나서 떨어져내리기 시작했다.
파편 하나하나가 대기권을 돌파하며 유성우가 된다.
영화에서 저런 걸 많이 봤는데…… 뭐라 그러더라.
아아, 미티어 레인(Meteor Rain).
하나만 떨어져도 대파멸이 일어날 별똥들이 전세계를 마구 폭격해댔다. 보이지는 않는다만, 수천수만 개의 크레이터가 생성됐을 거고 수십 억 명이 그걸 무덤 삼아 산화하리라.
꿈속의 내 입에서 침음성이 흐른다.
“하…… 이번에도 여기까진가.”
쾅.
남산타워만 한, 달 파편 하나가.
나, 그러니까 최후의 헌터니 뭐니하는 닭살 돋는 존재. 도천하를 뒤덮으며 인류는 최후를 맞이했다.
쿠르르르르-.
● ● ●
“……하야, 도천하!”
허억, 허억-.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차다. 한 1톤짜리 돌멩이를 가슴에 얹었다가 내린 기분이다.
“얹혔어?”
탁탁, 옆에 있던 사람이 내 등을 두드리고 배를 쓰다듬어 주었다.
아, 엄마.
휘휘 얼른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아포칼립스 속 뉴욕은 오간 데 없다.
그저 백년 만에 받아보는 것 같은 진수성찬만 눈앞에 펼쳐져 있을 따름이었다.
“……뭐지?”
“아니, 얘가 밥 먹다가 갑자기 왜 이래?”
“밥…… 먹다가 잠깐 졸았나 봐요.”
“얘가 진짜? 아니, 세상에 밥 먹다가 조는 사람이 어딨어? 그리고 너 존 거 아니야.”
“네? 그럼요?”
“좀 전에도 이상한 소릴 했는데? 뭐라더라?”
“열려라, 임시보관함.”
앞에 앉아계신 아버지께서 고개를 끄덕이며 내 헛소릴 상기시켜주신다.
그제야 나는 밥을 먹고 있던 중이라는 게 떠올랐다.
그리고 방금 아버지께서 하신 그 말을 똑같이 했다는 걸 알았다.
아놔, 요새 여러 가지 일들이 있어서 피곤했나?
무슨 밥 먹다가 기절하듯 꿈을 꾸냐? 그것도 그렇게 생생한 자각몽을.
“아이고, 우리 천하, 그간 너무 고생이 많았구나. 애미가 미안하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이깟 반찬 몇 가지가 뭐라고 밥 먹다가 기면증까지 겪어?”
엄마의 눈에 금세 닭똥 같은 눈물이 맺힌다.
“그런 거 아니에요. 엄마. 진짜로 꿈을 꿨어요…….”
“무슨 꿈이었는데?”
아버지께서 대신 물어오셨다.
“지구가…… 망하는 꿈요.”
“하이고오. 젊은 녀석이 밥 먹다가 무슨 그런 개꿈을 다 꿔? 여보. 우리 아들 보신 좀 시켜줘야 쓰겠어.”
“네네. 그래야겠어요.”
이내 벌어진 보신논쟁.
조선시대 예송논쟁은 갖다대지도 못하겠다.
후-.
나는 깊이 한숨을 내쉬며 때 아닌 아포칼립스 꿈을 떨쳐냈다.
그러곤 바로 꿈 이전의 일을 끄집어냈다.
그래, 분명 꿈꿀 타이밍은 아니었지.
곧바로 입에서 나오는 두 어절.
“열려라, 임시보관함.”
파라라라라락!
“……!?”
기이한 음향과 주변이, 된장찌개가, 아니 밥상이, 아니, 세상이 지워지기 시작했다.
그래픽 프로그램으로 누군가 흰색물감 채우기 버튼이라도 누른 것처럼 사방이 하얗게 변했다.
구첩반상도, 그걸 차려주신 엄마도, 그 옆에서 웃으시는 아버지도.
모든 것이 하얗게 변했다.
이게……도대체 뭔 세상이지?
균열이나 게이트는 절대 아니다.
이걸 대체 뭐라고 설명해야 하나?
뭔가 굉장히 심플한데.
홀로 남은 내 앞에 나타난 메시지.
[임시보관된 직업선택권이 자동으로 사용됩니다.]
[직업목록이 일람됩니다.]
일람(一覽).
여러 가지 내용을 한 번에 죽 훑어본다는 의미.
곧.
[‘직업’ 관리 시스템에 접속하신 것을 환영합니다.]
여자 목소리.
뭐, 여성체 기계음이라고 하자.
아무튼 그런 음성이 울려퍼지며 도천하의 시야가 완벽히 글자에 잠식되었다.
드넓은 들판에 글자로만 이루어진 반구형의 돔.
그 안에,
인류가 생긴 이래 생긴 모든 직업과 신화 속 괴수, 존재 등을 지칭하는 모든 단어가 총망라되어 뱅글뱅글 내 주위를 공전하고 있었다.
“……!?”
[네크로맨서(Necromancer)]
[드루이드(Druid)]
[강시(僵尸)]
[심익현]
[컨트롤러(Controller)]
[컨텐터(Contenter)]
[리더(Reader)]
[드림워커(Dream Walker)]
[몬스터 이터(Monster Eater)]
[미다스의 손(Midas’ Hands)]
[골든핑거(Golden Finger)]
……
…
..
.
“하이고오, 천하야. 너 이번엔 또 왜 그러니?”
“네? 제가 왜요?”
아, 이 공간은 나한테만 보이는 가상의 공간이구나. 마치 VR처럼.
“갑자기 왜 입맛을 다시니, 그렇게? 먹고 싶으면 그냥 먹으면 되지.”
아, 내가 입맛을 다시고 있구나.
하긴 그럴 수도 있겠다.
앞에 이렇게 화려하게 차려져 있으니.
진수성찬? 구첩반상? 미주가효?
어렸을 때 공부한 온갖 사자성어가 머릿속을 헝클어뜨렸지만 딱 맞는 게 없었다.
아아, 하나 엇비스무리한 게 있네.
내 눈앞에 ‘직업의 만한전석(滿漢全席)’이 펼쳐졌다.
눈알이 핑핑 돈다는 게 이런 건가?
어머니 말씀대로 먹고 싶으면 그냥 먹으면 되긴 한데…….
이건 음식이 아닌지라.
후우-.
한참을 들여다보다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뭘 고를까하는 생각이 들었다가,
금세 이 [직업]의 바벨탑에 깔린 것 같은 중압감이 선택장애를 가져온다.
[당신은 단 한 가지 직업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직업을 선택한 후에는 다시 되돌릴 수 없음에 유의하십시오.]
[※ 주의사항.
모든 직업의 효능은 당신 능력의 포텐과 한계를 넘어설 수 없습니다.]
새로운 기계음과 함께 경고 메시지가 또 한 번 목전에 아른거렸다.
이 많은 것 중에 대체 뭘 골라야하지?
자세한 설명도 없으면서 말이다.
단, 하나.
내 능력의 포텐과 한계를 넘을 수 없다는 제약만 빼고.
내 포텐과 한계라.
몰라.
도천하.
18세.
헌터 특성화 고등학교 재학생. 공부는 좀 하지만 헌터자질은 좀 미달.
I형 미셔너.
빈털터리.
……그만 알아보자.
어머니와 아버지께서는 뭔가 심상치 않음을 눈치채셨는지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뭐라 한 마디 물어보실 법도 한데, ‘갑자기 왜 입맛을 다시니?’ 이후에 깜깜무소식.
아무튼 나는 다시금 공전하는 [직업] 목록을 곰곰이 살펴보았다.
[심익현]은 사람인 거 같은데? 누구지?
어딘가 남성적이고 강해보인다.
한번 이걸로 전직해볼까?
아니다.
모르는 건 시도해보는 게 아니지.
[골든핑거]?
이것도 약간 땡기는데…….
아니야, 아니야.
역시 예상이 안 가는 건 하는 게 아니다.
아, 도무지 뭘 골라야 할지 모르겠다.
누구한테 물어볼 수도 없……아!?
물어보면 되겠네.
그 순간, 딱 떠오르는 인물이 한 명 있었다.
무한 레벨업 in 무림
지은이 : 곤붕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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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949-9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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