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supply by myself! RAW novel - Chapter 193
나 혼자 무한 보급! 193화
“아시다시피 아카라트의 도그마는 무한(。이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상대는 진짜 아카라트의 초월자가 남긴 아바타.
배울 수 있는 게 있다면 최대한 배워야 한다.
즉시 자리를 옮긴 민수는 마리아와 함께 가까운 건물 옥상에 섰다.
“이는 비단 물리적인 존재가 아니 라고 해도 적용됩니다. 당신이 인식 하고 수치화할 수 있는 모든 것에 무한을 부여할 수 있습니다.”
“모든 것? 그러니까 마력이나 내공 같은 것도?”
“이론상으로는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리 쉬운 일은 아니죠.”
아카라트의 초월자들도 신은 아니다.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있 고, 다룰 수 없는 것이 있다.
하지만 한낱 인간이 비물리적 존재 를 무한으로 생성하는 건 분명 신적 인 위업이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아카라트의 힘, 무한(。。)의 도그마가 가진 진정 한 잠재력이다.
“당신은 지금까지 그 권능을 일종 의 보급 창고 같은 개념으로 사용해 왔지요. 물론 그것이 그 힘의 가장 정석적인 사용법이긴 합니다만, 그 것만이 전부는 아닙니다.”
“비물리적 존재, 에너지나 마력 등 을 무한으로 만들 수 있다면……
“사실상 다음 시나리오의 승리는 확정이겠죠. 하지만 그러기에는 우 리에게 남은 시간이 없습니다.”
이전 초월자들도 보통 수백 년씩 수련과 공부를 거쳐야만 겨우 사용 할 수 있다.
반면 마지막 시나리오까지 남은 시 간은 불과 보름.
아무리 노력해도 그 중 무엇 하나 만족스럽게 익히기 힘들다.
“제가 가르쳐드릴 수 있는 건 그중 기초의 기초의 기초 정도 되는 것에 불과합니다.”
“기초의 기초의…… 기초?”
“사실 기초를 열 번 정도 더 붙여 도 됩니다. 그 정도로 쉽고 간단한 거죠.”
“물론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것입니 다만.”
만약 익히기만 한다면, 충분히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고개를 끄덕인 마리아가 한 걸음 옆으로 비켜서서는 말을 이었다.
“제가 가르쳐드릴 수 있는 건 공간 입니다.”
“공간?”
“일종의 텔레포트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나와 떨어져 있는 사물 혹 은 사람을 자신의 곁으로 재빨리 소 환할 수 있습니다.”
그 누구라 한들 ‘나’의 존재를 모 르지 않는다.
한낱 짐승부터 인간까지. 모든 생 명은 ‘나’를 위해 존재한다.
그런 ‘나’를 기점으로 주변의 공간 을 지배하는 것.
건전한 정신과 건강한 감각기를 갖 추고 있다면 절대 실패할 수 없다.
“다만 그것을 익숙하게 다루는 건 또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입니다. 아마 보름 동안 상당한 연습을 거치 셔야 할 겁니다.”
“가르쳐준다는데 불평할 수는 없 지.”
그리고 일단 익히기만 하면 큰 도 움이 될 거다.
누구든 내 곁에 불러올 수 있다면 그게 바로 텔레포트 게이트 아니겠 는가.
마음만 같아선 미궁의 웨이포인트 쪽이 더 탐이 나긴 하지만.
그건 아예 붙박이 시설물이니 지금 은 아쉬운 대로 이쪽을 살려야 한 다.
“일단 뭐라도 해봐야지. 그래서 어 떻게 하면 돼?”
“우선 상대와 나와의 거리감을 인 식해야 합니다. 숫자로 몇m인지를 재라는 게 아니라, 그것이 나와 어 떤 방식으로 멀어져 있는지를 느껴 야 합니다.”
“설명이 너무 어려운데.”
“저도 처음부터 잘 되리라는 기대 는 하지 않습니다. 지금은 그저 깨 달아가기만 하셔도 됩니다.”
거, 설명 참 알쏭달쏭하네.
가르치는 걸 못 하는 건가, 아니면 원래 저런 식으로밖에 못 가르치는 건가.
하지만 일단 가르쳐준다고 하니 시 키는 대로는 해봐야 한다.
고개를 끄덕인 민수가 저 멀리 놓 인 빈 캔을 노려봤다.
‘중요한 건 ‘나’의 존재. ‘나’와 떨 어져 있는 물건을 ‘나’의 인지 영역 안으로 불러온다.’
천천히 눈을 감고 캔을 향해 손을 뻗는다.
조금 전 확인한 캔의 형상.
그 어렴풋한 형상을 떠올리며 천천 히 생각을 정리한다.
‘무한은 유한이 있기에 존재한다.’
갈중혁이 처음 무한격을 깨달았을 때 중얼거렸던 말이다.
무한은 유한이 있기에 존재한다. 무한은 유한으로 인해 정의된다.
모든 것이 무한한 세상에서 무한 (co)은 의미가 있는가.
이 우주의 모든 것은 기본적으로 유한한 것.
그렇기에 무한(°。)이 강대한 힘으 로 존재할 수 있다.
‘그리고 저 캔과 나의 거리 또한 유한하다.’
그리고 거리 또한 숫자로 표현할 수 있으니 무한(。。)할 수 있다.
저 캔과 나는 무한히 멀어질 수 있으며, 반대로 0이 될 수도 있다.
‘나와 캔 사이의 거리는 약 열 걸 음. 이것은 무한에 빗대었을 때 유 한한 존재이다.’
그래. 축이 생겼다.
유한의 거리감을 가늠할 수 있는 무한(OO)이란 기준이 생겼다.
그렇다면 이 무한(=)으로부터 캔 의 거리감을 재정의하자.
저 캔과 나의 거리는 좁아진다.
무한(*)으로 시작되어, 끊임없이 좁아지고, 이윽고 내 손과의 거리 가…….
“……비키세요!”
“……?!” 느닷없는 고함과 함께 마리아가 민 수를 밀쳤다.
벌렁 나자빠지는 민수가 있던 곳으로 불타는 무언가가 홱 스쳐 지나갔다.
쐐애애애액!
고막을 찢어버릴 듯 우렁찬 굉음.
시뻘건 불꽃의 선이 조금 전 민수 의 상반신이 있던 곳을 지나쳤다.
기겁한 민수가 재빨리 혼 블래스터 를 꺼내 들며 고함쳤다.
“제길! 그거 뭐야?! 설마 벌써 시 나리오가 시작된 거 아니……
“……말도 안 돼.”
“뭐가?”
“미쳤어. 설마 한 번 만에 성공하 다니……
성공? 설마 그게 성공이었다고?
내 몸통 날려 버리려 날아온 그게 성공?
설명을 요구하는 민수의 눈빛이 마 리아가 얼른 표정을 바로 했다.
“과정이 좀 위험천만하긴 했지만 분명 성공했습니다. 분명 그 어떤 힘의 개입도 없이 캔과 당신의 거리 를 줄이는 데에 성공했어요.”
“그런데‘?”
“단지 세부적인 과정이 문제였습니 다. 너무 급격하게 거리를 줄였고, 거리를 의식하는 과정에서 물체의 운동에너지까지 무한에 가깝게 설정 됐어요. 그 덕분에 캔이 엄청난 속 도로 당신을 향해 날아온 거고요.”
즉 캔을 텔레포트시킨 게 아니라 포탄처럼 쏴버린 것.
방향이 자기 쪽이라 위험하긴 했지 만, 말도 안 되는 성과다.
숫제 괴물 바라보는 눈으로 마리아 가 민수를 바라봤다.
‘대체 이게 뭐지?’
기초의 기초라고 해도 쉬운 게 아 니다.
아카라트의 초월자들도 보통 저 정 도까지 하려면 일주일은 걸렸다.
그런데 그는 그걸 첫 시도에서 바 로 성공시켰다.
그것도 내가 한 별로 진지하지 않 은 설명만 듣고.
이게 가능한 일이란 말인가?
‘초심자의 행운인가? 아니, 그런 게 통하는 영역이 아니야. 그렇다면 이건……
재능.
스스로 생각해도 어처구니없지만, 그런 결론 밖에 안 나온다.
그는 무한(。。)의 개념을 머리가 아 닌 가슴으로 이해하고 있다.
설명할 수 없는 힘, 도그마를 본능 처럼 다룬다.
후천적 학습이나 운으로는 절대 설 명할 수 없는 영역의 일.
그렇다면.
‘만약 정말로 그에게 재능이라는 것이 있다면……
그에게 시간만 충분하다면.
저 무한(°。)의 도그마를 다루는 재 능만 만개할 수 있다면.
어쩌면 정말로 가능하지 않을까.
이 ‘게임’의 끝에서, 전혀 다른 미 래를 찾아내는 것이.
“……김 민수.”
“아, 왜? 깜짝 놀라서 심장 떨어질 뻔했……
“혹시 지금부터 시간 괜찮나요?”
허둥지둥 기듯이 달려온 마리아가 민수의 손을 덥석 붙잡았다.
뜨거운 눈빛이 열의를 넘어 가히 광기에 영역에 다다라 있다.
움찔해서 물러서는 민수를 향해 그 녀가 힘 있게 말했다.
“시간만 내주시면 알려드릴 수 있 는 건 다 알려드리겠습니다!”
* * *
마리아의 제안은 고맙지만, 마냥 여기에 매달려 있을 수만은 없었다.
지금 작업이 마무리된 곳은 미국, 일본, 중국의 3개국뿐.
남은 보름 동안 전 세계 주요 도 시만 돌아다녀도 시간이 빠듯했다.
“이번엔 또 어디로 가게?”
“인도 거기도 만만치 않게 커서 걱정인데 말이야.”
“좀 쉬면서 다니지그래? 아무리 아 크라이트가 있다지만 너 요즘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
“잠 잘 자고 밥 잘 먹고 다니니 걱 정 마!”
그러니 자연스럽게 민수의 일정 또 한 타이트해질 수밖에 없었다.
마도기갑 생산 장비가 가득 쌓여있 는 운동장 위.
아크라이트의 발톱으로 그중 여섯 개를 움켜쥔 민수가 대답했다.
“그리고 내가 게으름피우면 그만큼 클리어 확률이 낮아지는 거야. 전 세계가 함께 클리어해야 하는 최종 시나리오니까.”
“마음은 알겠지만 그래도 무리하지 마. 넌 할 만큼 했으니까……
“세상이 망하면 그런 소리도 못 하 지. 아무튼, 갔다 올게.”
재빨리 아크라이트의 역린 속으로 몸을 감추는 민수.
웅장하게 날개를 펼친 황금 드래곤 이 재빨리 하늘 너머로 멀어져갔다.
순식간에 극초음속으로 가속하는 황금 드래곤의 비늘.
그 모습을 보며 간신히 한숨을 삼 키던 중.
예진의 등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빠 갔어?”
“……은비야.”
한 명인가 싶었는데 돌아보니 둘이 었다.
오늘도 검은 장포에 칼을 차고 있 는 은비.
그리고 푸석푸석한 빨간 머리 위로 늑대 귀를 쫑긋거리는 나브.
그 와중에 나브는 뭐가 무서운지 덜덜 떨고 있었다.
살짝 그녀를 향해 눈을 흘긴 예진 이 은비 쪽으로 시선을 틀었다.
“그래. 갑자기 왜 나를 찾아왔어?”
“그냥. 우리 요즘 서로 바쁘다고 얘기도 안 하고 사는 것 같아서
“내 남자 노리는 발랑 까진 꼬맹이 랑 내가 무슨 얘기를 해야겠니?”
움찔.
짐짓 여유롭던 은비의 표정이 그 순간 굳어졌다.
“애가 순진해도 너무 순진하네. 너 설마 언니가 모를 것 같았어?”
“……아니. 나 나름대로 큰맘 먹고
언니 찾아온 건데……
“남의 남자 노리겠다고 큰소리 뻥 뻥 치면서 쳐들어오는데 그 정도 각 오도 없으면 그건 양심이 없는 거 야. 이것아.”
“저, 저기 예진. 일단 이건 은비 입장도 들어보고……
“넌 이 판국에 그런 말이 나와?”
아뇨. 설마 그럴 리가.
재빨리 나브가 입을 꾹 다물었다.
“그래서 무슨 일로 나 찾아온 건 데? 칼도 차고 있겠다, 힘으로 해결 보려고?”
“무슨 말을 그렇게 해? 다른 사람 도 아니고 언니인데.”
“그렇게 언니를 생각하는 애가 무 슨 양심으로 언니 남자를 노리는 건 지 모르겠네.”
“보니까 미국 갔다 오는 사이 뭔 일이 있었던 것 같은데, 그거 아니? 사실 민수 등 떠민 거 나야.” 예상은 했지만 그럴 것 같았다.
그렇게 티를 팍팍 냈으니 적어도 누가 조치는 했겠지.
얼추 예상했던 대답인지라 은비 또 한 시원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큰일 앞두고 이런 시시한 일로 팀 분위기 깨면 곤란하니까. 네가 뭘 하면서 덤벼들건 일단 받아들여달라 고 했어.”
“그럼 언니가 실수한 것 같은데. 덕분에 나 엄청 근성 충전됐거든.”
“하아. 얘가 간이 배 밖으로 나왔 네. 너 지금 네가 뭐 하는 건지 알 기는 해‘?”
“알지. 하지만 어쩔 거야? 천마는 이렇게 사랑하는 거라고.”
“천마, 천마, 그놈의 천마…… 그 노인 양반, 애를 아주 무협지 캐릭터로 만들어놨어.
새삼 갈중혁에 대한 증오를 되새기 며 예진이 혀를 찼다.
“……알면서 그러는 거라면 더 용 서의 여지가 없네.”
“미안해, 언니. 근데 나 진짜 포기 못 할 것 같아서.”
“원래 첫사랑은 안 이루어지는 거 란다. 젊었을 때의 좋은 추억으로 남겨놓는 것도 깨끗한 마무리 아닐 까?”
“언니는 그게 될지 몰라도 난 힘들 어. 그리고 그러고 싶지도 않고.”
“어련하겠어.”
“어, 어어! 잠깐! 예진! 은비! 이, 일단 둘 다 진정해 봐!”
갑자기 히트 업하는 분위기에 기겁 해서 가로막는 나브.
하지만 그런 그녀에게 돌아온 것은 무자비한 마도기갑의 손아귀였다.
“좀 비켜봐. 진정할 때 해도 이건 해결 봐야 해.”
“우왁!”
대충 내민 손바닥에 떠밀린 나브가 비틀비틀 뒤로 물러나고.
기어코 은비의 지척까지 다가온 예 진이 그녀를 내려다봤다.
마도기갑을 걸치고 있는지라 키는 예진이 훨씬 컸다.
배는 되는 질량 차이에도 물러서지 않고 예진을 당돌하게 마주 노려보 는 은비.
그 맹랑한 시선을 응시하길 잠시, 결국 예진이 손을 들었다.
“……한심해 죽겠다. 진짜.”
“ 응?”
“스무 살짜리 애하고 이게 뭐하는 짓인지.”
덥석.
크게 팔을 벌린 예진이 은비를 덥 석 끌어안았다.
느닷없는 행동에는 천마조차도 미 처 대응하지 못 했다.
예진에게 끌어안긴 은비가 동그란 눈을 깜빡이는 사이.
그녀의 머리를 살살 쓰다듬으며 예 진이 은비의 귓가에 속삭였다.
“……시나리오 끝날 때까지만 미루 자.”
“ 언니……?”
“시나리오가 끝나고, 세상이 원래 모습으로 돌아오고, 그렇게 평화로 워지면…… 그때 다시 결정하자. 너 인지 나인지.”
다른 사람도 아니고 얘랑은 싸울 엄두가 안 난다.
언제나 우리 파티의 최전선을 지켜 왔던 든든한 전력 아닌가.
스스로 피투성이가 되는 것도 무릅 쓰던 훌륭한 동료.
서로 목숨을 걸고 싸웠고, 서로의 목숨을 구해주기도 했다.
이런 녀석이랑 다투는 광경이 상상 조차 가지 않았다.
“지금은 우리가 할 수 있는 걸 하 자. 최선을 다해서.”
« 으 «
……”o”.
“이 ‘게임’의 끝으로 가는 거야. 세 상을 바로잡고, 그 순간까지 다 같 이 살아남는 거야.”
그러니까 적어도 그때까지는 없던 일로 하자.
지금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니 까.
품에서 은비를 풀어준 예진이 그녀 와 시선을 맞췄다.
“할 수 있지?”
“……나 그때 가도 안 질 거야.” “해볼 수 있으면 해봐.” 그래도 싫다는 말은 안 하네.
은비의 뺨을 쿡 찌르며 예진이 깔 깔 웃음을 흘렸다.
한편 그 시각. 프랑스.
“제길. 이거 잘 하는 짓인지 모르 겠어.”
앞서가던 동료의 입에서 결국 욕지 거리가 터지고 말았다.
땀을 뻘뻘 흘리며 숲속을 걷던 제 라드가 그런 동료의 등을 쿡 찔렀다.
“좀 조용히 하고 걸으면 안 되겠 어? 너 투덜대는 거 듣다 보면 나 도 힘이 빠지는 것 같아.”
“아니, 제라드. 넌 지금 이 상황을 보고도 이상하단 생각도 안 드는 거 냐?”
“작년에 이 난리 나면서부터 세상 은 늘 이상했어. 거기다가 이상한 일 하나 더 얹힌 것뿐이지.”
그렇게 대꾸한 제라드가 주머니에 넣어놨던 종이를 꺼내 흔들었다.
꼬깃꼬깃 구겨진 삐라 한 점.
팔락거릴 때마다 접힌 종이 틈으로 그 안의 내용이 조금씩 비쳤다.
-GO TO PARIS.
“갑자기 세상이 게임이 되고 괴물 들이 튀어나오는 것보다야. 황금 비 행기가 삐라 뿌리고 지나간 게 더 납득하긴 쉽지 않아?”
“느낌이 안 좋아. 제리드. 이거 아 무리 봐도 함x……
“함정이면 뭐 어쩌게? 여기서 더 안 좋아질 구석이라도 있어?”
“소속은 수상해도 비행기 날리는 거 보면 적어도 뒷배는 있는 놈들이 야. 그런 놈들이면 차라리 항복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지.”
더는 할 말이 없었다.
입을 꾹 다문 동료를 지나치며 제 라드가 숲을 걸었다.
목적지는 이 언덕만 넘어가면 나오 는 고속도로.
거기서부터 바로 파리 쪽으로 방향 만 잡고 걸으면 된다.
그렇게 삐걱대는 다리를 움직이며 얼마나 걸었을까.
“……?!”
“저, 저거……?!”
가까스로 언덕 꼭대기에 다다른 두 남자의 입이 떡 벌어졌다.
눈앞을 밝히는 것은 환한 가로등의 불빛.
힘찬 걸음으로 파리를 향해 걷는 생존자들.
그리고 그들 틈에서 무언가를 뿌려 대는 군복 입은 군인들.
“구호물자입니다! 질서를 지켜가며 받아가십쇼! 노약자 우선입니다!”
“여기서 욕심내지 마세요! 파리에 더 많이 있습니다!”
“저 앞의 기점에 버스가 대기 중입 니다! 걷기 힘드신 분들은 그쪽을 이용해 주십쇼!”
총을 들고 곳곳으로 물자를 뿌려대 는 군인들.
난로로 몸을 데우고, 마른 목을 생 수로 축이는 사람들.
도로의 갓길마다 멈춰서 있는 전차 들.
“구, 군인들이……!” 단언컨대 모두가 바라마지 않던 광 경이었다.
뜻하지 않은 시각 충격에 굳어있던 것도 잠시.
이윽고 두 남자가 괴성을 지르며 언덕을 뛰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여, 여기! 여기 사람 있습니다! 사람!”
“그, 그보다! 그보다 식량! 머, 먹 을 것 좀 주십쇼!”
최종 시나리오 개시까지 남은 시 간, 추정 14일.
전 세계의 플레이어들이 집결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