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supply by myself! RAW novel - Chapter 78
나 혼자 무한 보급! 078화
이걸로 다사다난했던 뉴욕 시나리 오는 일단락되었다.
GM들에게서 의뢰받은 일은 확실 하게 끝난 셈.
이제부터는 밥이나 한 끼 먹고, 좋 게좋게 헤어지는 것만 남은 셈이지 만.
“저것들은 또 뭐야?”
그렇다고 뉴욕에서 할 일이 전부 끝난 건 아니었다.
대로 너머에서부터 달려오는 수십 명의 플레이어.
선두에서 달리던 자전거를 멈춘 케 인이 대뜸 눈을 부라렸다.
“아무리 봐도 이쪽에 용건 있는 것 같은데.”
“제이크. 누군지 알겠어요?”
“……아무래도 센트럴 파크의 새 주인이신 모양이네요.”
센트럴 파크의 새 주인.
그것만 들어도 누군지는 쉬이 짐작 할 수 있었다.
냅다 자전거에서 내려 무기를 꺼내 드는 민수 일행들.
에테르 계열 무기의 시퍼런 광채가 사방에서 번뜩이는 가운데.
마찬가지로 자전거에서 내린 민수 가 권총을 뽑아 들며 말했다.
“일단 정지. 잠깐 상황 지켜봅시 다.”
“하지만 민수. 제가 아는 대로라면 저 사람이랑 얽혀서 좋을 게……
“어차피 시나리오 끝난 마당이잖아 요. 마냥 척지고 살 거 아니면 이제 부턴 한 식구 대접해 줘야죠.”
이쪽이야 시나리오 끝났으니 한국 으로 돌아가면 그만.
하지만 앞으로 다음 시나리오에 도 전해야 하는 이들은 사정이 다르다.
실각한 루시를 대신하는 뉴욕의 새 로운 권력자.
갈 때 가더라도, 남겨질 이들과 다 리 정도는 놓아줄 필요가 있었다.
“수십 명 정도면 이쪽을 대놓고 적 대하려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정말 우릴 어떻게 할 생각이었으면 저것 보다 많이 데리고 왔겠죠.”
“……그것도 그러네요.”
“일단 말이나 한번 들어봅시다. 보 니까 어지간히 급한 모양인데.” 그렇게 한가로이 대답한 민수가 노 려보길 잠시.
이윽고 우르르 밀려든 플레이어들 이 민수 일행 앞에 늘어섰다.
수는 다소 적지만, 전원 경매장의 실바리온 무기류로 무장한 플레이어 들.
이만하면 나름 정예 플레이어라고 봐줄 만하다.
그렇게 대충 상대의 실력을 가늠하 는 사이, 플레이어들을 헤치며 누군 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 용병이라는 사내가 자네로군.” 땅딸막한 키의 흑인 노인이 플레이 어들의 앞으로 나섰다.
짧고 하얀 수염에 가려진 고집스럽 게 앙다문 입.
무슨 재주를 부린 건지 빳빳하게 다려놓은 제복.
가슴에서 반짝이는 온갖 훈장들만 봐도, 그 삶의 궤적이 짐작 가는 사 내 였다.
“귀가 짧고, 보급인지 뭔지 하는 스킬을 가지고 있는.”
“그렇습니다. 그러는 어르신이 브 롱크스의……?”
“그렇다네. 내 소개가 늦었군. 저스 틴 우드 대령일세.”
대령은 무슨.
들어보니 예편한 지 벌써 몇 년은 됐다고 하는데.
하지만 그런 의미 없는 계급이라도 바란다면 못 맞춰줄 건 없다.
친절한 미소와 함께 다가간 민수가 먼저 악수를 청했다.
“반갑습니다, 대령님. 김민수입니 다. 뉴욕을 구하러 온…… 아니지. 구한 용병입니다.”
“……반갑네.” 기계적으로 악수를 나눈 저스틴이 민수를 살폈다.
그냥 이리 보나 저리 보나 평범한 동양인 청년이다.
체구도 평범하고 생긴 것도 평범하 고 느껴지는 분위기도 평범하고.
‘하지만……
이 평범한 청년이 뉴욕 시나리오를 끝내버렸다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악수를 나누고 내린 저스틴의 주먹 에 식은땀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대체 뭐지? 뭘 어떻게 한 거지?’ 그래, 상황을 너무 쉽게 봤었다.
이 여섯 명이 자기들끼리 시나리오 공략에 도전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느
그런 게 가능하기나 하겠냐고 비웃 기까지 했다.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지 않은가.
뉴욕만 한 크기의 거대 UFO가 최 종 보스랍시고 기어 나왔다.
뉴욕의 생존자들이 다 달려들어도 그놈한테 생채기나 낼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한데 이 친구들은 그걸 돌려보냈어.’ 그 사이에 무슨 싸움 같은 게 벌 어진 건지.
아니면 안 싸우고 공략할 방법이 있는 건지는 알 수 없다.
그리고 사실 알 바도 아니다.
중요한 건 우리가 모르는 방법을 이 친구가 일고 있으며.
아마도 그걸 우리가 감당할 수 없 으리라는 것뿐.
‘어떡하지?’
마냥 친절한 민수의 미소를 마주하 고 있자니 긴장이 배가됐다.
이쯤 되면 당초의 방침도 수정이
불가피하다.
무력을 동원해서라도 데리고 오는 건 하책 중 하책이다.
갑자기 돌변해서 이상한 짓을 하지 않으리란 보장이 어디 있단 말인가?
‘알려진 것 이상으로 많은 능력을 가진 친구다. 포섭이나 협박 따위가 문제가 아냐.’
가급적 마찰 일으키지 않고 좋게 끝내야 한다.
그게 회유건, 아니면 그냥 조용히 사라지는 것이건 간에.
애써 태연한 척하는 저스틴의 얼굴 주름살이 움찔 떨렸다.
그 모습을 힐끔 살핀 민수의 얼굴 에서 짙어지는 미소.
결국, 참다못한 저스틴이 먼저 입 을 열었다.
“그, 일단 뉴욕을 대표해서 자네들 에게 감사를……
“그러고 보니 슬슬 아침 드실 시간 이죠?”
멋대로 말을 자르고 나선 민수가 환하게 웃었다.
무례하기 짝이 없는 행동이지만 지 적할 여력조차도 없었다.
당혹감 가득한 그의 얼굴을 한 번 바라본 민수가 말을 이었다.
“이것도 인연인데, 식사라도 같이 하시죠.”
거절할 이유도, 그럴 명분도 없었 다.
氷 5k *
아침 식사 메뉴 선정 레이스의 승 자는 나브였다.
하긴 기본적인 육체 포텐셜이 다르 니 예상한 결과였지만.
정작 우승한 나브의 입에서 뜬금없 는 소리가 나오면서 상황이 달라졌 다.
“난 그냥 고기면 다 좋은데. 주인 님! 나 고기 먹고 싶다고 해줘!”
“어…… 얜 그냥 고기면 다 좋답니 다. 고기로 하죠.”
“좋았어! 그럼 바비큐!”
득의한 듯 번쩍 주먹을 들어 올리 는 케인.
3등으로 들어왔으면서 결국 최후의 승자는 그가 되었다.
메뉴 선정과 관련된 그런 가벼운 투닥거림이 끝난 후.
저스틴과 그를 따르는 플레이어들 을 데리고 민수는 가까운 미국식 바 비큐 식당으로 향했다.
“천천히 드시죠. 누가 안 뺏어갑니 다. 어차피 무한인데.”
“아. 그, 그런가? 흠흠. 실례했네.”
입가와 수염에 가득 묻은 기름을 허겁지겁 닦으며 저스틴이 멋쩍게 웃었다.
꽤 많이 주문했던 고기가 어느새 절반 가까이 줄어 있다.
나이를 감안하면 참 대단한 먹성이 아닐 수 없었다.
“초면에 실례겠지만 이해해 주게. 이게…… 아마 자네도 알겠지만, 식 사다운 식사를 한 지가 벌써 한 달 이 넘었어.”
“그렇죠.”
“처음 한 달은 허연 젤리 같은 거 에 생선비린내 나는 물이었고, 나중 가서 먹을 만한 비스킷이나 물이 올 라오긴 했는데 그것도 일주일을 넘 으니까 물리더라고. 그 와중에 이런 훌륭한 식사를 대접받으니……
아무리 철혈 같은 군인이라도 어쩔 수 없는 사람.
그간의 고생을 떠올린 저스틴의 눈 에서 눈물이 찔끔 솟았다.
“크, 크흠. 내가 다 주책이군. 아무 튼, 고맙네. 덕분에 나는 물론이고 여기 있는 친구들도 오랜만에 제대 로 된 식사를 하게 됐어.”
“별말씀을.”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인 민수가 주 변을 둘러봤다.
너른 바비큐 식당을 채운 채 열심 히 고기들을 해치우는 중인 플레이 어들.
저쪽도 먹어치우는 기세로는 저스 틴 못지않았다.
“다들 허기는 조금 가신 것 같으 니, 이제 남은 얘기나 좀 해보세나.”
“남은 얘기라고 하심은?”
“자네는 몰라도 나는 묻고 싶은 게 많거든. 뉴욕 시나리오를 클리어해 준 것에는 감사하나, 이제부터 자네 가 어떤 행보를 보일까…… 하는 거 말이야.”
그렇게 대답하는 저스틴의 눈에선 예기가 반짝이고 있었다.
대충 무슨 생각인지는 짐작이 간 다.
작게 한숨을 쉰 민수가 포크를 놓 았다.
“일단 저는 살던 동네로 돌아갈 겁 니다.”
“돌아간다고?”
“알고 계시다시피 전 용병으로 팔 려온 거라서요. 뉴욕 시나리오 클리 어하면서 제 업무는 끝났으니, 이제 저도 제 볼일 보러 가야죠.”
“채널 간 이동이 가능한 건가? 혹 시 괜찮다면 그 방법을……
“노 코멘트.”
“끄응•…”
앓는 소리를 하며 의자에 털썩 주 저앉는 저스틴.
하지만 그 와중에도 눈에선 안도의 기색이 느껴졌다.
예상했던 반응에 민수가 속으로 한 숨을 뱉었다.
‘내가 좀 꺼져줬으면 싶겠지.’
지도자 입장에서 이쪽이 가진 보급 스킬은 탐이 나겠지만.
그것도 자신이 통제 가능할 때나 탐내볼 수 있다.
뉴욕 시나리오를 클리어하면서 이 쪽의 명성은 높아졌고 뉴욕 최고의 정예 플레이어들이 이쪽과 함께하고 있다.
캠프 지도자 입장에서 이보다 큰 정치적 위협은 없다.
‘그래도 걱정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야.’
지구 반대편 뉴욕 상황에 더 이상 개입할 수도 없다.
이쪽은 이르면 오늘 내로 돌아가야 하니까.
본의 아니게 서로의 입장이 잘 맞 아떨어진 경우다.
포크로 고깃덩이 하나를 푹 찍어 입에 넣으며 민수가 말을 이었다.
“우물우물…… 아무튼 대령님께서 걱정하시는 그런 상황은 절대 일어 나지 않을 거라 그 말입니다. 전 이 르면 오늘, 늦어도 내일 중으로 돌 아갈 거니까요.”
“흐, 흠흠. 내가 무슨 말을 했다 고……
“그 대신 여기 있는 플레이어들은 잘 대접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번 뉴욕 시나리오가 낳은 최고의 정예 들이니까요.”
옆에 앉은 동료들을 향해 민수가 고개를 돌렸다.
제이크, 미라, 케인, 그리고 엘레 나.
하나 같이 굳어 있는 그들의 표정 을 살핀 민수가 어깨를 으쓱했다.
“뭐, 싫어도 잘 대접하실 수밖에 없을 겁니다. 단언컨대 지금 뉴욕에 서 이들보다 강한 플레이어는 없을 테니까요.”
“……그것도 그렇군.”
“그리고 돌아가기 전에 약간의 호 의로 뉴욕에 물자를 보급할 계획입 니다. 아, 물론 이번만큼은 공짜가 아니에요. 공짜 보급고는 이미 한 번 날려 먹었으니 다시 드릴 수는 없고, 대신 필요한 모든 물자를 최 저가로……
“저기.”
그때 잠자코 듣기만 하던 엘레나가 손을 들었다.
“대령님. 부탁드릴 게 있는데요.”
“아, 요한슨 양. 무슨 일인가?”
“……이런 부탁드리는 게 실례라는 건 알고 있습니다만.”
힐끔 민수와 눈을 마주친 엘레나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어떤 각오, 혹은 의무감으로 가득 한 눈빛.
잠깐의 고민 후, 고개를 꾸벅 숙이 며 엘레나가 말했다.
“……저희 엄마, 볼 수 있을까요?”
“뭐 복권 GM 權)을 시켜달라거나, 그런 부탁을 하려는 게 아니에요. 그냥…… 만나보고 싶어요.”
“에, 엘레나?”
이것만큼은 민수도 예상 못 했다.
설마 대령 앞에서 그 정적인 자기 엄마 부탁을 대놓고 꺼내다니?
“엘레나! 얘가 할 말 못 할 말을 못 가리고……!”
“좀 진정하시죠. 지금 꺼내기엔 좀 복잡한 얘기 아닙니까?”
당황한 동료들이 말리려 했지만, 이미 뱉은 말을 주워 담을 수는 없 었다.
무거운 침묵이 맴도는 식당 테이블 위.
곤란한 얼굴로 수염을 쓰다듬던 저 스틴이 이윽고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내 입장에선 정말 얼굴 보기 싫은 여자긴 하지만.”
“아••••••!”
“그렇다고 엄마 보고 싶다는 딸내 미 부탁을 내칠 수도 없는 노릇이 고. 허허.”
기가 막힌다는 듯 너털웃음을 터뜨 리는 저스틴.
이윽고 복잡한 속내가 드러나는 눈 빛을 한 채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지. 바로 사람을 풀어서 찾아 드리겠네.”
마지막에 나온 엘레나의 민감한 부 탁을 제외한다면 대체로 순탄하게 풀린 만남이었다.
아니, 사실 그 부탁으로 인해 알 수 있었던 것도 있었다.
‘대령은 나를 좀 과대평가하는 모 양이군.’
브롱크스에 더해 센트럴 파크까지 먹은 뉴욕 최대 세력의 지도자다.
저런 사람이 저렇게까지 저자세를 고수할 이유라면 하나밖에 없다.
아무래도 이쪽의 역량을 좀 오해하 고 있는 게 분명하다.
물론 그 착각 덕에 일이 잘 풀렸 으니 아무래도 좋은 일이지만.
“민수. 언제 돌아갈 거예요?”
“최대한 빨리 가야죠.”
제이크의 질문에 어깨를 으쓱한 민 수가 대답했다.
두 시간 가까운 한 바탕 포식이 끝난 후.
저스틴을 위시로 한 플레이어들이 제각기 돌아갈 준비를 갖추고 있었 다.
“제가 있는 것 자체를 부담스러워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네요. 제 역 할은 끝났으니 이제 슬슬 집에 갈 준비나 하렵니다.”
“……민수. 다시 한번 물어보는 건 데, 이 기회에……
“미안해요, 미라. 나도 고향이 있는 사람이라.”
딱 자른 거절에 미라의 얼굴이 울 상이 되었다.
어떻게든 잡아보고 싶었지만, 이렇 게 태도가 확고하면 더는 어쩔 수 없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다시 만날 일 이 있겠죠. 그때까진 좋은 인연으로 만 간직합시다.”
“……정 그렇다면야.”
“자자! 아무튼, 끝났습니다. 이제 돌아가서 좀 쉬고, 다음 시나리오 준비도 하셔야죠.”
그렇게 민수의 박수 소리에 떠밀린 일행들이 제각기 걸음을 옮겼다.
뭔가 할 말 많아 보이는 제이크와 미라, 케인.
살짝 눈치를 보더니 어딘가로 후다 닥 도망가는 나브.
“엘레나?”
그리고 그 자리에 남겨진 한 명.
그녀의 복잡한 시선에 고개를 갸웃 한 민수가 물었다.
“안 가고 뭐 해요? 저한테 할 말 있어요?”
“……저기. 민수.”
차마 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볼 용 기가 나지 않았다.
작게 한숨을 한 번 뱉은 엘레나가 우물쭈물 입을 열었다.
“언제 돌아갈 거예요?”
“말했다시피 정리되면 바로요. 더 있어봤자 대령 심기만 불편할 것 같 고.”
“그래요……
작게 대답하고는 두근두근 뛰는 심 장을 가라앉혔다.
잘하는 짓인지는 모른다.
아니, 분명 잘못하는 거겠지.
어쩌면 자신의 결정을 비난하는 이 또한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더 이상 이렇게 있고 싶지는 않다. 내게도 다른 길이 있다면, 다른 길 을 선택하고 싶다.
평생 엄마가 원하는 대로만 살아왔 던 삶이다.
세상이 망하고 나서도 나는 엄마의 도구였을 뿐.
결국, 내 삶의 주인은 한 번도 나 였던 적이 없었다.
‘그렇다면.’
이제 내가 내 삶의 주인이고자 한 다면.
내가 갈 곳 정도는 나 스스로 정 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것이 그저 한때의 착각 같은 반 짝임 일지라도.
겨우 손에 들어온 이 기회를 놓치 고 싶지 않으니.
“••••••민수.”
그 순간, 드디어.
차분해진 눈으로 민수를 똑바로 바 라보며.
머뭇거림 없이 엘레나가 입을 열었 다.
“나도 당신이랑 같이 갈 수 있을까 요?”
“……네‘?”
깜짝 놀란 민수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