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022
“듣자 하니 좀 짜증 나네.”
넘버세븐이 곧바로 받아쳤다.
“네가 천재라는 건 인정하겠는데 말이야, 우리가 모인 건 완벽한 세계에 대한 실험이야. 외톨이 소녀의 놀이터를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고.”
끼이이이이잉!
귀청이 떨어질 듯한 고주파 노이즈가 운영자 회의실 영상을 강타했다.
오퍼레이터가 소리쳤다.
“너 뒈질래? 네가 나에 대해서 아는 게 뭐야? 지금 당장 뇌를 폭파시켜 줄까?”
“할 수 있으면 해 보시든가.”
“넘버세븐! 너……!”
그 순간 막대 사탕 마크가 소리쳤다.
“그만! 그만하세요!”
말이 먹힐까마는, 오퍼레이터의 노이즈 공격을 즉각 차단한 실력은 탁월했다.
“회의할 때마다 자꾸 이러니까 학원도 못 가잖아요. 그냥 안건에 집중하면 안 돼요?”
“저 자식이 자꾸 열 받게 하잖아!”
넘버세븐도 지지 않았다.
“그러는 너는? 운영자가 사용자랑 붙어먹으면 어쩌자는 거야? 내가 이벤트 하나 준비할 때마다 버그 테스트를 몇 번이나 하는 줄 알아? 토 나올 지경이라고.”
“…….”
“기술적으로 봐, 기술적으로. 그냥 가끔 접속해서 잘 돌아가나 둘러보면 되잖아? 네가 신이야. 하루 종일 사냥 따위 안 해도 돼. 그냥 스테이터스 맥스로 찍고 다 쓸어버려. 네가 원하는 완벽한 세계라는 거, 이제는 나도 잘 이해를 못 하겠거든? 넌 하이 기어에서 뭘 하고 싶은 건데?”
전파가 숙연해졌다.
“……몰라.”
오퍼레이터가 말했다.
“만들어진 세계가 정말 완벽해질 수 있을까? 결국 사용자가 외면하면 거짓인 거잖아.”
침묵 속에 사고가 흘렀다.
“그래, 나는 현실이 싫어서 도망쳤어. 그러니 선택권은 없는 거지. 내가 하이 기어에서 하고 싶은 일은…… 아마도 살아가는 것 그 자체일 거야. 내 마음은 여기에 있어. 그러니 나에게는 이곳이 진짜야.”
넘버세븐이 물었다.
“그걸로 만족하냐? 전부 네가 만든 거잖아. 만약 심각한 버그라도 터지면? 하이 기어가 엉망진창이 되어도 거기서 살아갈 수 있겠어?”
뒤늦게 대답이 나왔다.
“……나는 살아가고 싶다고 했을 뿐이야. 얘기는 다 했어. 먼저 나갈게. 안건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혐의 없음이야. 투표할 때 참고해.”
하이 기어 마크가 사라졌다.
“흥! 레이드 시간은 칼같이 지키는군. 야, 나도 나간다. 안건에 대해서는 기권.”
넘버 세븐까지 접속을 차단하자 스마일 마크가 회의를 빠르게 진행시켰다.
“바로 투표하죠. 야훼2에게 제재를 가해야 한다는 쪽은 1번, 혐의 없음은 2번요.”
10개의 화면에 숫자가 떴다.
“좋아요. 그럼 오늘 회의 내용 저장하고, 잠그겠습니다. 다음 회의 때 보죠.”
야훼2, 혐의 없음.
***
전자의 황무지.
시로네 일행은 하이 기어의 출력을 최대치로 맞추고 메탈울프를 사냥했다.
“야! 도망친다! 쏴! 쏴!”
소총이 불을 뿜는 것과 동시에 메탈울프가 급격하게 방향을 뒤틀었다.
애꿎은 땅에서 파편만 튀는 것을 보고 파괴마신707이 인상을 찡그렸다.
“아우, 약 올라! 이상하다? 예전에는 우리 이거 엄청 쉽게 잡지 않았냐?”
실제로 메탈울프의 평균 레벨은 6에서 7 사이로, 약체에 속하는 크리처였다.
데스공쥬가 말했다.
“레벨이 너무 낮아서 그래. 보통 철의 고향에서 7레벨까지는 맞추고 나오잖아.”
시로네가 방법을 제시했다.
“출력 대결로는 승산이 없어. 일단 개활지라서 지형을 이용할 수 없잖아. 우리가 만들자.”
“함정을 파자고?”
“아니. 1명이 사격을 해서 메탈울프의 동선을 늘리는 거야. 그리고 두 사람이 직선으로 달리면 속도의 차이를 상쇄시킬 수 있어. 그렇게 외길로 몰아간 다음 마지막 사람이 끝장을 내는 거지.”
최강코드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방법이야. 역할을 바꿔 가면서 하면 레벨도 골고루 올릴 수 있을 거야. 일단 5레벨만 넘으면 메탈울프 정도는 쉽게 잡을 수 있을 테니.”
시로네의 작전대로 사냥이 재개되었다.
키이잉! 키이잉!
날카로운 기계음을 내며 메탈울프가 바닥에 퍼지자 곧바로 레벨이 올랐다.
“이거 죽이는데? 레벨이 너무 낮으니까 하나만 잡아도 경험치 게이지가 쭉쭉 올라.”
“응. 이러면 금방이겠어.”
그렇게 순번대로 사냥을 한 끝에 시로네 일행 모두 5레벨을 달성했다.
시로네가 눈을 반짝였다.
“새로운 기능이 생겼어. 탐색 반경 200미터.”
데스공쥬가 말했다.
“응. 레벨 5에서 활성화되는 인공지능 기능이야. 이제 200미터 안에 있는 사용자나 크리처의 정보가 뜰 거야. 코드명도 마찬가지고.”
“2배나 뛰었네. 처음에는 100미터였잖아.”
“어머, 어떻게 알았어? 매뉴얼에도 나와 있지 않은 건데. 우리들도 직접 재서 알았거든.”
“그냥 뭐…….”
마법사의 느낌적인 느낌이랄까?
“탐색 반경은 정말 중요해. 일단 탐색 범위 밖에서는 인공지능이 작동하지 않기 때문에 자동 에임이고 뭐고, 아무것도 안 되거든. 유일하게 볼 수 있는 건 코드명인데 그것도 가시거리 안에서지. 500미터, 1킬로미터 떨어지면 누구한테 당했는지조차 확인할 수 없어.”
“저격수에게 유리한 기능이네. 그래서 대장내시경이 200미터 꽉 채워서 쐈구나.”
“그건 기본이지. 더 레벨이 올라가면 전투 범위가 최소 1킬로미터는 넘어. 사용자들도 비행을 하는 데다 대인 미사일까지 쏘아 대니까.”
시로네는 고개를 끄덕였다.
“대충 알겠어. 레벨을 올릴수록 인공지능의 기능이 늘어나고 성능이 향상되는 거네. 거기에 출력까지 강해지니 1레벨 차이가 엄청 큰 거고.”
“그래. 인공지능의 종류는 크게 다섯 가지가 있어. 현재 네가 활성화시킨 것은 자동 에임, 반동 보정, 탐색 반경이지? 7레벨과 9레벨에 하나씩 더 활성화될 거야. 일단 사냥을 하면서 알려 줄게. 그다음 10레벨부터는 이제 실렉티브 옵션의 세계로 들어가는 거야.”
“아하, 그래서 안 열렸구나.”
시로네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솔직히 재미는 있네. 시스템도 레벨을 올리면서 차근차근 배우도록 되어 있고.’
그런 면에서 텐맨의 존재는 아슬아슬했다.
‘뭐, 그건 운영자의 영역이니까.’
일단은 사용자로서 하이 기어를 즐기고 싶은 시로네는 다시 사냥에 나섰다.
10레벨짜리 메탈스콜피온과 메탈웜을 잡자 경험치가 쭉쭉 올라갔다.
스콜피온은 꼬리에서 염산을 쏘고, 토룡은 땅속으로 숨는 능력이 짜증 났다.
7레벨이 되자 관통 보정 기능이 활성화되었다.
“그거 좋아.”
데스공쥬가 설명했다.
“핵심 기능은 아니지만 수많은 변수가 이 관통 보정에서 발생하거든. 가장 중요한 건 확률이 아니라는 거야. 일단 명중하면 무조건 장갑을 뚫을 수 있어. 즉, 아무리 강한 적이라도 헤드샷의 기회가 있다는 거지.”
“정말? 그럼 오퍼레이터를 이길 수 있지 않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가능해. 하지만 그 확률은 내 생각에 0.001퍼센트도 안 될 거야. 이제부터 설명할게. 나를 소총으로 조준해 봐.”
데스공쥬의 이마를 겨냥하자 에임이 떴다.
에임 안에 100%가 떠오르고 그 주위를 따라 붉은 선이 고리를 그렸다.
그 붉은 선이 완벽한 원을 그렸을 때 100% 기호가 황금색으로 빛났다.
“아하…….”
“알겠어? 관통 판정에서 중요한 건 인공지능의 연산 시간이야. 지금은 낡은 철모라서 2초 안팎으로 연산이 끝났지만, 내가 파츠를 장착했다면 장갑의 내구력에 따라 시간이 훨씬 늘어났을 거야. 물론 네가 더 좋은 화기를 장착한다면 당연히 시간은 줄어들 테고.”
“이해했어. 그럼 지금 오퍼레이터를 조준하면 어떻게 되지? 내구력도 최강일 텐데, 관통 판정이 나오기까지 몇 시간씩 걸리는 거 아냐?”
“아니. 그럴 경우 100퍼센트 대신 ‘크리티컬’ 판정이 뜰 거야. 소총이 가진 위력의 한계치가 장갑의 내구력을 넘어설 수 없으니까.”
“하지만 0.001퍼센트라고 했잖아.”
“그거야 네가 더 좋은 화기를 장착했을 때의 얘기지. 어차피 금화륜에서 지원을 해 줄 거 아냐. 소총으로 싸울래? 그리고 오퍼레이터는 네가 관통 보정을 활성화시킬 때까지 가만히 기다려 줄 것 같아?”
“하긴…….”
“그래도 정말 좋은 기능이야. 너와 오퍼레이터는 극단적인 상황이고, 보통은 성공하면 위력 대비 10배 차이의 장갑도 뚫을 수 있어.”
“하지만 그만큼 어렵지.”
“후후, 맞아. 그래서 사실 이건 보스 크리처 공략에서 더 중요해. 이걸 레이드라고 하는데, 높은 난이도로 가면 크리처의 내구력이 어마어마하게 높아지거든. 그럴 때 ‘크리티컬’ 판정은 가뭄의 단비와 같은 거야. 한 번이라도 크리티컬이 실패하면 물리적으로 공략이 불가능한 크리처도 있다고 하니까.”
“응. 뭔지 알 것 같아.”
다시 사냥이 시작되었다.
이제부터는 레벨 업에 요구하는 경험치가 많아서 꼬박 3시간을 사냥해야 했다.
파괴마신707이 말했다.
“오늘은 그만하자. 어두워서 사냥 효율이 떨어져. 하이 기어 동력도 아껴야 되니까.”
“동력이 떨어져?”
“이 레벨에서 신경 쓸 건 아니지만, 혹시 모르니까. 물론 고레벨이 되면 배터리 엄청나게 잡아먹지.”
최강코드명이 황무지에서 아주 가끔 볼 수 있는 마른나무를 꺾어 가지고 왔다.
“불을 피우자. 불침번까지는 필요 없지만 그래도 사냥감이 올지도 모르잖아.”
철의 고향에서 챙긴 부싯돌로 모닥불을 피우자 시로네가 불가에 앉았다.
‘열기도 진짜 같네.’
아마도 꿈처럼.
“야훼2.”
고개를 들자 데스공쥬가 살짝 홍조를 띤 얼굴로 머뭇거리고 있었다.
“응. 무슨 일이야?”
“저기…… 우리들은 좀 즐길 건데, 괜찮으면 너도 같이 하지 않을래?”
무슨 말인지 파악한 시로네는 파괴마신707과 최강코드명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들의 태연한 모습에서 느꼈다.
‘그렇지. 여기는…….’
가상의 세계다.
‘저 아이들의 외모도 전부 거짓이겠지. 그래, 이곳에서 마음을 따지는 건 나밖에 없을 거야.’
시로네는 정중하게 거절했다.
“미안. 나는 좀 어색해서.”
“그래, 그럼.”
미소를 지으며 자리로 돌아간 데스공쥬는 친구들과 소리 없는 놀이를 시작했다.
타닥. 타닥.
모닥불의 불티가 사납게 튀는 가운데 시로네는 하염없이 생각에 잠겼다.
‘무엇이 진짜일까?’
건너편에 앉은 세 사람이 키스를 하고 있었고, 그 너머는 아득한 어둠이었다.
‘마음은…….’
시로네는 화상을 입을 정도로 가깝게 손을 내밀었다.
‘어디에 있는 것일까?’
“으음. 음.”
모닥불은 뜨거웠고, 또한 너무 차가웠다.
동국과 서국 (3)
***
황무지에 동이 텄다.
“슬슬 출발할까?”
밤새도록 유희를 즐겼던 세 사람이 자리를 털고 일어나자 시로네도 기지개를 폈다.
‘정말 길었다.’
하이 기어의 세계에서는 잠을 자야겠다는 욕구가 생기지 않는다.
이미 꿈을 꾸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인간의 육체를 기계로 대신하는 설정은 언더 코더에 딱 맞는 것일지도 모른다.
파괴마신707 일행이 유희를 즐기는 것도 어떤 의미에서는 시간 죽이기였다.
데스공쥬가 철모를 쓰며 물었다.
“야훼2, 괜찮아? 심심하지 않았어? 중간부터 끼어도 우리는 괜찮았는데.”
“아니야. 이것저것 생각 좀 하느라. 그런데 잠을 안 잔다는 건 특이하네.”
야훼의 정신이라면 현실에서 한 달도 버틸 수 있지만, 아예 피로가 느껴지지 않았다.
“꿈이라도 뇌를 이용하는 건데, 너무 오랜 시간 플레이 하면 지치지 않을까?”
최강코드명이 말했다.
“물론 그렇지. 그래서 가끔 접속을 끊고 나가기도 해. 하지만 너무 걱정할 것 없어. 하이 기어는 현실의 시간하고 전혀 다르니까.”
“얼마나 차이가 나는데?”
하이 기어 안에서 동시 사건의 신호가 전달되지 않는 것은 당연했다.
시로네가 꿈을 꿀 때, 다른 공간의 시로네가 그 꿈을 보지 못하는 것과 같았다.
“정확하게 재 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다른 사람에게 들으니 이곳에서의 30일 정도가 현실의 하루라고 하던데.”
“30일…….”
시로네는 혀를 내둘렀다.
‘그럼 현실에서는 아직 1시간도 흐르지 않은 거네. 드리모보다 훨씬 깊은 곳이라서 그런가?’
인간이 만들어 낸 공겁의 의미를 생각하며 시로네는 소총을 어깨에 걸쳤다.
파괴마신707이 말했다.
“출발하자. 어제 어느 정도 레벨을 올렸으니까 이제 아토그램까지는 금방이야.”
그렇게 2시간 정도를 걷자 황무지의 끝에 5미터 높이의 철벽이 보였다.
“전자의 황무지 마지막 관문이야. 여기서 더 접근하면 벽에서 총구가 나와 우리를 공격할 거야.”
“응. 저걸 피하기 위해서는 이 기능, 반사 반응 보정이 있어야 한다는 거지.”
이곳까지 오는 도중에 쉬지 않고 사냥을 했기에 그들은 10레벨을 달성했다.
시로네는 증강현실을 통해 기능을 살폈다.
-반사 반응 보정(온/오프)
9레벨에 활성화되는 기능으로 외부의 공격을 분석, 자동으로 회피한다.
데스공쥬가 설명했다.
“반사 반응 보정은 자동 에임에 대항하는 기능이야. 자동으로 조준되니, 자동으로 피하는 기능도 있는 거지. 하지만 같은 레벨일 경우 자동 에임의 효율이 훨씬 뛰어나.”
시로네는 이해했다.
“하긴, 반사 반응 보정의 기능이 더 뛰어나면 아무도 명중시킬 수 없겠네.”
“맞아. 그래서 고수들은 반사 반응 보정을 꺼 놓는 경우가 있어. 자신의 능력을 믿는 거지. 또는 온오프를 빠르게 반복하면서 필요한 정보만 얻는 경우도 있고. 하지만 우리처럼 낮은 레벨에서는 필수야. 10레벨 정도의 출력으로는 탄환을 피할 수 없으니까. 아…….”
데스공쥬는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