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021
시로네는 상황을 짐작했다.
파괴마신707 일행이 일제사격으로 크레이너의 궤도를 약간 뒤튼 것이었다.
‘나를 구하려고 돌아왔구나.’
각도는 10도 안팎에 불과했지만 초집중 상태의 시로네에게는 유일한 활로였다.
“고마워. 덕분에…….”
“이 멍청아!”
갑자기 파괴마신707의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곧바로 뒤를 돌아 달렸다.
“뭐 하고 있어? 빨리 튀어!”
시로네가 돌아보자 스타트 지점에서 돌아온 텐맨들이 소총을 연사하고 있었다.
“큭!”
감각이 없는 한쪽 다리를 절뚝이며 시로네는 출구를 향해 몸을 던졌다.
경계선을 넘자 총성이 그쳤다.
“됐다. 이제 됐어.”
데스공쥬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가운데 시로네는 철의 고향을 돌아보았다.
텐맨10번이 부하들의 부축을 받으며 출구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최강코드명이 말했다.
“소용없어. 이미 스타트 지점이 변경됐거든. 우리를 죽여도 다시 살아나면 그만이야.”
“너, 야훼2.”
경계선 앞에 멈춘 텐맨10번이 물었다.
“동국이냐, 서국이냐? 어디 소속인지 몰라도 우리 길드로 넘어와라. 마그난 레벨까지 전부 지원하고, 그 후에는 수익의 10퍼센트를 보장하지.”
파괴마신707의 눈빛이 변했다.
‘마그난이면 260레벨. 이 녀석들 진심인가? 1레벨부터 지원하려면 은하 엄청 써야 하는데.’
그가 코드명을 세탁하기 전에 도달한 최고 레벨이 183이었다.
“텐맨에는 관심 없어.”
텐맨10번이 미간을 구겼다.
“무슨 소리야? 당연히 본진이지. 텐맨 활동은 그저…… 아니, 됐고. 잘 생각하는 게 좋아. 본토에서 우리 길드의 영향력은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니까.”
파괴마신707 일행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이거 협박이네.’
물론 대형 길드라고 해도 특정 사용자에게 척살령을 내리는 경우는 드물다.
일단 명분이라는 것이 있으니, 여론이 악화되면 길드를 유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명분이야 가져다 붙이기 나름이잖아. 특히나 야훼2 같은 경우는 더 쉽지.’
바이오로 총알을 피하는 것만 해도 본토에서 구설수에 오르기 충분했다.
“싫어.”
시로네는 단호했다.
“본진이 따로 있다면 너희들은 더 악질이야. 길드 이름을 말해 주지 않는 것도 그런 이유겠지. 하고 싶은 대로 해 봐. 박살을 내 줄 테니까.”
“……후회할 거다.”
텐맨10번도 할 말이 없지는 않았으나 그 전에 하이 기어가 정지했다.
시체로 변한 그가 스타트 지점으로 사라지자 부하들이 삿대질을 하며 물러갔다.
“조심해라. 네 코드명, 기억해 둘 테니까.”
텐맨들이 풍경 밖으로 사라진 뒤에야 시로네는 전자의 황무지로 돌아섰다.
“우리도 가자. 적어도 내일까지는 아토그램에 도착해야 돼. 데려다줄 거지?”
“응? 어, 그래.”
야훼2가 텐맨10번의 협박을 당당하게 받아친 것이 그들에게는 충격이었다.
‘순진한 성격인 줄 알았더니, 의외로 과격하네.’
철의 고향, 스타트 지점.
텐맨10번이 눈을 떴을 때, 옆에는 산초가 인상을 일그러뜨리고 있었다.
“대장.”
“……어떻게 됐어?”
“떠났어. 스카우트를 제안했는데 씨알도 안 먹히더군. 척살령도 무서워하지 않아. 대형 길드 소속이겠지.”
“쳇,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1명에게 뚫려? 조만간 소문이 퍼질 텐데, 쪽팔려서 원.”
파괴마신707 일행은 안중에도 없는 발언이었다.
“근데 좀 이상하긴 했잖아. 바이오 상태에서 총알을 피한다는 건…….”
“으아아아아! 으아아아아!”
산초는 분노를 억누르지 못했다.
“이 개자식이 나한테 헤드샷을 먹여? 야, 전부 녹화했지? 당장 운영자에게 찔러.”
“괜찮을까? 영상은 편집이 불가능해. 우리 목소리까지 전부 들어갔을 텐데.”
“흥! 지들이 어쩔 거야? 하지만 시스템 오류를 이용한 플레이는 차원이 다르지. 영구 정지라고. 두 번 다시 발도 못 붙이게 해 버려.”
“……그래.”
텐맨10번은 증강현실의 최상단에 위치한 운영자 건의 페이지를 열었다.
영상 파일이 업로드 되었다.
시로네가 물었다.
“전자의 황무지에서 밤을 새워야 한다고? 아토그램까지 그렇게 멀단 말이야?”
데스공쥬가 검지로 턱을 짚었다.
“흐음, 멀다고 해야 하나? 달려서 가면 3시간 정도 걸리지만, 100레벨만 넘어도 30분 컷일걸. 그리고 거리보다는 레벨이 낮다는 게 문제야.”
최강코드명이 설명했다.
“거리보다는 높이가 문제야. 전자의 황무지 끝은 장벽으로 둘러싸여 있어. 거기를 뛰어넘으려면 하이 기어의 출력이 최소 10레벨은 되어야 해.”
“아하, 그럼 레벨을 올리면서 가야겠네. 그런데 여기에도 사냥감이 있으려나?”
“당연하지. 파츠는 구하기 어렵지만 초반에는 은하가 제법 쏠쏠하게 벌려. 여기에서 돈을 모아서 아토그램에서 초보자 패키지를 사는 게 정석이야.”
“그렇구나. 초보자 패키지라.”
파괴마신707이 인상을 찡그렸다.
“도대체 알다가도 모르겠네. 너 진짜 처음이냐? 그런데 무슨 배짱으로 텐맨10번에게 대들었어? 놈들 본진에서 살생부 작성되면 너나 우리나 전부 끝장이야.”
딱히 두렵지는 않지만 일행에게 피해가 가는 건 시로네도 원하지 않았다.
“아토그램에서 친구가 기다리고 있다고 했잖아. 아마 그 녀석이 해결해 줄 거야.”
“그 장사꾼? 코드명이 뭔데? 수완이 있는 놈이라면 나도 알고 있을 테니까.”
“욜가의 아들.”
세 사람이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뭐! 욜가의 아들?”
“응. 성격은 좀 안 맞는데, 그래도 이런 쪽에서는 믿음이 가는 놈이니까. 너무 걱정하지…….”
“무슨 소리야! 동국 랭커잖아! 게다가 듀얼은 전체 랭킹 4위라고! 그 욜가가 정말 네 친구라고?”
“그렇겠……지? 일단은 동창이니까.”
데스공쥬가 눈을 빛내며 물었다.
“그럼 아토그램에 도착하면 우리도 만날 수 있는 거야? 응? 소개시켜 줄 거지?”
“당연하지. 텐맨도 그렇고, 나 때문에 너희들에게 피해를 끼칠 순 없으니까.”
“피해라니. 이건 오히려…….”
파괴마신707은 생각했다.
‘그냥 100위 안에 드는 랭커도 아니고 욜가의 아들. 진짜 대박이다. 무조건 동국 해야지.’
욜가의 아들을 검색하자 항목별 랭킹에 이어 소속 길드의 문양이 칸을 차지했다.
‘동국 길드 랭킹 1위. 금화륜.’
코드명 옆에 새겨질 금화륜의 문양을 떠올리자 절로 입꼬리가 올라갔다.
시로네가 물었다.
“뭐야? 왜 다들 실실 웃고 있어?”
파괴마신707이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응? 아무것도 아니야. 아무튼 이제 이해가 되네. 너도 랭커가 목표냐? 나중에 나 모른 체하면 안 된다.”
“사실 제대로 해 보려고 온 건 아니야. 개인적인 일인데, 누구를 좀 이겨야 돼서.”
“그런 경우 있지. 하이 기어에서 한판 뜨는 거. 그럼 상대는 서국이겠네. 코드명이 뭐야? 검색해 볼게.”
“오퍼레이터.”
“…….”
정적이 찾아왔다.
검색할 필요도 없는 일이었으나, 반면에 머릿속은 뒤죽박죽이 되었다.
“혹시 짝퉁…….”
“아니, 그 오퍼레이터가 맞아. 내가 듣기로 하이 기어에서 제일 세다던데.”
‘이 녀석, 진짜 아무것도 모르네.’
그렇지 않고서야 ‘제일 세다던데.’ 따위의 흔한 표현이 나올 수는 없는 것이다.
“좋아. 나름 베테랑의 입장에서 말하는 건데, 네가 단독으로 오퍼레이터를 꺾을 확률은 제로일 거야. 너를 무시하는 게 아니라, 하이 기어의 시스템이 그래.”
데스공쥬가 말했다.
“레벨이 높아지면 엔진 출력도 높아지지. 하지만 이건 가장 단순한 거야. 인공지능 레벨이 오르면 전투 편의성이 엄청나게 향상되거든.”
시로네도 이미 몸으로 느낀 바였다.
“설령 레벨이 같다고 해도 파츠의 성능에 따라 위력은 천차만별로 갈려. 거기에 실렉티브 옵션을 어떻게 정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결과가 나오기도 하고. 이제 알겠어? 네가 이 모든 요소를 어느 세월에 다 맞출 수 있을 것 같아? 오퍼레이터는 초창기 사용자야. 즉, 하이 기어에서 구현할 수 있는 최상의 기체 중의 하나란 말이야.”
최강코드명이 덧붙였다.
“전투 센스도 최고겠지. 듀얼 랭킹 무패의 1위라는 것은 그런 의미니까.”
이 악문다고 되는 세계가 아니었다.
“하지만 포기할 수 없어. 반드시 이길 거야. 오퍼레이터를 만나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시로네의 눈빛에서 진심을 읽은 파괴마신707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좋아, 정말로 해볼 생각이라면…….”
빈 탄창을 버린 그가 새로운 탄창을 소총에 넣고 탁 하고 쳐올렸다.
“미친 듯이 사냥해야지.”
***
운영자 회의실.
원탁을 따라 세워진 12개의 화면에 각각의 부서를 상징하는 마크가 떠올랐다.
그들 또한 언더 코더의 이단아였기에 진짜 얼굴을 드러내는 경우는 없었다.
“시스템 관련 건의가 들어왔는데…….”
변조된 음성이었다.
“철의 고향에서 벌어진 일이에요. 녹화 영상을 틀어 드릴 테니 일단 보고 얘기를 나누죠.”
12개의 화면에 동시에 영상이 출력되었다.
“사각을 없애! 표적을 겨누지 말고 공간에다가 예측 사격을 하란 말이야!”
텐맨10번의 시야에서 녹화된 화면의 시로네가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운영자는 말이 없었다.
“…….”
산초를 헤드샷으로 쓰러뜨리고, 철의 구역 경계선에서 나눈 대화가 끝날 때까지도.
“좋아.”
넘버세븐(NO.7)이라는 마크가 먼저 말했다.
“내 전공은 아니지만 화신술은 막아 놓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방화벽 뚫렸어?”
요妖라는 마크가 말했다.
“아뇨. 침투는커녕 공격받은 흔적도 없어요. 메타 프로세스도 마찬가지예요.”
“그럼 저건 뭐야? 저거 사람 맞지? 그런데 어떻게 마하가 넘는 걸 피해?”
스마일 마크가 말했다.
“로그를 살펴본 결과, 극한의 집중력 상태에서 극단적인 시간 왜곡이 발생한 걸로 보여요. 즉, 탄의 속도보다 신경 전달 속도가…….”
“그러니까!”
넘버세븐이 소리쳤다.
“마법도 스키마도 다 막아 놨는데 어떻게 그게 되냐고! 지가 신이야 뭐야?”
검은 서클 마크가 말했다.
“사용자 코드명이 야훼2라는 것도 의미심장한데요. 제가 아는 그 야훼가 맞습니까?”
톱니바퀴 마크가 말했다.
“튜토리얼 관리자로서 대답할 의무는 없습니다. 다만 관리자의 명예를 걸고, 시스템의 빈틈을 이용할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보증합니다.”
넘버세븐이 말했다.
“뭐야, 너답지 않게 심각한 말투는. 야훼가 뭔데? 사람 이름이야? 잘생겼냐?”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몰라요? 드림 스타 좀 적당히 먹고 나가서 산책이라도 하세요.”
“너 지금 나한테 시비 거냐?”
막대 사탕 마크가 말했다.
“자, 자, 그만! 검토 결과 시스템상의 오류는 아니에요. 다만 판단 기준에 따라 해석의 여지가 있죠. 모든 사용자는 하이 기어에서 동등한 기회를 제공받는다, 이게 우리의 설계 모토 아닌가요?”
요妖 마크가 말했다.
“하지만 개인의 느낌까지 간섭할 수는 없어요. 똑같은 상황이라도 감각의 편차에 따라 반응은 모두 다릅니다. 야훼2의 감각을 부정하는 것은 현존하는 사용자 전체의 개성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스마일 마크가 동의했다.
“설계 의도에서 벗어나지만 않으면 괜찮다고 봐요. 사실 철의 고향에 상주하는 텐맨들도 하이 기어의 모토에 준한다고는 볼 수 없잖아요?”
“그거야 재밌는 거고. 그건 재밌는 거야.”
넘버세븐 마크가 말했다.
“어쨌든 설계 의도라는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우리 레이디의 생각은 어떠신가?”
모두 침묵을 지키는 가운데 하이 기어 마크가 있는 화면에 신호가 들어왔다.
“말에 뼈가 있다, 넘버세븐?”
오퍼레이터의 목소리였다.
동국과 서국 (2)
하이 기어에서 유명한 여성체인 오퍼레이터는 운영자들 사이에서 ‘레이디’로 통한다.
화력이 난무하는 전장 속에서도 우아함을 잃지 않는다는 게 첫 번째 이유였지만…….
“레이디께서 또 기분이 상하셨군.”
넘버세븐의 말투에는 비하의 의미가 섞여 있었다.
“오해하지 마. 운영자 중에서 하이 기어를 플레이하는 별종은 너밖에 없어서 물어본 거니까. 괜찮겠어? 야훼2 말이야. 이대로 두면 언젠가 오퍼레이터의 아성을 무너뜨릴지도 모르는데? 차라리 지금 추방을…….”
“그게 어쨌다는 거지? 오퍼레이터가 랭킹 1위인 이유는 내가 운영자인 것과 아무 상관 없어.”
넘버세븐이 킥킥 웃었다.
“아니, 혹시 초조해할까 봐. 어때? 네가 원하면 이벤트를 좀 손봐 줄 수도 있는데.”
“넘버세븐.”
차가운 목소리였다.
“나대지 마라. 12명의 운영자가 하이 기어를 구축하고 있지만 최초 설계자는 나야. 초기 구상에 반하는 이벤트 확장은 용납할 수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