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020
인공 지능이 에임을 잡기도 전에 20미터 떨어진 적의 머리를 겨냥했다.
한 발의 총알이 수많은 탄환 사이를 뚫고 지나가 철모를 관통했다.
“크악!”
캉 소리를 내며 뒤로 나자빠진 적이 고철 더미 아래로 굴러떨어져 내렸다.
텐맨10번의 미간이 꿈틀했다.
‘관통?’
명중당한 텐맨은 움직이지 못했고 잠시 후 스타트 지점으로 사라졌다.
“흐음.”
뭔가 이상하다.
‘시스템 오류라고 해도 너무 심한데? 텐맨이 조사한 바에 의하면 야훼2의 레벨은 3.’
크리처를 잡은 횟수만 알면 나오는 사실이었다.
‘반동 보정 20퍼센트가 전부야. 약간의 곡률만 생겨도 관통은 불가능해. 총알이 빗발치는 찰나의 순간에 정확히 관통 지점을 겨냥했다고?’
도무지 결론이 나지 않았다.
“…….”
그가 생각에 잠겨 있는 동안에도 시로네는 텐맨들을 하나씩 제거해 나가고 있었다.
숫자가 7명으로 줄어들었을 무렵, 엄폐물 뒤에 숨어 있던 최강코드명이 말했다.
“우리도 싸우자.”
데스공쥬는 내키지 않았다.
“미쳤어? 저 녀석들에게 찍히면 스타트 지점 밖으로 나오지도 못해. 이 코드명, 1억 은하짜리라고.”
“이미 찍혔어. 여기서 못 뚫으면 다시 코드명 세탁해야 될 거야. 텐맨 1조만 스타트 지점으로 돌려보내면 철의 고향 밖으로 나갈 수 있어.”
“그러다 우리가 죽으면 스타트 지점에서 다시 시작해야 되잖아. 그냥 지켜보다가 야훼2가 전멸시키면 그때 생각하자. 당하면 도망치면 되는 거고.”
파괴마신707이 동의했다.
“맞아. 위험 요소가 너무 커. 굳이 싸울 필요 없잖아. 게다가 저 녀석은 우리에게 빚도 있으니까.”
“총알 피하는 거 안 보여?”
최강코드명이 친구들을 돌아보았다.
“우리 셋이 달려들어도 저 녀석 잡을 수 있을 것 같아? 만약 야훼2가 우릴 죽이면?”
“…….”
“그냥 해. 나가자고. 이 기회를 놓치면 얼마나 오래 여기에 처박혀 있어야 될지 몰라.”
파괴마신707이 인상을 찡그렸다.
“에이, 씨…….”
그것을 신호탄으로 3명이 동시에 엄폐물 밖으로 나와 소총을 연사했다.
“이거나 먹어라, 개자식들아!”
엉뚱한 방향에서 사격이 가해지자 텐맨의 화력이 양쪽으로 분산되었다.
부상자가 속출하는 가운데, 시로네가 쓰러진 텐맨에게 헤드샷을 먹였다.
‘정확도 100퍼센트?’
텐맨10번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짜증 나네.’
10레벨이 한계인 텐맨의 인공지능으로는 야훼2를 제압할 수 없었다.
“두고 보자.”
고철 더미의 꼭대기에서 뛰어내린 그는 아지트로 달리면서 녹화를 종료했다.
영상 파일이 만들어졌다.
‘불법 프로그램……. 대형 길드가 연루되어 있을 거야. 동국인가? 아니면 서국?’
어디든 돈만 벌면 그만이다.
텐맨10번은 실렉티브 옵션의 통신 기능으로 누군가에게 연락했다.
통신 레벨 10 : 사용자 코드명 산초.
“대장.”
그가 나직하게 말했다.
“출구 틀어막아.”
파괴마신707은 숨을 헐떡거렸다.
“빨리! 빨리!”
매고 있던 탄띠가 덜렁거리고, 턱 끈이 헐거워진 철모가 머리를 두드려 댔다.
시로네가 따라잡으며 물었다.
“왜 그렇게 급한 거야?”
“텐맨이 모이기 전에 철의 고향을 나가야 해! 이제부터 싸움은 포기해. 무조건 출구로 달리는 거야.”
“그러다 쫓아오면?”
데스공쥬가 말했다.
“철의 고향만 나가면 끝이야. 그때부터는 죽어도 다른 스타트 지점에서 되살아나니까.”
“아하.”
결국 한 걸음 차이였다.
“거의 다 왔어. 하지만…….”
출구 쪽에서 요란하게 터지는 총성에 최강코드명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뚫기 어렵겠는데.”
조금 전에 사망한 텐맨들이 아직 스타트 지점에 있을 텐데도 10명이 넘었다.
시로네가 작전을 세웠다.
“내가 싸울 테니 출구로 빠져나가.”
“뭐? 그럼 너는?”
“나는 죽어도 다시 싸울 수 있지만 너희들은 좋은 기회잖아. 내 말대로 해.”
세 사람은 눈빛을 교환했다.
‘웃기는 놈이네.’
하이 기어에서 생판 모르는 남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겠다고 하다니.
시로네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 대신 이제 빚은 없는 거다?”
“…….”
사실 하이 기어에서 사냥감 스틸은 힘의 논리 아래 흔히 일어나는 일이었다.
“쳇! 괜히 나쁜 놈 만들고 있어.”
철모를 단단하게 누른 파괴마신707이 앞으로 튀어 나가며 소리쳤다.
“무조건 빠져나와! 여기만 나가면 내가 화끈하게 키워 줄 테니까!”
“부탁한다, 영웅.”
그렇게 내뱉은 최강코드명이 뒤를 따르고, 데스공쥬가 시로네를 돌아보았다.
“고마워.”
시로네는 가슴이 벅차올랐다.
‘가짜가 아니야.’
설령 모든 게 거짓으로 이루어진 세계라도 그 안에는 사람이 살고 있다.
‘그렇다면 싸울 수 있어.’
수류탄 3개를 꺼낸 시로네는 이빨로 연거푸 안전핀을 뽑으며 달렸다.
“여기다!”
소리치는 것과 동시에 수류탄이 날아가고, 사방에서 텐맨들이 사격을 개시했다.
콰아아아아앙!
폭발의 굉음 속에서 파괴마신707 일행은 갈지자로 달리며 흩어졌다.
“으아아아! 으아아아!”
시뮬레이션 세계라고 해도 골인 지점을 앞두고 달리는 긴장감은 상상을 초월했다.
‘나간다! 나갈 거야! 여기서 죽으면 쪽팔려서 하이 기어 접고 말지!’
수류탄이 터지고 땅이 흔들렸다. 몸을 던진 파괴마신707은 땅을 엉금엉금 기었다.
‘대충 하다가 말려고 했는데. 다 저 녀석 때문이야. 저렇게 진심으로 다가오면…….’
더 이상 가짜가 안 되잖아.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연무 속에서 일어난 그는 막무가내로 달렸다.
‘제발! 제발!’
순간 연기 바깥에 사람의 실루엣이 보였다.
“으악!”
급하게 걸음을 멈췄으나 충돌은 피할 수 없었고 두 사람이 바닥을 굴렀다.
“야! 괜찮아?”
눈을 떠 보니 데스공쥬의 얼굴이 보였고 옆에는 최강코드명이 서 있었다.
“설마?”
파괴마신707의 망막에 위치 정보가 떴다.
전자의 황무지.
“나왔다.”
벌떡 상체를 일으킨 그는 좋아할 겨를도 없이 철의 고향 쪽을 돌아보았다.
“야훼2는?”
사망한 텐맨들이 속속들이 사라지는 가운데 허벅지에서 피를 흘리는 야훼2가 보였다.
“쳇! 하여튼……!”
파괴마신707이 달릴 채비를 하는 그때 최강코드명이 어깨를 붙잡았다.
“멈춰. 지금 들어가면 스타트 지점이 초기화돼. 우린 여기에 있어야 돼.”
“미쳤어? 저건 못 이겨.”
파괴마신707의 눈에 코드명 산초가 들어왔다.
“파츠잖아.”
산초의 오른팔은 사람의 것이라고 보기 힘들 정도로 거대한 기계였다.
유니크 아이템 크레이너.
철의 고향에서 극히 낮은 확률로 얻을 수 있는 10레벨 전용 파츠였다.
시로네가 숨을 헐떡이며 노려보는 가운데 산초가 텐맨10번을 돌아보았다.
“네가 말한 게 저놈이냐?”
복부를 움켜쥔 채 한쪽 무릎을 꿇고 있는 텐맨10번이 고개를 끄덕였다.
“빨리해. 나 곧 죽어. 운영자에게 넘기기 전에 일단 잡아 봐. 돈이 될 거야.”
“크크, 돈 좋지.”
산초가 오른팔을 들자 크레이너에 장착된 수십 개의 실린더가 동시에 움직였다.
“야훼2라. 코드명 좋네. 일단 꿇어라. 내 가랑이 사이로 기면 나가게 해 줄게.”
시로네가 물었다.
“왜 이런 식으로 플레이 하지? 싸우는 건 콘텐츠지만 수치심을 줄 필요는 없잖아.”
산초가 두 팔을 벌렸다.
“여기에서 나가면 뭐가 다른가? 솔직히 이 중에서 랭커한테 깨져 보지 않은 놈이 어디 있어?”
파괴마신707 일행이 고개를 끄덕였다.
“척살령 내려서 찍어 버리고, 몇 년간 모은 아이템 공중분해 시켜 버리고, 아부하는 놈들 키워 주고. 우리랑 다를 거 하나 없다니까?”
“그렇겠지. 하지만 너에게 그런 짓을 한 사용자는 여기에 있지 않아.”
“그러니까아.”
10레벨의 하이 기어가 가동되자 거대한 크레이너가 깃털처럼 가볍게 들렸다.
“재밌는 거라고.”
산초는 1톤이 넘는 차량을 움켜쥐었다.
“뭘 놀라? 파츠 처음 봐?”
고철이 우그러지더니 손아귀에 단단하게 고정되고, 폭발적인 에너지가 뿜어졌다.
“이야아아!”
철 덩어리가 대포처럼 던져지자 시로네가 눈을 크게 뜨며 몸을 던졌다.
“크윽!”
바닥을 구르며 소총을 쏘았으나 크레이너의 손등이 총알을 전부 튕겨 냈다.
“크하하하! 여기선 내가 왕이야!”
산초는 거대한 것들을 닥치는 대로 집어 던졌다.
쾅! 쾅! 쾅! 쾅!
시로네는 사력을 다해 피했으나 부상당한 다리의 감각이 사라지고 있었다.
‘난감하네. 저 기계 팔은 총으로 못 뚫어. 유일한 방법은 후방 타격인데…….’
문제는 동력의 차이였다.
“제길! 야훼2가 10레벨, 아니 8레벨만 됐어도 이겼을 거야. 크레이너는 대형 파츠니까.”
파츠 하나에 동력이 집중되면 다른 부위의 출력은 떨어지는 게 정상이다.
데스공쥬가 전장을 가리켰다.
“저, 저기……!”
시로네를 막다른 곳에 몰아넣은 산초가 우악스럽게 오른팔을 치켜들었다.
“끝이다!”
하이 기어가 최대출력을 내자 크레이너가 엄청난 속도로 움직였다.
‘피할 수 없어.’
느리게 흐르는 시간 속에서 시로네는 강철 주먹에 새겨진 스크래치를 보았다.
그 순간 스크래치가 흔들리며 주먹이 본래의 궤적을 이탈하기 시작했다.
‘진동.’
동시에 반대편으로 허리를 뒤틀자 크레이너가 뒤편의 고철을 쾅 하고 가격했다.
‘지금이다!’
처음으로 산초의 뒤를 잡은 시로네는 곧바로 소총을 들어 머리를 겨냥했다.
타타타타타타탕!
의심의 여지 없는 헤드샷이었다.
“커억!”
거구의 산초가 고꾸라지고, 시로네는 숨을 헐떡이며 생각에 잠겼다.
‘어째서 파츠가 흔들렸지?’
집중 상태에서 소리를 놓쳤기 때문이다.
“야훼2, 너 괜찮아?”
시로네는 퍼뜩 고개를 돌렸다.
“너희들…….”
파괴마신707, 최강코드명, 데스공쥬가 철의 고향으로 들어와 있었다.
그들의 소총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동국과 서국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