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081
잠시 망설이던 위저드는 할 수 없다는 듯 그녀의 손을 잡고 걸음을 옮겼다.
‘스승님도 사탄을 죽이지 못했어. 하지만 나는 할 수 있다. 하비츠만 죽이면 돼. 그러면…….’
어쩌면.
피아 식별 (2)
이카엘은 짐작하고 있었다.
‘서운하겠지.’
위저드에게 시로네는 유일한 스승이자 그녀가 기댈 수 있는 버팀목이었다.
‘세상을 경험한 지 이제 7년. 하지만 생물학적 개체로서의 능력은 초일류권이다.’
그럼에도 사랑을 한다.
비록 성체의 욕망은 없지만 그렇기에 순수하고 맹목적인 마음일 터였다.
‘부모가 줄 수 없는 것을 시로네는 줄 수 있다. 이런 상황은 당연히 벌어지게 마련.’
보통의 아이라면 그저 웃고 넘길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위저드는 조만간 세상에서 가장 악한 사탄의 피를 손에 묻혀야 한다.
‘감정의 변화가 없었으면 좋겠다. 하비츠를 죽이는 그 순간, 순수한 상태였으면 좋겠다.’
마치 기계처럼.
‘누군가를 위해 싸운달지, 어쩔 수 없이 살인을 해야 한달지, 그런 사고가 스며들면…….’
변수가 생긴다.
‘시로네가 이 사실을 모를 리 없다. 따라서 알면서도 감수했다는 것.’
시로네는 위저드를 오직 사탄을 죽이기 위한 병기로 만들 수도 있었다.
‘하지만 잔혹하지 못했지. 한 아이의 인생을 파멸로 몰아세울 수 없었어.’
야훼의 가장 큰 약점이었다.
‘내가 도와야 해.’
천사장으로 천국을 지배하면서 그녀는 관철에 따르는 대가를 이해하고 있었다.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때로는…… 잔인해야 할 때도 있는 법.’
아마도 거핀은 화를 내겠지만.
‘미안해요.’
인류의 고통을 혼자서 끌어안는 아들의 모습은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았다.
자이브로 향하는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위저드가 문득 고개를 들었다.
“만약 사탄이 죽으면 세상에 평화가 올까요?”
그녀의 시선이 에이미에게 향했다.
“음, 당연하지. 이 세계가 이토록 혼탁해진 것도 사탄 때문에 벌어진 일이니까.”
이카엘은 묵묵히 듣고 있었다.
“하지만 사탄이 오기 전에도 세상은 혼탁했잖아요. 많이 싸웠다고 들었어요.”
“시로네에게 들었구나.”
에이미는 위저드가 하고 싶은 말이 뭔지 알았다.
“네. 사탄은 인간의 마음이 만든 것이라고. 지금 당장 사탄을 죽인다고 해도, 통합적 정신 체계를 이루지 못하면 세상은 바뀌지 않을 거라고 했어요.”
야훼의 철학이었다.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우리는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거야. 위저드, 네가 그 시초가 될 거고.”
위저드는 에이미의 손을 놓았다.
“사탄을 죽이고 세상에 평화가 오면 언니는 시로네 오빠랑 결혼할 건가요?”
“그건 모르는 일이지. 시로네를 사랑하지만 결혼은 먼 미래의 일이니까.”
“그래도 돼요?”
“응?”
위저드가 미간을 구겼다.
“사랑하면 계속 같이 있고 싶은 거잖아요. 언니는 자신감이 넘치는 것 같아요.”
에이미는 시로네와 함께 수많은 전장을 넘었던 신뢰를 설명할 수 없었다.
“너도 크면 알게 될 거야.”
“글쎄요. 그러기에는 시간이 촉박하죠. 제가 사탄을 죽여야 미래도 있는 거니까요.”
위저드의 말에 뼈가 있음을 느낀 에이미가 돌아보자 놀라운 말이 나왔다.
“만약 사탄을 죽인다면, 그러니까 임무에 성공하면, 약속해 줄 수 있어요? 제가 어른이 되기 전까지 오빠와 결혼하지 않기로.”
“…….”
에이미도 어린 시절이 있었다.
개인주의적인 성향의 가족들에게 사랑을 갈구하기 위해 모난 짓을 하기도 했었다.
‘시로네가 유일한 거겠지. 더 나은 사람은 없다는 확신일 수도 있을 테고.’
대답이 없자 위저드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냥 언니의 생각이 궁금해서 그런 거예요.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마음이라는 건…….”
“위저드.”
걸음을 멈춘 에이미가 쪼그려 앉자 위저드가 슬그머니 시선을 피했다.
“네가 얼마나 큰 책임을 지고 있는지 알아. 시로네에 대한 마음도. 인류를 위해 싸우는 너에게 내가 해 줄 수 있는 건 뭐든지 할 거야.”
아이의 입술이 울먹거렸다.
“사탄이 세상에서 사라지면, 네가 어른이 될 때까지 시로네와 결혼하지 않을게.”
위저드의 마음속에 비가 내렸다.
‘그런 거 아닌데.’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방법 따위 없다는 거 알면서도 꿈을 꿨을 뿐이다.
위저드가 눈물을 글썽이자 에이미가 미소를 지었다.
“우리…….”
그 순간, 이카엘의 옆에 3각 마라 아슈르가 나타나 검을 뽑아 들었다.
“피하십시오!”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카엘이 몸을 날렸다.
콰아아아앙!
델타로부터 23킬로미터 떨어진 지점의 대지에 엄청난 충격이 가해졌다.
용암이 흐르는 크레이터를 중심으로 이카엘 일행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에이미가 위저드를 살폈다.
“괜찮아?”
어느새 전투 모드로 돌변한 아이의 시선이 거구의 대천사를 겨누고 있었다.
“누구죠?”
에이미가 같은 곳을 바라보았다.
“유리엘.”
파괴의 대천사 유리엘이 웅장한 바이브레이션을 일으키며 떠올랐다.
“이카엘이여, 언제까지 나를 피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것인가?”
이카엘은 직감했다.
‘각오를 끝냈구나.’
또한 이것이야말로 그녀가 어떤 것보다 마주치고 싶지 않은 상황이었다.
아슈르가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위치가 노출되는 모든 시그널을 차단했으나, 범위가 좁아진 탓에…….”
어떤 기만술을 펼치더라도 이카엘이 자이브로 오는 것은 확정이었다.
“아니에요. 저에게도 책임이 있습니다. 그의 접근에 반응할 수 없었어요.”
감각의 증폭마저 뚫고 들어왔다는 것이야말로 유리엘의 강함을 보여 주는 것이었다.
“위저드를 데리고 가 주세요. 여기는 제가 막겠습니다.”
“하오나…….”
아슈르는 주저했다.
‘정말로 이길 수 있을까? 유리엘은 한 번도 이카엘 님에게 진심으로 덤빈 적이 없다.’
내색은 하지 않았어도, 어떤 천사보다 이카엘을 존경했던 유리엘이다.
‘모든 개념의 근원인 이카엘 님은 그 존재만으로 하나의 무력이 된다.’
이미르의 강함만 있는 건 아니다.
‘어떤 자식도 본인이 더 강하다는 이유로 부모를 제압하지는 않는다. 그것 또한 일종의 무력. 유리엘에게 있어 이카엘은 그런 존재였지만…….’
이제 파괴의 대천사는 근원의 굴레를 깨고 비로소 위력을 드러낼 생각이었다.
이카엘이 말했다.
“……제가 준 상처입니다. 유리엘과 이야기를 해야겠어요. 뒤를 부탁합니다.”
고개를 숙인 아슈르는 시그널의 능력을 통해 위저드의 옆에 현신했다.
“가시죠. 자이브로 이동하겠습니다.”
은신의 시그널이 깨졌으니 사티엘 또한 조만간 이카엘의 위치를 알아낼 것이다.
에이미가 일어섰다.
“1명이 더 남아야 할 것 같아요.”
아슈르가 고개를 들자 도복을 입은 마라가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었다.
유리엘의 2각 마라 아루타.
존재 이유는 오직 무武에 대한 이해이며, 경지는 인간을 아득히 넘어선다.
아루타가 말했다.
“유리엘 님은 이카엘과 단독 대면을 원하신다. 방해하는 자는 처단하겠다.”
“위저드, 가.”
에이미가 말했으나 위저드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제가 할게요. 자신 있어요.”
“너는 못 이겨. 가.”
물론 위저드는 강하지만 모든 훈련은 하비츠를 상정한 상태에서 치러졌다.
‘경험을 뛰어넘는 재능이 있다고 해도 이번에는 상대를 잘못 골랐어. 이 녀석은 강하다.’
어떤 강함이냐고 묻는다면 대답할 수 없다.
다만 누군가가 수만 년에 걸쳐 오직 하나만을 단련한다면 이런 기운일 것이다.
‘위저드가 임무를 수행할 수 없게 될 1퍼센트의 가능성도 있어서는 안 돼.’
위저드는 고집을 부렸다.
“이길 수 있어요. 고작 이런 녀석에게 쩔쩔맬 정도라면 사탄도 죽일 수 없겠죠.”
“건방진 소리 하지 마.”
위저드가 유일무이한 이유는 그녀만이 배니싱을 파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너는 아직 멀었어. 가서 사탄을 잡아.”
“적어도 언니보다는 내가……!”
위저드가 소리치려는 순간 에이미가 홍안을 불태우며 그녀를 노려보았다.
“가라니까!”
위저드의 어깨가 움찔했다.
그녀의 마음속에 천둥이 치고, 말을 꺼낼 겨를도 없이 아슈르가 시그널을 발동했다.
“조심하십시오.”
마지막 말에 이어 위저드가 사라지자, 에이미가 숨을 내쉬며 말했다.
“쫓을 생각은 하지도 마.”
“착각하지 마라. 유리엘 님의 결정에 따른 것일 뿐, 비겁한 짓은 하지 않는다.”
“그래?”
에이미는 코웃음을 쳤다.
“일부러 시로네가 없는 틈을 타서 온 주제에 말은 거창하네. 야훼가 그렇게 무서웠어?”
아루타의 근육이 불끈거렸다.
“다시 말하지만…….”
유리엘은 이카엘과 할 얘기가 있다고 했으나 설명하는 것이 더 비참했다.
말을 거둔 아루타가 자세를 낮추더니 오른 정권을 옆구리에 가져다 댔다.
“찰나에 끝내 주마.”
그 순간 기질이 압도적으로 변했다.
‘저거구나.’
권으로 상대를 제압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이치가 한 점으로 집중되는 듯했다.
‘일격 필살.’
실패하는 순간 경지는 붕괴되겠지만, 결코 실패하지 않으리란 자신감이었다.
‘상성이 안 좋아.’
홍안의 능력이 극대화되는 것은 2회 차부터, 일격을 피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었다.
“표정이 좋지 않군. 두렵나?”
아루타의 말에 에이미가 입꼬리를 올렸다.
“그럴 리가.”
임전무퇴의 기운을 담은 그녀의 육체에서 공기를 불태우는 화염이 솟구쳤다.
“덤벼.”
공격을 피하고 반격하는 것으로 전투는 끝이었고, 아루타도 알고 있었다.
‘독특하군.’
불처럼 일렁이는 에이미의 기질은 대자연의 섭리를 그대로 따르고 있었다.
가장 단순한 하나의 전략을 각자 염두에 둔 상태로 대치 중인 가운데.
“유리엘.”
이카엘이 크레이터 위로 올라오는 유리엘에게 말했다.
“자격이 없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티엘은 인류를 파멸시킬 거예요. 그녀는 지금 정숙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상태가 아닙니다.”
“알고 있소.”
땅에 착지한 유리엘이 이카엘에게 바짝 다가갔다.
“당신이 원한 일이 아닌가? 사랑하는 한 인간을 위해 천사와 천국을 버렸지.”
“버리지 않았어요. 단지…….”
말이 끝나기도 전에 유리엘의 주먹이 이카엘의 얼굴을 정통으로 가격했다.
굉음이 터지고, 이카엘이 날아가는 길을 따라 땅이 브이 자로 갈라졌다.
방사형으로 열린 풍경을 바라보던 유리엘이 땅을 세게 내리찍었다.
쿵 하는 음파보다 먼저 도착한 그의 발밑에 이카엘이 주저앉아 있었다.
“죽일 수 있었지.”
조금 전에도.
“당신이 떠난 뒤로 수없이 많이 생각했소. 정말로 소멸시켜야 하는 것인지. 모든 천사들의 근원인 당신을…….”
“결정을 내린 것 같군요.”
이카엘은 아직 힘이 남아 있었지만 넘어진 채로 움직이지 않았다.
‘유리엘은 모든 것을 파괴할 수 있다.’
통제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이카엘이 모든 천사들의 개념의 원인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