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085
“만약 내가 죽으면…….”
순수하기에 배니싱을 인지하고, 극한까지 단련했기에 신의 주파수도 무용지물.
“사탄 해 보지 않을래?”
위저드는 처음으로 고개를 돌렸다.
“인간에게 부모는 원인이지만 신에게는 결과지. 내가 부모를 죽인다고 해서 부모라는 개념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거든. 결국 결과가 먼저라는 거야.”
신의 관점에서는.
“사탄도 마찬가지. 내가 죽어도 사탄이라는 개념은 사라지지 않아. 그러니 네가 했으면 좋겠어.”
누군가는 놀이터를 지켜야 하니까.
“거절합니다.”
위저드는 단호했다.
“당신을 제거하는 것이 웨나 위저드가 존재하는 이유예요. 그 이후의 삶은 저에게 없습니다.”
“그런가.”
마치 거울을 보는 기분이었다.
애스커를 깊게 빨아들인 하비츠가 잔에 가득 찬 위스키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크으으.”
시원한 소리를 내며 잔을 내려놓은 그는 의자에서 내려와 문을 가리켰다.
“슬슬 시작하지.”
위저드를 데리고 밖으로 나온 하비츠가 문 앞에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공간 이동 할 수 있나? 원하는 장소로 가자고. 가급적 사람이 없는 곳이 좋겠지.”
집중 상태인 그녀가 신경 쓸 리가 없지만 전투가 끝난 후에는 다를 터였다.
“그러죠.”
위저드가 공간 이동을 시전하자 섬광이 휘어지듯 하늘 저편으로 질주했다.
도착한 곳은 자이브 시내에서 20킬로미터 떨어진 숲속의 공터였다.
“괜찮군. 한적하고.”
새들이 날아가는 소리를 들으며 하비츠는 장검을 뽑아 들고 거리를 벌렸다.
발밑에 11개의 검은 그림자가 생겼다.
“시옥.”
곧바로 나태의 4시를 제외한 11명의 광신도들이 그의 주위에 둥그렇게 포진했다.
“미안하지만 시옥은 써야 돼. 이게 없으면 내 힘은 절반으로 떨어지거든.”
“상관없습니다.”
이미 상정한 시뮬레이션이었다.
‘나태의 4시는 사망.’
매초의 0.666초를 만들 수는 없겠지만, 각자의 무력은 상당하다고 들었다.
교만의 1시가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사탄이시여. 여전히 나태의 4시가 선발되지 않고 있습니다.”
“됐어.”
시옥은 자의로 사탄을 따르는 광신도이기에 인위적으로 만들 수가 없다.
“있다고 달라질 것도 없는데, 뭐. 준비됐으면 시작하지. 내가 먼저 할까?”
11명의 시옥이 위저드에게 몸을 틀었다.
“건방진 계집. 사지를 찢어 주마.”
엄청난 살기에도 위저드는 자연체의 자세로 눈을 감고 있을 뿐이었다.
시옥의 감정이 술렁거렸다.
‘이건 뭐야?’
당위성이 너무나 강해서, 오히려 관심을 두고 싶지 않을 정도로 선명한 존재감.
‘누구도 태양을 의심하지 않듯이…….’
사탄이 인지 바깥에 있다면, 그녀의 존재는 만인이 인지하는 핵심에 있는 것.
‘2천 킬로미터 떨어진 누군가도 이 아이를 알고 있을 것 같은 기분이다.’
위저드가 눈을 뜨자 투명한 화신이 아지랑이처럼 일렁거리기 시작했다.
“무상신無想神.”
태아의 얼굴을 가진 기괴한 형태의 나무가 빠르게 솟구치고 있었다.
“흐오오오오.”
부은 채로 감긴 두 눈, 입에서는 몸통만큼 긴 혀가 내려와 흔들거렸다.
무상신이 거칠게 꿈틀대며 자라나는 와중에도 시옥은 움직이지 못했다.
‘어떤 능력이지?’
“흐오오오오.”
굽이굽이 자라나는 둥치에서 수십 개의 가지가 곤충의 팔처럼 뻗어 나가는 그때.
“흐오…….”
소리가 뚝 하고 끊어지더니 무상신의 모습이 대기에 스며들듯 소멸했다.
아득한 정적에 시옥이 전율하는 순간.
“피해!”
위저드가 수인을 맺었다.
“부정관.”
반응할 겨를도 없이 시옥의 사선 위에서 주먹 형태의 충격파가 내리꽂혔다.
굉음에 파묻힌 하비츠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뭐야, 이건?’
무상신이 세계에 스며들면 위저드는 우주를 구성하는 다섯 가지 시스템을 동시에 장악한다.
현실, 이면, 드리모, 언더 코더, 디 어비스를 통합적으로 받아들이는 100퍼센트 인지능력.
‘어디서 날아온 거야?’
그 절대적 창의성이 시스템을 초월, 제로 거리에서 대상을 직격하는 것이다.
‘아니, 어디에서도 날아오지 않았다.’
무無에서 창조한 충격파였다.
트리거 (2)
교만의 1시가 인상을 찡그렸다.
“크윽!”
충격파가 하비츠를 찢기 전에 과거의 선택을 바꾸어 복원시킨 그녀였다.
‘위험한데.’
무無에서 튀어나오는 것에 원인은 없기에 판단할 수 있는 시간도 찰나였다.
‘이럴 때 나태의 4시가 있었더라면…….’
어쩌겠는가.
같은 동료에게 등을 떠밀려 죽어 버린 것을.
흐오오오.
선제타를 성공시킨 위저드의 육체에서 다시 무상신의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가지들의 형태가 더욱 기괴하게 뒤틀리고 긴 혀가 뱀장어처럼 꿈틀거렸다.
“지금이다! 공격……!”
시옥이 소리치는 순간 무상신의 형태가 다시 공기 중으로 스며들었다.
“부정관. 구심세계.”
위저드의 수인이 한층 복잡해지더니 시옥의 주위에 2차, 3차 충격파가 터졌다.
“크으으으!”
교만의 1시가 히든 코드로 버티고 있지만 연타의 속도가 더욱 빨라졌다.
“공격해! 더는 못 버텨!”
편견의 5시가 소리쳤다.
“너는 벌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벌레야!”
끝났다고 생각했다.
설령 그녀가 부정한다고 해도 아집의 3시가 그녀의 주장을 반박할 테니까.
복수의 10시가 저주를 걸었고, 망상의 9시가 위저드를 환상으로 몰아넣었다.
그에 맞서는 위저드의 행동은.
“무상신.”
그저 흉물스러운 나무의 화신을 다시 세계에 스며들게 하는 것이었다.
“백자회전.”
그녀의 배후에 탄생한 수십 개의 소용돌이에서 나뭇가지의 손이 튀어나왔다.
그 손들이 허공을 붙잡고 꽈배기처럼 회전하자 시옥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크윽!”
히든 코드가 전부 파괴되었다.
‘율법을 되돌린다.’
위저드가 통합적으로 감각하는 시스템에는 이면 세계도 포함되어 있다.
히든 코드는 인간의 논리가 아니지만, 그녀의 논리도 인간의 것은 아니다.
‘그럼 뭐지?’
시옥의 물음에 하비츠가 답했다.
“아무도 모르지.”
오직 위저드만이 느끼는 세계, 그 세계를 기반으로 창출되는 창의성.
“……잘 만들었군.”
위저드를 전투 병기로 키운 게 누군지는 모르지만 효율성에 전율이 일었다.
‘아직 어려. 경험도 적다. 물리적인 충격도 그렇게 강한 것은 아니야. 하지만…….’
잠재력.
‘한계를 가늠할 수 없는 저 가능성.’
아마도 먼 미래에 꽃을 피우게 될 무언가를 이 순간으로 끌어내린 것.
“그렇게 날 죽이고 싶나?”
알면서도 막을 수 없는 존재라는 점에서 하비츠는 위저드에게 동질감을 느꼈다.
“크크크.”
생의 마지막으로는 더할 나위 없지 않은가.
“놀아 보자고!”
하비츠의 얼굴근육이 뒤로 밀려나더니 사탄 본연의 얼굴이 드러났다.
시옥보다 빨랐고, 검보다 날카로운 손톱이 위저드의 뺨을 스쳐 지나갔다.
“초공무회전.”
위저드가 단전에 두 손을 모으자 거대한 공기덩어리가 수직으로 내리꽂혔다.
쿠우우우우웅!
땅이 흔들릴 정도의 위력이었으나 사탄은 허리가 약간 굽혀졌을 뿐이었다.
“크크, 그래. 너의 창의력, 분명 피할 수 없고, 막을 수도 없을 테지만…….”
탁한 호박색의 눈동자가 전방을 응시하자 엄청난 악의 기운이 밀려들었다.
“이리 약해서야 얘기가 안 되지.”
위저드의 얼굴근육이 처음으로 꿈틀하자, 방랑의 6시가 땅을 박찼다.
‘지금이다!’
200년 동안 노력했다고 가정한 격투가의 발 차기에 위저드가 마법을 시전했다.
‘에어 실드.’
공기의 장막이 펑 하고 터지면서 남자의 정강이가 아이의 옆구리를 강타했다.
갈비뼈가 전부 부러졌다.
“……!”
신음조차 내지 않고 옆으로 날아간 위저드가 한쪽 발로 브레이크를 걸었다.
내장이 쏟아지는 고통에 절로 다리가 풀리고, 한쪽 무릎이 땅에 닿았다.
‘치료해야 하나?’
죽을 정도가 아니면 공격이 우선이겠지만.
‘죽을 것 같은데.’
몸의 반응으로 보건대 대략 3초 뒤면 심장이 정지할 정도의 충격이었다.
‘모르겠어. 도박을 걸어야 하나?’
시로네와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쳤지만 경험의 한계는 여전히 존재했다.
‘어쩔 수 없지.’
무상신이 세계에 흡수되고 그녀의 상처가 빠른 속도로 복구되기 시작했다.
반격의 여지가 사라진 유일한 기회를 하비츠가 놓칠 리가 없었다.
“아직 어려.”
여전히 죽음은 사탄의 뇌리에 남아 있지만, 혼돈 앞에 가정이란 무의미한 것.
피부가 벗겨진 것처럼 붉은 육체로 변한 하비츠가 두 팔을 동시에 휘둘렀다.
위저드의 얼굴이 박살 나기 직전.
‘응?’
하비츠는, 아니 사탄은 여태까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느낌에 휩싸였다.
‘뭐야?’
위저드는 어느새 멀리 떨어져 있었고 바닥에 두 줄기의 선이 선명했다.
‘밀려났다.’
대체 무엇에 당한 것일까?
고개를 숙인 하비츠는 명치만이 인간의 살색으로 돌아온 것을 확인했다.
하늘로 날아오른 위저드가 한쪽 다리를 구부리며 두 팔을 벌렸다.
“무계창조.”
몸의 중심선을 따라서 미간, 목, 가슴, 배꼽, 음부, 회음의 차크라가 반짝였다.
이어서 수만 개의 차크라가 개방되고 위저드의 몸에서 빛이 뿜어졌다.
“…….”
하비츠는 정의하지 않는다.
따라서 방심도, 사고의 함정에도 빠지지 않지만, 유일하게 간과한 한 가지는.
‘천재성.’
우주에 없는 것조차 상상해 내고야 마는 한 인간의 초월적인 발상이었다.
위저드의 팔을 따라 빛의 새싹이 돋아나자 11명의 시옥이 전부 돌진했다.
“죽여라!”
새싹은 금세 가지가 되고, 프랙탈 구조로 뻗어 나가며 창공을 가득 채웠다.
‘계속 상상하고 있어.’
파괴, 변화, 창조.
그 파변창의 메커니즘이 무한의 사이클로 질주하면서 무상신의 화신이 피어올랐다.
그 형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