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148
시로네라는 변수가 생겼지만 여기까지는 발칸이 예상한 그대로였다.
“좋아요, 승인하죠.”
“그럼 정해졌군. 자정까지 서로가 사실을 입증해야 할 거야. 패배하면…….”
하비츠가 씩 웃었다.
“내가 무슨 짓을 할지 기대해도 좋을 거야.”
“하비츠.”
위저드가 성큼성큼 다가오며 말했다.
“사랑해요.”
하비츠가 의아한 표정을 짓는 것과 동시에 그녀가 잔뜩 허리를 뒤틀었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이를 악물고 온 힘을 다해 그의 옆구리를 강타하자 하비츠의 눈이 커졌다.
“커억…….”
마법의 힘이 더해진 터라 사탄의 육체로도 끔찍한 충격이 전해졌다.
‘입맞춤도, 손가락도…….’
단지 사탄을 이곳으로 몰아넣기 위한 미끼.
“하비츠.”
무릎을 꿇은 하비츠가 천천히 고개를 쳐들자 위저드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그녀의 눈에 살기가 번뜩이더니 작은 주먹이 하비츠의 턱을 강타했다.
“크악!”
고개가 돌아간 채 바닥을 미끄러진 그가 어깨 너머로 위저드를 살폈다.
위저드가 다가왔다.
‘그래, 절대로 나를 읽을 수 없겠지.’
입맞춤과 손가락을 제외하면, 게임 중에 어떤 행동을 해도 자유겠지만…….
‘당신은 이미 시스템에 먹힌 거야.’
발칸은 이렇게 말했다.
“율법 바깥의 존재, 시옥도 짜증 나지만, 사탄의 가장 큰 무기는 배니싱이야. 그것만 묶어 버리면 절대 무적은 될 수 없지. 물론 위저드, 너라는 존재하에 유효한 것이지만.”
“만약 통하지 않으면요?”
“통할 거야.”
발칸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사탄. 그 순수한 혼돈. 인류는 현실에 등장한 개념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몰랐지. 하지만 지금은 달라. 하비츠를 알기 위해 수많은 희생이 있었어.”
비록 실패했지만.
“하비츠가 사랑했던 아벨라. 하비츠를 증오했던 제이스틴. 세계대전 중에 벌어졌던 암살 시도. 그 모든 정보들이 하비츠를 정의하고 있다.”
무의미한 희생이 아니었다.
“인간은 그 어떤 생물보다 실패를 많이 하는 종족이지. 하지만 그 실패가 쌓이고 쌓여, 마침내 문제를 해결하게 되는 거야. 그게 바로 지금이야. 그러니…….”
발칸이 말했다.
“이렇게 해 보는 건 어때?”
하비츠는 피를 토했다.
“쿨럭!”
위저드가 다가오는 와중에도 그의 배니싱은 효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어디까지나 게임이다.
“왜?”
벽을 짚고 일어선 하비츠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위저드를 돌아보았다.
“글쎄요. 그건…….”
위저드가 다정한 눈웃음을 지었다.
“당신이 직접 알아내야죠. 그런 게임이니까요.”
“…….”
코로 거친 호흡을 이어 가던 하비츠가 반대편 복도로 절뚝거리며 멀어졌다.
“왜 도망쳐요? 나 좋아하잖아요.”
“시옥.”
바닥에 12개의 그림자가 생기더니 순식간에 하비츠가 종적을 감추었다.
‘너무 강했나?’
아니, 그는 반드시 자신을 다시 찾아올 것이다.
“어디 갔어요?”
어떤 살의도 장난이 되는 상황에서 위저드는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었다.
“저랑 놀아요, 하비츠.”
사건의 의미 (1)
세계 각지에 흩어진 피라미드를 중심으로 발생한 기현상들이 성전에 보고되었다.
남방의 부족연합장 은타라가 말했다.
“신의 개입이라.”
“피라미드의 이상 현상으로 사람들의 감정이 극에 달하고 있습니다. 강력한 마가 이면 세계로 흘러들 테고, 모든 시스템에 영향을 미칠 겁니다.”
은타라의 표정은 침통했다.
“세계가 가마솥처럼 들끓겠군. 모든 사건들은 하나로 통합될 게야. 인간보다 먼저 말이야.”
율법의 통합은, 신의 승리를 뜻한다.
“엘리키아를 회수하는 건 어떨까요? 그 힘으로 자이브를 공격하면 아마도…….”
“후후.”
은타라는 차를 홀짝였다.
“그래서 우리가 안되는 거야. 문제가 뭔지도 모르면서, 해결하려고 들지.”
엘리키아의 힘으로 무엇을 할 것이냐고 물었을 때 시로네는 이렇게 말했다.
“아무것도.”
장고 끝에 시로네가 고개를 들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겁니다.”
일견 맥이 빠지는 대답이었지만, 그 말을 음미하던 은타라는 깨달았다.
자신이 찾던 정답이라는 것을.
은타라가 말했다.
“한 인간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은 대체 얼마나 오만한 생각인가. 야훼는 신념이 아니야. 그저 거대한 바람이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거야.”
“그래서 넘기신 겁니까?”
“이렇게 하겠다느니, 저렇게 하겠다느니, 결국 완벽한 것은 없지. 그 안에서 누군가는 희생당할 테고, 누군가는 분노할 게야.”
통합은 불가능하다.
“엘리키아는 하나지만, 야훼는 행성 곳곳에 존재하지. 우선순위를 매기게 되면, 힘은 변질될 거야. 엘리키아는 주인을 찾아갔다고 보네.”
“그의 바람이 이루어질까요?”
은타라는 차를 홀짝이며 생각에 잠겼다.
‘수많은 사건이 중첩되고 있다. 모두가 자신의 욕망을 이루고자 하고 있어. 신은…… 인간의 마음조차 율법으로 바꿀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인가?’
그가 고개를 들었다.
“알 수 없지. 분명한 것은, 앞으로 일어나는 모든 사건들이 하나의 목적을 위해 작동할 거라는 거야. 마침내 끝에 도달했을 때 남은 결과가…….”
인간의 것인지, 신의 것인지.
“끝이 보이는군.”
인간의 통합보다 율법의 통합이 더 빠르다는 것을, 은타라는 애써 외면했다.
***
코로나 왕국.
시로네는 눈을 번쩍 떴다.
“허억!”
황급히 상체를 세우고 주위를 둘러보니 모닥불이 타고 있는 군용 막사였다.
‘어떻게 된 거지?’
바알과 함께 상아탑에서 튕겨 나간 시로네는 후이그 점령지에 떨어졌다.
‘아…….’
마족에게 당하기 직전 미네르바가 나타나 그를 구한 기억이 떠올랐다.
“일어났어?”
막사의 천막을 걷고 미네르바가 들어왔다.
“어떻게 된 거죠?”
“아지트에 도착할 무렵에 의식을 잃었어. 너, 정말로 위험한 상태였다고.”
시로네의 정신력으로도 의식을 잡지 못할 만큼 치명적인 충격이었다.
“시간이 없어요. 태성을 구해야 해요.”
미네르바는 대답이 없었다.
“왜 그러죠? 무슨 일이 있나요?”
“직접 봐.”
그녀의 뒤를 따라 막사를 나서는 순간 시로네의 눈에 충격이 깃들었다.
불과 100미터 앞에서 마족들과 코로나의 병사들이 접전을 벌이고 있었다.
“완전히 밀렸어. 전쟁에서 졌다고.”
병사들 가운데에는 상아탑의 별들도 보였기에 시로네는 믿을 수가 없었다.
“어째서……?”
“갑자기 벌어진 일이야. 불과 20분도 안 됐어. 마족들이 엄청나게 강해진 느낌이야.”
시로네는 퍼뜩 깨달았다.
마치 마취된 부분이 풀린 것처럼 의식을 집중하자 동시 사건이 연결되었다.
‘피라미드.’
마음에 따라 사건이 중첩된다.
“미카.”
-네.
‘피라미드의 영향을 받은 인간이 어느 정도지?’
-8,300만 2,873명입니다. 조금 전에 28명이 사망 루트에 도달했습니다.
엘리키아보다 훨씬 강대했다.
‘신의 의도 아래 벌어진 일들. 그 의도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이제는 마족의 세상이었다.
“시로네, 지금 빠져나가야 해. 여기서 상아탑의 별들이 전멸하면 미래는 없어.”
“저들이 노리는 건 태성이에요. 지성이 없으면 선과 악의 정의도 사라지니까요.”
상아탑은 이보다 심할 터였다.
“어쨌든 일단 도망치자. 코로나의 병사들이 시간을 벌어 줄 거야. 너라도 떠나서…….”
시로네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이제 도망칠 곳은 없어요.. 이면 세계의 마가 현실로 넘어오게 될 겁니다.”
진성음도 막을 수 없다.
“우선 이곳의 마족을 해치우고 상아탑으로 가죠. 태성을 구하는 게 급선무예요.”
“말이 쉽지. 저 녀석들 체감상으로 2계급 정도 특진한 것 같아. 일반 병사가 중대장이 된 셈이라고. 심지어 대대장은 사단장급으로 강해졌어.”
“제가 할게요. 그리 많은 숫자는 아니니, 일단은 막을 수 있을 거예요.”
“넌 부상당했잖아.”
전장으로 몸을 날리는 시로네가 눈웃음을 지으며 미네르바를 돌아보았다.
“많이 예뻐졌네요.”
칭찬에 수줍어할 미네르바가 아니지만 이번만은 얼굴이 화끈거렸다.
세계의 율법이 변하면서 그녀 또한 마녀의 운명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어린놈이…….”
딱히 외모가 달라진 건 아니지만 그녀의 인상은 전보다 훨씬 선해 보였다.
‘그렇다고 달라질 건 없어.’
땅을 박차며 시로네의 뒤를 쫓는 미네르바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지어졌다.
‘나는 살인자니까.’
율법이 바뀐다고 해도 그녀는 자신의 삶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한편 전장으로 향한 시로네는 마족들의 강력한 힘을 비로소 체감했다.
‘엄청나게 밀리고 있다.’
코로나의 병사들이 죽어 나가고, 상아탑의 별들도 고군분투하는 게 느껴졌다.
통합우주관리부의 트웰브 미니가 스케일 마법을 시전해 육체를 키웠다.
“이 자식들이!”
10미터, 50미터, 100미터까지 솟구친 그녀가 주먹으로 땅을 내리쳤다.
쿠우우우우웅!
땅이 흔들릴 정도의 위력이었으나 곧바로 팔을 타고 마족들이 기어올랐다.
“떨어져! 징그러운 것들!”
개미를 털어 내듯 팔을 쓸어내리지만 마족들은 순식간에 살점을 파먹었다.
“아아아아!”
그 순간 미라클 스트림의 빛이 마족들을 전부 쓸어 담아 땅에 패대기쳤다.
지상을 내려다본 미니의 얼굴이 환해졌다.
“오대성님!”
그녀의 가슴골 사이에서 미니의 위성 아리아나가 불쑥 모습을 드러냈다.
“여기예요, 여기! 빨리 들어와요!”
시로네가 민망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다음에.”
“어머!”
농담은 거기까지였고, 다시 눈을 부릅뜬 시로네가 전장으로 뛰어들었다.
“물러서.”
미니가 한 걸음에 수십 미터를 물러서자 핸드 오브 갓이 허공에 떠올랐다.
빛의 손바닥 위에 포톤 캐논이 탄생하고.
“야훼! 야훼를 죽여라!”
“크하하하! 나는 강해졌다고! 지금이야말로 가증스러운 너를 죽일 수…….”
직사의 섬광이 내리꽂혔다.
굉음과 함께 탄생한 충격파에 의해 마족들이 동심원의 반경으로 날아갔다.
“후우우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