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193
이미르가 입꼬리를 올렸다.
“이렇게 기분이 좋은 것을 왜 싫어하는 거야?”
‘개자식.’
미로의 눈에 힘이 들어갔다.
‘너도 알아야 해.’
가올드가 느낀 고통의 1만분의 1이라도.
그녀가 두 팔을 움직이는 것에 따라 천수관음의 화신이 똑같은 행동을 취했다.
‘또 온다.’
이미르는 직감했다.
‘회피가 불가능한 능력이군.’
우주 끝에서 세상을 관조하는 천수관음에게 사각이란 존재할 수 없는 법.
이미르는 콧방귀를 뀌었다.
“흥.”
그리고 천수관음의 십오뢰장법이 밀려드는 곳을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얼마나 중첩되어 있을지 모르는 장법의 중심에 충격이 가해지는 순간.
“…….”
미로는 나른했다.
‘어?’
풍경이 뒤틀리더니 마치 복사한 듯 똑같은 얼굴을 가진 아이들이 폭소를 터트리고, 강아지 수만 마리가 똑같이 허리를 흔들고 있었다.
‘정신착란.’
이미르의 공격이 가진 특징으로, 그가 파괴하는 것은 물질적인 것만이 아니었다.
‘안 돼!’
극선의 경지가 정신을 되돌리자 이미르의 거체가 시야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죽어라.”
시간이 다시 느려졌으나, 이번에는 미로도 타이밍을 맞출 수 있을지 장담하지 못했다.
‘크으으으!’
모든 것이 슬로모션으로 이루어지는 그때.
쾅!
유일하게 엄청난 속도로 무언가가 날아와 이미르의 관자놀이를 때렸다.
거인의 고개가 부러질 듯 옆으로 꺾이고, 그가 그 상태로 돌진을 멈췄다.
정신착란에서 겨우 벗어난 미로 일행은 놀란 표정으로 눈을 깜박거렸다.
이미르의 관자놀이에서 피가 주룩 흘러내렸다.
“……아야.”
불쾌, 명백한 고통이었다.
그가 고개를 돌린 곳에 가올드가 에어 건을 날린 자세로 서 있었다.
“너였냐?”
심층 1단계를 연 장본인이.
잠시 미로의 상태를 살핀 가올드가 다시 고개를 돌리더니 걸음을 옮겼다.
“왜, 얼얼하냐?”
가올드의 말에 이미르의 표정이 다시 돌아왔다.
“크크, 피부 좀 찢어진 거 가지고 뭐. 하긴, 인간치고는 제법이라고 해 주지.”
세인이 침음성을 흘렸다.
‘이미르의 말이 맞다. 상황은 여전히 절망적이야.’
감각을 전달하는 게 전부였던 상황에서 약간의 고통을 주었을 뿐이다.
‘전투는 대상을 완전히 파괴하는 것. 피 좀 흘렸다고 기뻐하는 것은…….’
애들 싸움에서나 있는 일.
“그래?”
가올드가 돌진하자 이미르 또한 즐거운 표정으로 받을 자세를 취했다.
“기다려! 협공을……!”
미로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들이 치받으면서 다시 정신착란이 일어났다.
‘진짜 짜증 나네, 이거.’
한편 이미르는 마법의 위력이 조금도 떨어지지 않은 가올드에게 흥미를 느꼈다.
“정신력인가?”
“아니.”
엄청난 고통 속에서 가올드의 눈에 광기가 일렁였다.
“원래부터 맛이 가 있거든.”
에어 건이 산탄처럼 터지자 이미르의 표정이 조금씩 구겨지기 시작했다.
‘이 자식…….’
두 번은 되풀이할 수 없는 고통만이 한계를 넘는다면 가올드가 넘은 벽의 개수는.
“에어 프레스.”
인류 전체의 고통과 맞먹는 것이라서.
“크으으으!”
그는 여전히 선악공애의 중심에서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인간이었다.
“크아아아!”
버티다 못한 이미르가 괴성을 지르는 순간 우두둑 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이어서 대지가 원통형으로 함몰되더니 엄청난 폭발이 지하를 통해 질주했다.
정신세계였기에 망정이지 현실이었다면 자연재해에 준하는 재앙일 터였다.
“아우!”
강풍에 날아간 미로 일행이 저마다 흙먼지를 털어 내며 다시 돌아왔을 때, 그들은 비현실적인 광경을 믿지 못하고 입을 벌렸다.
“저, 저건…….”
이미르의 오른팔이 부러져 있었다.
“어때?”
가올드가 물었다.
“이제 좀 아프냐?”
이미르는 기괴하게 꺾인 오른팔을 돌아보았다.
‘아프다.’
불쾌라는 말로 표현할 수준이 아니었다.
‘오젠트가 나에게 준 감각과 비슷하군.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일 수도.’
깨닫는 순간 이미르의 기질이 변하더니 가올드를 향해 입꼬리를 올렸다.
“그래.”
눈동자가 검게 물들고, 쌀알보다 작은 붉은 동공만이 박혀 있는 그 얼굴은.
“이게 살아 있다는 거지.”
너무나 섬뜩하고 이질적이라서, 같은 우주에 살고 있는 존재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흐으으으.”
강난은 신음 소리를 참지 못했다.
‘무서워.’
저것보다 무서운 것은 세상에 없다고 단언할 수 있었으나 가올드는 태연했다.
“잘됐군, 살아 있다고 느껴서.”
인간의 가장 깊은 경지에 도달한 철학자에게 두려운 것은 없기 때문이다.
“살아 있어야, 죽일 수 있는 거거든.”
“흐흐.”
짧게 웃은 이미르의 육체가 사라지고, 가올드가 급격히 허리를 뒤틀었다.
찰나의 순간 세인은 떠올렸다.
‘온다.’
전대미문의 충돌을.
소리도, 시야도, 충격도 느낄 수 없는, 그저 불길의 극한에 가까운 현상이 벌어졌다.
“…….”
오감을 초월한 충격은 꿈의 시간을 현실에 가까운 수준까지 끌어올렸다.
그 엄청난 정보량 속에서 전승몽을 받고 있는 시로네의 육체가 들썩거렸다.
또 하나의 거대한 데이터.
최초의 요라, 요라한의 인생에서 가장 강렬했던 사건이 전송되고 있었다.
***
“하하! 그것도 맞는 말이지.”
아르망과 혼인한 요라한은 매일 공터에 나가 화족들에게 박애를 설파했다.
“누군가 나를 때리면, 나도 그 사람을 때려야 하는가? 어려운 문제지. 하지만 난 이렇게 생각해. 만약 내가 반격을 하면 폭력은 정당성을 갖게 될 거야. 반면에 내가 그 사람을 용서하면 그 사람도 누군가를 용서하게 될 테고,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화족들이 소리쳤다.
“사랑으로 가득 찬 세계가 돼요!”
“맞아. 물론 쉬운 것은 아니야. 하지만 우리가 여기에 도달하지 못한다면, 아주 먼 미래에는 이 땅에 생명이 존재하지 않게 될 거야.”
요라한의 수명은 짧지만, 그가 만든 사상은 영겁의 세월을 지날 것이기에.
‘지금 정해야 돼, 우리의 종착지를.’
“선생님, 궁금한 게 있어요.”
“그래. 뭐든 물어보렴.”
“오늘 내용이 사랑에 관한 거였잖아요. 그럼 선생님은 아르망 언니랑 어떻게 사랑해요?”
“오늘 수업 끝.”
요라한이 책을 덮고 일어서자 화족들이 우는 표정으로 몸을 들썩거렸다.
“아아! 말해 주세요, 선생님!”
아이들의 목소리를 뒤로하고 도망치듯 집으로 돌아온 그가 고개를 저었다.
“하여튼 못 말린다니까.”
스르릉. 스르릉.
오두막의 바닥에 앉은 아르망이 자신의 검을 넓적한 숫돌에 갈고 있었다.
“왜 그래? 애들이 또 사고 쳤어?”
“하하! 아무것도 아니야. 그나저나 갑자기 칼은 왜? 사냥 준비하는 거야?”
“응. 잡아 놓은 새들이 다 떨어졌어. 아무래도 사냥터를 옮겨야 할까 봐.”
불과 2년 새에 인간의 영토는 더욱 확장되어 화족의 영역까지 미치고 있었다.
“같이 가자.”
“오늘은 안 돼. 시간이 너무 늦었거든. 혼자서 가면 1시간이면 충분할 거야.”
산행에 익숙해졌다고 해도 화족 최고의 전사를 따라잡는 건 무리였다.
요라한이 투덜거렸다.
“걱정되니까 그러지. 벌써 푸른 강 지역도 개간됐잖아. 듣기로는 미카스 왕국이라던데.”
“어떤 곳인데?”
“소문만 들었지 가 보지는 못했어. 당시에는 지방 영지였는데 급격히 성장한 모양이야.”
성장세가 가파르다는 것은 지도자의 성향 또한 호전적이라는 의미였다.
“아무래도 터전을 옮겨야 할 거 같아. 내가 내일이라도 마땅한 곳이 있나 찾아볼게.”
검을 갈던 아르망의 동작이 우뚝 멈췄다.
“사실, 잘 모르겠어.”
“물론 당신이 얼마나 강한지는 알아. 그냥 만에 하나라는 것도 있으니까…….”
“아니, 네가 주장하는 박애라는 거 말이야. 그게 정말로 가능하다고 생각해?”
아르망이 고개를 돌렸다.
“지금 나를 봐.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새를 죽이려고 하잖아. 이것 또한 폭력 아닐까?”
요라한은 의자에 털썩 앉았다.
“아마도…… 그렇겠지.”
현실에서는 고민할 거리가 아니지만 불멸의 사상에는 모순이 없어야 한다.
‘절대 박애. 모두가 배려하는 세계는 결국 섭식과 번식의 문제에 막히고 만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언젠가 박애의 논리는 붕괴되고 말 터였다.
“인간 세상으로 나가는 건 어때?”
요라한은 귀를 의심했다.
“응? 뭐라고?”
“여기서는 누구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잖아. 직접 부딪치면 더 좋은 방법이 나오지 않을까?”
물론 당연한 일이다.
그렇기에 요라한도 처음에는 화족에 오래 머무를 생각이 없었던 것이지만.
‘이제는 아니야. 모두가 가족이라고.’
무엇보다 아르망이 걱정이었다.
“싫어. 떠나지 않을 거야. 여기서도 충분해. 조금만 더 연구하면 분명 해법이…….”
“요라한.”
아르망이 다가왔다.
“난 인간을 믿지 않았어. 선대의 의지도 계승하지 않았지. 하지만 너를 만나고 깨달았어. 모든 인간이 너처럼 될 수 있다면, 나도 용기를 낼 거야.”
“아르망…….”
“함께 가자. 우리는 하나잖아. 네가 원하는 것이라면, 당연히 나도 해야 돼.”
그녀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게다가 나는 다른 화족과 다른걸. 수동성도 없고, 음식도 먹을 수 있지. 인간처럼 지낼 수 있다고.”
“여, 여보.”
요라한은 눈물을 글썽거렸다.
“고마워. 진짜 너무 고마워. 사랑해, 여보.”
“……질질 짜기는.”
이 시점에서.
전승몽을 받아들이고 있는 와중에도 시로네의 무의식은 의문을 품었다.
‘섭식과 번식.’
그로부터 수많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생물이 가진 모순은 해결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최초의 요라.’
과연 요라한은 섭식과 번식이라는 생명체의 가장 큰 숙제를 앞에 두고.
‘한 치의 악도 없는 사랑, 절대 박애를…….’
무엇이라 정의한 것일까?
다음 권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