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222
‘얼마 남지 않았어.’
신적초월의 이데아라고 해도 생물의 수복 능력에는 한계가 있는 법이었다.
“괜찮아.”
겨우 회복된 오른팔에 힘을 불어 넣은 리안은 대직도를 붙잡고 다시 걸었다.
‘설령 내가 부서진다고 해도…….’
는 파괴되지 않는다.
***
진리의 피라미드를 벗어난 시로네는 천공에 뚫린 거대한 구멍 앞에 섰다.
전시안이 그를 주시하고 있었다.
“무슨 생각을 하지?”
시로네가 물었으나, 눈동자는 전처럼 어떠한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나를 정의하고 있다고 생각해?”
두려운 것은 아니다.
다만 미지의 세계로 떠나기에 앞서 이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을 다 하고 싶었다.
“거핀은 거기에 있어?”
“…….”
마이카 유적에서 보였던 반응은 어떤 사고였을까, 전시안은 움직이지 않았다.
“대답을…….”
시로네의 손에 포톤 캐논이 떠올랐다.
“하란 말이야!”
한 줄기 섬광이 창공의 구멍으로 향하자 저편에서 똑같은 섬광이 날아왔다.
마치 거울에 공을 던진 듯했다.
“좋아.”
아무래도 신은 각자의 세계에서 신사답게 타협하기는 싫은 모양이었다.
“그걸 원한다면, 내가 들어갈게.”
심호흡을 끝낸 시로네는 미라클 스트림을 몸에 감고 구멍으로 날아갔다.
섬광끼리 부딪쳤던 경계선을 머리가 지나자 전시안이 사라지고 검은 공간이 나타났다.
‘야니아 이둠어.’
빛이 없는 것이 전부라면, 자신의 손이 보일 리가 없기 때문이었다.
무無, 혹은 그런 개념.
‘사고의 역전.’
이미 하이 기어에서 경험했기에, 시로네는 재빨리 자신의 사고를 되찾았다.
“뭔가 다를까?”
하이 기어는 현실의 하위 단계지만 바깥 세계 자체는 특별할 게 없었다.
‘그저…….’
공간이 바뀌고.
“바로 수열식이라는 독특한 집중법입니다.”
에텔라가 말했다.
“여러분들 중에 생각으로든 입으로든 1부터 100까지 세어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손을 들어 보세요.”
알페아스 마법학교의 학생들이 손을 든 가운데 시로네는 무심한 눈빛이었다.
‘모든 것이 거대한 착각일 뿐.’
단지 떠올리는 것만으로, 모교의 클래스 파이브의 통합 수업 시간으로 돌아간다.
에텔라가 말을 이었다.
“좋아요. 그렇다면 1부터 1,000까지 세어 본 사람은?”
학생들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동안, 시로네도 익숙한 얼굴을 찬찬히 살폈다.
아직은 서먹했을 네이드, 그리고 첫 만남부터 충돌했던 이루키가 보였다.
‘하하! 너희들 진짜 어렸다.’
물론 나도 그렇겠지만.
살짝 미소가 지어지다가도, 이내 슬픈 눈빛으로 그들을 외면하고 말았다.
‘여긴 내 세계가 아니야.’
그저 거품처럼 무한하게 증식하는 수많은 우주 중의 하나일 뿐인 것이다.
“수열식이란 말 그대로 숫자를 나열하는 기술입니다. 언어와 달리 숫자는…….”
에텔라가 말을 멈췄다.
“시로네?”
시로네가 눈을 마주치자 에텔라는 심각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겼다.
“너…….”
그녀가 물었다.
“누구니?”
고급반 클래스의 학생들이 모두 시로네를 돌아보았으나 딱히 할 말이 없었다.
“아니, 누구시죠? 당신은 시로네가 아니에요.”
에텔라는 확신했다.
불과 1초 전까지만 해도 흥미롭게 반짝이던 눈빛이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학생이 아니야. 아니, 그런 비교조차 무의미한, 세상의 끝에 도달한 눈빛.’
그녀의 본능이 내뱉었다.
“……신神?”
학생들이 웅성거렸다.
“무슨 소리야? 선생님이 갑자기 왜 저러시지?”
소란이 일어날 것 같았고, 이 세계에 민폐라는 생각에 시로네는 일어섰다.
“에텔라 선생님.”
가장 존경하는 사람.
“감사합니다.”
작별의 느낌을 받은 에텔라가 손을 내밀었다.
“잠, 잠깐……!”
다시 어두운 공간이었다.
“후우.”
조금 전 자신이 착각했던 그 우주에서는 지금쯤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의미 없는 가정이지.’
말 그대로, 그런 우주가 무한대로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돌아갈 수는 없어.’
하이 기어의 경험을 토대로 시로네는 자신의 마음이 깃든 곳을 찾을 수 있지만.
“바깥 세계의 신.”
이제는 담판을 지어야 할 때였다.
‘나네도 이곳에 왔겠지.’
그는 무엇을 깨달았으며, 지금 어디에 있을까?
‘설마?’
시로네는 걸음을 멈췄다.
오직 착각만이 존재하는 공간이라면 신을 만나는 방법은 하나일 터였다.
‘유일한 착각.’
고개를 돌리자 마치 거울처럼 자신의 모습이 비쳤다.
‘하지만 거울은 없어.’
시로네가 천천히 다가가자, 반대편의 자신도 똑같은 자세로 거리를 좁혔다.
“…….”
그의 손이 천천히 내밀렸다.
이미르의 블랙홀.
굉장한 통합감 속에서 정신을 차린 시로네는 어두운 공간에 도착했다.
착각의 세계를 시험하고, 나네에 대한 생각이 떠올랐을 때 문득 걸음이 멈췄다.
‘유일한 착각.’
신은 결과이고 유일무이하기에, 어떤 착각이든 도달할 수 있는 곳은 하나.
시로네는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거울은 없어.’
두 동시 사건의 시로네는 완벽하게 똑같은 걸음걸이로 다가와 손을 맞댔다.
“…….”
잠시 음미하던 시로네가 손을 내리자 거울 현상이 다시 무無로 돌아갔다.
어느 쪽 시로네인가?
요라한의 전승몽을 받은 시로네이자, 전승몽을 받지 않은 시로네이기도 했다.
‘모순이 없어.’
시로네는 이미르의 꿈속에 있던 자신이 현실과 단절된 이유를 깨달았다.
‘논리의 장벽에 막혀 있었던 거야.’
이곳은 모순이 없다.
무엇을 해도 옳게 되는 무한한 자유로움, 그것이 바로 울티마 시스템의 정체.
‘슬펐겠구나, 나네.’
공의 극단조차 감당할 수 없는 거대한 허무 속에서 그는 울부짖었을까?
‘만나야겠지, 나도.’
울티마를 추출하는 게 우선이었다.
다만 무한한 착각 속에 유일한 신이라는 것은 인과를 되돌릴 수 없다는 뜻.
‘사고의 역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어. 울티마를 얻어도 현실로 가져가지 못한다면…….’
각오를 끝낸 시로네는 떠올렸다.
“신.”
수많은 인간이 각자의 신을 상상할 테지만, 무엇을 떠올리든 신은 하나이기에.
그 하나의 착각이 마침내 시로네를 신이 머물고 있는 곳으로 이동시켰다.
돌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매끄럽고, 금속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부드러운 재질.
온통 하얀 공간이었다.
‘여기가 인류가 도달할 최고 레벨의 우주인가?’
아니, 그렇지 않다.
‘허수의 시간을 이용해 결과를 붙잡고 있는 것일 뿐. 인간의 가능성은 여기가 끝이 아니야.’
만약 신이 만든 인과의 사슬을 끊는다면 인류는 더 먼 미래로 뻗어 나갈 것이다.
아마도 그것이 거핀이 남긴 메시지인…….
‘무한을 넘어.’
차분히 첫발을 내디딘 시로네는 아무런 개성도 찾을 수 없는 복도를 걸었다.
그의 눈에 처음으로 다른 것이 보였다.
“히히히! 히히히히!”
개처럼 엎드린 아리우스가 빙빙 돌고 있었다.
“우히히히! 월! 월! 히히히히!”
시로네는 다시 사고를 역전시켜 불렀다.
“아리우스 씨.”
갑자기 동작을 멈춘 그가 고개를 돌리더니 시로네에게 엉금엉금 다가왔다.
“으, 으하하하! 왔구나! 드디어 왔어! 시로네!”
“어떻게 된 거예요?”
아리우스는 연신 절을 했다.
“오오! 우리의 신이시여! 인간을 구원하소서! 이 불쌍한 몸뚱어리를 취하소서! 푸하하하!”
반쯤 미쳐 있었다.
“대체, 얼마나 많은 우주를 돌아다닌 거예요?”
모든 것이 찰나, 그 수많은 착각 속을 떠돌다 보면 누구라도 이렇게 되고 만다.
“흐, 흐우우우!”
아리우스는 눈물을 흘렸다.
“다 부질없어. 어디로든 갈 수 있고, 뭐든 될 수 있지. 개도, 곤충도, 공기도. 신이란 한없이 거대하고 한없이 광활한……. 누구도 견딜 수 없을 거야. 애초에 우리는 하찮은 존재조차 될 수 없었다고!”
그게 무한이다.
“으아아아! 난 아무것도 아니야! 차라리 죽여! 죽음마저 착각이 되는 이 빌어먹을 공간……!”
“아리우스 씨!”
시로네의 일갈에 아리우스는 입을 다물었다.
“정신 차려요. 그건 신의 특성일 뿐이에요. 알고 있잖아요. 울티마가 있으면 인간에게도 싸울 힘이 생겨요. 추출할 수 있어요? 미로 씨가 수를 냈을 거라고 말했어요.”
“미로.”
나의 주인님.
“추출이야 간단하지.”
아리우스는 두 팔을 벌렸다.
“자, 여기 울티마다. 가져가. 벽을 파내든, 공기를 빨아들이든. 이곳을 이루는 모든 개념이 울티마야. 현실과 정반대지. 여기에서 통합은 당연한 현상이야. 모순이 없어. 그냥 그런 결과를 내 버리면, 원인은 알아서 조합이 된다고.”
그의 두 손이 얼굴을 감쌌다.
“하아, 문제는 돌아갈 수 없다는 거야. 우린 여기에 갇혔어. 차라리 오는 게 아니었어.”
상황 파악이 끝난 시로네가 일어섰다.
“신은 어디 있죠?”
아리우스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만났죠?”
“가고…… 싶지 않아. 그 정적에, 고요함에, 진동에 미쳐 버릴 것 같다고.”
“그러니 돌아갈 방법을 찾아야죠. 저에게 생각이 있어요. 신은 어디에 있어요?”
“어디에?”
아리우스가 피식 웃었다.
“당연히, 신이 있는 곳이지.”
순간 그들의 몸에 전기가 흐르는가 싶더니 경계 없는 백색의 공간이 펼쳐졌다.
시선을 기준으로 3미터 위에 떠 있는 사람 머리 크기의 유리구가 전부였다.
사실 정확하지 않다.
다양한 스펙트럼의 전기가 막에 갇힌 듯 구체형으로 번지는 것을 보고 추정할 뿐.
“당신인가?”
유리구는 침묵으로 답했으나 시로네는 전기의 패턴이 바뀐 것을 직감했다.
‘저것이 바로…….’